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지는 싸움을 한다

[람곰의 일희일비 #23]

2021.10.15 | 조회 4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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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곰의 일희일비

일희일비하는 우리의 일상에 대해 씁니다

얼마 전 다이어트 명언이라면서 "먹어봐야 익숙한 그 맛이다"라는 말이 떠돈 적이 있습니다. 익숙해진다는 것, 이미 알고 있는 걸 경험한다는 것, 그 자체론 큰 쾌감을 주지 못한다는 말이겠지요. 물론 즐거움 만큼은 아니겠지만, 고통 역시 익숙해진다고 더 괜찮아 지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오늘도 익숙해진, 아니 더 강해진 채 돌아온 고통과 마주한 저의 슬픈 얼굴을 보면 말이죠. 익숙해졌다 생각할 때마다 더 크게 저를 덮치는 불안, 오늘은 그 불안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었습니다. 덕분에, 다시 산다는 말과 꼭 함께요.

 

찌릿- 찌릿-

 

아 뭔가 이상한데- 싶은, 오랜만에 느껴보는 이 더러운 기분. 이유 없이 시작된 오른쪽 얼굴 얼굴의 이상한 ‘느낌들’은 또다시 나를 7년 전 그날 즈음으로 되돌려 놓는다. 어느날 부턴가 갑자기 시작된 편측 마비의 징후들. 오른쪽 팔이 저릿한 감각부터 시작해, 오른쪽 얼굴이 마비되는 느낌, 그리고 어느 날엔간 균형을 잃을 것 같은 느낌까지. 필시 큰 일이 났구나, 안 그래도 불안에 취약한 내게 다양한 신체증상들은 곧 죽음에 이르는 지름길을 의미했고, 신체가 죽음에 이르기도 전에 내 머릿속엔 이미 다양한 ‘사망 가능성’들이 빼곡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리곤 지난한 병원 투어가 시작됐다. 통증의학과에선 거북목 때문일 수 있다며 비싼 도수치료를 받기 시작했고, 운동으로 자세를 바로 잡다보면 통증도 괜찮아진다는 말에 비싼 PT를 끊기도 했다. 그러나 나의 증상들은 전혀 사라지지 않았고, 공황 환우들에겐 ‘금기’나 다름없는 ‘증상 검색해보기’ 행위를 반복한 결과 나는 혼자 ‘루게릭’이거나 ‘뇌졸중’ 예비환우로 스스로를 판명짓고 말았다. 하지만 곧 죽음에 이를 것이란 나의 바람(?)과는 달리 삶은 시름시름 계속 이어졌고, 나는 또다시 생소한 이름의 병원들을 이리저리로 수소문해 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난치성 류마티스 질환을 치료하는 류마티스 내과에서부터 시작해, 신경과에선 수십번도 더 한 피검사는 물론이거니와 MRI에 MRA까지 찍어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증상에 대한 대답은 그 어느 곳에서도 들을 수 없었다. 남은 것은 오로지 텅 빈 지갑뿐. 분명 증상을 느끼지만 원인은 알 수 없는 병이라니. 그렇게 시름시름 앓던 나에게 구원이 되어준 것은 얼토당토않게도 항불안제와 항우울제였다. 물론 처음 그 약들을 먹기 시작했을 땐 일상생활이 꽤 어려워지기도 했다. 약을 먹으면 저녁 6시에 필름 끊기듯 잠들어버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기도 했고, 언젠가 부턴가는 고통 뿐 아니라 늘 날카롭던 내 생의 감각들 전반이 모두 무뎌지는 경험을 하기 시작했다. 약은 내 뿌리 깊은 불안과 우울을 누르며 동시에 내 안에서 빛나던 생생한 감각 역시 잘라내 버렸고, 그리하여 나는 고통과 흥정한 댓가로 얼마간의 생을 잃은 채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빨리 약을 끊고 싶었다. 물론 의사 선생님과 충분한 계획을 가지고 반알씩 단약을 시작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에 차지 않았다. 나는 빨리 ‘정상’이 되고 싶었다. 약이 없이도 내 삶이 충분히 괜찮을 수 있는 그런 삶 말이다. 그리하여 힘겹게 약을 끊은 지도 벌써 3년의 시간이 지났다. 그러나 생이란 것은 역시나 공평해서, 조금씩 생생해진 일상의 감각들과 함께 불안이 가져오는 불편감들도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을 때마다 이 기묘한 불편감들은 언제나 내게 되돌아왔고, 나는 그 때마다 조금씩 ‘덜’ 무너지는 훈련을 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전처럼 이 불안들이 과호흡이나 심한 우울 증세로 이어지진 않지만, 불안은 늘 강해진 나보다 한체급 위가 되어 돌아와, 매번 내 삶을 엎어치고 메치며 나를 비웃곤 했다. 넌 아직도 갈길이 멀었다는 듯이 말이다.

 

최근 애인과 살 집을 알아보는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던지 기어이 이 불편한 감각들이 다시 시작됐다. 잊고 있던 웬수와 외나무 다리도 아니고 비좁은 관람차 안에서 만나 단둘이 손잡고 꼭 붙어있는 기분이랄까. 손끝이 저리고, 얼굴이 무너진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마다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이 기분. 또한, 약으로, 삶으로, 상담으로 몇 년 간 해왔던 ‘극복노력’들이 한 번에 무너지는 듯 한 이 기분은 그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다. 힘겹게 마지막 힘을 다해 언덕 위에 올라왔는데, 눈을 떠보니 다시 출발지점에 와있는, 21세기형 시시포스의 삶. 불안을 아는 몸이 되어 삶을 살아간다는 건 이렇듯 지난한 ‘다시들’로 이루어진 무한궤도 위에서도 마음 쓰지 않고 살아야만 가능한 삶인 듯 싶다.

 

 

익숙해진 불편함들과 손 꼭잡고 인생이란 삶을 등반하는, 지긋지긋한 불안 속에서 사는 삶. 오늘도 나는 저릿한 삶의 감각 위에서, 또다시 더 강해져 돌아온 캡틴 불안들과 힘겹게 씨름하고 있다. 익숙한 고통과 더 익숙한 불안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는 고통은 더 무섭게 잊혔던 내 ‘실패의 역사들’을 불러와 나를 주눅들게 한다. 너는 또 실패할거야, 너는 또다시 공황 속에서 살게 될거야. 그렇게 속삭이듯 내 몸을 찌릿거리게 만드는 이 불안 속에서, 나는 오늘도 또다시 한걸음을 내딛어야 한다. 필히 질 수 밖에 없는 싸움을 계속 하면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링 위의 나도 지겨운 이 싸움들에 끝까지 지치지 않고 응원해 주는 좋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내 삶이 결국-에서 멈추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 이어질 수 있게 해주는 힘. 끝없이 실패해도 괜찮을 수 있는 힘은 어쩌면 누군가의 진심 어린 응원에 있다고 해야 할까. 다시 약을 먹어야 할지, 아니면 이 고통을 생생하게 느끼며 지금의 이 순간들을 넘겨야 할지 잘 모르겠다. 약을 먹는다고, 고통을 계속 느낀다고 영원한 패자는 아닐 테니까 말이다. 끝까지 해볼 수 있는 깡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삶은 어떤 의미가 있는 건 아닐까? 그렇게 오늘도 나는 반쯤 무너진 나라는 모래성을 다시 쌓으며 이 생 위에 선다. 언젠가 이 모든 고통이 끝이 나는 날, 최선을 다한 내가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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