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새벽의 약속

Story. ⟪새벽의 약속⟫ 로맹 가리

2023.05.08 | 조회 4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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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실물보관소 알렉산드리아

이야기가 필요한 이들을 위한 이야기 보관소 【알렉산드리아】

가끔, 필요할 때가 있다. 

하루의 끝.

시계마저 지친 그 자리에 설 때. 

주머니를 아무리 뒤져봐도, 

마음 속을 아무리 헤쳐봐도, 찾고 싶은 것을 손에 잡지 못할 때. 

아니, 무엇을 찾고 있는지조차 잊어버렸을 때.

 

그럴때. 

사람들은 이곳을 찾는다. 

놓쳐버린.

혹은 잃어버린 이야기를 찾기 위해.

이곳의 문을 연다. 

 

이야기를 찾으러. 

별것 아니지만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찾으러. 이곳에 온다.


여행의 마지막 날. 그 날엔 누가 캐리어에 담아 온 기운마저 다 훔쳐간듯 축 늘어지곤 한다. 좋아하는 공항 풍경도 번잡해 보일 뿐이고, 맛없는 기내식은 차라리 지나치고 잠이나 더 자고 싶은 마음 뿐이다. 하지만 밥을 먹지 않으면 컨베이어 벨트에서 짐을 찾기 전에 쓰러질 것이 분명하니 억지로라도 먹어 둬야 한다.

 그렇게 기내식을 욱여 넣다보면 간절해지는 건 역시나. 우리 집 냉장고. 사실 냉장고라고 해봐야 별다를 게 있는 건 아니다. 거의가 먹다 남은 반찬들. 또 거의가 아직 요리되지 않은 재료들. 그리고 보리차. 

 예전에는 집마다 물의 맛이 달랐다. 생수를 먹는 집은 거의 없었고, 정수기 있는 집도 많진 않았다. 또 대부분 집에서 물을 끓여 먹곤 했는데 끓일 때 넣는 티백의 종류가 제각각이었다. 어떤 집은 결명자를 넣기도 하고 또 어떤 집은 현미차를 넣기도 했다. 그정도면 나름 고급스런 티백이라 볼 수 있었다. 우리집은 그보다 훨씬 값이 싼 보리차였다. 딱히 취향을 타지도, 지나치게 맛을 주장하지도 않는 그런. 보리차. 

 한 번은 더운 여름 날이었다. 친구 집에 놀러갔다와서 물을 들이붓는 내 모습을 보며 한심하다는 듯 엄마는 혀를 찼다. 친구 집에서 물도 한 잔 못 얻어 먹고 왔냐는 눈치. 

 "그게 아니고, 걔네 집은 물 맛이 이상해. 보리차가 아니던데?" 

 엄마는 별 말 없이 컵에 보리차를 한 잔 가득 더 따라주고는 냉장고 문을 닫았다. 그러면 나는 다시 한 번 보리차를 들이켰다. 

 "역시 우리집 물맛 만한 게 없어. 그치?" 

 갈증이 가셔서 기분 좋아진 내 목소리에 엄마는 "당연하지, 누가 끓인건데."라는 거만한 표정을 짓곤 했다. 나는 빈 컵을 뺨에 가져가 더위를 식혔다. 그러다 부엌 가스렌지에 올려져 있는 커다란 주전자가 눈에 들어왔다. 주전자는 쉭쉭 김을 내며 끓고 있었고, 엄마는 더운 기운 가득한 그곳에 들어가 보리차를 넣었다. 

 "보리차는 원래 차가운 거 아니었나?" 

 손부채질을 하는 엄마와 주전자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래서 보리차는 원래 차가운 줄 알았다고요?" 

 "그치. 만날 냉장고에서 차갑게 식은 것만 마셨으니까."

 "Y가 끓여 넣어둘 생각 같은 건 안해봤어요?" 

 "내가... 왜?" 

