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야기의 자리

Story. 셀수스 도서관

2023.04.23 | 조회 3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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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실물보관소 알렉산드리아

이야기가 필요한 이들을 위한 이야기 보관소 【알렉산드리아】

가끔, 필요할 때가 있다. 

하루의 끝.

시계마저 지친 그 자리에 설 때. 

주머니를 아무리 뒤져봐도, 

마음 속을 아무리 헤쳐봐도, 찾고 싶은 것을 손에 잡지 못할 때. 

아니, 무엇을 찾고 있는지조차 잊어버렸을 때.

 

그럴때. 

사람들은 이곳을 찾는다. 

놓쳐버린.

혹은 잃어버린 이야기를 찾기 위해.

이곳의 문을 연다. 

 

이야기를 찾으러. 

별것 아니지만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찾으러. 이곳에 온다.

 


 

 "거기 놓고 가세요."

 매일 정오 열두 시, ‘유실물 보관소, 알렉산드리아’의 문을 연다. 딱히 시간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잃어버린 것이라고 해봐야 이야기가 전부인 곳이니 그다지 급한 사연의 손님은 없으니. 다만 가끔은 이야기가 고픈 이들이, 또 이야기가 간절한 이들이 있기에. 문을 열지 않을 수는 없다. 방금도 한 손님이 이야기를 찾으러 왔다. 나는 그들에게 잃어버린 이야기를 찾아준다. 사례비? 이야기로 받는다. 그들이 남기고 간 이야기로. 엄마가 만든 괴상한 규칙이지만 어쩔 수는 없다. 가만. 그런데 이야기를 찾는다는게 다 무슨 말이냐고? 

 이유가 무엇이든 누구나 시야가 흐려질 때가 있다. 그럴때면 세상이 나 혼자 뿐인 것 같고, 추억이라 말하는 기억 따위 한 줌도 남아있지 않은 것 같은. 그런 때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럴 때 허기와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그래서 식당을 찾는다. 하지만 잘 차려진 한 끼 식사로도 허기가 채워지지 않을 때면, 무언가 큰일이 났다는 생각에 초조해진다. 

 그리고는 주머니를 뒤적뒤적, 가방도 뒤적뒤적, 잃어버린 게 무엇인지도 모른 채, 목적 없이 잃어버린 것을 찾으려 애쓴다. 대부분은 그러다 제풀에 쓰러지곤 하는데... 간혹 어떻게든 그것을 찾으려 애쓰는 이들이 있다. 그런 이들이 마지막으로 찾는 것이 바로 이곳. <유실물 보관소, 알렉산드리아>다. 

 말하자면 이곳은 잃어버린 이야기가 모이는 곳이다. 대부분은 쓸모없는 이야기이며 또 대부분은 시간낭비인 이야기다. 서점의 온갖 책들이 그렇듯이 말이다. 하지만 누구에게는 필요없는 이야기가 내게는 간절한 이야기일 때가 있다. 서점의 온갖 책들도 그렇듯이 말이다. 이곳은 그런 이들을 위해 잃어버린 이야기를 모아둔다. 그리고 손님에게 필요한 이야기가 이곳에 없을 때면, 그것을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이야기가 있는 곳으로.  방금 온 손님이 잃어버린 이야기를 찾기 위해서도 여행을 필요할 것 같다. 

 엄마는 이야기를 찾기 위한 여행을 몹시도 좋아했다. 그래서 손님이 찾는 이야기를 보관하고 있음에도, "안보여, 안보여~" 하며 눈을 가리고는 여행을 떠나곤 했다. 꽤나 그럴싸한 핑계에 아빠도 나도 엄마의 여행 가방을 붙잡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나도 기대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엄마가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를 잔뜩 담아올까? 기왕이면 탐정 이야기가 좋은데... 엄마는 추리 같은 거 귀찮다며 안 챙겨 오겠지? 이런 생각을 하며 엄마를 배웅했다. 그리면 나는 유실물 보관소에 쌓인 잃어버린 이야기를 손 가는 데로 꺼내 읽으며 엄마를 기다렸다. 그 루틴이 너무 익숙해진 것일까? 

 엄마가 너무 멀리 떠난 지금도. 

 나는 기다린다. 


 

- 이름 : 진 유진

- 기분 : 흐림 

- 잃어버린 것 : 

 43일. 정확히 43일이었어요. 아버지로부터 300일 만에 전화를 받고, 또 한 번 전화를 받을 때까지. 고작 43일이 걸렸어요. 43일 전, 아버지의 모습은 제법 담담했습니다. 평소에도 무뚝뚝한 아버지였고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생각하는 무심한 분이었기에 그 목소리에서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죠. 저는 아버지의 그 생각이 몹시 싫었습니다. 그렇잖아요.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니. 

 그게 그리 차가울 일인가요. 

 하지만 43일 동안 두 통의 전화를 받은 저는 아버지의 생각이 맞았다며 고개를 끄덕여야 했습니다. 불운의 가지를 물어다주는 어느 새의 방문처럼, 아버지의 연락은 두 개의 좋지 않은 소식을 물고 있었습니다. 

 병과 부고. 사실 그 짧은 시간 동안 그렇게 거대한 두 사건을 끼워넣을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잖아요. 다이어리 한 페이지 반. 겨우 그 정도 공간에 쓰기에 그것들은... 너무 거대한 단어잖아요. 하지만 어쩔 수 없죠. 스케줄이라는 것은 자의보단 타의에 의한 것이 많다는 걸. 이제는 알아도 될만한 나이가 되었으니까요. 

