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가 쏘아올린 뇌과학] 문어 선생님의 스마트함이란?

<나의 문어 선생님>과 함께 읽는 문어의 지능 (2)

2020.10.19 | 조회 2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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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의 시선

[넷플릭스가 쏘아올린 뇌과학] 소셜 딜레마에 놓인 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평화롭던 다시마 숲에 긴장이 감돕니다. 상어가 나타났네요. 파자마(pyjama) 상어라 불리는 이 녀석은 검은 줄무늬가 매력적인데 반해, 성질이 사납고 공격적입니다. 오랜 진화의 새월동안 시각은 퇴화됬지만 뛰어난 후각 덕분에 문어 냄새라면 환장하죠. 주둥이도 납작하고 튼튼해서, 문어가 숨을 만한 바위 틈사이도 비집고 들어갑니다.

문어의 오랜 천적인 파자마 상어. 다시마 숲에서 가장 끗발이 있는 포식자이다. © 넷플릭스
문어의 오랜 천적인 파자마 상어. 다시마 숲에서 가장 끗발이 있는 포식자이다. © 넷플릭스

문어에게는 씻을 수 없는 기억이 있습니다. 상어에게 팔 하나를 잃었던 날이죠. 그날도 깊은 바위 틈으로 몸을 숨기고 있었는데, 돌연 상어 한 마리가 굴 속에 숨은 문어를 발견한 거에요. 순식간에 문어의 팔 하나를 물더니 온몸을 돌려가며 그 팔을 뜯어내더군요. 크레이그는 당시 다시마 숲에 문어의 피 냄새가 진동했다고 회상합니다.

이번에도 상어에게 팔을 내줄 순 없는 일입니다. 그날의 아픈 경험이 교훈이 되었을까요? 문어는 전보다 확실한 도망 전략을 준비했습니다. 상어의 포식망에 들어온 문어는 재빨리 다시마가 우거진 곳에 모습을 감추고는 이내 바다 위로 헤엄쳐 육지로 나와버리죠. 뭍에서 적당히 시간을 번 문어는 다시 바다로 들어가 빨판에 조개 껍질을 붙이기 시작합니다. 무장 테세로의 전환입니다. 준비가 끝나기 무섭게, 냄새를 맡은 상어가 문어를 물었네요. 그런데 재밌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상어가 정신없이 몸을 흔들어대는 틈을 타서, 문어가 상어의 등 위에 올라타버린거에요. 이제 문어는 이 싸움의 우위에 섰습니다. 얼마 동안 상어에게 업혀있던 문어는 적당한 굴을 발견하자 슬며시 상어를 떠나 몸을 숨깁니다. 이 드라마틱한 추격전에서 이번만큼은 상어가 빈손이네요.

상어둥절. 파자마 상어는 이 상황이 혼란스럽기만 하다.  © 넷플릭스
상어둥절. 파자마 상어는 이 상황이 혼란스럽기만 하다.  © 넷플릭스

아름답고 경이로우며 무한한

2012년, 영국 케임브리지에 모인 신경과학자들이 흥미로운 발표를 합니다.

지금까지 축적된 증거들은 의식이 작동하는 과정이 인간만의 특별한 신경학적인 기질이 아니라는 점을 시사한다. 인간이 아닌 포유류나 조류, 문어를 포함하는 다른 모든 생명체들도 이같은 신경학적 기질을 지닌다. 

필립 로,『의식에 관한 케임브리지 선언 (The Cambridge Declaration on Consciousness)』중에서

인간이 아닌 동물에게도 의식(consciousness)이 있음을 선언한 것인데, 우리는 이 선언문이 문어를 꼭집어 명시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문어가 인간과 영장류 또는 고등한 포유류 수준의 의식체계를 갖고 있다는 것은 곧 문어가 고도의 지적 생명체라는 사실을 말해주기 때문이죠. 

문어는 인간과는 너무나도 다른 신경시스템을 갖고 있습니다. 문어에는 약 5억개의 신경세포(뉴런)가 있고, 몸 전체에서 뇌가 차지하는 비중은 소위 영리하다는 동물들과 비슷합니다. 특이한 점은 지금부터죠. 문어의 신경세포 중 10%는 '중심뇌'라고 불리는 곳에 있고 30%는 시각정보를 담당하는 시엽(optic lobe)에 있습니다. 아래의 사진이 도움이 될 겁니다. 그렇다면 나머니 60%는? 신기하게도 팔에 있습니다. 그래서 문어의 팔은 각각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있죠. 중심뇌와 시엽이라는 '본사', 그리고 팔 8개에 각각 '지사'를 두고 뇌를 운영하는 셈입니다. 