 "왜 이런 노래 있죠.우편함이 꽉 차 있는 걸 봐도 그냥 난 지나쳐 가곤 해요.  냉장고가 텅 비어 있더라도 그냥 난 못 본 척 하곤 해요. 나는 부모님과 사니까요."

 "어? 그거 딱 난데?"   

 "어휴... 뭐가 이쁘다고 부모님은 그 더운 날에도 보리차를 끓여 넣어두셨을까." 

 엄마가 곁에 있었다면 당장이라도 물어보고 싶어졌다. 대체 뭐가 이쁘다고 그랬는지. 아니지, 나 정도면 이쁜 편이지? 맞잖아? 물어볼까? 할수만 있다면? 

 그런 생각을 하던 중, 알렉산드리아로 손님이 들어왔다. 손님은 어딘지 모르게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문자를 보내고 있었는데, 괜히 말을 걸다간 불씨가 날아올 것 같아 잠자코 있었다. D가 나서주길 기다리며... 

 "계단! 계단 조심하세요!" 

 D는 능숙하게 손님의 시선을 돌렸다. 손님은 걸음을 멈추고 스마트폰을 핸드백에 집어 넣었다. 그러더니 아무래도 안되겠다는 표정으로 다시 꺼내 문자를 전송했다. 잔뜩 찡그린 표정으로. 

 "대체 왜 이러는 거예요?" 

 알렉산드리아에서는 쉽게 들을 수 없는 질문이어서인지 이번에는 평생을 평온하게 지냈을 것 같은 D마저 고개를 갸웃 거렸다. 

 "아니, 엄마들 말이에요. 속상해서 진짜... 

 무슨 일일까. 일단은 들어봐야겠지? 


 

- 이름 : 문지영

- 기분 : 짜증짜증짜증

- 잃어버린 것 :

 엄마는 당뇨 때문에 계속 치료를 받고 있어요. 치료애서 가장 중요한 건 넉넉한 휴식이라고 몇 번을 말해도 엄마는 듣질 않아요. 시키지도 않았는데 손주 좋아한다며 갈비찜을 세 네 통씩 해오질 않나. 이제 다들 사먹는다고 그만 하라고 해도, 겨울이면 김장을 몇십 포기나 해요. 사실 요즘은 김장을 해도 배추는 다 절인 배추 사잖아요? 우리 엄마는 그것도 안해요. 가락시장에서 직접 배추며 무며 속재료들 다 사다가 소금에 절이기 시작하죠. 집도 아들 장가갈때 돈 대준다고 팔고 작은 곳으로 옮기는 바람에 좁디 좁아 죽겠는데 말이에요.  

 물론 도와주죠. 일 좀 그만 벌리라고 잔소리를 하지만, 내가 안 도와주면 엄마 혼자 꼬박 그걸 타 할테니까. 눈 감고 안 본 척 해보려고 해도 할수가 없어요. 진짜 엄마 때문에 나만 옴팡 뒤집어 쓴다니까요?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어요. 엄마는 애 때문에 집에 자리 붙이면 다신 직장 책상 못 만난다고,  애는 당신께서 봐주신다며 출산 휴가를 다 쓰기도 전에 절 직장으로 내보냈어요. 사실 다행이었죠. 육아 휴직이란 거 하루 하루가 스트레스거든요. 안으로는 아이 때문에 스트레스, 밖으로는 회사에 내 자리가 언제까지 남아있을까 스트레스... 엄마는 그런 내 마음을 말하지 않아도 알았던 거겠죠. 그래서 고맙기도 했지만 아픈 엄마에게는 아무래도 무리일 것 같아 어린이집에 일찍 보내겠다 말했어요.

 "어린이집은 무슨! 너무 빨리 보내면 우리 강아지 놀래서 안돼. 엄마 아직 일이년 쯤은 쌩쌩하니까 그떄까진 내가 봐줄거야. 넌 아무 걱정 하지 마." 

