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가 쏘아올린 뇌과학] 다시, 지능에 대하여

<나의 문어 선생님>과 함께 읽는 문어의 지능 (3)

2020.11.02 | 조회 1.14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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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의 시선

[넷플릭스가 쏘아올린 뇌과학] 소셜 딜레마에 놓인 뇌

사피엔스, 그 찰나의 역사

지구의 나이를 24시간으로 바꿔본다면? 최초의 생명체는 지구가 태어난 지 4시간 뒤에 등장합니다. 산소도 부족하고 자외선도 속절없이 내리쬐는 탓에, 육지가 아닌 바다가 먼저 생명을 잉태하죠. 하나의 세포로만 이루어진 단출한 생명입니다. 오후 9시 20분, 개중에는 물고기가 되어 바다에 남지만, 일부는 육지를 선택했습니다. 10시 45분, 땅 위로 올라온 이 용감한 생명체들은 공룡으로, 또 한 시간 뒤에는 포유류로 진화해 육지를 호령하죠. 아직 인간이 등장하기는 이릅니다. 오후 11시 58분에서야 아프리카 대륙에서 인간과 침팬지의 조상이라 불리는 원숭이들이 활동하기 시작하죠. 11시 59분 55초, 호모 사피엔스, 비로소 인간이 지구에 첫발을 내딛습니다. 지구의 시간 속에서 우리 인간은 지극히 찰나의 존재입니다.

인간 뇌의 진화

불을 사용하기 시작한 인간의 뇌는 급격하게 커지기 시작합니다. 고기를 익혀 먹으니 더는 큰 구강 구조가 필요하지 않았고, 단백질도 쉽게 소화할 수 있었죠. 상대적으로 뇌가 커지고 에너지도 많이 쓸 수 있게 된 거에요. 2백만 년 전에 나타난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가 남긴 화석을 통해 그들이 불을 적극적으로 이용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앞서 등장한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보다 뇌가 크죠. 

포유류의 뇌. 다른 포유류에 비해서 인간의 뇌가 비교적 크지만 코끼리나 고래에 비해서는 작다. 뇌 표면에 주름진 정도도 소위 지능이 높다고 불리는 동물들과 큰 차이를 보이진 않는다.  © G Roth & U Dicke
포유류의 뇌. 다른 포유류에 비해서 인간의 뇌가 비교적 크지만 코끼리나 고래에 비해서는 작다. 뇌 표면에 주름진 정도도 소위 지능이 높다고 불리는 동물들과 큰 차이를 보이진 않는다.  © G Roth & U Dicke

우리의 뇌는 평균 1.4kg의 단백질 덩어리입니다. 몸무게의 약 2%를 차지하는 뇌가 우리 몸에서 사용하는 에너지 중 25%를 쓰죠. 크기로 보나 에너지 사용량으로 보나 다른 포유류에 비해서 인간의 뇌는 독보적입니다. 분명 커다랗고 복잡한 뇌는 지능을 고도로 발전시키기에 유리했을 겁니다. 하지만 뇌가 커질수록 반드시 생존에 최적화된 지능을 지닌다고 보기는 힘들어요. 약 4만 년 전 멸종한 네안데르탈인은 호모 사피엔스보다 조금 더 큰 뇌를 갖고 있었으니까요.

지구에서 자취를 감춘 네안데르탈인과 현존하는 인류 호모 사피엔스의 뇌. 사피엔스보다 더 커다란 뇌와 다부진 체격을 가졌음에도 네안데르탈인은 4만 년 전 멸종했다. © Keio University
지구에서 자취를 감춘 네안데르탈인과 현존하는 인류 호모 사피엔스의 뇌. 사피엔스보다 더 커다란 뇌와 다부진 체격을 가졌음에도 네안데르탈인은 4만 년 전 멸종했다. © Keio University

새로운 문제를 만날 때

지능이라고 하면 흔히 IQ(intelligence quotient, 지능 지수)를 떠올립니다. IQ란 인간의 지능 정도를 측정하기 위한 표준화된 점수죠. 그간의 심리학 이론들을 바탕으로 인간의 인지기능을 체계적으로 측정한 수치라지만, IQ와 지능은 엄연히 달라요. IQ 검사는 언어 이해력, 추리 능력, 기억력, 수리 능력 등 지극히 제한적인 인간의 인지기능을 측정하는 것일 뿐, 이를 통해 정교한 진화를 거친 지능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지능은 무엇일까요? 일찍이 여러 심리학자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지능을 설명해왔습니다. 인지발달 연구의 선구자인 스위스 심리학자 장 피아제는 지능을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 사용하는 정교한 탐색'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심리학자 뢰벤 포이어스타인은 지능을 '생존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인지적 기능을 변화시키는 인간 고유의 능력'이라고 얘기하죠. 미국의 교육심리학자 하워드 가드너는 더 포괄적으로 지능을 설명합니다. '지능은 문제를 찾아서 해결하는 기술들의 총합이다'. 학자마다 지능을 바라보는 관점은 다양하지만, 지능이 곧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능력'이라는 점은 공유하고 있어요.

