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일지

회사가 싫어서 이직했습니다만

2022.06.22 | 조회 1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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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 항해일지

표류와 항해를 반복하는 사람의 일지

2022.03.13

작년 초여름, 이직을 준비하며 울며 겨자 먹기로 나에 대해서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간의 인생을 자소서에서, 면접에서 있어 보이게 이야기해야 했기 때문이다. 자기소개서와 이력서, 면접. 말만 들어도 지긋지긋한 단어다. , 대화 분으로 나에 대해 있을까 싶은 형식적인 서류들이지만 안에 나의 과거들이 요약되어 들어간다는 사실은 부정할 없다. 하긴, 회사 입장에서 보면 현실적으로 제일 편리한 방법이긴 하지. 지금 직장에 취업하며 까맣게 잊고 살았었는데, 생각보다 빠르게 자기반성의 시간이 돌아왔다. 이직 해야겠어.

솔직히 엄청나게 열심히 살아온 인생은 아니었다. 외국어도 잘 못하고, 대단한 대외활동을 한 것도 아니고 학점이 높은 것도 아니고. 회사가 평가하는 기준에서 보면 그저 그런 구직자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나란 사람은 왜 이렇게 한심하지, 하며 자괴감에 빠진 건 아니지만 그냥 객관적으로 봤을 때 그렇다는 이야기다. 아주 보통의 사람으로서 특별해 보이려니 힘들어지는 일인 거고. 돌아보니 그간 다녔던 회사들은 어딘가 하나씩 나사가 빠져있었다. 잦은 이직을 반복하는 사람의 뻔한 변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 그건 변명이 아니라 그냥 현실이다.

"팀장님이 유능하시고 이쪽 업계에서 잔뼈가 굵으셔서 배울 점이 정말 많을 거예요." 지금 회사에 입사할 때 헤드헌터가 한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진짜 단단히 속았지. 이 정도면 취업사기라고 생각하는데. 배울 점이라곤 '팀장님처럼 살지 말아야지', '팀장님처럼 일하지 말아야지.'라는 타산지석형 교훈뿐. 뭘 배운 건지 모르겠는 6개월이었고, 이 인고의 6개월을 이력서에 어떻게든 녹여보려 애쓰는 나를 보고 있자니 머리가 복잡해진다. 뭐 어쩌겠어. 이미 일어난 일이고 내가 선택한 회산데. 다음번엔 진짜 괜찮은 곳에 가야지. 이젠 그럴 때도 됐다.

하. 이력서 쓰기 싫어.

 

2022.03.16

더 이상 회사에 실망할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또 실망한 날. 이놈의 회사는 지하실이 어디까지인 건지. 기대하는 것도 없는데 매일매일 실망한다. 사람인, 원티드, 잡코리아.. 온갖 잡포털을 사무실에서 몰래 서칭하면서 가슴이 답답해지고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온다. 갈 곳이 왜 이렇게 없나. 이러다 영원히 이 회사에 남게 되는 게 아닌가 하는 공포감까지 드는 하루.

 

2022.04.11

요즘 성격이 이상해진 것 같다. 주말에 친구를 만났는데, 분명 내가 틀렸음에도 불구하고 빡빡 우기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순간 내가 지독히도 싫어하는 팀장님의 모습이 겹쳐졌다. 와 이거 큰일났다.

출근해서 동료들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자기도 똑같은 경험을 했다고 한다. 싫어하는 사람을 닮게 된다더니. 비상이다.

 

2022.04.12

종이에 끄적끄적 퇴사 계획을 세워봤다. 문제는 그놈의 돈인데, 집 없는 자취생은 고정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한 달에 50만원씩 드는 적금도 내 발목을 잡는다. 숨만 쉬어도 나가는 돈이 왜이렇게 많은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있어선 안 되겠다. 더 좋은 곳으로 이직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자신감이 있다.

자신이 있었다가 없었다가, 오락가락하는 정신상태로 카톡창에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로 시작하는 카톡을 써놓고 차마 엔터를 누르지 못한 채 망설이길 몇 분째. 에라 모르겠다하는 마음으로 전송 버튼을 눌렀는데, 전화가 와서 다짜고짜 "어 뭔데."라는 팀장님. 진짜 이 인간은 끝까지 싸가지가 없구나? "저 퇴사하려고요" "어 알았어~근데 왜."

진짜 비즈니스 매너라곤 쥐똥만큼도 없는 인간! 그만둔다고 하길 잘했지.

 

2022.04.13

엄마에게 퇴사한다고 말했다. 사실 엄마가 참지 그랬냐고 말할 줄 알았는데, 많이 힘들었구나 라고 하는 바람에 울컥했다. 걱정할까 봐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는데 나한테 도움이 안 되는 곳이라며 주절거렸다. 다음 주에 면접 볼 예정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다시 잘해보면 된다.

 

2022.04.20

어제 면접 본 회사에 합격했다.

 

2022.06.22

새로운 회사에 다닌 달이 조금 지났. 이직만 하면 천국이 펼쳐질 알았는데, 현실은 드라마 마지막 회가 아니다. 해피엔딩은 쉽게 거머쥘 없고, 가끔 회사가 조금 그리워진다. 하지만 이내 내가 단단히 미쳤구나 하는 생각이 빠르게 스친다. 친하게 지내던 주임님이 회사가 그리운 아니라 시절의 우리가 그리운 거라며 선을 그어주었다. 앞으로 1 뒤에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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