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는 사랑을 글로 배웠네. 일단 많이 만나봐. 그러다 보면 맞는 사람도 있겠지.”
우리는 보통 사랑에 실패한 친구들에게 이런 위로의 말을 건네곤 한다. 사랑은 다른 사랑으로 잊는 거라면서, 무조건 더 많이 만나다보면 결국 네가 원하는 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 역시도 그런 조언을 많이 해왔다. 좋은 사람을 만나는 건 로또 맞을 확률같은 거라서 일단 무조건 주사위 던지듯 더 많은 연애를 해봐야만 한다고 말이다.
그러나 정말 ‘시행’만 늘린다고 꿈꾸던 완벽한 파트너가 랜덤으로 나타날까? 곰곰이 지난 연애들을 되돌아보면, 이 질문에 ‘그렇다’고 확답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문제는 연애의 횟수가 아니라 연애의 과정에서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달라졌는가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자, 양심에 손을 얹고 지난 연애들을 되짚어보자. 매번 똥차를 피하겠다 다짐하면서도, 정작 비슷한 문제를 가진 같은 사람에게 끌린 뒤 지난번 보다 더 큰 상처를 입고 또다시 이별하는 패턴을 반복하진 않았는가? 또다시 사랑을 글로 배운 자신을 탓하면서 말이다.
어쩌면 우리가 늘 사랑에 실패하는 이유는 사랑의 주체를 온전히 ‘타인’에게 두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랑은 하는 것이 아니라 ‘빠지는’ 것이므로, 사랑의 과정에서 자아를 삭제한 채 '설렘'을 빙자한 연애감정에만 온전히 몰두해야만 한다는 판타지 말이다. 그러나 사랑은 분명 ‘건강한 두 성인’의 합을 전제로 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한 축인 자신을 빼버리면, 결국 우리는 비슷한 사람만을 선택해 같은 문제를 반복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마치 지구를 공전하는 달처럼 영영 같은 궤도를 반복하면서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는 사랑이란 문제적 궤도를 이탈할 수 있을까? 우선 사랑의 과정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사랑을 완전히 끝내기 위해서는 어떤 미련도 남아있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주어진 축복인 ‘불편한 일에 대한 망각’ 덕분에 우리는 지난 일을 미화하고, 끝까지 가보지 않은 덕분에 적당히 덮여진 불편한 진실을 외면한 채 문제적 상대와 재회하기도 한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 ‘끝까지’ 사랑을 다하고 나면 그 불편한 진실을 직면하는 일이 더욱 수월해 진다. 뜨겁게 활활 타오르던 감정이 식고 나면, 좀 더 이성적으로 삶을 분별해 낼 수 있듯이 말이다.
또, 사랑이 끝난 후 바둑에서 패했을 때처럼 ‘복기’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다. 이번 연애에서 서로를 결정적으로 멀어지게 만든 이슈는 무엇이었는가? 또한 내가 불편하게 느꼈던 상대의 특성은 과연 처음부터 없었던 것인가? 아니면 설렘이 끝난 시기에 그 단점들이 더욱 크게 부각되기 시작했던 것인가? 이 갈등에서 나의 문제는 무엇이었는가? 또한 지난 연애와 이번 연애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이었는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스스로 답하는 시간을 가지다 보면 분명 잊고 있던 나의 문제들이 수면 위로 떠오를 것이다. 그리고 다음 연애 전까지 내가 가진 문제들을 직면하다 보면 분명 나는 반복되는 ‘똥차궤도’를 탈출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내가 끌리는 사람들의 공통점에 대해서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늘 나에게 의존적인 사람을 만난다거나, 지나치게 자아가 비대하고 자존감이 낮아 늘 시비를 거는 상대를 만난다거나, 혹은 회피적 성격을 가진 상대만을 골라 만나고 있다면 비슷한 상대에게 얽히는 나의 심리적 특성이 문제일 수도 있다. 물론 나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을 끊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들이 나에게 그런 태도를 보여도 괜찮다고 느끼게 만든 나의 문제에 대해서도 돌아봐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라면 전문가와 상담을 통해 자신의 성격적 특성에 대해 분석해 본다거나, 가까운 지인들에게 자신의 문제에 대해 솔직한 피드백을 달라고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이렇게 좀 더 객관적으로 자신의 문제를 돌아보다보면 문제적 상대들을 반복해서 만나던 과거의 나와 단절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익숙한 느낌을 사랑이라고 ‘단정’하는 행위를 멈춰야 한다. 설렘이 끝난 사랑과 쉽게 이별하라는 말이 아니라, 내가 늘 쉽게 끌리던 사람들과 똑같은 썸을 반복하는 일을 멈춰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별로라고 생각하더라도 모두가 괜찮은 사람이라 말하는 이들과 조금 더 데이트를 해보면서 이들의 장점을 파악해보는 것도, 또한 설레는 마음에 급하게 ‘연인’이라 관계를 규정하는 대신 본인이 정한 횟수 이상 만나보며 천천히 발전해 나가는 것도 도움이 된다. 늘 하던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것 자체가 자신의 시야를 넓히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새로운 스스로의 면을 발견할 수도 있으며, 또한 상대방에게서 장점을 읽어내는 능력도 기를 수 있기 때문에 1석 2조라고 할 수 있다.
똥차 가면 새차가 무조건 올거라 믿는 건 어떤 의미에선 물떠놓고 사랑을 애걸하는 기복신앙에 가까운 행위다. 관계는 마치 시소타기와도 같아서, 내가 달라지지 않는 한 관계의 기울기도, 관계의 무게도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변화해야 하는건 부품 갈아끼우듯 교체할 연애상대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반복을 단절적으로 끊어내지 못하더라도, 1cm의 변화라도 일구어내야만 결국 이 궤도를 이탈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복의 과정에서 배우는 점이 있어야 사랑도 성장한다. 결국 내게 더 필요한 사람, 나에게 더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선 내가 달라져야 한다는 것. 이 사실을 잊지 않을 때, 우리는 좀 더 나은 연애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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