 엄마가 워낙 강하게 말하셨고, 저도 내심 할 수 있다면 늦게 어린이집을 보내고 싶긴 했어요. 그래서 저는 미안하게도 엄마의 인생을 조금 더 대여하기로 했죠.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어요. 아이가 좋아한다며 안고 업고 던지고 흔들고 하시다가... 허리에 너무 무리가 간 거죠. 허리는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계속 고생이니까 제발 치료를 받으라고 하는데도... 당신은 괜찮다며. 우리 강아지 웃는 모습만 봐도 허리가 쭉 펴지는 것 같다며 도무지 말을 안들으세요. 

 방금도 아기띠 하고 나가서 꽃 구경하고 있다며 셀카를 보내시는데... 웃프다고 해야하나... 괜스레 짜증만 자꾸 내게 되네요. 전 엄마가 된 지금도 엄마처럼 희생하고 그러지 못할 거 같은데... 우리 엄마를 이해할 만한 이야기도 있을까요? 있다면 좀 들려주세요. 이해라도 해야 덜 화가 날 테니까. 


 

  "그게 그렇게 어렵나?"

 D는 손님의 의뢰 신청서를 타이핑하고는 손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Y는 어때요? 이해가 돼요?" 

 여기서 이해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엄마의 헌신적인 마음일까. 그런 마음에 짜증이 나는 자식의 마음일까. 그렇다면 짜증의 기원은 어디일까? 엄마의 이해못할 행동일까? 아니면 언젠가 나 역시 그런 엄마가 될 것 같다는 불안일까? 

 D의 질문을 과학적으로 접근해볼까?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의 DNA는 '종족 번식'이라는 대주제에 맞춰 진화되어 왔다고. 그래서 가장 완벽하게 출산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성욕은 비례해 발달한다고. 또, 나이가 들수록. 예를 들어 할아버지, 할머니가 될수록 젊은 시절보다 정서적인 공감에 더 큰 갈증을 느끼게 진화되었는데. 이는 사냥 등에서 쓸모가 없어진 노인들에게 공동체의 어린 아이들을 맡겨 후손을 잘 보살피게 하려는 진화의 결과라고.

 리처드 도킨스의 이런 설명에 따르면 오늘 손님의 질문에 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답을 원한 것은 아니겠지.

 "어? 또 여행 가려고 그러죠? 이번엔 어디로 갈거에요?" 

 "... 새벽으로." 

 


 

 "너는 영웅이 될거야.. 너는 장군이 되고, 가브리엘레 단눈치오가 되고 프랑스 대사가 될 거야! 저 불량배 녀석들은 우리 아들이 어떤 인물인지 모르고 있어!" 

 어떤 아들도 그 당시 나만큼 어머니를 미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머니가 공군 장병들 앞에서 얼마나 치명적으로 내 체면을 짓밟고 있는지 설명하려 애쓰면서 다시 한 번 어머니를 차 뒤쪽으로 밀려고 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완전히 무너진 표정을 지었고 입술은 떨렸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우리의 대화에서 오래전에 고전이 된 참지 못할 문장이 들려왔다.

 "그래. 넌 늙은 애미가 부끄럽단 말이구나?" 

 프랑스의 작가 로맹가리의 자전적 소설 <새벽의 약속>의 첫 장면은 이렇게 시작한다. 러시아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자랐고, 자유 프랑스 공군에 첫 입성하는 장면. 로맹 가리로서는 지극히 영광스러운 자리였고, 또 그래서 최고로 남자다운 모습을 보이고 싶은 자리였다. 하지만 그 자리에 어머니 니나가 택시를 타고 달려왔고, 그곳에 수많은 군인 장병들 사이. 로맹 가리는 홀로 어머니의 배웅을 받는 신세가 되었다. 

