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한때는 내것이었던

Story. ⟪하워스, 1904년 11월⟫ 버지니아 울프

2023.05.21 | 조회 2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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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실물보관소 알렉산드리아

이야기가 필요한 이들을 위한 이야기 보관소 【알렉산드리아】

가끔, 필요할 때가 있다. 

하루의 끝.

시계마저 지친 그 자리에 설 때. 

주머니를 아무리 뒤져봐도, 

마음 속을 아무리 헤쳐봐도, 찾고 싶은 것을 손에 잡지 못할 때. 

아니, 무엇을 찾고 있는지조차 잊어버렸을 때.

 

그럴때. 

사람들은 이곳을 찾는다. 

놓쳐버린.

혹은 잃어버린 이야기를 찾기 위해.

이곳의 문을 연다. 

 

이야기를 찾으러. 

별것 아니지만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찾으러. 이곳에 온다.


 

 우리 집 식탁은 항상 지저분했다. 음식 얼룩은 없었다. 그 흔한 컵자국도 없었다. 엄마는 다른 많은 것들에 관대했지만 나무로 만든 물건에 자국이 남는 것을 싫어했다. 그래서 깜빡하고 코스트를 쓰지 않거나, 하교 후 양껏 물을 마시고 컵을 식탁 위에 툭 내려놓을 때면 감시라도 하고 있던 것처럼 달려와 컵을 치웠다. 그리고는 내 양볼을 꼬집으며 "조심 좀 합시다, 아가씨." 라며 혼을 내곤 했다. 그럴때면 난 잔뜩 나온 입으로 식탁 여기저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엄마 책이나 좀 치워. 노트에 지우개 가루에. 조심 좀 합시다 아주머니?" 

 그러면 엄마는 "쓰읍"소리 내며 검지 손가락을 세우고 말했다. 

 "... 여긴 내 자리란다."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당신의 자리라는 것을. 밥 먹는 식탁이 왜 엄마의 자리인지. 하고 많은 자리 중에 왜 저곳을 당신의 자리로 정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이 의문의 답을 찾은 것은 시간이 꽤 많이 흐른 뒤였다. 고등학교 졸업식을 마치고, 대학 기숙사에 가기 위해 내 방을 정리할 때. 그때쯤이었을 것이다. 오랜 시간. 같은 자리에 머물던 것들은 텃세라도 부린 것인지 여기저기 자국을 남겼다. 벽지는 들뜨거나 상처 나있었다. 그 자국을 유심히 바라 보았다. 왜그랬는지 알 수는 없다. 아마도 학생이라는, 10대라는, 한 시절을 끝낸 철없는 이들의 감상적 행동이었으리라. 찢어진 벽지 뒤, 낯익은 무늬를 발견한 것은 그때였다. '윽... 촌스러워.'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고풍스런 무늬. 내 취향의 벽지로 도배 되기 전, 이 방에 머물던 사람의 취향이었을 그 무늬를 발견한 것은 그때였다.  

 그 무늬를 본 내 머릿 속엔 촌스럽게 이어붙인 필름 속 영화가 상영되었다. 첫 번째 씬은 자정이 가까운 시간의 미장센이었다. 거실 가운데. 바람이 닿지 않고, 온기는 모이는. 그 자리에 포근한 요가 깔려있다. 그 위로 네뼘이 채 되지 않을 것 같은 아이가 잠들어 있다. 아이의 곁에는 먹다 남은 젖병. 침에 젖은 대나무 수건, 아무렇게나 흐뜨러진 물티슈. 그리고 잘 포개진 기저귀가 있다. 그리고 아이가 보이는 가장 먼 곳에, 그래봐야 식탁이 놓인 그곳에. 엄마가 앉아있다. 엄마는 몸을 반쯤 식탁에 기댄 채, 얇은 손목과 작은 손바닥으로 머리를 지탱한 채, 남은 한 손으로 작은 문고본 책을 넘긴다. 제대로 읽고 있는 것이기나 한지... 책장은 영혼 없이 넘겨지고, 엄마의 눈꺼풀도 책장처럼 덮인다. 

 다음 씬은 그렇게 잠든 엄마의 꿈 속이다. 너무나 생생해 마치 얼마 전의 현실처럼 보이는 꿈이었다. 꿈에서 그녀는 작은 방. 한때는 자신의 것이었던 그곳에서 하나 둘 물건을 빼고 있다. 화장대며 침대며, 액자며, 책상까지. 이사라도 가는 사람처럼 자신의 흔적을 지운다. 그리고 마지막은 도배. 자신이 좋아하던 무늬의 벽지 위로, 파스텔 톤의 화사한 벽지를 덧댄다. 그렇게 엄마는 자리를 양보한다. 이제 곧 태어날 뱃속의 아이에게. 자신의 자리를 양보한다. 