오래전 아프리카 초원을 상상해보겠습니다. 저 멀리서 사냥감을 찾고 있는 사자가 다가옵니다. 위험을 직감한 우리의 조상들은 서둘러 자리를 뜹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여유를 부리던 몇몇은 사자의 먹잇감이 되어버렸네요. 살아남은 인류는 깨달았습니다, 사자는 나를 잡아먹을 수 있으니 빨리 달아나야 한다는 것을요. 며칠 뒤에 표범이 나타났습니다. 똑똑했던 우리 조상들은 과거 사자를 떠올리며 기지를 발휘하죠. '아! 저 표범도 사자처럼 나를 잡아먹을 수 있겠구나, 도망가야겠다.' 과거의 학습한 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사건의 결과를 예측하고, 생존에 유리한 선택을 한 겁니다.

자연에는 늘 새로운 문제가 도사린다. 학습을 통해 얻은 예측 능력, 예측을 통한 적절한 의사 결정 능력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구 상에 존재할 수 없었을 거다. © Jeffrey Barbee/The Guardian
자연에는 늘 새로운 문제가 도사린다. 학습을 통해 얻은 예측 능력, 예측을 통한 적절한 의사 결정 능력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구 상에 존재할 수 없었을 거다. © Jeffrey Barbee/The Guardian

요즘에도(?) 사자나 표범에게 쫓겨 사는 분들은 없을 테니 좀 더 현실적인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오늘 점심엔 무엇을 드시나요? 이미 드셨다면 저녁은? 이 순간만큼은 일생일대의 난제죠. 맛있는 음식이 너무 많잖아요. 그렇다고 선택을 못 하겠으니 배고픔을 뒤로하고 끼니를 거르는 분들은 거의 없을 거라 믿습니다. 이전의 경험을 바탕으로 어떻게든 지금 나에게 딱 맞는 메뉴를 결정하실 거에요.

인간관계는 또 어떤가요? 처음 나가는 소개팅을 상상해보세요. 이 사람을 만날지 말지부터, 만났다면 한식을 먹을지 양식을 먹을지, 선물을 사갈지 말지, 이 말을 하면 상대방이 재밌어할지, 더 만나자고 할지 등등 선택의 연속이죠. 꼭 소개팅이 아니더라도 사람과 사람이 만난다면 모두가 각자의 의사결정의 문제를 안고는 알게 모르게 고군분투할 겁니다. 인간을 흔히 사회적 동물이라고 부르잖아요? 인류가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로 사회성을 꼽는다면, 이런 선택의 문제는 어쩌면 맹수를 마주하고 죽느냐 사느냐를 고민하는 문제만큼이나 중요할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지능은 수많은 의사 결정을 통해 학습한 문제 해결 능력이자, 진화의 역사를 통해 물려받은 고유한 생존 도구라 할 수 있어요. 

모든 생명체는 저마다 지적이다

인간은 고귀한 자질, 가장 비천한 대상에게 느끼는 연민, 다른 사람뿐만 아니라 가장 하등동물에게까지 확장될 수 있는 자비심, 태양계의 운동과 구성을 통찰하고 있는 존엄한 지성 같은 고귀한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그의 신체 구조 속에는 비천한 않는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이다.

찰스 다윈 지음, 김관선 옮김,『인간의 유래 2』중에서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서양에서 바라본 인간은 신과 가까운 우월한 존재였습니다. 동물은 인간보다 계급이 낮은데, 동물 중에서도 조류가 인간과 가깝고, 그 밑으로는 어류, 포유류, 벌레, 연체동물, 그리고 가장 아래에는 식물이 있습니다. 이렇듯 당시의 기독교적 세계관은 모든 생명체를 고등과 하등으로 서열화하여 설명하고자 했죠.

서구 문화가 19세기 중반까지 이어온 기독교적 세계관(존재의 거대한 고리 Great chain of being, 왼쪽)과 찰스 다윈이 자신의 노트에 스케치한 '생명의 나무'(오른쪽). 1837년 비글호 여정을 마친 다윈이 '종간 변이(Transmutation of Species)' 주제로 남긴 메모는 인간을 포함한 생명 전체를 바라보는 시선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서구 문화가 19세기 중반까지 이어온 기독교적 세계관(존재의 거대한 고리 Great chain of being, 왼쪽)과 찰스 다윈이 자신의 노트에 스케치한 '생명의 나무'(오른쪽). 1837년 비글호 여정을 마친 다윈이 '종간 변이(Transmutation of Species)' 주제로 남긴 메모는 인간을 포함한 생명 전체를 바라보는 시선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이 견고한 세계관에 반기를 든 사람이 있었습니다. 찰스 다윈, 그는 1835년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핀치새를 관찰합니다. 자라는 위치에 따라 핀치새가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한 그는 같은 종임에도 처한 환경에 따라 변화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나아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가 하나의 종으로부터 분화되었다는 생각에 이르죠. 때문에 다윈이 바라본 자연에는 우열이란 없었습니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부하던 인간의 오만함에서 벗어난 거에요.