 신세. 분명 로맹가리는 그것을 신세라 생각했다. 그리고 굴욕이라 생각했다. 다 큰 남자의 걸음 앞에 드리워진 치마폭의 그림자. 그것을 굴욕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황급히 어머니를 숨겼다. 그런 아들의 반응에 니나는 당당함이란 무엇인지, 남자다움이란 무엇인지 눈빛으로 전한다. 어느덧 나이들어 눈꺼풀마저 가라앉은 어머니의 눈매. 그것을 보며 로맹 가리는 순식간에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오른다. 러시아 빌노. 그 추운 계절의 나라에서 시작된 자신과 어머니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그곳에서부터 두 사람은 언제나 두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로맹이 태어나기 전부터 눈처럼 흩날려 사라졌고, 로맹을 지키는 손길이라곤 어머니 니나가 전부였다. 물론 그것으로 충분했다. 니나는 로맹으로 하여금 그것으로 충분하다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니나는 자신의 아들이, 언젠가 위대한 인물이 될 로맹이. 이런 추운 나라에서 머물고 있으면 안된다 여겼다. 그의 목표는 하나였다. 프랑스. 그곳으로 가서 로맹을 외교관으로, 명예로운 장군으로, 빅토르 위고를 능가할 문호로 만들 길을 열어주려 했다. 물론 그 과정은 험난이란 말로도 다할 수 없었다. 유대인이라는 신분은 물론이고, 남편 없이 버텨야 하는 이민자의 생활. 극심한 생활고는 물론이고, 자신을 할퀴려 달려드는 병마에 그녀는 정면으로 맞서야 했다. 그녀를 지켜주는 것이라고는 잿빛 코트가 전부. 니나 스스로도 그것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피하면. 그 날카로운 손톱에 로맹이 베일 것이라는 걸. 그래서 그녀는 고난이 다가오면 더 크게 팔을 벌리고 로맹 앞에 섰다. 

덕분에 로맹은. 쌔근쌔근. 잠들 수 있었다. 

 허나 어머니라는 이름의 방패로도 다 막을 수 없는 것이 있었다. 집세니 생활비니 식비니 하는 거추장스러운 것들. 남자 없는 집이라고, 떠돌이 가족이라고 멸시하는 손가락질. 하루 종일 일을 하고도 또 할 일이 남아 있는 고단한 눈꺼풀. 그것을 막아내는 것은 어머니의 신분으로도 버거운 일이었다. 그럴 때면 니나는 책상에 앉아 공부 하는 로맹에게 이렇게 말했다. 

 "눈을 들어 하늘을 봐 줄 수 있겠니?"

 로맹은 자신이 어머니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그 일을 해주었다. 니나는 그 눈에서 용기와 행복을 길어 냈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다시 또 새벽의 짙은 어둠이 세상을 칠할 때, 잿빛 코트를 감싸며 문을 나설 이유는. 그것이면 충분했다. 


 

 내가 부유하는 이 하늘 아래. 어딘가. 로맹 가리는 패잔병처럼 몸을 숨기고 있었다. 목숨을 잃을 뻔한 일도 여러 번. 로맹은 꺼버린 전투기 엔진처럼, 자신의 생도 그렇게 마감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눈 감고 싶은 순간이면 어김없이, 어머니의 편지가 도착했다. 그것은 마법같은 일이었다. 프랑스든 이집트든, 영국이든, 스페인이든. 로맹이 있는 곳이면 그곳이 어디라도 니나의 편지가 도착했다. 자신이 필요할 때면 언제나 달려와주던 당신의 걸음처럼. 어김없이 편지가 도착했다. 

 로맹은 그 편지를 보며 때로는 위로를 때로는 격려를, 또 대부분은 사랑을 전달 받았다. 그것의 힘은 얼마나 대단한 것일까. 로맹은 편지를 다 읽고 나면 어김없이 솟아 오르는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 에너지는 로맹으로 하여금 전장 속에서도 펜을 들게 했고, 훗날 그를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해줄 소설 <유럽의 교육>을 완성케 했다. 또 로맹은 그 힘으로 전투기를 몰았고, 수 척의 적기를 내몰았으며, 마침내 파리에서 히틀러 세력을 완전히 쫓아냈다. 이를 통해 그는 그 옛날 어머니가 했던 말처럼 위대한 군인, 명예로운 훈장을 수여 받았다. 

