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님, 안녕하세요.
이 첫마디가 뭐라고, 뉴스레터를 만들고 구독자님께 첫 마디를 건네기까지 몇 주가 걸렸어요.
사실 요 몇 주간 저는 심각한 무력감에 시달렸어요. 뭐 평범한 이야기에요. 회사 생활에 대한 스트레스, 인간관계 고민 같은거 말이에요.
사실 저는 몇 번의 이직을 반복했지만, 퇴직금을 받고 퇴사한 건 단 한 번 밖에 없어요. 지금 회사에는 입사한지 일년이 다 되어 가는데 저는 이놈의 일년이라는 기간에 마가 낀건지, 점점 출근하는 마음이 너무 힘들더라구요.
그동안 다녔던 직장들의 퇴사를 결심한 이유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항상 기저에 깔린건 '나에게 맞는 일을 하고 싶어서'였어요. 그런데 저는 사실 글을 쓰고싶거든요? 그러니까 직장에서 나에게 맞는 일을 찾는건 애초에 불가능한 거였어요.
그래서 이번 회사에서는 일을 통해 자아실현을 할 수는 없다는 걸 받아들이기로 결심했죠. 회사 생활이나 평범하게 해내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말자. 이렇게 제 자신에게 되뇌이며 이번 회사도 열 달여를 보냈어요.
사실 한 직장에서 적어도 2~3년은 다녀야 경력이 될 수 있다잖아요. 그런 룰을 벗어나서도 성공하는 멋진사람도 많기는 하지만, 저는 그럴 재목이 안된다는 걸 깨달았죠.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처럼 되려면 부지런해야 되는데, 저는 회사 출근도 겨우겨우 해낼 만큼 게으르거든요.
어쨌든 2~3년이라는 기간이 저에게는 너무나 영겁의 시간처럼 느껴져서, 첫 목표를 1년 채우기로 잡았었어요. 그리고 이제 겨우 열 달을 채웠죠. 그런데 고작 열 달이 지났을 뿐인데 저는 벌써 다 소진된 기분이에요. 처음에는 경력직에 대한 기대를 충족시키고 싶어서, 그러면서 회사와 나의 싱크를 맞추느라, 그 다음에는 새로 맡은 업무에 적응하느라, 그리고 나 또는 상대방의 부족함으로 틀어져버린 인간관계를 신경쓰느라.
우리 엄마는 나를 열 달 동안 고이고이 품다가 세상에 내보냈는데, 나는 무슨 고귀한 것을 품고있는 것도 아니면서 왜 이렇게 기진맥진해있을까요.
이렇게 마음이 힘들 때마다 찾게되는 건 항상 빈 종이였어요.
하얀 종이 혹은 화면 위에 내 마음을 죽 적어내려가면, 녹슨 수돗꼭지에 고여있던 녹물을 다 빼낸 것처럼 마음이 후련해지고, 맑은 것만 배출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문제는 저라는 수돗꼭지가 녹이 너무 잘 슬어서 녹물을 자주 빼줘야한다는 거지만.
웃긴건 저는 글 조차도 한 군데서 진득하게 쓰지 못해서, 블로그, 인스타그램, 브런치를 전전하며, 계정도 몇 번이나 새로 파면서 글을 써왔어요. 저는 어렸을 때도 일기장 한 권을 다 못 채우고 항상 새 일기장을 사곤 했는데, 타고난 성정은 어쩔 수 없나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렸을 때부터 이렇게 꾸준히 무언가를 계속 써왔다는것에 의의를 두려고요.
그래서 이 레터를 발행하게 된 것도, 그동안 운영하던 블로그나 브런치, 인스타그램 같은 것들로부터 또 다시 도망쳐서 새로 시작하고 싶은 마음에서예요.
그 곳의 이웃들이나 구독자들은 저를 실제로 알지는 못하지만, 한 곳에서 글을 오래 쓸 수록 이상하게 그들이 저를 안다는 생각이 들어서 점점 솔직해지는게 힘들더라구요. 그렇게해서 이 곳으로 도망쳐왔어요. 이 곳만큼은 솔직한 나의 마음을 다 털어놓는 대나무 숲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고들 하는데. 그러니 이 곳도 나의 낙원이 아닐 가능성이 크겠지만, 나는 그래도, 오늘도 희망을 놓지 않고 나의 것들을 털어놓을 곳을 찾아 첫 발을 내디뎌요. 벌써 이만큼만 써내려갔는데도 마음이 조금은 후련해졌어요.
여기까지 나의 생각이 흘러 올 동안 함께 해줘서 고마워요.
종종 찾아올게요. 구독자님도 구독자님만의 낙원을 찾아내길바라며,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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