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임콘벤션의 어머니 젠콘을 방문하다

Gencon Indy 2022 방문기록

2022.09.10 | 조회 1.21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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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문화

총 20여명의 작가들이 세상의 모든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매일 전해드립니다.

<젠콘의 시작이자 모든 RPG 게임의 시작, 던전앤 드래곤스를 상징하는 레드드래곤 장식>
<젠콘의 시작이자 모든 RPG 게임의 시작, 던전앤 드래곤스를 상징하는 레드드래곤 장식>
<인디아나 폴리스 곳곳에 붙은 대형 현수막들>
<인디아나 폴리스 곳곳에 붙은 대형 현수막들>
   <젠콘 인디 2022 행사장 사진>
   <젠콘 인디 2022 행사장 사진>

 덕업일치라는 말이 있다. 보통 자신의 취미(덕질)을 직업으로 삼는 일을 말한다. 언뜻 보기에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 것이 좋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단점이 많다. 가장 슬픈 것은 더 이상 그 취미를 순수하게 즐기기 힘들어 진다는 것이다. 내 경우도 어쩌다보니 취미로 시작한 게임을 업으로 살게된지 십수년이 지났지만 오히려 게임을 즐기는 시간은 비약적으로 줄어버렸다.  관여한 프로젝트를 쳐내는 것 만으로도 벅차니 세상에 나오는 수많은 게임들을  즐길 시간은 줄어든다. 게임 콘벤션도 마찬가지다. 게임콘벤션에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 참가하지만 다른 회사들이 열심히 준비한 작품들을 즐길 시간이 없을 때가 많다.

 그런데 이번 젠콘(Gencon Indy 2022) 참가는 다른 전시회와는 좀 달랐다. 여유가 있었다. 아내와 운영하는 보드게임 회사의 이름으로 부스참가를 했지만, 현지 파트너가 모든 준비를 다 해줬고, 심지어 항공편도 제공했다. 이번 행사를 계기로 우리회사의 현지파트너가 된 미국 회사에서는 호텔을 제공해줬다. 업무상 출장에서 이렇게 좋은 호텔을 사용한 것은 정말 오랜만이다. 독일회사와 합작으로 만든 게임의 반응이 좋아 미국의 대형회사와 거래를 맺게 됐고 거래선을 확보하기 위해 가져간 신규게임에 대한 사전 반응도 좋았다. 전시용으로 제작한 기념품들은 사람들이 미리 탐을 많이 냈다. 행사를 방문하기 이전에 이미 행사의 목적이 달성이 돼 버렸으니 즐길 시간이 많았다. 드문 기회다.  

 잘 운영되는 콘벤션은 어떤 분야 건 방문할 가치가 있다. 특정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 영감과 에너지를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최신 콘텐츠와 관련된 다양한 구성원들을 만나고 경험하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자신이 관심있는 분야라면 말할 것도 없다.  특히 내가 최근 업으로 삼고있는 보드게임에서는 콘벤션 이란게 큰 의미를 갖는데, 그것은 보드게임이라는 매체가 애당초 사람과 사람이 만나 하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온라인 상의 불특정다수와 함께 플레이 하는 디지털 게임과 다르다. 자신이 직접 만들거나 관여한 게임들에 대해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 것을 보는 것은 무척 즐겁고도 중요한 일이다. 콘벤션 에서는 업계종사자, 하드코어 게이머들, 그리고 가족끼리 놀러 온 캐주얼 게이머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가 있다. 게임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서는 게임 콘텐츠 자체뿐 아니라, 함께 플레이할 대상과 그것이 향유되는 맥락 등 모든 환경이 중요하다. 게임 콘벤션은 그 모든 것을 한곳에서 볼 수 있는 기회다. 그리고 올해로 55주년을 맞은 젠콘은 현대의 모든 게임 콘벤션, 아니 게임문화 자체에 영감을 제공한 행사이기도 하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져야 할 게이밍 이벤트의 전범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젠콘의 의미는 젠콘이 게이머 스스로가 만든 행사이고 그 결과로 행사의 모든 면이 게이머들을 위해서 최적화 되어 있다는 데 있다. 과장하자면 젠콘은 행사 자체가 온갖 이벤트와 퀘스트로 이뤄진 하나의 커다란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젠콘을 시작한 사람은 현대 모든 RPG게임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던전앤 드래곤스의 공동창작자 중 하나인 개리 가이각스다. 그는 1967년에 인근 게이머 20명을 초대하여 자신의 집에서 행사를 열었고(나중에 이 행사는 젠콘 0 이라고  불리게 된다.) 다음해에는 인근 원예센터 홀을 임대하여 첫번째 젠콘을 열었다. 참가자에게는 1달러씩 받았고, 그 돈으로 그는 임대료를 커버할 수 있었다고 한다. 

