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레터] 초보 드라마투르기의 수기_정영탁

2021.12.11 | 조회 6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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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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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레터] 초보 드라마투르기의 수기_정영탁

바닥에 잔디가 깔려있었다. 숲 향기, 울창한 숲을 산책할 때 맡는 향기가 기분 좋게 풍겨 공연장이 아닌 것 같은 착각을 줬다. 거기다 신비로운 음악과 안개가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어 이곳은 전혀 다른 세계 같았다. 책상과 의자, 큰 트램플린, 그리고 각종 조형물들이 조명을 받아 무대임을 나타내고 있지 않았다면 연극을 보러 온 줄 몰랐을 것이다.

한 남자배우가 조명 안에서 무엇인가 표현하고 있는 게 보였다. 팜플렛에 ‘요조’라고 적혀 있는 배우로, 이 공연 내용이 요조의 수기라고 하니 저 사람이 주인공이겠고, 뭐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남자는 무대를 열심히 누비고 다녔다. 빔 프로젝트에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만져도 된다는 영상이 흘러나왔다.

진짜 그래도 될까? 내가 저 공간을 침범해도 되는 걸까? 하라고 했으니 공연 시작 전까지 돌아다니며 책상도 스윽 만져보고 잔디에도 앉아보고 조형물들에 관심을 가져봤다. 무대를 온 감각으로 느끼고 있다 보니 내가 관객이 아니라 ‘요조’국의 내면으로 떠나온 여행객 같았다. 어두운 공간에 앉아 기다리는 것과는 또 다른 재미였다. 

순식간에 두 시간이 지나갔다. 연습한다며 술도 마다하길래, 어디서도 보지 못한 공연을 보여준다 장담하길래, 니가 배우도 아닌데 보러가야겠냐고 속으로 수 십번을 삼키다 예매한 공연이었다. 게다가 오늘은 일 좀 오래 했다고, 나보다 일 좀 잘한다는 이유로 똑같은 알바생임에도 나를 무시하는 놈 때문에 스트레스까지 진탕 받은 상태였다. ‘예술’이라는 단어를 좋아해 여러 작품을 보러 다니지만 조금만 피곤하고 머리 아프다 싶으면 자버리는 내 관람태도상 오늘도 제대로 보긴 물 건너 간 줄 알았다. 제목부터 ‘인간 실격’이니까. 내용을 찾아봐도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고, 소설을 읽어본 친구한테 물어보니 그거 우울한 내용인데 괜찮겠냐는 얘기를 들어 이미 불편함을 가득 품고 온 상태였다.

아, 그런데 이 공연 진짜 재밌었다. 연극을 이렇게도 하는 구나, 저걸 저렇게 이용하네, 저놈 저거 그놈이랑 닮았네, 아이고야, 어어어 안돼. 하고 있으니 어느새 끝이 났다. 커튼콜이 올라가고 친구에게 잘 봤다는 인사와 함께 배우들과 사진 한 장 남기고 공연장 밖을 나오는 데 ‘요조’라는 인물이 떠나질 않았다. 계속 그 인물이 아른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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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인간 실격, 요조를 위한 소리’의 드라마트루기 정영탁입니다. 전에 정지우 작가님의 ‘세상의 모든 청년’ 프로젝트로 ‘청년 예술가 병수형 응원합니다’ 라는 글을 쓴 적 있는 사람인데 읽어주신 분이 계실까요. 이 글은 그 연장선이라 같이 이야기를 꺼내보았습니다, 헤헤. 이번 글은 응원보다는 더 적극적인, 툭 터놓고 말하자면 홍보로서 길거리에 붙어 있는 포스터와 다를 바 없는 글입니다. 최저 시급을 받는 알바생이 나눠주는 전단지라고도 볼 수 있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읽어주셨다는 건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과 제가 조금의 유대라도 생기지 않았을까 하여, 제 마음이 닿기를 바라며 적어보았습니다. 

드라마투르기에는 많은 역할이 있습니다. 극작가, 내부비평가, 제1의관객, 조언자, 제갈량, 아 제갈량은 제가 쓴 것입니다만, 어쨌든 쉬운 역할이 아니라는 걸 몸소 깨닫는 중입니다. 프로덕션 초기에는 단순히 극작가의 책임을 다하기만 하면 될 줄 알았다가 다른 책임들을 작업 하며 하나씩 깨달아가는 중이라 많이 헤매고 있습니다. 병수형(연출)이 제 방식을 많이 존중해주고 팀 사람들도 저를 아껴주어 참 다행입니다. ‘한국연극과 드라마투르기’라는 김옥란 선생님이 지은 책에 따르면 애매한 위치로 힘들 수 있는 역할이라 했는데, 좋은 팀 덕분에 공연 내에서 처음 맡는 드라마투르기 자리를 잘 잡아 최선을 다해 공연을 만들고 있습니다.

상세 내용은 텀블벅 링크로 확인 가능합니다. 많은 관심부탁 드리며 허락해주신 ‘세상의 모든 문화’에게 감사 인사 올립니다. 우리존재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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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 정영탁

사랑과 이해로 소설을 쓰기 위해 책상에 앉으려고 했는데,
공연 작업 하고 있습니다.
내년에는 소설을 쓰고자 하는데,
드라마트루기 재밌는걸요.
공연이냐 소설이냐.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
이러다 밥은 벌어먹고 살까요.
모르겠다. 우리존재파이팅!!!!

텀블벅 : https://tumblbug.com/nolongerhuman-sound-for-yojo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play_t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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