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뒷모습

Story. ⟪북유럽 신화⟫ 닐 게이먼

2023.05.14 | 조회 1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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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실물보관소 알렉산드리아

이야기가 필요한 이들을 위한 이야기 보관소 【알렉산드리아】

가끔, 필요할 때가 있다. 

하루의 끝.

시계마저 지친 그 자리에 설 때. 

주머니를 아무리 뒤져봐도, 

마음 속을 아무리 헤쳐봐도, 찾고 싶은 것을 손에 잡지 못할 때. 

아니, 무엇을 찾고 있는지조차 잊어버렸을 때.

 

그럴때. 

사람들은 이곳을 찾는다. 

놓쳐버린.

혹은 잃어버린 이야기를 찾기 위해.

이곳의 문을 연다. 

 

이야기를 찾으러. 

별것 아니지만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찾으러. 이곳에 온다.


 언젠가 저 뒷모습을 본 적이 있다. 움직이고 있다 느껴지지 않는 발걸음. 금방이라도 떨어져 버릴 것 같은 어깨. 세상이 모두 땅에 있다는 듯 내려앉은 고개. 언젠가 저 뒷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때, 내 발자국이 저랬을까?

 그때, 내 어깨도 저리 움츠러 들었을까?

 그때, 내 시선은 바닥을 향했을까?

 이곳의 생은 부조리로 가득하다. 알베르 카뮈의 그 말을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10을 쏟았으면 적어도. 10의 결과값이 나와야 했다. 그것이 정상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지 못했다. 나에게도. 아빠에게도. 그래서 그때는 자주 울었던 것 같다.

 억울해서.

 더러워서.

 더럽고 치사해서.

 자주 울었다.

 내 앞을 지나는 저 사람처럼. 자주 울었다.

 

 세무소의 풍경은 한 편의 부조리극을 보는 것만 같다. 한쪽엔 들뜬 표정과 보이는 건 오직 하늘 뿐이라는 듯 열의에 가득찬 이들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사망 선고를 받아든 듯 지하로. 지하로 떨어지는 이들이 교차한다. 그들은 아마도 서로를 비웃고 있을 것이다. 아직도 희망 같은 것을 기대한다며. 적어도 나는 저딴 표정으로 이곳에 서진 않을 거라며. 서로를 비웃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개중에는 나와 D의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제 3자의 표정.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한. 제 3자의 표정.

 


 

 "아마도... 그런 거겠죠?" 

 축 처진 걸음으로 세무서를 나서는 남자의 뒷모습. 그것을 보며 D가 말했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죠?"

 "저는 이래서 여기가 싫더라고요. 저런 사람들을 너무 많이 만나. 이미 충분히 만난 것 같은데."

 "충분히?"

 "... 아니에요."

 "뭐 만날 말만하고 아니래. 사람 궁금하게."

 D는 내 말은 못들은 척 시선을 돌렸다. 

 "힘들겠다. 저 사람도." 

 D의 시선을 좇은 곳엔 한 사람이 있었다.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이제 막 폐업신고를 한 것 같은 한 남자가 있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기 다른 이유로 불행하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을 생각한다. 대부분 그의 말에 공감하지만 지금 내 앞을 지나는 저런 이들을 보면 대문호의 말이라고 모두 맞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불행의 이유도 결국은 비슷하다. 돈이든 명예든 사람이든. 불행은 무언가를 잃어버렸을 때 시작되고, 그 시간과 비례해 깊어진다. 결국 모든 불행은 비슷하다. 그렇지 않다 아무리 외쳐도. 울부짖어도. 

 "그런데 우리, 어디 가는 거예요?"

 "어디 가긴? 알렉산드리아로 가는거지?" 

 "알렉산드리아 가려면 저-기로 가야 하는데?"

 "그런데 왜 여기로 가는 거예요?"

 "나야 Y가 가길래."

 '나도 D가 가길래. "

 아마도 뒷모습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도 D도. 세무소를 걸어 나가는 이름 모를 남자의 뒷모습이 지워지지 않았을 것이다. 혹은 그 남자의 뒷모습과 겹쳐 보이는 익숙한 실루엣이 기억 나... 정처없이 걸었을 것이다. 

 "좀 돌아가면 어때요?"