<1970년 젠콘 소개기사>
<1970년 젠콘 소개기사>
<제1회 젠콘이 열린 위스콘신주 원예협회 홀>
<제1회 젠콘이 열린 위스콘신주 원예협회 홀>

 가장 흔한 형태의 콘벤션은 돈을 주고 부스를 구매한 각종 업체들이 자신들의 제품을 홍보하거나 판매하는 형태다. 보드게임 컨벤션도 마찬가지다. 부스를 돌며 업체들이 제공하는 신작 게임들을 체험하고 구매를 하는 형태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젠콘을 그런 식으로 즐기는 것은 젠콘의 극히 일부만을 볼 수 있는 일이다. 실제로 젠콘은 수많은 이벤트가 기획되고 실행되는 복합적인 장소이고 젠콘에 참가한다는 것은 자신의 원하는 대로 그 행사들에 참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젠콘 인디 2022 이벤트 페이지 : 15164 개의 크고 작은 이벤트들이 등록되어 있다. >
<젠콘 인디 2022 이벤트 페이지 : 15164 개의 크고 작은 이벤트들이 등록되어 있다. >

오래된 카드 한 장이 수백만원에 거래되기도 하는 게임경매장에서는 잘하면 구하기 힘든 레어게임을 싼 가격에 살 수도 있다.  신규 보드게임을 플레이 하며 진행되는 미션들, 라이브액션 롤플레잉 게임 (SF, 환타지 등 원하는 세계관에서 특정 캐릭터를 맡아 직접 대사와 신체연기로 진행되는 게임의 형태)이나 중세 음악을 테마로 하는 음악회들이 인디아나폴리스 콘벤션 센터의 크고 작은 홀들에서 진행되지만, 무엇보다 압도적인 것은 어마어마한 숫자의 코스프레 인원들이다.

 스티로폼으로 만든 모조품이 아니라 아예 판금갑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중세 기사들을 비롯, 덕중의 덕은 양덕이라는 말을 떠오르게 하는 화려한 코스플레이어와 웃음을 자아내는 간단한 변장을 한 사람까지, 수많은 코스플레이어들을 행사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특히 하루에 한번 행사장 끝에서 끝까지 진행되는 모든 코스플레이어들이 참가하는 행진이 있는데 어마어마한 인원들이 스타워즈의 등장인물이나 환타지속 괴물 등의 복장을 하고 박수를 받으며 행진하는 모습은 이 행사의 주인공이 게이머들 자신이라는걸 알려주는 상징적인 순간이었다.

<사진 : 행진 대기중인 코스플레이어들. Gencon Indy 2022>
<사진 : 행진 대기중인 코스플레이어들. Gencon Indy 2022>
<사진 : 행진 하는 코스플레이어들. Gencon Indy 2022>
<사진 : 행진 하는 코스플레이어들. Gencon Indy 2022>

 젠콘을 다른 행사들과 차별되는 행사로 만드는 것은 물리적인 공간의  편이성에도 있다.. 

젠콘이 열린 인디아나 폴리스 콘벤션 센터는 계획도시로 만들어진 도심에 있는데 공중 다리로 J.W. Marriot나 Westin 같은 인근 호텔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 도로와 호텔의 이벤트홀들 역시 각종 행사를 위해 24시간 오픈되어 있는데, 이것은 젠콘이라는 행사가 실질적으로 24시간 열리는 효과를 낳는다. 밤 늦게까지 오픈된 홀에서 게임을 하거나 이벤트를 진행하는 모습들을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었다.  젠콘을 방문한 게이머들은 4일간 게임환경에 문자 그대로 24시간 몰입을 할 수 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젠콘에는 매년 방문을 놓치지 않는 고정팬이 많다. 우리 회사를 방문한 게이머들 중에도 가방 한가득 주렁주렁 1년에 하나씩 나오는 젠콘 뱃지를 달고 다니는 젠콘의 골수 팬들이 있었다. 

 그러나 젠콘에서 가장 놀라웠던 점은 게임이라는 이름으로 모인 모든 이들에 대한 존중, 특히 다른 행사장에서 미처 보지 못했던 소수자에 대한 배려였다.

 

-      젠콘 인디2022 에 대한 글은 2회로 나누어 연재됩니다. 2회는 9월 20일에 올라올 예정 입니다. 

 

글쓴이 - 정희권

2000년경부터 게임, 장르문학, 만화 등 서브컬쳐업에 종사해 왔습니다. 렉시오, 스파이시 등의 보드게임을 기획, 제작했고, 현재는 만화 등 다른 IP 가 갖고 있는 재미를 게임 시스템으로 구현하는 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하이델베어 플레이랩이라는  보드게임 제작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브런치 : 정희권의 브런치 (brunch.co.kr) 

<서브컬처 오디세이> 

1. 재미를 찾아 떠난 삶에 대해 - 서브컬처 오디세이를 시작하며 

https://maily.so/allculture/posts/2 b4 aee7 f

2. 재미를 쫓아 떠난 삶에 대해 2 - 에버퀘스트와 롤플레잉 게임 

https://maily.so/allculture/posts/2 b4 aee7 f

3. 게임의 끝과 시작 - 게임 밖으로 나아간 서른 즈음 

https://maily.so/allculture/posts/ffefc5 af

4. 카탄 섬의 개척자들 - 보드게임, 게임과 출판 그 중간 어디엔가 

https://maily.so/allculture/posts/d8 c7606 a

5. 직업에서 의미를 찾는 순간 - 한 스킨헤드와의 게임 플레이 

https://maily.so/allculture/posts/a2768 d96

6. 게임이라는 허튼 장난이 알려주는 것 - 에센 슈필 메세의 수많은 장애인들 

https://maily.so/allculture/o/notes/79 c00 afa/ed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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