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살이

2022.06.27 | 조회 1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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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 항해일지

표류와 항해를 반복하는 사람의 일지

상경해 생경했던 것 중 하나는 지하철 출구가 엄청나게 많다는 것이었다. 

"강남역 12번 출구로 와."

지하철은커녕 기차역도 없는 곳에서 자란 나에겐 낯선 문장이다. 복잡했다. 주인공을 가운데 두고 회전하는 드라마의 촌스러운 연출처럼, 출구에서 나와 높은 건물을 올려다보면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느낌이었다. 강남역의 시끄러운 분위기는 쉽게 익숙해지지 않았고, 내가 살던 도시에서 하루종일 돌아다녀도 이만큼 많은 사람을 볼 수는 없을거라고 친구에게 말했다. 

처음 서울에 올라와 살기 시작한 것은 2017년이 시작되는 겨울쯤이었으니, 야속하게도 벌써 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원룸 부동산 계약서에 서툰 싸인을 할 때도, 주민등록증 뒷면에 서울특별시로 시작하는 주소가 적힌 스티커를 붙일 때도, 이제 서울 사람 다 됐다는 주문 같은 농담을 했다. 나는 그 말이 모순적이라고 느낀다. 아직 서울 사람이 아니라는 반증인 것만 같다. 여전히 난 여기에 소속되어 있지 않다.

가끔 진짜 집이라고 부르는 본가에 가면, 반쯤 창고로 쓰이고 있는 내 방에 누워 천장을 본다. 여기는 천장이 참 넓다. 처음 혼자 살았던 원룸의 천장은 너무 작아서 내 세상이 좁아지는 것 같다고 느꼈었는데. 새하얀 벽지 위에 작은 방과, 기대에 부풀어 상경했던 날이 희미하게 스쳐 간다.

서울에서 새까만 밤은 찾아보기 힘들다. 별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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