 "맞아요. 좀 돌아가면 어때요. 거기가 어딘지만 알면 되지." 

 "오... 오랜만에 맞는 말."

 "얼레? 제가 맞는 말 전문가인거 모르셨나봐요?" 

 "날씨도 좋으니. 그렇다고 칩시다." 

 "그래요. 그렇다고 쳐요 까짓거."

 


 

 "Y."

 "응?"

 "저 사람..."

 한참을 돌아 도착한 알렉산드리아. 그 앞에 한 사람이 서있었다. 익숙한 뒷모습의 한 사람이 서있었다. 어쩌면 세무소에서 스친 그 사람일 수도 있고, 또 어쩌면 비슷한 불행을 껴안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세상의 불행은, 그것을 짊어진 이들의 뒷모습은 늘 비슷하니까. 

 "알렉산드리아에 오신 거예요? 그러면 망설일 필요가 없죠. 어서 들어오세요!"

 D의 안내로 손님은 알렉산드리아의 계단을 걸어 내려갔다. 유난히 무거운 구두 소리. 유난히  깊게 느껴지는 알렉산드리아. 손님은 한참을 내려가 알렉산드리아 안으로 들어섰다.


 

- 이름 : 제레미

- 기분 : 모르겠습니다. 

- 잃어버린 것 :

저는 망했습니다. 망한다는 말. 자주 쓰는 거죠. 점심을 먹으러 간 식당이 갑자기 문을 닫았을 때도 "아, 망했네." 응원하는 스포츠 팀이 경기에 졌을 때도 "완전 망했구만." 우산 없이 걷다 소나기를 만날 때도 "망했어, 망했어, 망했어." 뭘 그렇게 망할 일이 많은지... 망한다는 말을 자주 썼습니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말. 그런 이상한 미신을 믿어본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망했다는 말이 씨가 된 것인지 저는 정말로 망했습니다. 

 시작은 좋았습니다. 웹 기반 플랫폼 사업이었고 아이디어도 괜찮았습니다. 저만 그렇게 생각한 것은 아니었는지 투자도 순식간이었죠. 블루오션이라고들 하죠? 저희는 그 바다에서 유유히 순항했습니다. 그럴듯한 영어 이름을 짓고 그 이름이 박힌 명함을 들고.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그것이 언제까지가 계속 될 것이라 믿었습니다. 아니, 확신했습니다. 사업하는 사람에게 믿음 같은 건 멀리해야 할 적폐의 단어니까요. 우리는 모두 확신했습니다. 먼저 자리를 선점한 이상, 이 바다에 들어올 다른 이들이 있다한들 우리가 흔들릴 일은 없다고 확신했습니다. 하지만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 있었습니다. 바닷물이 다 말라버리는 것. 그것만은 예상치 못했습니다. 저희의 이야기를 뉴스에서 보셨다면 아마도 이렇게 생각하셨을 겁니다. 

 "그런 일이 다 있네?" 

 저희도 그랬습니다.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 생각지도 못했던 그런 일이 다 있네... 그렇게 생각하며 하나 둘, 짐을 싸고, 책상을 빼고 서류를 파쇄하고, 문을 걸어 잠궜습니다. 그리고 첫 출발의 장소에서 마지막을 고했습니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이었을까요? 

 폐업 신고를 하고, 세무소의 문을 나설때까지. 그리고도 한참을 서성일 때까지. 저는 이 질문의 답을 찾으려 애썼습니다. 너무 안주한 것일까? 개인의 아집에 사로잡혔던 것일까? 아니면 애초에 바다가 아닌 곳에 배를 띄운 것일까? 여러 보기 항목들이 떠올랐지만 쉽게 답을 체크할 수는 없었습니다. 또 이제는 그 답을 찾는 게 그리 중요해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저흰 이미 망해버렸으니까요. 

 그래도 저에게. 저와 함께했던 이들에게 항해 일지의 마지막 장을 채울 이야기 하나쯤은 찾아두고 싶었습니다. 다음 항해를 기약할 이야기. 그것을 찾고 싶었습니다.  


 

 정처없는 발걸음이 도움이 될 때가 있다. 또 쏟아지는 폭우가 힘이 될 때가 있다. 그 걸음은, 그 빗방울은 머릿 속 부유하는 먼지를 차분히 가라앉힌다. 그러고 나면 시야는 조금 더 뚜렷해지고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그제야 눈에 들어온다. 심지어 잿빛으로 어둡게 느껴지던 것들이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한다.

