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미안해

Story. 속죄

2023.04.30 | 조회 3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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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실물보관소 알렉산드리아

이야기가 필요한 이들을 위한 이야기 보관소 【알렉산드리아】

가끔, 필요할 때가 있다. 

하루의 끝.

시계마저 지친 그 자리에 설 때. 

주머니를 아무리 뒤져봐도, 

마음 속을 아무리 헤쳐봐도, 찾고 싶은 것을 손에 잡지 못할 때. 

아니, 무엇을 찾고 있는지조차 잊어버렸을 때.

 

그럴때. 

사람들은 이곳을 찾는다. 

놓쳐버린.

혹은 잃어버린 이야기를 찾기 위해.

이곳의 문을 연다. 

 

이야기를 찾으러. 

별것 아니지만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찾으러. 이곳에 온다.



 엄마는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 했다. 아주 사소한 일에도. 그저 얼굴을 조금 찡그리기만 해도. 엄마는 미안하다 말했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화가 난 이유를 까먹을 정도였다. 물론 정중한 사과는 아니었고, 장난스런 인삿말처럼 한 손을 번쩍 든 채. "미안해! 딸!" 하고는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장난 스럽게. 

 농담인지 사과인지 모를 엄마의 모습에 어이없는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으로 끝이었다. 화가 난 사람을 웃게 하면. 그것으로 상황종료. 우리는 늘 근사한 무승부를 기록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엄마는 내게 미안하다 말하지 않았다. 분명 미안해야 할 일이었는데. 사과할 타이밍을 잊은 것인지, 갑작스레 자신의 행동이 잔망스럽다 느꼈던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당신에겐 그다지 미안한 일이 아니었던 것인지. 엄마는 사과를 하지도, 농담을 건네지도 않았다. 당연히 나도 웃지 못했다. 그저 멍하니 바라만 봐야 했다. 당신의 뒷모습을. 얼굴을 잔뜩 찡그린 채, 바라만 봐야 했다. 


 

 오늘 알렉산드리아를 찾아온 손님은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했을까? 싶을 정도로 앳된 모습이었다. 이곳에 오는 많은 손님들이 그렇듯 그도 조심스레 여기저기를 둘러보고는 몇 권의 책을 꺼냈다 다시 넣기를 반복했다. 원하는 이야기가 아니어서인지, 아니면 문장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상태여서인지는 알 수 없다. 보통은 후자일 경우가 많지만. 

용학 "원하는 이야기가 없다면 찾아드릴게요. 거기 의뢰 신청서 보이시죠? 편하게 적어주세요."

D의 밝음에 손님은 조금 환기가 되었다는 듯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오래 걸려 죄송하다며 고개를 살짝 숙였는데 D와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동시에 고개를 갸웃 했다. 그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는지 손님은 자기도 모르게 풋, 하며 웃었고 이번에는 허리를 숙여 죄송하다 말했다. 

용학 "죄송할 것도 많네요. 진짜 죄송한 건 손님이 여길 나갈 때도 그 죽어가는 표정을 짓고 있는 거니까. 가능하면 자세히! 이야기 적어 주세요." 

D의 말에 손님은 펜을 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이곳에 온 이유를. 이곳에서 찾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적어내려갔다. 그 모습을 멀찍이 바라본다. 불규칙한 곳에서 자꾸만 멈춰 서는 손. 그럴때마다 짓는 작은 한숨. 그리고 힘겹게 일어서 걷는 것처럼 다시 움직이는 펜 끝. 그 끝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런 나의 시선을 들켜 손님이 불편해한다면 곧장 이렇게 해볼 참이었다. 

"미안해요! 손님!" 하며 한 손을 높이 들고 사과해볼 참이었다. 

그러면 손님도 나처럼, 어이없다는 듯 미소를 짓게 될까?  


 

 "잘 찾아드릴테니 걱정말고 계세요. 저희가 헐렁해 보여도 일은 확실히 한답니다.

 "D, 손님 앞에서 거짓말 하고 그러면 안되는 거예요."

 "응? 거짓말 아닌데?"

  "오? 그래요? 지난 번에 데이터베이스 날려 버린 건 누구지? 귀신인가? 손님들 이야기 두 개를 섞어 타이핑 한 건 또 누구고?

 "그렇게 나온다 이거죠? Y도 이야기 찾는답시고 여행 가서 한 달 넘게 안온 적 많잖아요. 그래놓고 이상한 이야기 찾아온 건 또 어떻고요?

 "아니, 그건. 사람이 일을 하다보면 실수할 때도 있지!"

 "내 말이 그 말이네요. 저는 뭐 알파고라도 되는 줄 아세요? 워낙 일이 많으니까 사람이 헷갈릴 수도 있지. 안그래요?

 "...가끔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실수를 할때도 있으니까 그렇지."

 "사람 같지 않은 실수요!? 뭐? 어떤 거? 하나만 말해봐봐요."

 "왜 그 입대 전이라고 찾아온 손님도 그렇고, 독박 육아하던 주부, 생각 안나요? 맞아! 그 손님도 있잖아. 왜 그..."