 

 알렉산드리아에 흔치 않게 세 명의 손님이 찾아왔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와 잔뜩 졸린 눈을 한 채 필요한 이야기를 적는 어린 엄마. 그리고 또 한 명은 중년이란 말이 어색하지 않은 여자였다. 그녀는 나이를 먹으며 배운 것은 인내라고 말하는 듯 느긋한 표정과 몸짓으로 알렉산드리아의 서재를 둘러보았다. 그 사이, 다른 어린 엄마는 보채는 아이를 달래며 의뢰 신청서를 쓰고 있었다. 몹시도 얇은 팔목으로. 아이를 돌보고 이야기를 써내려갔다. 그런 그녀가 안쓰러웠는지 D는 아이를 번쩍 안고 놀아주기 시작했다. 

 "우리 D는 아이도 잘 보네? 장가보내도 되겠어?"

 "보내만 주시면 감사하죠. 제가 이래봬도 조카가 좀 많아요."

 "조카? 조카 있는 줄은 몰랐는데?" 

 D는 아이처럼 양손을 쫙 펴더니 손가락을 접으며 숫자를 셌다. 

 "어디보자... 열 명에, 지난 달에 다섯 명, 그 전 달에는 다행히 셋. 한 스무 명쯤 되나보네요." 

 이건 또 무슨 말일까. D에게 다시 물으려는 순간, 아이가 손을 뻗어 내 뺨을 만졌다. 

 "어이구~ 아가가 예쁜 거 구분하는 건 언제 배웠을까~?" 

 D는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눈을 흘겼다.

 "Y보러 저리 가라는 거잖아요. 엄마 안보인다고."

 D의 말처럼 내 뒤로 아이의 엄마가 있었다. 그녀는 알렉산드리아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작은 가죽공방을 했었다. 오랜 시간 노력해도 아이가 생기지 않다가 기적처럼 임신을 하고는 '아무래도 가죽 냄새는 아이에게 안좋을 것 같아서요...' 라고 말하며 공방의 문을 닫았다. 공방을 만들고 자리를 잡기까지 그녀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기에 공방의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전해왔을 때, 나도 모르게 "왜 그랬어...?" 라며 답 없는 질문을 했고, 후회했다. 

 "이렇게 쓰면 되려나... 처음 해보니까 어렵네요." 

 출산 소식을 들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았는데. 그녀는 벌써 방긋방긋 잘 웃고, 제법 걸음도 내디딜 줄 아는 아가를 데리고 알렉산드리아에 왔다. 항상 웃음끼를 머금고 다니던 그녀. 하지만 어쩐지 오늘의 미소엔 피로의 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아이가 저렇게 웃기까지. 아이가 저렇게 걷기까지. 아이가 저렇게 손을 뻗을 때까지. 엄마는 무대 뒤 스텝처럼 분주히 움직이고, 온갖 일에 신경을 곤두 세우고, 무대에 불이 꺼진 뒤에도 행여나 무슨 일이 있을까... 잠들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 큰 눈이 지금처럼 반쯤 감겨 버렸을 것이다. 

 "주무시는 건 아니겠죠...?"

 D의 말에 그녀를 다시 보았다. 

 "에이 설마." 

 "설마가 사람 잡겠는데요?" 

 "그럼 좀 잡혀줄까...?" 

 "그래요. 대신 의뢰 정리는 Y가 해야돼요." 

 "내가 왜?"

 "그럼 Y가 아기 볼래요?"

 타이핑. 그거 뭐, 어려운 일도 아니다. 


 

- 이름 : 김정연

- 기분 : 졸려요... 많이 많이.   

- 잃어버린 것 :

 기억나요 Y? 저는 그때도 자주 졸려하곤 했죠. 남들보다 손이 느린 탓에 얼마 없는 주문도 제작에 애를 먹었고, 자주 밤을 새곤 했어요. 그때 Y가 제게 해준 말을 기억해요. 

 "무슨 좋은 일 있어요?" 라는 말. 