문어의 뇌. 중심 뇌 양쪽으로 시각정보를 담당하는 시엽(optic lobe)이 자리잡고 있다. 이밖에도 문어는 팔을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8개의 뇌를 더 갖고 있다. 척추동물과는 너무나도 다른, 이 낯설고도 신비한 뇌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또다른 지성이라 할 만하다. © Shuichi Shigeno & Clifton W. Ragsdale
문어의 뇌. 중심 뇌 양쪽으로 시각정보를 담당하는 시엽(optic lobe)이 자리잡고 있다. 이밖에도 문어는 팔을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8개의 뇌를 더 갖고 있다. 척추동물과는 너무나도 다른, 이 낯설고도 신비한 뇌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또다른 지성이라 할 만하다. © Shuichi Shigeno & Clifton W. Ragsdale

그렇다면 이 독특한 신경시스템은 어떻게 작동할까요? 인간과 문어를 비교해보는게 좋겠네요. 먼저 인간입니다. 여러분이 눈앞에 보이는 사과를 먹는다고 상상해보세요. 사과를 인식한 우리의 뇌는 운동 중추를 통해 적절한 근육을 작동시킵니다. 그 근육들은 뇌에서 내린 명령에 따라 팔을 뻗고 손으로 사과를 움켜쥔 뒤, 팔꿈치를 굽혀서 사과를 입으로 가져오죠.

반면 문어는 일종의 '행동 라이브러리'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문어가 쉬고 있는 게 한마리를 발견했습니다. 허기진 문어는 곧장 '게를 잡는다'라는 메시지를 팔로 전달합니다. 메시지를 받은 팔은 나름대로 게를 잡고 그 결과를 공유하죠. 그럼 또다른 메시지가 도착합니다. '팔을 굽혀 입으로 가져온다'. 이렇듯 문어의 신경시스템에서는 모든 지시를 내리는 하나의 컨트롤타워가 있는 게 아니라, '게를 잡는다', '팔을 굽혀 입으로 가져온다'와 같은 행동들을 뇌와 팔이 공유하고 서로 협력합니다.    

놀랍게도 문어의 팔 여덟 개는 각각 스스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같은 행동의 유연성은 시시각각 변하는 바다에서 새로운 문제에 부딪혔을 때그 진가를 발휘합니다. 예컨대 문어의 위장술을 꼽을 수 있겠네요. 주변 환경에 맞게 몸의 색깔과 무늬를 재빨리 바꾸는 통에 코앞에 두고도 문어를 못볼 지경이죠. 2015년 캘리포니아 대학 연구진은 문어의 눈에서 빛을 감지하는 단백질이 문어 피부에도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결국 피부에도 눈이 있다는 말인데, 눈이나 뇌에서 받는 정보 없이도 위장을 쉽고 빠르게 할 수 있는거죠. 실제로 같은 해 시카고대 연구진에 따르면, 문어는 몸 속 단백질을 합성하는데 필요한 유전자가 약 3만 3천 개로 인간보다 많다고 합니다. 아마도 몸의 색깔과 패턴을 무한히 바꾸기 위함이겠죠. 고도의 위장술은 포식자로부터 몸을 숨길 수 있을 뿐만아니라, 문어가 먹이를 잡거나, 심지어 다른 개체와 의사소통을 할때도 사용합니다.

문어의 지능은 먹잇감으로도 충분히 가늠해볼 수 있습니다. 문어는 대략 35가지 이상의 다양한 종을 먹이로 삼죠. 가짓수도 모자라, 문어의 먹잇감들은 대게 수명이 짧습니다. 먹잇감이 일찍 죽으면 다른 먹이를 찾아다녀야 하고 그 장소에 대한 기억을 매번 업데이트 해야할 텐데, 문어는 그 수고를 마다하지 않죠. 문어의 지능은 먹이를 먹을 때도 여실히 드러납니다. 문어가 즐겨 먹는 바닷고둥에는 벌림근이라고 불리는 일종의 급소가 있습니다. 그래서 벌림근이 자리한 껍질 꼭대기 쪽에 구멍을 뚫으면 바닷고둥을 쉽게 제압할 수 있는데, 문어의 드릴 같은 입이 언제나 그곳을 관통한다는 거죠. 바닷고둥의 기하학적인 구조를 정확히 파악하지 않고서는 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문어판 '나 혼자 산다'. 문어가 팔을 뻗어가며 물고기 떼와 장난을 치고 있다. 다른 문어와도 같이 지내기도 하지만 주로 혼자서 잘 노는 편. © 넷플릭스
문어판 '나 혼자 산다'. 문어가 팔을 뻗어가며 물고기 떼와 장난을 치고 있다. 다른 문어와도 같이 지내기도 하지만 주로 혼자서 잘 노는 편. © 넷플릭스