 "하나만 말해달라니까요. 왜 두개나 말하고 그래요. 손님 앞에서 민망하게... 어? 근데 손님은 어디가셨죠?

 "그러게 우리땜에 몰래 나갔을까...?"

 "아니 뭐... 바쁜 일이 있으셨겠죠?"

 "괜히 또..."

 "미안하네."

 


 

- 이름 : 이연희

- 기분 : 숨고 싶음

- 잃어버린 것 :

 저는 죄인이에요. 죄를 지은건 3년 전의 일이었어요. 인문계 고등학교에 들어간 첫 해였습니다. 조용한 동네의 평범한 고등학교였죠. 학생들도 대부분 저처럼 조용하고, 딱히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았어요. 하지만 한 반에 서른 명 중에서 세 네 명. 딱 세 네 명 정도는 소위 말하는 문제아들이었습니다. 숫자로 보면 27 대 3. 반에서 제일 공부를 못하는 학생이라도 쉽게 계산이 나오는... 압도적 차이의 숫자였습니다. 하지만 학교라는 특별한 장소였기에 힘의 균형은 숫자가 아닌, 드센 정도로 결정이 되곤 했죠. 한 반에 세 네명. 겨우 그정도의 아이들은 그 반의 모든 아이들을 합쳐도 감당하지 못할 만큼 드셌습니다. 그리고 사냥은 어찌나 잘하는지. 가장 약한 새끼 영양부터 잡아 먹었죠.

 한 마리의 영양이 잡아 먹히면 남은 스물 여섯 마리의 영양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습니다.

 "나는 아니구나." 저 역시 그랬습니다. 나는 아니구나... 나는 아니구나... 나는 아니구나...

 그 목소리가 그들에게도 들렸던 것일까요? 사자의 탈을 쓴 하이애나들은 영양 사이를 마구 헤집으며 명령했습니다. 너희도 사냥에 동참하라고. 그렇지 않으면 너희도 잡아먹겠다고.

 1번이 아니면 2번이 답인 문제. 고작 보기가 두 개밖에 없음에도 풀기 어려운 고난이도의 문제. 그 문제 앞에서 대부분은 사자의 편에 섰습니다. 그게 답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영양의 반대편에 섰습니다.

 아, 우리라고 말하는 건, 그 아이에겐 실례겠네요. 영양 편에 서 준 단 한 명의 아이. 공부도, 운동도, 얼굴도 잘났던 그 아이. 그때는 모두가 놀랐었죠. 문제아들은 당연했고, 그들 뒤에 서있는 우리들도. 심지어 괴롭힘을 당하던 아이까지. 그의 선택에 놀랐습니다.

 그 아이는 어쩜 그리 용감했을까요? 어떻게 태어났기에 그 상황에서 그곳에 서있을 수 있었을까요? 공부 잘하고, 운동 잘하고, 예쁘면... 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었을까요? 나는, 그러질 못해서, 정답 같은 건 해답지를 보고 나서야 겨우 이해하는 멍청한 인간이어서... 그때도 오답에 마킹을 했던 것일까요?

 동거는 그때부터였습니다. 반이라는 울타리 안에 사자와 영양이... 절대 같이 있어서는 안 될 먹이사슬의 완벽한 상하 관계에 있는 두 집단이 한 곳에서 동거를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습니다. 우리는 사자들로부터 사냥을 명령 받았고, 무시와 비난, 멸시와 폭력을 자행했습니다. '뺨'이라는 단어 뒤에 어루만지다가 아닌 다른 동사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그럴때면 되도록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했습니다. 아마도 원망이 가득했을 그 눈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으니까요. 또 한 편으로는 이런 생각을 했던 것도 같습니다.

 '나는 그저 시켜서 하는 것 뿐이야... 나 혼자 아니라 외친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그랬습니다. 달라질 건 없었습니다. 나의 자리가 이곳에서 저곳으로 바뀌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달라질 게 없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반 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영양들은 스스로 학교를 떠났습니다. 그런데 웃기는 건 뭔지 아세요? 영양의 수는 절대 줄어들지 않았다는 거예요. 저는 그저 빌고 또 빌 뿐이었죠.

 "내 차례가 오기 전에... 삼월이 먼저 오게해주세요... 제발..."


 

 "Happily Ever After." 

 오래된 동화의 끝은 언제나 이랬다. 이야기 속 주인들은 마법의 성을 지나 늪을 건너, 어둠의 동굴 속 멀리 있는 행복을 쟁취한다. 그리고 평생을 행복하게 살아간다. 과거, 이런 동화가 많았던 이유는 간단하다. 그런 일은 동화에서나 꿈꿀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이라고 뭐가 다를까... 그래서 사람들은 알렉산드리아에서 동화를 찾아가는 일이 많다. 의뢰인도 어쩌면 그런 이야기가 필요했을지 모른다. 자의는 아니었지만 자신의 외면으로 괴롭힘 당한 어떤 이가. 평생토록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길 바랐을지 모른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다면, 의뢰인은 알렉산드리아를 찾지 않았을 것이다. 

