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수수께끼에 관하여_사랑의 인문학_정지우

2021.05.24 | 조회 4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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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대상으로 삼는 것은 사람 그 자체도, 또 그 사람이 지닌 특성도 아니다. 사랑의 표적은 타자라는 수수께께이다."

흔히 우리는 사랑을 할 때 그 사람의 '특성' 혹은 '속성'을 사랑한다고 한다. 연인끼리도 서로에게 "나의 어떤 점이 좋아?"하고 묻고, 그에 얼마나 멋진 대답을 하느냐가 로맨틱한 관계의 중요한 미션처럼 말해진다. 상대로부터 나의 어떤 매력적인 특성을 확인받는 일, 또한 상대가 가진 최고의 장점을 찬양하는 일이 사랑하는 일에서 빠질 수 없다고 이야기되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알랭 핑켈크로트가 <사랑의 지혜>에서 강조하는 바에 따르면, 이런 사랑은 사랑이라기 보다는 '지식'과 관련된 일이다. 오히려 사랑하는 사람은 당신을 알 수 없다. 당신은 수수께끼 그 자체로 전면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당신은 지식이 되지 않는다. 당신은 어떤 사람이야, 당신은 어떤 특성을 지녔어, 당신은 어떤 속성을 갖고 있어, 같은 말들은 모두 '당신에 대한 지식'과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사랑은 이런 지식을 거부하고, 당신을 전적인 수수께끼로 내 안에 불러들인다.

그렇기에 사랑은 내가 모르는 어떤 '타자'를 전면적으로 경험하는 일이다. 사랑은 내게 어떤 복종을 원하고, 나를 수동적이게 만들면서, 그 타자를 받아들이게 만든다. 나는 사랑 안에서 비로소 '나'보다 '우위'에 있는 어떤 존재를 경험하게 된다. 사랑 속에서 '타자'는 그 절대적인 경험으로 내가 갖고 있는 각종 편견을 부숴버린다. 내가 아는 기준이나 지식, 통념이나 편견으로 상대방을 '포섭'할 수 없도록 괴물처럼 꿈틀거린다. 사랑 앞에서 나는 비로소 나를 규정해왔던 온갖 언어들을 재정립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사랑이란, 나의 기준에 얼마나 부합하는 상대방을 찾느냐 하는 것이다. 나의 기준, 통념, 선입관에 가능한 한 딱 맞아떨어지는 '속성'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내고, 그 사람을 그런 속성으로 규정하는 일이다. 그런데 알랭 핑켈크로트는 진정한 사랑이란 바로 우리가 흔히 '일반적인 사랑'의 작업이라고 말하는 그 방식 자체와 싸우는 일이라고 말한다. 바로 그 경험 자체가 우리가 언어라는 폭력으로 규정될 수 없는 인간 존재에 대한 존엄을 알려준다. 또한 모든 것이 규정된 체계로 이루어진 이 현실과 싸워 진정한 삶과 관계로 이를 수 있는 길이 된다.

연인이나 부부 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맺는 많은 관계도 사랑의 관계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타자에 대해 궁금해하고, 그를 낯선 존재로 경험하고, 그를 안다고 규정짓기 전까지 그를 사랑으로 경험한다. 그러나 점점 그 타인을 뻔한 존재로 규정짓고, 분류하고, 단정짓기 시작하면 그는 이제 '사랑'의 대상이라기 보다는 '지식'이 된다. 그리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회 속에서 맺는 무수한 관계들이란, 그런 지식의 관계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 방식이 우리를 편하게 만들어주고, 삶을 예측 불가능한 상태에서 건져내어 뻔하고 예측 가능한 삶으로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우리가 삶에서 점점 '수수께끼' 같은 '타자성'을 잃어가는 삶이 과연 좋기만 한 것인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결국 그런 삶은 우리에게서 타자와 역동하며 맺어가는 관계의 생생함을 잃게 만들지도 모른다. 나아가 한 사회가 그렇게 '사랑 없는 사회'로 완성되어갈수록, 그 사회는 굳건한 '규정의 폭력들'로 가득해질 것이다. 이 사회에 가득한 여러 편견, 혐오, 차별은 사랑이 아닌 규정 속에서 더욱 강력해진다. 반대로 그런 타자들이 그 자체로 전면적인 사랑 속에 존재한다면, 이 사회는 영원히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언어들을 만들어가는, 다양성과 열린 사회로 갈 수 있는 통로가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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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인문학' 글쓴이 - 정지우
작가 겸 문화평론가로 활동하며, <청춘인문학>, <분노사회>,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너는 나의 시절이다> 등을 썼습니다. 사랑에 대해 고민하고 쓰면서 더 잘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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