 그래도... 이제 봄인데. 아직 4월인데. 봄 같은 봄은 아직 오지도 않았고 다이어리의 남은 페이지는 잔인할 만큼 많은데. 그 여백을 생각하면 이상하게 눈물이 나요. 

 ...해봤죠. 어머니를 잃은 롤랑 바르트의 <애도 일기>를 옮겨 써보기도 했고, 매일 밤 침대맡에 누워 아내를 잃은 줄리언 반스의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의 오디오북을 들어보기도 했죠. 그런데 내 밑은 언제 빠져버렸는지. 채워도 채워도 포만감이 들질 않았어요. 

 그렇다면 저는 잃어버린 것이겠죠. 나를 채워두던 수많은 마개. 그 중 하나를 잃어버린 것이겠죠. 그러니, 찾아주세요. 내가 잃어버린 것. 더는 흘려버리지 않게. 찾아주세요.  

 


 

 엄마는 가능하다면 기차를 타고 여행했다. 무엇이 그리 좋은지 물으니 가는 길이 훤히 보여서 좋다고 했다. 두터운 철길을 보면 왠지 든든한 기분이 든다며. 엄마는 기차를 타면 어쩐지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 엄마의 그 말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 역시 웬만하면 기차를 탄다. 아직 불안할 게 없는 나이인지. 안심의 표정을 지어본적은 없지만 그래도 한 가지 좋은 것이 있기는 하다. 차를 타면 어지러움에 책을 보지 못하는데, 기차를 타면 얼마든지 볼 수 있다는 것. 그것만은 기차 여행의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다.  나는 지금 진유진이 잃어버린 이야기를 찾으러 가고 있다. 튀르키예의 셀축으로.

 그곳엔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에페소스. 에페스... 부르는 사람마다 다른 이름의 이곳은 한때 로마의 국경 아래 들어서 거대한 항구도시가 되었다. 항구라는 곳이 늘 그렇듯 너무 많은 사람, 너무 많은 돈, 너무 많은 향신료, 너무 많은 고기가 오갔다. 그 덕으로 이곳은 커다란 도시가 될 수 있었지만 그 크기만큼 감당해야 하는 것도 많았다. 

 특히 이곳을 관리하는 집정관 셀수스 폴레마이아누스에게는 감당해 내야 하는 일이 언제나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사인의 속도보다 빨리 쌓이는 서류들. 그것에 질리고 그것에 지쳐갈때쯤. 그래서 펜을 든 그의 손이 느려질때쯤.

 그는 죽었다. 그리고 이곳에 묻혔다.

 3층 높이의 거대한 건물. 쌍둥이처럼 똑같은 모습의 기둥들. 그 위를 받치는 천장과 그 사이를 가득 채운 아름다운 조각. 세상에서 가장 잘 드는 칼로 단면을 자른 듯 한면만 남아 있는 이곳. 셀수스 도서관이다. 집정관 셀수스 폴레마이아누스의 이름을 딴 이곳을 지은 이는 그의 아들 아퀼라다. 

 아버지를 잃은 아퀼라는 상실의 돌에 맞아 한쪽 가슴을 잃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구멍을 메우기에 앞서 돌아가신 아버지의 빈 책상을 먼저 걱정했다. 수많은 책과 수많은 지식, 그리고 이야기가 오가던 항구 도시를 사랑하던 아버지. 매일 밤, 책상에 쌓인 새 책을 여는 것을 즐겼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의 책상이 이제 텅 비어버리면 어쩌나. 아퀼라는 걱정했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의 무덤이 있는 곳에 셀수스 도서관을 짓기로 했다. 자신이 가진 모든 부와 기술, 그리고 사람을 동원해 그것을 짓기로 했다. 그의 계획에 따르면 '셀수스 도서관'은 이 거대한 항구도시에서도 가장 웅장한 도시가 될 것이었다. 반대는 없었다. 그때는 지식도 이야기도 귀하게 존중받던 시대였으니까.

 아퀼라가 지은 이 도서관에는 아버지가 돌보던 시민 이만 사천 명이 들어설수 있었고, 그들이 양 손에 한 권씩 책을 들어도 책장에 넘치듯 책이 꽂혀있었다. 아퀼라는 그것으로도 부족했는지 항구에 들어서는 모든 이들의 소지품을 검사했다. 그리고 금은보화가 아닌, 책이 보이면 그것을 압수해 필사했다. 그리고는 책을 돌려주었다. 그것은 아버지를 위한 것이었다. 타의로 멈춰선 아버지를 즐거이 해줄 선물이었다. 

 그렇게 한 권, 한 권. 아버지의 새 책상. 셀수스 도서관에 책을 쌓아 올리던 어느 날. 아퀼라는 한 손을 가슴에 올렸다. 언제부터였을까. 비어있던 그곳은 다시금 차올랐고, 아퀼라는 비로소 편안한 표정을 지을 수 있었다. 


 

진유진 님에게.

 진유진 님께서 잃어버린 이야기는 튀르키예 셀축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아버지를 잃은 한 남자의 이야기 입니다. 그는 생의 시간 앞에 멈춰선 아버지를 위해 도서관을 짓고, 아버지와 함께 읽고 싶은 책으로 그곳을 가득 채웠습니다. 이 이야기를 시작으로 유진 님의 다이어리에 아버지와 나누고픈 대화가 쓰이길 기대합니다. 

그렇게 한 장, 또 한 장을 채워가다 문득 오늘 찾아드린 이 이야기가 생각나면 손을 가슴에 얹어보세요. 이야기 속 아퀼라가 그랬듯 유진 님의 구멍도 이미 채워져 있을지 모르니까요. 

 

- <알렉산드리아, 유실물 보관소> Y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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