어디 먹이 사냥 뿐일까요? 문어의 스마트함은 인간에게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문어는 무척추동물 중 유일하게 도구를 이용할 줄 아는 녀석입니다. 바다 속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코코넛 껍데기를 가지고도 자신의 보금자리를 만들고, 유리병을 건네주면 직접 뚜껑을 열어보고는 집보러 온 사람 마냥 병 안쪽을 꼼꼼하게 살피기도 하죠. 심심치 않게 자물쇠를 열고 탈출하는 통에 수족관 사육사들에 문어는 골칫거리기도 합니다. 

먹고 사는 문제에만 열심일 순 없죠. 문어는 놀기도 잘 놉니다. 조그마한 약병을 공처럼 갖고 놀기도 하고, 가끔은 먹물을 뿜어대며 장난을 치는데 물론 적에게 만큼 세게 쏘진 않아요. 혼자 있다가도 심심하면 물고기 떼를 툭툭 건드려보기도 하고요. 친절을 배푼 사람에게는 부드럽게 다가가는데 반해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은 경계합니다. 성격도 다들 제각각이라 차분한 문어가 있는 반면 활동적인 문어도 있죠. 개중에는 배가 고프면 물줄기를 쏘아대며 성질을 부리는 녀석도 있습니다.

이렇게 똑똑한 문어가 글쎄 3년, 길어도 5년 밖에 못 산다네요. 지능이 높은 다른 동물들에 비해선 짧은 생입니다. 어미 문어는 일생에 딱 한번 산란을 하고 생을 마치는데, 심지어 새끼가 채 나오기도 전에 죽는 어미들도 있어요. 어린 문어들은 날 때부터 의지할 곳 없는 외로운 존재들입니다. 이 연약한 생명들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새로운 문제들을 해결해가며 이 치열한 바다를 살아낸다고 생각해보세요. 온갖 수난을 겪어낸 문어의 지능이 높다는 건 어쩌면 당연할 겁니다. 만약에 문어가 100년을 살아서 인간처럼 여러 세대가 공존한다면? 아마 인간 사회가 큰 곤경에 빠질지도 모르겠어요. 안그래도 똑똑한 문어가 새끼에게 지식을 가르치고, 그 새끼는 자라면서 더 많은 지식을 습득한다? 단연 슈퍼 지능의 출현입니다. 문어의 생이 짧다는 게 우리 인간에게는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문어와 교감하고 있는 크레이그. 실제로 문어는 사람을 구별해낸다. 친하고 믿을 만한 사람에게는 살갑게 구는 것이다. © 넷플릭스
문어와 교감하고 있는 크레이그. 실제로 문어는 사람을 구별해낸다. 친하고 믿을 만한 사람에게는 살갑게 구는 것이다. © 넷플릭스

문어선생님에게 배우는 스마트함

만일 사자가 말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철학적 탐구』중에서

약 6억년 전 문어와 인간은 서로 다른 진화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비록 긴 세월동안 둘은 너무나 다른 길을 걸었지만, 문어와 인간은 고도화된 지능을 지녔다는 점으로 수렴하는 듯 합니다. 여기 로저 핸론(Roger Hanlon) 교수의 질문을 가져왔습니다. "문어의 뇌는 가장 낮은 단계에 있는 척추동물의 뇌와 다를까?" 만약 다르다면, 지구 상에는 지능이 만들어지는 서로 다른 진화의 경로가 존재한다는 거겠죠. 지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지능의 범위를 넘어서야 할지도 모릅니다.

바로 '문어선생님'에게 지능을 배우고자 했던 이유입니다. 인간의 친척이자 조상인 동물들의 지능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인간 지능을 더 깊게 이해하는 길이죠. 다음 글은 드디어 인간의 지능입니다. 문어의 지능을 살펴봤던 시선으로 인간의 지능을 살펴볼까 합니다. 문어나 인간이나 그 시작은 신경세포 몇 안되는 작은 생명체였으니까요. 

인스타그램 @brain_l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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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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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e Daeri

    0
    over 3 years 전

    신기하네요 ㅎㅎ 글 잘 읽었습니다 !

    ㄴ 답글 (1)
  • 강동윤

    0
    over 3 years 전

    신기하네요! 그럼 낙지, 문어, 오징어 이런 친구들 팔이 잘리면, 잘린 팔이 움직이는 것도 이와 같은 원리인지 궁금하네요 ㅎ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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