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아직도 무더운 9월 말입니다. 추석 연휴 잘 보내셨나요?
전 추석 연휴에 여행을 다녀온 뒤 주말에는 집에서 쉬면서 짧은 소설 한 권을 읽었답니다. 제 올해 마지막 여름소설이 되겠네요. 읽자마자 얼른 제 문우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어서 글을 쓰고 있어요. 지난 편지에서 이야기했듯이 저에게 여름소설은 시원하고 읽기 편해서 청량한 기분을 주는 작품이라고 했어요. 이번 소설은 제 여름소설 중 최애랍니다. 거의 매년 여름이면 꺼내서 읽고 있어요. 2시간 내리 읽으면 끝나기 때문에 분량도 적당하고요. 두꺼운 장편 소설은 여름에 왠지 더 무겁게 느껴지는 건 저뿐일까요?
이번에 이야기할 소설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입니다. 일흔이 넘은 나이임에도 여전히 왕성한 집필 활동을 하고 있죠. 특히 대표작인 ‘노르웨이의 숲’은 전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소설 중 하나입니다. 유명한 장편소설들이 많지만 전 하루키의 장편소설보다는 단편소설을, 단편소설보다는 에세이를 더 좋아해요. 혹시 하루키가 쓴 에세이를 읽어보지 않았다면 강력하게 추천드립니다. 전 하루키를 통해 에세이의 재미를 알게 되었답니다. 에세이를 통해 상상하는 하루키와 소설을 통해 상상하는 하루키는 전혀 다른 인물같아서 신기하더라고요.
근데 왜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이번에 추천하냐? 가장 큰 이유는 소설 속 배경이 여름이기 때문입니다. 남자 주인공은 도쿄에서 대학을 다니다 여름방학에 고향인 해변가 소도시에 잠깐 돌아온 대학생입니다. 거기서 만난 친구 ‘쥐’와 새끼손가락이 하나 없는 여자와의 일화가 주요 내용입니다. 하릴없이 맥주를 마시며 친구 ‘쥐’와 떠든다던가, 과거에 만난 여자들을 회상한다거나, 이번에 새롭게 마주친 새끼손가락이 없는 여자와 대화하고 만나는 내용이 다입니다. 단순하죠? 하지만 문장이나 대화나, 비유는 참으로 매력적이고 재밌고, 시원하답니다. 여름소설로 제격이죠. 여름 해변 마을이 배경인데다 문장은 읽기 쉬운데 매력적이고, 분량도 짧아요.
게다가 하루키 월드에 입문하기에도 아주 좋은 작품입니다. 대표작 ‘노르웨이의 숲’뿐만 아니라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해변의 카프카’, ‘기사단장 죽이기’등 유명 작품에서 나오는 장치와 소재들이 벌써 스멀스멀 나오거든요. 산양, 쥐, 행방을 알 수 없는 예전 동창 혹은 여자들, 자살한 전 여자친구 등이죠. 또 음악과 문학에 대해서는 해박하다 못해 젠체하는 대화들도 많이 나와요. 그리고 영문학스러운 비유도 자주 나오는데요. 하루키를 처음 접하면 이 소설이 너무 쿨하게 느껴지거든요. 정말 매력적이에요. 그래서 여전히 전세계 청년들이 좋아하는 소설로 꼽히는 것 같아요.
“이봐, 나에 대해서라면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그래도 마음에 걸린다면 공원에 가서 비둘기에게 콩이라도 뿌려주라고.”(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서)같은 대화를 아무렇지 않게 한단 말이죠. 쉽지 않습니다. 비유도 참신한데다, 자칫 잘난체하는 것처럼 보이는 대사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게 만드는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것도 말이죠.
사실 최근에 나온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읽을 때는 좀 힘들었어요. 제가 나이가 들어서일 수도, 하루키 작품을 이미 많이 읽어서 그런가요. 나오던게 또 나오고, 또 이런 식이야? 그게 버터같아요. 버터를 넣으면 풍미가 살고 맛도 있지만 버터를 너무 많이 넣으면 니글하고 물리듯이 말이죠. 절대 여름 소설로는 꼽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추천도 하기 힘들어요. 나쁘게 생각하면 ‘이래서 노벨상은 못 받는건가...’싶고, 좋게 생각하면 ‘대단하다. 그래도 하루키는 하루키만의 오리지널리티를 단단히 쌓았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면에서 이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아주 적당하고 괜찮아요. 청년 하루키가 이제 앞으로 소설가로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을 작게 이것저것 재밌게 꺼낸 느낌을 주거든요. 싱싱하고 푸릇하고, 그래서 또 재미있답니다. 아마 수많은 하루키 팬들이 최애작으로 이 소설을 꼽을 것 같아요. 제 문우들도 이 소설을 읽으며 아직 가시지 않은 더위와 작별인사를 나눠보는건 어떨까요?
(스포주의)
이 소설은 사실 스토리라인이 거의 없어요. 주인공 남자가 여름방학에 고향에서 와 친구를 만나고, 여자를 만나다 돌아가거든요. 누가 죽는다거나, 섹스를 한다거나, 외도를 한다는 등 큰 사건 따위는 없습니다. 그래서 묘하면서도 매력적입니다. 그래도 전 이 책을 읽으면서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문우가 있다면 꼭 물어보고 싶은게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1. 주인공 '나'는 새끼손가락이 없는 여자를 만나게 됩니다. 일란성 쌍둥이 자매가 있다고 했어요. 근데 왜 새끼손가락이 없도록 만들었을까요? 전 계속 혼자서 아니 근데 왜 하필 새끼손가락이 하나 없는 여자일까...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2. 친구 '쥐'는 왜 결국 자신의 여자를 만나보라고 하지 않았을까요? 아니, 애초에 왜 만나보라고 할 생각이었을까요?
사실 이 레퍼토리도 다른 소설에서 나와요. 아마 단편소설 '예스터데이'에 나왔던 것 같은데요. 이런건 왜 나오는지...자기 여자를 만나보라고 하려다가 그 생각을 접었을지 궁금하더라고요. 혹시 기발한 해석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