 오늘 온 손님. 그가 폐업신고를 하고 알렉산드리아 까지 정처없이 걷던 그 걸음도 그랬을 것이다. 그에게 맑은 시야를 주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의미없는 질문의 답을 찾는 것을 멈추고, 앞에 놓인 시간을 바라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섣불리 그곳에 발을 내디딜 수는 없다. 실패의 경험은 용기를 담보로 가져가곤 하니까. 그럴 땐 맑은 시야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앞에 그림을 그릴 상상력이 필요하다. 이야기는 다른 능력은 없지만 그것은 아주 잘하는 편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 그림을 그리는 것. 그 그림을 동력 삼아 누군가를 다시 걷게 하는 것. 그것만은 아주 잘하는 편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온 손님은 운이 좋은 편이다. 정처 없는 걸음의 끝. 그곳에서 알렉산드리아를 만났으니까.

 ... 라고 말하면 너무 거만한가?

 "방금 망하고 온 손님 앞에서 자기 사업 자랑하는 거예요?"

 "그게 아니라. 웰컴! 환영한다! 잘왔다! 그런거지."

 "잘 왔는지 아닌지는 얼마나 근사한 이야기를 찾아주느냐에 달렸는데? 자신 있어요?"

 "D."

 "네?"

 "잔말 말고 캐리어나 가져와요."

 "또 어디 가실려고?"

 "좀... 추운 나라에?" 

 


 

 사람이 모이는 곳. 그곳엔 언제나 평야가 있었고, 초원이 있었고, 강과 바다가 있었다. 문제는 그런 곳은 충분할 정도로 많지 않아서 금방 레드오션이 되곤 했다. 그때부터는 약육강식.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생존의 게임이 시작되었다. 싸움에서 승리한 이들은 그 땅을 전리품 삼아 살아갔고, 패배한 이들은 축 쳐진 어깨로 또 다른 땅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밀리고 밀려 어떤 이들은 지구의 북쪽 끝. 얼음과 눈의 땅에 도착했다. 

 그곳은 무척이나 척박했지만 그래서 고요했다. 아무도 그곳에 시선을 두지 않았고, 누구도 그곳에 머물려 하지 않았다. 결국 남은 이들은 패배자 혹은 개척자가 전부였다. 그들은 이곳에서 살기위해 패배자들은 패배의 경험을, 개척자들은 삽과 곡갱이, 소와 동력을 모았다. 그렇게 살아갔다. 견디고 또 견디며. 그렇게 살아갔다. 

 문제는 임계점이었다. 추위와 척박한 환경에 내성이 생긴 그들이었지만 인내에는 언제나 임계점이 있었다. 그리고 북쪽의 추운 바람과 거친 파도는  그들의 인내를 이내 무너뜨리곤 했다. 하지만 더는 도망갈 땅이 없던 그들은 살아야 했다. 그곳에서. 인내하며. 살아야 했다. 

 그래서 그들은 신을 만들었다. 자신들과 아주 비슷한. 다만, 추위 정도는 쉽게 이길 정도의 능력을 지닌 신을 만들었다. 그 신들의 이름은 오딘, 토르, 프레야, 헤임달 같은 것이었다. 재밌는 것은 그 신들의 이야기의 첫 장에 쓰인 것은 멸망이었다는 것이다. 신의 이야기를 지은 이들은 놀랍게도 신들의 전쟁. 그리고 멸망의 이야기를 신화의 가장 앞에 적었다.  '라그나로크'라 불리는 신의 마지막 장을 적었다. 

 "그 일은 겨울에 시작될 것이다. 그건 일반적인 겨울이 아니다. 겨울이 시작되면 끝나지 않고 계속되어 겨울 다음에 다시 겨울이 찾아온다. 봄도 없고, 온기도 없다. 사람들은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며 점점 분노한다. 세계 곳곳에서 큰 전쟁이 일어난다. 그건 잔인한 바람의 시대. 늑대가 먹어 치우기라도 한 것처럼 하늘의 태양이 사라지고 달도 없어지며, 별 또한 더 이상 보지 못하게 된다. 암흑이 재처럼, 안개처럼 대기를 가득 채운다." 

