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필요한 진짜 '공감'_일상의 마음챙김_진아

동감, 공감, 연민으로 가는 길에 필요한 것.

2022.05.17 | 조회 1.09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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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문화

총 20여명의 작가들이 세상의 모든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매일 전해드립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도 큰 화제가 되었다. 화제의 중심이 작품과 배우가 아닌, 폭행사건에 있었다는게 아쉽지만 말이다. 윌 스미스가 크리스 록을 가격한 이 사건을 두고 어떤 사람들은 아내 제이다에 대한 ‘찐사랑’ 이라 표현했고, 누군가는 윌이 평소 갖고 있던 ‘분노조절 장애’의 한 측면일 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윌 스미스 본인을 비롯한 객석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크리스 록이 내뱉은 말에 웃음을 터뜨리는 장면이 전 세계에 생중계되었다. 윌의 웃음이 멈춘 것은 웃지 않고 있는 농담의 대상인 아내 제이다의 표정을 본 직후였다. 욕설이 섞인 고함을 지르고 자리를 박차고 무대위로 올라가 크리스 록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폭력을 행사한 윌 스미스가 남우 주연상을 수상하는 것이 과연 옳은지, 시상자인 크리스 록의 ‘농담’이 적절했는지에 대한 논쟁이 오가는 동안 내 마음속에 품고 있던 질문이 고개를 들었다. 무엇이 윌 스미스를 움직인걸까? 

모두가 웃는동안 외로웠을 법한 아내 제이다를 위해 내가 무엇이라도 해야겠다는 마음, 그 마음은 아내가 느꼈을법한 불쾌감을 해소하고자 하는, 연민의 감정에서 시작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적극적 공감이라 부를 수 있는 진정한 '연민(Compassion)'의 실천이라 부를 수 있는 행위라고 볼 수는 없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했듯, 윌 자신의 내재된 분노를 표출한, 성숙하지 못하고 사려깊지 않은 '치기'에 불과한 행동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용어들은 널리 쓰이면서 의미가 퇴색하거나 왜곡된다. 의미가 달라지면서 용어 자체에 대한 거부감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다. ‘힐링’이나 ‘위로’라는 말이 그랬고, ‘공감’이라는 단어도 비슷한 길을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공감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문제라고 흔히들 말하지만 진짜 공감이 무엇인지, 우리가 공감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의 흔적을 찾기 어렵다는게 더 큰 문제다.

공감에 대해 대부분의 사전은 ‘타인의 주장이나 감정에 동의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이어서 나도 같거나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고 풀이하고 있다. 뜻풀이를 가만히 곱씹어본다. 과연 이런 의미의 공감은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이렇게 얻어진 공감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영어 단어 Sympathy와 Empathy 모두 한국어의 ‘공감’이라는 단어로 번역되는 개념이지만, 이 둘을 구분해서 써야한다는 주장이 최근 몇년간 심리학계의 화두였다. 이중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은 한국에도 익히 알려진 브레네 브라운 박사의 정의다. 

Sympathy와 Empathy, 공감에 대한 Brene Brown의 정의

그녀의 정의를 따르면 Sympathy는 공감보다는 한국어의 ‘동감’’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네가 느끼는 감정을 나도 느껴” 라고 말할 수 있는 상태라고나 할까. Empathy“네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내가 이해해” 라고 표현될 수 있는 마음의 상태이며 말하는 이와 듣는 이가 함께 있음을 전제로 한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 개념이 있다. ‘연민’으로 번역되는 Compassion“네가 느끼는 괴로움을 해소하기 위해 내가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라고 묻고 실제로 행동에 옮기는 것이다. 한국어 단어 ‘연민’이라는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상대방에 대한 애처로운 감정을 배제하기 위해 한국어에선 Compassion을 ‘공감’이라 표현하기도 하고, 때론 ‘자비’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공감력이 부족한 사람이고 싶은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공감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자주 실패하고 만다. 시험에 떨어졌거나, 상사에게 꾸지람을 듣고 어려움을 토로하는 친구에게 ‘공감’의 메시지를 전한다고 생각하고 내뱉는 말 “뭘 그런 걸 갖고 고민해, 너보다 더 불쌍한 사람들을 생각해야지” 라는 말은 필연적으로 실패한 공감이다. 일명 ‘충조평판(충고, 조언, 평가, 판단)’라 불리는, 하지 않으니만 못한 말이 되는 것이다. 

