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비교에 민감한 이유

진화적 본능과 사회제도적 대응의 필요성

2025.05.21 | 조회 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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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가는 즐거움

책을 읽으면서 한 생각들

우리는 상대성에 민감합니다. 아래의 직업 선택지가 주어졌을 때 A를 선택하는 사람이 많다고 해도 별로 놀랍지 않죠.

  • A. 다른 사람들이 3백만 원을 받을 때, 나만 4백만 원 받기
  • B. 다른 사람들이 6백만 원을 받을 때, 나만 5백만 원 받기

경제학의 전제에 따르면 한계효용은 점점 감소합니다. 그러면 부자일수록 돈에 대한 한계효용이 줄어들면서 돈을 더 벌고 싶은 욕구도 줄어야 할 것 같은데, 실제로 그런가요? 절대적으로는 그럴지 모르겠지만, 실제로는 자기와 비슷한 혹은 더 부자와 비교하면서 더 큰 부를 꿈 꾸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상대적인 우위를 선호하는 심리는 어디에서 왔을까요? 생물학적인 본성의 기원을 자연선택과 진화에서 찾아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여기에서도 썼지만, 자연은 철저한 생존경쟁의 장입니다. 경쟁은 그 정의상 상대적인 것이며, 상대적 우위를 추구하는 개체, 더 근본적으로는 그렇게 행동하도록 유도하는 유전자가 자연선택을 받아 살아남은 것이라는 설명은 설득력이 있습니다.

지위재와 비지위재 스펙트럼

그렇다고 우리가 항상 상대적인 우위를 기준으로만 판단하는 건 아닙니다. 가령, 안전에 대한 문제가 있습니다. 위험한 일을 해야 하는데, 아래의 두 경우 중에 고를 수 있다면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

  • A. 다른 사람들의 사고 확률은 0.1%인데, 나만 0.05%인 경우
  • B. 다른 사람들의 사고 확률은 0.005%인데, 나만 0.01%인 경우

『경쟁의 종말』에 따르면, 이런 경우는 대부분 B를 선택한다고 합니다. 상대적인 우위보다는 나의 절대적인 안전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겠죠.

우리가 소비하는 재화를 상대적인 우위가 중요한 지위재와 절대적인 가치가 중요한 비지위재 사이의 스펙트럼 상에 놓아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선택을 할 때, 이 문제가 나에게 있어 스펙트럼의 어디에 위치하는지 생각해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입니다. 가령, 직장의 휴가 일수는 절대성이 중요한가요, 상대성이 중요한가요?

개인의 군비경쟁과 집단 전체 이익의 충돌

그런데 문제는 상대적 우위를 향한 개체 간의 경쟁이 집단 전체에 항상 이로운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토마스 셸링 교수는 이를 아이스하키 선수의 헬멧 착용 문제로 설명합니다.

헬멧 착용 여부를 온전히 선수들의 자유에 맡기면, 헬멧을 안 하는 것이 약간이라도 경기력에 유리하기 때문에 결국 모두가 착용하지 않는 선택을 합니다. 그 결과 부상의 위험이 커지죠. 그렇다고 선수들이 부상의 위험을 무시한다거나 헬멧 쓰지 않기를 바란다고 결론 내리면 안 됩니다. 의견을 조사해 보면 대부분의 선수들이 헬멧 착용을 강제하기를 바란다고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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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다 하니까 어쩔 수 없이 나도 하는데, 모두가 그렇게 하니까 상대적 이득은 사라지고 결국 전부 (다 같이 안 했을 때보다) 손해를 보게 되는 아이러니를 잘 보여주는 사례 같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끝까지 헬멧 착용 여부를 선수의 자유에 맡기면 장기적으로 어떻게 될까요?

상상해 보자면, 뛰어난 경기 역량을 갖추고 있지만 부상에 민감한 선수에게는 하키를 포기하고 다른 분야로 옮겨갈 동기가 생깁니다. 반대로, 하키장에서는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면 위험 감수도가 높은 선수가 성공할 확률이 높아지겠죠. 이런 선택이 모여 하키 경기의 양상을 바꾸고, 종국에는 종목 자체의 인기에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단순한 예상을 넘어서는 복합적인 상호작용이 나올 가능성이 훨씬 높겠지만, 중요한 것은 규칙의 설계가 어떤 선수가 성공할지, 진화의 용어를 빌린다면 "생존"할지에 영향을 끼친다는 점입니다. 자연선택과 차이가 있다면 있다면, 이때는 선택의 주체가 "자연"이 아니라 "인위적인 제도"라는 점입니다.

진화적 본능과 사회제도적 대응

『경쟁의 종말』 책의 원제는 The Darwin Economy입니다. 자연 상태에서 발생하는 상대적 우위를 위한 군비경쟁이 인간 경제에 어떻게 투영되는지를 설명하면서 이를 다윈 경제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이 책을 쓴 로버트 프랭크 교수는 사치품 같은 지위재 경쟁이 사회 전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며, 이런 현상이 심화될수록 사회적 비효율이 커진다고 경고합니다. 그 해결책의 하나로, 그는 (소득이 아니라 소비를 많이 할수록 세금을 많이 내는) 누진소비세 제도를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논의는 우리 사회에서 상대적 비교가 얼마나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비록 비교에 민감한 것은 진화가 우리 마음에 새겨 넣은 본성이라고 하더라도, 이를 어떻게 다룰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는 점을 생각하게 됩니다.

참고 자료

  • 로버트 프랭크, 『경쟁의 종말』, 안세민 옮김, 웅진지식하우스(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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