[일희일비 #17] 나만 '그만' 위로했으면 좋겠다

2021.09.24 | 조회 3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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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곰의 일희일비

일희일비하는 우리의 일상에 대해 씁니다

여러분이 지치고 힘들 때 가장 많은 위로를 전해주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제 글을 읽는 착한(?) 어른이 여러분 곁엔 아마 충분히 좋은 사람들이 함께하리라 믿습니다. 적절한 시간, 적절한 정도의 위로는 우리를 늘 다시 일어나게 합니다. 그러나 그 위로의 주체가 오롯이 자신만이 되는 순간, 게다가 '과한' 자기위로가 반복되는 순간, 결국 탈이 나는게 아닐까요? 과하면 덜하느니만 못하다는 말. 저는 요즘의 위로가 꼭 그렇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서점 곳곳에 '지나친 위로는 몸에 해롭습니다.' 라고 써붙여야 되는건 아닌가 싶을 지경이니 말이죠. 그래서 오늘은 그 '지나친 위로들'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오늘 당신의 위로는 안녕하신가요?

한동안 ‘자기위로’라는 말이 유행(병)처럼 번졌다. 서점에는 나만 위로하면 된다느니, 무엇보다 소중한 자신이라느니 하는 말들을 덕지덕지 붙은 책들이 ‘베스트셀러’ 코너에 진열되기 시작했고, 그럴수록 심리학 서적 코너엔 더 많은 ‘자기위로’들이 앞다퉈 전시되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 몇 권의 책을 읽을 때는 나 역시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마치 주머니 속에 넣어두었다 잊고 있던 돈을 찾은 기분이랄까? 덕분에 ‘그래, 내 안엔 소중한 내가 있었지!’ 하며 주먹을 불끈 쥐고 다시 월요일을 맞이하기도 했던 것 같다.

 

물론 자기위로는 분명 충분히 필요하다. 자기위로를 부르짖는 책들에서 공통적으로 말하듯 우리는 너무 스스로에게 가혹한 환경 속에서 자라왔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엔 나보다 공부를 더 잘하는 '엄친아'들에게, 사회에선 더 많이 버는 이들의 뒷꽁무니에 달린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는 게 일종의 ‘국룰’인게 한국사회 아니던가. 그러나 자랑하기 좋은 미래를 위해 현재의, 혹은 원래의 자신을 '무조건적 계도 대상'으로 치부해버린다면, 남 뒤꽁무니만 좇다 '나'는 누구인지 잊은 채 허무만 남은 삶을 살게 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선 힘든 세상 속에서 잃어버린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또 지친 스스로를 위로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 역시 중요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이든 과하면 독이 되는 법이다. ‘자기위로’ 담론들이 점점 거대해지면서, 이들은 초기의 공감과 위로에서 벗어나 자신의 모든 행동을 합리화 해도 된다는 이상한 방향으로 몸집을 키워나가고 있다. 자기위로 담론들에선 이제 지친 스스로를 위로하는 행위를 넘어, 남들이 뭐라하던 내 맘대로 눈치없이 버티는 게 ‘잘 사는 법’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또한, 나는 너무나도 소중하기 때문에 지금 이대로만 살면 된다고, 남들이 하는 소리엔 그냥 귀를 막아도 괜찮다고 끊임없이 주입하기까지 하고 있다. 남들이 나로 인해 피해를 입던 말던, 그건 지금의 소중한 나를 지키기 위해 불가피한 일이라고 주장하면서.

 

 

심지어 최근에는 이 수많은 자기위로 담론들은 앞뒤맥락이 거세된 채 인스타그램에 ‘나를 위로하는 법’ 등으로 발췌되어 전시되기까지 하기 시작했다. 물론 자기위로 책을 쓴 작가들도 억울할 것이다. 본인들은 분명 ‘죽고싶을 때’에 써야 할 나만의 정신적 비상식량을 준비하는 법을 이야기했는데, 조건과 상황에 대한 맥락은 모두 잘린 채 극단적인 ‘자기방어법’만 나뒹굴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게시물들에 달린 댓글들을 보면, 정말이지 아찔해지기까지 한다. 거기선 많은 이들이 서로를 태그하며 자신들에게 정당한 비판을 했던 사람들을 전부 ‘꼰대몰이’하느라 여념이 없다. ‘감히’ 소중한 나의 태도와 행동을 지적하다니! 용서할 수 없는 사람들! 그리고 거기달린 수백 수천개의 ‘좋아요’들을 보고 있자면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세상에, 분별없는 자기위로 남발도 모자라 마땅히 들어야할 비판을 쓰레기 취급이나 하다니!

 

그런데 정말 나는 지금 이대로 완성된 인간인가? 그렇다고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듣기싫은 말들 중에는 이제 막 꽃피우는 내 삶을 짓밟으려는 의도가 깔린 말들도 있겠지만, 분명 내 안의 완성되지 않은 면이 성장하도록 도와주는 ‘쓴소리’들도 있다. 그런데 이런 ‘자기위로’ 담론에만 빠져 모두의 말에 귀닫고 눈닫은 채 내면의 아이만 토닥이면 된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에게 열린 성장의 기회 역시 닫혀버리고 마는 것이다. 객관적으로 자신을 보는 능력을 퇴행시키고, 결국 장기적으로는 나의 삶을 이끌어갈 수 있는 ‘더 나은 자신’을 지워버리는 지나친 자기위로들. 지금 우리는 한번쯤 멈춰서 이 비대해진 자기위로 담론에 대해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자신의 삶에서 진정한 ‘심리적 주인’이 되려면, 단지 자기위로에만 몰두하기 보다 좀 더 균형잡힌 시각을 가지고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어야만 한다. 자기위로가 필요한 만큼 자기 객관화도 필요하고, 자존감이 필요한 만큼 자신의 부정적인 면을 수용하고 변화하려는 능력도 필요하다. 나를 성장시키기 위한 하나의 도구에 불가한 '자기위로'에 매몰되면, 스스로를 성장시키기는 커녕 지금의 불완전한 자아에 함몰된 채 현재의 비극 속에 잠식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떤 심리적 도구이든, 그것은 도구 이상의 의미를 지녀선 안된다. 그 모든 것의 '균형의 주체'는 스스로가 되어야만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위로’ 그 자체가 아니다. 자기에게 ‘위로’가 필요한 순간 온전히 스스로를 위로해 줄 수 있는 능력, 동시에 내 안에 충분한 심리적 에너지가 찬 순간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누군가의 비판을 수용할 수 있는 능력. 이 두 가지 능력을 모두 건강하게 개발 할 때 우리는 진정으로 건강한 스스로를 완성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더 이상은 ‘자기위로’가 남발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기위로라는 말만큼 더 많이 스스로에 대해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는 환경도 조성되었으면 한다. 부디 우리 모두가 조금 더 나은 스스로가 되기를 멈추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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