 저는 Y의 그 질문에 빵 터져서 소리내어 웃었고, Y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죠. Y가 그런 질문을 했을 만큼 제 표정이 행복했었나봐요. 그렇게나 지치고 피곤한데도.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나봐요. 왜 아니겠어요. 그렇게나 원하던 공방을 차리고, 기대보다 빨리 제작 주문도 들어오고... 행복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게다가 아무리 피곤해도 그때 내겐 출구가 있었어요. 공방의 불을 모두 끄고, 문을 열고 나서면 그것으로 끝. 집에 돌아가면 시원한 맥주 한 잔과 그만큼 밝게 웃으며 날 맞아줄 남편. 그리고 그이가 만들어 둔 근사... 까진 아니지만, 쓸만한 안주까지. 그런 출구가 있었어요. 

 오늘 알렉산드리아를 찾은 제 모습을 보며 Y는 "무슨 좋은 일 있어요?"라고 묻지 않았죠. 왜 아니겠어요. 이렇게나 힘들고 피곤한데... 

 행복하지 않은 건 아니에요. 아니, 공방을 운영할 때보다 행복의 종류와 크기는 더 많고 더 커졌어요. 정말 매일이 새롭고 매일이 행복한...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정말로 그랬어요. 그런데도... 그럼에도... 너무 피곤해요 Y. 난 너무 지쳤어요. 행복의 댐으로도 다 막을 수 없는 피로가 매일 밤 저를 뒤덮어요. 그거 알아요 Y? 그런 감정을 느낄때면 전 이상한 죄책감이 코 끝까지 차올라 숨을 쉴 수가 없어요. 저렇게나 예쁜 아이가. 저렇게나 사랑스런 아이가 있는데... 그런데도 힘들어 하는 제 모습이 너무 한심하고, 너무 죄스러워. 숨을 쉴 수가 없어요. 

 남편도 아마 다르지 않을 거예요. 그이도 나처럼 행복하고 또 피곤하겠죠. 하지만 그이는 회사라는 출구가 있잖아요. 나는 그것도 없어요. 그 출구는 내가 스스로 닫아버렸으니까. 주변에서는 참 쉽게 말해요. 목만 가누면, 백일만 지나면, 걷기 시작하면, 어린이집에 보낼 나이가 되면. 다 괜찮아질거라고. 참 쉽게 말해요. 

 왜 그런 말을 하는지는 알죠. 나라도 나 같은 지인을 보면 그렇게 말했을 거예요. 고맙지만 도움은 되지 않는. 텅 빈 조언을. 그거 말고... 진짜 도움이 되는. 그런 이야기 없을까요?

 


 

 D와 놀던 아이는 쉴 새 없이 움직였고, 또 쉴 새 없이 고개를 돌려 엄마가 엎드려 졸고 있는 곳을 바라봤다. 아마도 확인하고 싶었으리라. 자신의 시선 닿는 곳에 엄마가 있다는 것을. 그 시선은 무척이나 포근하지만 머리 끝까지 덮으면 숨이 차오르는 이불처럼. 때로는 버거운 것이었으리라.

 "으차! 엄마는 조금 더 자게 놔두고. 우리끼리 더 놀까?" 

 엄마에게 자꾸만 다가가는 아이를 안고 비행기 놀이를 하며 D는 능숙하게 그녀를 도왔다. D의 눈치빠른 행동 덕에 그녀는 몇 분 더. 졸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나도 어서 그녀를 돕고 싶었다. 아이는 잘 못돌보니까. 이야기로. 그녀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찾아 전하며 그녀를 돕고 싶었다. 그래서 서둘러 여행가방을 꺼내 들었다. 

 "D." 

 "걱정 마세요. 손님 깨기 전까지 제가 잘~ 놀아주고 있을테니까. Y는 빨리 이야기나 찾아와요. 

 도움이 된다. 저런 D의 모습은. 


 

 런던의 거리를 걷는다. 언젠가 버지니아 울프가 걸었던 그 길을 걷는다. 울프는 어둔 거리 산책을 즐겼다. 연필 한 자루를 사기 위해, 그 길을 걷고 또 걷는. 무용한 시간을 사랑했다. 대문호들의 공통된 취미가 산책이니 이는 별로 특별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버지니아 울프가 산책을 즐겼던 이유. 그 시대 여성들에게 그 시간이 간절했던 이유는 따로 있었을 것이다. 집 안 어디에도 자신의 공간이 없었던 그들. 그들에게 바깥 거리는 유일하게 숨 쉴 수 있는,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 제목으로 비유하자면 '자기만의 방'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런던 거리를 누리고는 이렇게 썼다.

