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사는 일_지키는 글쓰기_허태준

2021.07.23 | 조회 5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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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문화

총 15명의 작가들이 세상의 모든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그의 집에 있을 때는 한 두 시간 간격으로 휴대전화 알람이 울렸다. 그때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는 나와 달리, 그는 무심히 손가락을 몇 번 움직여 알람을 해제했다. 그리고는 "점심 준비해야지"라던가 "샤워할 시간이네" 같은 말을 중얼거렸다. 어떤 알람에는 "이건 어제 했어"라며 멍하니 누워있기도 했다. 마치 태엽으로 움직이는 장난감이 정해진 움직임을 반복하듯, 그는 알람에 맞춰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나는 좀 어이가 없어 물었다. 너 한가하냐? 응, 아직 개강도 안 했으니까 한가하지. 다른 일정은 없어? 일부러 안 만들고 있는데. 일부러? 응, 한 동안은 이렇게 지내려고. 다시 공부 시작하면 집안일에 신경 안 쓰게 되니까. 건전하네. 건전하게 지내려고 했으니 성공이네. 무심한 그의 표정에 걸맞게 나는 성의 없는 박수를 쳤다.

  어쨌든 신세를 지고 있는 건 내 쪽이니 불만을 가지지는 않았다. 사실대로 말하면, 오히려 무척 편하게 지냈다. 서울에 있는 며칠 동안 나는 잠을 설치지 않았고, 하루 세끼를 잘 챙겨먹어 살까지 좀 찐 듯 했다. 한가한 시간에는 그가 추천해준 소설을 몇 편 읽었다. 황정은이나 김금희의 단편이었다.

  그가 지내는 오피스텔 바로 뒤편에는 개천을 따라 이어진 산책로가 있었다. 우리는 저녁을 먹고 그곳을 걸었다. 그는 여기서 쭉 걸어가면 청계천과 만난다고 했다. 청계천을 계속 따라가면 중랑천과 만나고, 거기서 조금 더 가면 한강이 나온다고 했다. 물론 우리는 청계천까지도 가지 않고 방향을 돌렸다. 뭐, 어디든 다 바다로 이어지겠지. 그는 수긍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잘 사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해본 적이 있다. '잘 사는 일'에 대해 고민하려면 우선 '사는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지 싶었다. 그러고 보면 '사는 일'이라는 건 꿈을 이룬다거나, 치열하게 노력한다거나 하는 것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 그건 삶으로 들어올 수는 있어도, 삶 자체가 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삶은 그보다 훨씬 단순했다. 오늘 하루를 보내기 위해 필연적으로 해야 하는 빨래나 설거지 같은 일에 가까웠다.

  결국 내가 잘하고 싶은 건 그런 일들이었다. 취미나 특기를 자랑하기 보다는 그냥 분리수거 잘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제 때 버리고 싶었다. 그럴 듯한 요리보다는 간단한 반찬 여러 가지를 할 줄 알고, 좋은 해산물이나 채소 보는 법을 배우고 싶었다. 거창한 인테리어보다는 필요한 곳에 필요한 것들을 두고 싶었다. 깨끗이 씻고 편하게 잠이 들고 싶었다.

  글을 쓰는 것도 나에게는 그런 노력 중 하나였다. 대단하고 의미 있는 일이라기보다는 그저 삶의 태엽을 감아내는 노동에 가까웠다. 커다란 손잡이를 돌리면 속에 맞물린 작은 톱니바퀴들이 돌아가는 것이다. 끼이이익, 찰칵, 하고.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것이다.

  반복되는 회전운동을 보고 있으면, 저 작은 지름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됐다. 나는 그냥 사는 게 아니라는 것. 살아가기 위해 오늘도 무수히 많은 톱니바퀴가 각자의 자리에서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다는 것. 그렇게 일상을 돌아가고 있다는 것. 글쓰기는 그 사실을 확인하고 몇 번이나 다시 되새기는 작업이었다.

  개강하면 바빠지나? 바쁘지, 너는? 출판사는 연말이 제일 바쁘다더라. 지금은 여유롭다는 건가. 전혀 아닌데. 큰일이네 그거. 큰일이지. 우리는 몇 마디 더 이야기를 나누다, 이내 들려오는 알람 소리에 잘 준비를 했다. 문득, 나도 어느새 그의 알람에 맞춰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게 조금 웃겼다.

  삶이 일상의 영역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개인적인 성취를 위해 뛰어 올라야 하는 순간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도 개강을 하고 공부를 다시 시작하면, 설거지를 미루고 끼니를 거르기도 할 것이다. 그러면 톱니바퀴는 훨씬 더 거친 소리를 내고, 때로는 스스로를 마모시키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모든 게 괜찮아 보였다. 이 편안함은 그가 일상을 가꾸기 위해 노력한 시간 속에서, 타인의 삶을 포용할 정도로 넓고 단단한 마음 속에서 자라났을 것 같았다. 나는 그에게 대단하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너는 참 잘 살고 있다고. 나도 잘 살아 봐야겠다고. '사는 일'에 조금 더 진지해져 봐야겠다고. 수면등 불빛에 녹아드는 다짐이 천천히 삶으로 번져갔다. 그 일렁임이 유독 따뜻해서, 태엽이 풀리듯 나는 금세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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