 <북유럽 신화>의 시작은 그 겨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장난의 신 로키는 자신을 모욕한 신. 아스가르드의 절대신들을 무너뜨릴 계략을 세운다. 그의 영약한 지혜는 이번에도 빛을 발한다. 그는 헬의 병사들과 서리 거인들, 늑대 펜리르를 비롯한 병력을 대동해 전쟁을 시작한다.

 그의 선전포고에 아스가르드의 신들은 허둥지둥 급하게 전투태세를 갖춘다. 하지만 시간을 충분히 들이지 못한탓에 그들은 하나 둘 각개로 싸웠고 홀로 죽음을 맞았다. 안타깝게도. 

 로키의 병력도 상황이 다르진 않았다. 신과의 전투는 그만큼 처절한 것이었다.  하지만 로키는 만족했다. 그가 바란 것은 승리 혹은 멸망이었으니. 

 "신들의 진흙투성이 파수꾼 헤임달. 자네는 신들을 너무 늦게 깨웠어. 저들이 하나씩 죽는 모습을 보니 정말 기분 좋지 않나? 

 헤임달의 간교한 미소와 말투에도 헤임달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그저 로키 너머, 더 먼 곳을 바라볼 뿐이었다. 

 "내가 이겼어. 세상은 불타고 있고, 신과 인간은 다 죽었지. 결국 내가 이긴 거야." 

 로키의 창에 쓰러진 상태에서도 헤임달은 피로 얼룩진 금니를 드러내며 씩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자신은 가장 먼 세상까지 바라볼 수 있다고. 세계수가 있는 곳까지도. 

 그런데 그곳에는... 

 


 

제레미 님에게.

손님에게 전할 이야기를 찾기 위해 저는 지금 아이슬란드에 와있습니다. 몹시도 추운 이 땅에서는 옷을 몇 겹이나 겹쳐 입어도 추위가 쉬이 가시질 않습니다. 지금도 이럴진대 과거에는 어땠을까요.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싶은 이 땅에 처음 정착한 이들은 어떤 생각으로 이곳에 집을 짓고 가족을 만들고 세상을 지었던 것일까요? 

 세상의 끝에 닿은 그들에겐 어쩌면 선택권이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그저 견디는 수밖에는. 그런 그들에게 가장 간절한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구스다운 패딩 점퍼였을까요? 아마도 아니겠죠. 그것보다 더 간절했던 것. 저는 그것을 희망이라 생각합니다. 아마도 그래서겠죠. <북유럽 신화>가 멸망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이유는 말입니다. 

어쩌면 이상한 말이라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희망을 찾기 위해 멸망을 쓴다는 것이 말입니다. 하지만 멸망의 너머. 모든 것이 폐허가 된 자리의 뒷편. 그곳에서도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면 아무리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도 버텨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신의 멸망을 먼저, 희망을 나중에 담았을 것입니다. 

저는 실패와 패배, 그로인해 모든 것을 유실해버린, 혹은 그렇다 믿고 있을 손님에게도 같은 방식의 희망이 필요하다 생각했습니다. 힘내 라는 헛헛한 말 대신, 멸망 뒤에도 남아 있는 희망. 그것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헤임달의 말을 빌려. 

 "수르트의 불은 세계수를 건드리지 못하는데, 이그드라실의 몸통에 인간 두 명이 안전하게 몸을 숨기고 있어. 여자의 이름은 '생명'이고 남자의 이름은 '생명에 대한 갈망'이지. 그들의 후손이 지상에서 살게 될 거야. 이건 끝이 아냐. 끝은 없어. 그저 옛 시대의 종말일 뿐이지. 그리고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기도 하고. 죽음 뒤에는 항상 부활이 따라오는 법이라네." 

헤임달의 말처럼 멸망의 끝에도 새로운 생명은 또 희망은 자라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손님의 마음 한 켠에도 이미 자라고 있을지 모르죠. 희망의 이름을 지닌 내일의 시간이 말입니다. 그런 손님의 내일에 이 한 줄의 문장도 더해드리고 싶습니다. <북유럽 신화>의 마지막 문장

"그리고, 게임은 다시 시작된다." 이것을 더해드리고 싶습니다. 

 

- <알렉산드리아, 유실물 보관소> Y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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