 "달아나는 것은 큰 기쁨이다. 겨울 날 거리를 헤매는 것은 가장 큰 모험이다. 그리고 여기에 도시의 보물더미에서 건져낸 유일한 전리품, 연필 한 자루가 있다." 

 증기 기관차와 굴뚝이 생긴 이후. 런던의 공기는 좋았던 기억을 잃어버린다. 스모그가 짙게 내려앉은 거리. 런던 사람들은 그것이 원래의 런던이라 생각했으며, 맑은 런던 하늘을 기억하는 것은 나이 많은 농부나 그림 그리는 화가가 전부였다. 그래서 그곳의 사람들은 점차 숨이 가빠졌다. 

 버지니아 울프와는 경우가 다르지만, 조지 오웰의 소설 <숨 쉬러 나가다>속 중년의 남성도 그랬다. 그는 매일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폐에 고통을 준 것은 스모그만은 아니었다. 그 정도였다면 그는 견뎠을 것이다. 숨 쉬었을 것이다. 그의 숨통을 조이는 존재는 런던 곳곳에 산적해 있었다. 아내와 아이들의 잔소리.  실적에 대한 상사의 압박. 언제 터질지 모르는 전쟁의 불안. 가스요금, 주택할부금, 학비, 우유값, 지나친 런던의 소음... 그 모든 것이 그의 목을 졸라왔다. 그에겐 버지니아 울프의 탈출구였던 런던 거리의 연필 한 자루도 위안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로어빈필드로 향했다. 자신의 고향이었던, 하늘색 물감과 똑같은 색의 하늘을 품고 있던 곳. 작은 연못과 자신만 아는 아지트가 있던 곳. 그곳으로 향했다. 숨을 쉬고 싶어서. 그곳으로 향했다. 

 버지니아 울프도 그랬다. 런던 거리. 그곳에 널린 거추장스러운 것들. 예를 들면 차별이라든지, 관습이라든지, 제도 같은 것들. 그것들에 지쳐갔다. 그래서 버지니아 울프와 남편 레너드 울프는 런던 외곽에 있는, 소박한 강이 흐르고 이름 있는 꽃보다는 이름 없는 들꽃이 더 많았던 곳. 몽크스 하우스로 향한다. 그곳에서 버지니아 울프는 진정한 자기만의 방을 갖게 된다. 그 방은 바깥 풍경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창문 옆 부엌이기도 했고, 출판사 일을 하기 위해 마련한 낡은 인쇄기가 놓인 거실이기도 했다. 또 때로는 레너드와 함께 눕는 침실 한 켠의 소파 테이블이기도 했고, 어떨때는 집에서 머지 않은 강줄기가 그녀의 방이 되어주었다. 

 버지니아 울프는 그런 자신의 방. 자기만의 방을 갖는 것이 숨 쉬기 위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라 생각했다. 허나 그것을 갖는 것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특권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태어나면서 품고 나오는 심장 처럼. 당연한 것이 아님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버지니아 울프는 아주 근사한 방법을 말해준다. 자신보다 앞서 숨 쉴 공간을 찾아 헤맸던 이들이 살던 곳에서, 그 방법을 전한다. 


 

 "유명 인사들의 성지를 순례하는 것은 감상적인 여행이라고 비난받아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허나 위대한 작가의 집이나 그 지역이 그의 저서에 대한 이해를 높여 줄 때에 한해 호기심은 정당하다. 샬럿 브론테와 그 자매들의 집과 고향을 순례할 때는 이런 정당성이 있다."

 1904년 11월. 하워스에 도착한 버지니아 울프는 이런 핑계를 대며 브론테 자매와의 만남을 시작했다. 브론테 자매는 목사였던 아버지 때문에 아무것도 없는, 심지어 이웃 집 하나 보이지 않는 하워스에서 살아야 했다. 그런 자매의 흔적은 고스란히 하워스의 박물관에 남아 있었고, 버지니아 울프는 그곳에서 그들이 숨 쉬던 자리를 발견한다. 일찍이 자신에겐 런던 거리였고 몽크스 하우스였던 그 공간을 말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 자리가 몹시나 작고 별것 아닌 것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자매 중 둘째였던 에밀리 브론테. 1904년 11월에 방문한 하워스에서 버지니아 울프의 눈길을 빼앗은 것은 그녀의 흔적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참나무로 만든 그녀의 스툴 의자에 시선을 빼앗겼다. 

