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 습관적인 죄책감과 함께 눈을 뜨는 당신에게 이 글을 띄웁니다. 혹은 무리 속에 섞여 '아멘'을 외치지만, 돌아서면 여전히 공허한 당신의 그 건조한 마음에게도 말을 건넵니다.
오래도록 강단에 서며 제가 목격한 가장 서글픈 풍경은, 믿음이라는 미명 하에 사유(思惟)를 거세당한 청춘들의 얼굴이었습니다.
많은 곳에서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믿으라'고 가르칩니다.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지 치열하게 고민하는 과정은 생략된 채, 그저 행위로 증명되는 순종만을 강요받습니다. 누군가가 먼저 경험한 하나님이 마치 유일한 정답인 양 선포되고, 청년들은 자신의 고유한 색채를 지운 채 그 정답을 필사하기에 바쁩니다.
단언컨대, 그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복제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공장에서 찍어낸 벽돌처럼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누구와도 대체될 수 없는 절대적인 고유성을 심어주셨습니다. 당신에게는 당신만의 기질이, 당신만의 언어가, 그리고 당신만이 써 내려가야 할 신과의 고유한 서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건강한 신앙에는 반드시 사유의 과정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나에게 찾아오신 신은 어떤 분인지, 내 삶에 부여된 이 고유한 질감의 의미는 무엇인지 끊임없이 묻고 해석해야 합니다. 질문은 불신앙의 증거가 아닙니다. 오히려 살아있는 믿음이 숨을 쉬고 있다는 가장 명징한 증거입니다. 사유하지 않는 신앙은 맹신으로 흐르고, 맹신은 필연적으로 삶과 신앙을 유리시킵니다.
저는 인천에서 이 당연하지만 낯선 싸움을 해왔습니다. '앞에 선 나를 따르지 말고, 당신 내면의 하나님을 읽어내라'고. '타인의 정답을 흉내 내는 아류가 되지 말고, 당신만의 질문을 던지는 오리지널이 되라'고 말입니다.
이제 이곳 망원동에서, 그 이야기를 청년들을 위해 시작하려 합니다. 기존의 견고한 틀에 질식할 것 같아 교회를 떠났지만, 여전히 진리에 목마른 '가나안 성도'들이 많다는 것을 압니다.
제가 세우려는 교회는 당신을 교정하여 저와 같은 사람으로 만드는 곳이 아닙니다. 당신이 가장 당신다운 모습으로 신 앞에 서는 단독자가 되도록 돕는 곳입니다.
생각하기를 멈추지 마십시오. 당신의 그 예민한 질문들과 고유한 기질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신은 당신이 누군가의 복사본이 아니라, 온전한 원본으로 존재하기를 기다리십니다.
잃어버린 ‘나’를 복원하는 그 고요하고 치열한 여정에 힘이 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유하는 당신을 기다립니다. 고수정 목사.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