 의뢰인은 기도의 효과 덕분인지, 영양이 되기 전, 졸업 했다고 한다. 그리고 아주 유명한 대학은 아니지만 진학을 한 뒤, 간호학과에서 착실히 공부를 마쳤다. 그리고는 취직. 그 과정 동안 의뢰인은 진학과 취업, 공부와 업무의 스트레스에 시달렸고, 그럴때마다 자신처럼 불행한 이가 또 있을까, 자주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의뢰인은 자신이 일하던 병원의 정신의학과로 들어서는 어떤 환자를 마주했다. 멍한 표정과 지친 몸짓, 작은 소리에도 흠칫 흠칫 놀라는 그 환자의 움츠린 어깨를 보았다. 

 "영양이다." 

 벌써 몇 년이나 지난 이야기. 어제 점심 메뉴도 잘 생각나지 않던 의뢰인은 어찌된 일인지 그 친구의 얼굴은 또렷이 기억이 났다. 그의 뺨이 어떤 촉감이었는지, 어떤 소리를 냈는지, 심지어 손바닥의 통증 까지도. 선명히 기억났다. 의뢰인은 이번에도 눈을 질끈 감았다. 혹여나 상대와 눈이 마주칠까봐. 그 눈빛에 잡아 먹힐까봐. 고개를 돌렸다. 

 경찰에게 잡혀가는 로비. 그의 뒤에 선 브리오니 처럼. 

 의뢰인에게 필요한 이야기. 그것을 찾기 위해 영국의 근사한 저택 앞에 섰다. 이곳은 어느 성공한 노작가의 집이다. 브리오니 라는 이름의 이 작가에겐 언니 세실리아가 있었다. 세실리아는 이웃의 청년 로비와 이제 막 사랑의 마음을 나누기 시작한 참이었다. 문제는 브리오니 역시 로비에게 마음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브리오니의 눈에 자꾸만 보이는 두 사람의 미묘한 장면들. 상상력이 뛰어난 브리오니는 그 장면을 제멋대로 해석하고, 있지도 않은 이야기를 써내려간다. 그리고 어느 날, 브리오니는 절대 해선 안되는 말을 남긴다.

 "로비 오빠가 사촌 롤라를 겁탈했어요." 

 단 한 마디였다. 왜 나왔는지도, 계획적이지도 않았던 그 한 마디 말 때문에 로비는 3년 6개월의 복역을 선고받고, 세실리아와 멀어진다. 자신의 한 마디에 로비가 잡혀가고, 세실리아는 충격에 빠져 삶이 송두리째 망가져 버린다. 급기야 전쟁에 징집된 로비는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황. 브리오니는 끝없이 자신을 합리화한다. 

 '진짜 그랬을 수도 있잖아? 내 말이 거짓이 아니었을 수도 있잖아? 로비 오빠가 보낸 그 외설적인 편지와 언니를 향한 더러운 눈빛. 그정도면 증거로 충분한 거 아니야?' 

 아니었다. 브리오니가 생각한 모든 이야기는 진실의 증거가 될 수 없었으며, 망가진 두 사람의 삶. 그것에 대한 반론이 될 수 없었다. 브리오니도 그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가 해야 할 일은 '속죄'라는 사실 또한 알고 있었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그 결심을 하기 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는 것. 그 시간 속에서. 죄인의 속죄가 부재한 세상 속에서. 세실리아와 로비는 끝없이 고통 받았다.

 


 

이현희 님에게.

 

 "그녀는 흐린 갈색 빛 전등 사이로, 바닥 끝으로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었다. 다른 승객들은 보이지 않았으며 바람 또한 불지 않았다. 그녀는 침착하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생각해보았다. 부모님께 편지를 쓰고 진술서를 작성하는 일은 금방 끝낼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를 알고 있었다. 단순한 편지가 아니라 새로운 원고, 속죄를 쓰는 것. 그녀는 이미 그것을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언 매큐언의 소설 <속죄>에는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소설 속 주인공 브리오니는 자신의 실수로 벌어진 거대한 비극을 마주하며 '속죄'를 결심합니다. 물론 알고 있었습니다. 속죄가 과거의 시간을 NG난 영화의 필름처럼 잘라내주진 않는다는 사실을. 아무리 속죄한다 한들 상처받은 이의 인생을 되돌려주진 못한다는 사실을.

그렇다고. 속죄를 무거운 금고상자 속에 집어넣고 영원히 꺼내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브리오니가 세실리아와 로비의 눈빛을 영원히 외면했다면 어땠을까요? 아마도 두 사람은 브리오니가 외면한 시간만큼의 고통. 그것을 더 짊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니 저는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변론이 아닌 <속죄>라는 제목의 이야기를.

당신도, 어쩌면 상대방도 간절히 기다리고 있을 그 이야기를 권해드립니다.

 

- <알렉산드리아, 유실물 보관소> Y 드림.

 

추신.

주제 넘는 일이 아니라면 이 말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너무 늦지는 마시라고. 이 말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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