 "그 물건은 전율을 일으킨다.에밀리가 홀로 황야를 배회할 때 들고 다니던 작은 참나무 스툴이다. 거기에 앉아서 그녀는 글을 쓰지 않으면 그녀의 글보다 나았을 것을 생각했다고 한다."

하워스에 꾸며진 브론테 자매의 박물관에 놓인 스툴. 그것은 앞서 만난 런던 거리와 로어빈필드, 몽크스 하우스와 같은 존재였다. 그렇다. 그 스툴에 앉을 때, 에밀리는 자기만의 방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고 비로소 글을 쓸 수 있었다. 물론 글을 쓰는 행위가 에밀리에게 항상 긍정적인 기능을 한 것은 아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에밀리 브론테는 가슴이 답답할 때, 현실이라는 벽을 벗어나고 싶을 때. 그 작은 스툴을 들고 하워스의 언덕에 올랐다. 글을 쓰기 위해서. 씀으로써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우리에겐 "폭풍의 언덕"이란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그곳에 올랐다. 그곳에는 에밀리가 좋아하던 히야신스 꽃이 가득했고, 바람은 꽃의 향기를 퍼뜨릴 만큼만 불었다. 그 바람에 머리칼이 날렸지만 에밀리는 신경쓰지 않았다. 항상 가는 자리. 그곳까지 올라 스툴에 앉고  휴대용 책상을 무릎에 올렸다. 그리고 글을 썼다. 그것은 집이나 가족, 세상이나 사회를 벗어나 오롯이  자신이 되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벅차오르는 시간이었다. 마음도, 가슴도. 눈꺼풀도. 오르고 또 오르는 시간이었다.  

 


 

정연 씨에게

 

 언젠가 알랭 드 보통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아기보다는 일반 가전제품이 더 상세한 취급 설명서와 함께 온다." 

 정말 그렇죠. 아는 것이라곤 열 달 내내 나눈 심장박동이 전부인데, 그 아이를 어떻게 해주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을 거예요. 왜 웃는지, 또 왜 우는지. 저 손짓은 무슨 뜻인지, 저 맑게 깜빡이는 눈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왜 자꾸 잠을 설치는지. 악몽때문인지 배고픔인지. 여린 무릎으로 기어가고 싶은 곳은 대체 어디인지. 내 손을 잡고 싶을 때는 언제고, 뿌리치고 싶을 때는 언제인지. 품을 더 좋아할지, 등을 더 좋아할지.... 왜 갑자기 훌쩍 커버리고 왜 갑자기 태어나던 그때처럼 '으앙' 우는지. 설명서를 손에 쥐지 못한 우리는 알 수가 없습니다.

 저희 엄마의 말을 빌리자면 속을 모르겠는 건 스무살이 넘어서도 마찬가지였다고 하던데, 이런 말은 딱히 도움이 되지 않겠죠? 

 그래서 정연씨에게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를 찾다 이곳. 하워스까지 왔습니다. 이곳에 머물던 세 자매는 엄마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정연 씨에게 완벽히 맞는 이야기 조각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정연 씨에게 지금 제일 필요한 것은 숨 쉴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것이 제일 간절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하는 삶에서 나만의 공간을 찾는 것은 쉽지 않죠. 갑자기 한적한 시골마을로 이사를 갈 수도 없고, 충동적으로 고향에 내려가는 것도 불가하니까요. 

 하워스에 살던 에밀리 브론테. 그녀도 종류는 다르지만 비슷한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 목사의 딸이라든지 여자의 이름이라든지 하는 것들. 그 조건을 바꾸지 못해 답답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숨은 쉬어야 했기에. 그녀는 스스로 자기만의 방을 찾아나섰습니다. 그것은 그리 거창할 필요도 없었고, 넓거나 아늑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저 내 마음을 누이고 쉴 수 있는 곳. 그정도면 충분했기에 에밀리는 작은 스툴. 그곳을 자기만의 방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홀로 앉을 때, 그녀는 비로소 숨 쉴 수 있었습니다. 

 저는 정연씨에게도 그런 자리가 있었으면 합니다. 아이를 재우고, 어둠이 내려앉은 그 시간. 정연씨의 마음을 누일 수 있는 자리가 있었으면 합니다. 그곳 역시 대단히 거창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그저 작은 스툴 하나. 그정로도 충분할 것입니다. 

 

<알렉산드리아, 유실물 보관소> Y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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