로맹은 당장이라도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들고 니나가 머물고 있을 니스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니나는... 


 

문지영 님에게.

 

 "그곳에서 니나는..."

 저는 이 이야기를 전할때면 언제나 이 부분에서 멈칫하곤 합니다. 무엇이 저를 멎게 하는 것일까요.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실은 니나는 아들 로맹이 전쟁에 나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는 것. 사망 하기 전까지, 아들이 자신의 부고를 들으면 무너질까봐. 그래서 자신을 놓아버릴까봐 수십 통의 편지를 써두었다는 것. 그 편지를 지인을 통해 때에 맞춰 보내달라고 했다는 것. 전쟁 내내 로맹은 죽은 어머니의 편지를 동력삼았다는 것. 어머니의 치마폭은 그토록 드넓고 위대하다는 것. 

 이런 생각에 저는 한숨을 내쉬곤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지영님이 어머님께 느낀 것처럼 짜증 섞인 감정을 마주하기도 합니다. "왜 그렇게까지, 뭘 그렇게까지, 대체 자식이 뭐라고..." 이런 생각에 짜증이 나기도 합니다. 그리고 니나가 남긴 마지막 편지를 볼때면 그런 감정까지 무너져 버리고 하는데요. 거기에는 이런 글이 남겨져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나를 위한 걱정은 하지 말아라. 너는 그저 용감한 사나이가 되거라. 이제 어미와 어미의 지팡이는 필요하지 않단다. 너의 튼튼한 두 발이 그것을 말해 주고 있어. 그 다리로 프랑스에 굳건히 서 있으렴. 그리고 언제나 글을 써라. 아름다운 책을 쓰도록 해. 넌 항상 예술가니까 말이야. 사랑하는 아들아. 용감해야 한다. 언제나 용감해야 한다."

 어머니의 이 편지 앞에 우리의 감정은 대부분 다 하찮을 뿐입니다. 그리고 이해라 불리는 이성적인 단어도 너무 장식적이라는 생각이 들뿐입니다. 어머니의 사랑. 그것은 이해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니까요. 그것은 아마도... 

...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게나 책을 많이 봤음에도, 여기에 쓰일 정확한 단어는 생각나질 않네요. 대신이라고 하기엔 뭣하지만, 로맹 가리의 걸음을 좇는 것으로 대신해 보려 합니다. 

 코카드 묘지. 로맹은 니나가 잠든 그곳으로 향했다. 그녀가 좋아하던 색을 지닌 백합도 함께였다.

 "빅토르 위고가 될 거야. 프랑스 대사가 될 거야. 위대한 장군이 도리 테고, 레지옹도뇌르 훈장을 받을 거야." 

 어머니의 거친 기대와 희망은 로맹에게 연결된 사랑의 탯줄이었다. 그것이 로맹을 살게했다. 그것이 로맹을 프랑스인으로, 전쟁의 승리자로, 위대한 예술가로 만들어주었다. 그런 그녀 앞에서 로맹이 이룬 모든 영광은 게으른 지각생이었다. 앞으로 얻게 될 모든 작품과 제복 역시 마찬가지였다. 로맹은 그녀의 무덤 앞에 책과 훈장 그리고 백합을 놓았다. 모든 영광을 그곳에 놓고 나자 로맹은 소년이 되었다. 한심할 정도로 작아진 모습의 로맹은 어머니의 곁에 누웠다. 두사람의 얼굴에 쏟아진 햇살은 이제야 아침을 가리키고 있었다. 겨우 아침이었다. 약속을 지킬 시간은 아직 충분했다. 로맹은 마지막으로 게으름을 피우기로 했다. 로맹은 조금 더 어머니 곁에 누워 있기로 했다.

 

- <알렉산드리아, 유실물 보관소> Y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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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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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iagonAlley

    1
    11 months 전

    아들을 위해 수십통의 편지를 써놓는 어머니의 마음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오늘의 로맹 가리를 만든 것은 어머니였군요...

    ㄴ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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