다시 지능입니다. 지능은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입니다. 문제를 통해 학습하고, 다시 새로운 문제를 만날 때 그 결과를 예측해서 최적의 결정을 내리는 과정을 통해 지능은 진화하죠. 그렇다면 지능이 인간의 전유물은 아닌 듯합니다. 앞서 우리는 문어의 지적인 모습을 살펴봤습니다. 주변 환경에 맞게 재빨리 위장하거나 조개껍질을 이용해 몸을 보호하는 것은 물론 다양한 방법으로 먹잇감을 사냥하던 문어의 모습을 기억하시죠? 이런 문어의 놀라운 능력은 인간에게는 중요하지 않겠지만 문어에게는 필수적이죠. 문어도 인간도, 모든 생명체는 저마다 마주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고유한 지능이 있다는 겁니다. 자연이 우연히 던진 수수께끼를 풀어야 하는 것이 생명체의 숙명이라면, 지능은 생존을 위한 필연입니다.

프랑스의 신고전주의 화가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가 그린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 자연이란 생존의 갈림길에서 끊임없이 수수께끼를 던지는 불멸의 스핑크스, 살아남은 생명체는 그 수수께끼를 통과한 오이디푸스이다. 
프랑스의 신고전주의 화가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가 그린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 자연이란 생존의 갈림길에서 끊임없이 수수께끼를 던지는 불멸의 스핑크스, 살아남은 생명체는 그 수수께끼를 통과한 오이디푸스이다. 

오, 나의 문어 선생님

문어 선생님이 생의 마지막에 섰습니다. 짝짓기 후로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제 몸을 깎아가며 10만 개에 가까운 알을 다섯 달이 넘게 보살펴왔죠. 악수를 청하던 튼튼한 팔은 눈에 띄게 수척해지고 화려하던 피부색은 점점 옅어져 갑니다. 어두운 바위틈에서 다음 세대를 돌보느라 서서히 죽어갔던 겁니다. 문어의 자식들은 별 탈 없이 부화했습니다. 갓 나온 새끼 문어들도 어미가 그랬듯이 홀로 남겨졌네요. 이 험난한 바다에서 똑똑하게 살아남길 바랄 뿐입니다. 한편 죽어가는 문어의 몸을 뜯으러 물고기들이 찾아왔습니다. 어쩌면 문어는 마지막까지도 다음 생명을 위한 희생을 염두에 뒀는지 모릅니다.

문어 선생님의 마지막. 다음 세대를 무사히 탄생시킨 문어가 힘겹게 굴 밖으로 나왔다. 곧이어 청소물고기들이 문어의 몸을 먹기 시작한다. © 넷플릭스
문어 선생님의 마지막. 다음 세대를 무사히 탄생시킨 문어가 힘겹게 굴 밖으로 나왔다. 곧이어 청소물고기들이 문어의 몸을 먹기 시작한다. © 넷플릭스

쓰는 행위란 '사랑하는 대상을 불멸화'하는 일이다.

롤랑 바르트 (Roland Barthes, 1915-1980)

<나의 문어 선생님>을 보며 문어와 지능에 관한 이야기를 엮어보았습니다. 4주 동안의 글이 여태껏 특유의 식감으로 인류의 단백질 공급원이 되어준 수많은 문어 선생님에 대한 헌사가 되었으면 합니다. 문어 선생님에게도 영혼이 있다면, 부디 평안하시길.

'<나의 문어 선생님>과 함께 읽는 문어의 지능'을 쓰는데 도움을 준 책들. 왼쪽부터 피터 고프리스미스의『아더 마인즈』, 사이 몽고메리의『문어의 영혼』, 이대열의『지능의 탄생』.『지능의 탄생』을 먼저 읽어보길 권한다. 장대익 교수의 평을 빌리자면, 우리나라에 소개된 책 중에서 지능의 본질을 가장 독창적이고 명쾌하게 설명하는 책이다.
'<나의 문어 선생님>과 함께 읽는 문어의 지능'을 쓰는데 도움을 준 책들. 왼쪽부터 피터 고프리스미스의『아더 마인즈』, 사이 몽고메리의『문어의 영혼』, 이대열의『지능의 탄생』.『지능의 탄생』을 먼저 읽어보길 권한다. 장대익 교수의 평을 빌리자면, 우리나라에 소개된 책 중에서 지능의 본질을 가장 독창적이고 명쾌하게 설명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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