공감을 표현할 때, 자신의 과거 경험을 언급하며 “나도 그런 일이 있었어” 라고 말을 꺼내는 시도를 하기도 한다. 여기서 문제는 말을 꺼내며 본인이 먼저 울어버리거나, 어렵게 말을 꺼낸 상대방의 고민거리가 나의 아픔에 비해 별 것 아니라는 인식을 갖게되는 방향으로 대화가 흘러갈 수 있다는 점이다. 함께 우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내 앞에 있는 상대방의 표정을 살피며 우는지가 진짜 공감과 그렇지 않은 공감을 가르는 기준이 된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타인이 겪고 있는 어려운 상황을, 본인의 상처를 치유받을 기회로 삼는다면, 진짜 ‘공감’이 이루어졌다고 하기엔 어려운 것 아닐까?

동감, 공감, 연민 중 가장 적극적인 형태의 공감능력으로 여겨지는 ‘연민’에서 강조되는 것은 ‘당신의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의 마음 속 바람을 이뤄주기 위한 행동을 취하는 것’이다. 


‘폭력은 나쁘다’며 윌 스미스의 행동에 대한 비판을 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과연 그 날, 그 자리에서 그가 어떻게 대처했으면 좋았을까 대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주먹을 휘두르지 않고, 아내의 기분을 헤아리며 할 수 있는 ‘품위 있는 대처’는 무엇이었을까 생각하다가 기억 속에 있던 어떤 장면이 떠올랐다. 예능 프로그램의 한 코너인 <당연하지>를 진행하다가 당시 러브라인으로 연결된 여자가수가 들으면 속상해할만한 발언을 해야하는 딜레마 상황에 빠진 남자 가수가 그녀의 귀를 막으며 외친 “당연하지!” 의 장면은 근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소위 레전드급 명장면이다. 윌 스미스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이왕 무대에 올라간 김에, 주먹 대신, 코미디언인 크리스 록에게 "당신의 농담은 실패했습니다. 웃기지 않은 이 농담에 대해 내 아내 제이다에게 사과해주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했다면, 그의 행동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지 않았을까하는, 되돌릴 수 없는 순간에 대한 아쉬움을 느껴본다.

“진짜 공감은 이것이다.” 라고 한마디로 새로운 정의를 제시하기엔 부족하지만, 진짜 공감을 실천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 ‘있는 그대로의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 여기서 출발해야 우리는 진짜 ‘공감’에 도달할 수 있다. 내 눈에 보이는 그 상황이 아니라, 정말 그 사람이 처한 상황 그대로를 인정하고, 나의 마음속 응어리를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상대방에게 필요한 것인지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 이런 ‘존중’의 단계를 넘어야만 진정한 ‘공감’의 실천이  가능해지는 것이 아닐까?

그린이- 제이미(인스타그램 @luludailypause) 늙은 몸 안에 살고 있는 어른 아이 ‘수자’의 덤덤한 일상이지만 덤덤하지 못한 마음 성장통을 그립니다. 그림을 클릭하면 인스타그램으로 연결됩니다.
그린이- 제이미(인스타그램 @luludailypause) 늙은 몸 안에 살고 있는 어른 아이 ‘수자’의 덤덤한 일상이지만 덤덤하지 못한 마음 성장통을 그립니다. 그림을 클릭하면 인스타그램으로 연결됩니다.

* 매달 17일, 27일 ‘일상의 마음챙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뉴스와 시사 인터뷰를 맛깔나게 진행하고 싶었지만, 이제는 미국 수도에 있는 한 국제기구에서 참여자들의 의미있는 경험을 비추기 위해 행사 진행을 돕는 사람이 되어가는 중. 

공저로 참여한 <세상의 모든 청년>이 얼마 전 출간되었습니다. 더 많은 '우리'를 발견하기 위해 오늘도 읽고, 쓰는 하루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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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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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수아

    0
    almost 2 years 전

    공감은 아는만큼 가능하다고 여깁니다. 같은 처지에 있고 무언갈 함께 하는 사람과의 입장을 잘 이해할 수 있듯이요. 공감능력을 키우려면 풍부한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직접경험을 하지 못 할 때가 많아, 간접경험을 하기위해 책을 부지런히 읽고 있어요. 상대방을 그대로 인정해 주는 태도를 가져야겠어요. 좋은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작가님의 오늘이 안온하시기를 바라요 :)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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