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가 쏘아올린 뇌과학] 어느 지적 생명체의 역사

<나의 문어 선생님>과 함께 읽는 문어의 지능 (1)

2020.10.12 | 조회 1.69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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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의 시선

[넷플릭스가 쏘아올린 뇌과학] 소셜 딜레마에 놓인 뇌

다시 <나의 문어 선생님>입니다. 영화감독 크레이그 포스터는 문어와의 경이로웠던 첫만남을 회상합니다. 거대한 다시마 숲이 거친 물살을 막아주는 아주 포근하고도 특별한 공간, 그 깊숙한 곳에서 독특한 무언가를 발견합니다.

조개와 소라껍데기들이 한데 엉켜 있는, 다소 낯선 모습에 물고기들도 어리둥절한지 주변을 맴도네요. 그런데 별안간 그 껍데기 뭉치 속에서 문어 한 마리가 빠져나옵니다. 처음 만난 크레이그가 두려웠을까, 문어는 얼마간 헤엄치다가 이내 미끌미끌한 해조 잎사귀를 망토삼아 몸을 가립니다. 그리고는 유유히 사라져버리네요. 크레이그는 이 범상치 않은 생명체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낍니다. 그래서 하루도 빠짐없이 문어를 만나게 된거죠.

문어와 크레이그의 우연한 만남. 문어가 조개와 소라 껍데기들을 끌어모아 온몸을 감싸고 있다. 이 특별한 조우에 이끌려 크레이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문어를 관찰하러 다시마 숲을 찾는다. © 넷플릭스
문어와 크레이그의 우연한 만남. 문어가 조개와 소라 껍데기들을 끌어모아 온몸을 감싸고 있다. 이 특별한 조우에 이끌려 크레이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문어를 관찰하러 다시마 숲을 찾는다. © 넷플릭스

<나의 문어 선생님>을 보는 내내 저도 특별한, 어쩌면 기괴한 이 연체동물이 궁금해졌습니다. 문어는 인간과는 그 모습이 너무나 다릅니다. 뼈없이 물렁물렁한 이 생명체는 머리와 몸, 그리고 팔(또는 다리) 여덟 개로 나뉩니다. 인간의 몸에 빗대어 보자면 입은 겨드랑이에 있는 셈이죠. 물속에서도 숨쉴 수 있으며, 팔에 있는 약 1000개의 빨판으로 무언가를 정교하게 움켜쥘 수도 있습니다.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문어, 그렇다면 크레이그를 끌어당긴 문어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문어는 왜 그렇게 생겼을까요? 문어는 어디서 왔을까요?

단순하지만 장엄한 생명의 시작

단순한 시작에서부터 가장 아름답고 경이로우며 한계가 없는 형태로 전개되어 왔고 지금도 전개되고 있다는, 생명에 대한 이런 시각에는 장엄함이 깃들어 있다.

찰스 다윈 저, 장대익 옮김,『 종의 기원 』중에서

옛날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생명체의 족보를 거슬러 올라가는 꽤나 먼 이야기죠. 38억 년전 생명이 움트는 바다 속을 상상해볼까요? 하나의 세포로만으로 이루어진 생명체, 단세포 생물들의 세상입니다. 그들은 제각각 움직이고, 먹이를 찾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 개로 분화합니다. 하지만 상당 수는 일종의 연합체를 꾸리기도 하고, 때로는 협력하는 관계로 발전했다고 하네요. 이때 햇빛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생명체의 중요한 에너지원임과 동시에, 햇빛이 다른 개체에 대한 정보를 전달해주었기 때문이죠. 

햇빛을 이용해서 이 작은 생명체들이 환경에 반응하고, 서로 신호를 주고 받으며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된 셈입니다. 태어난 생명이라면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에 맞서 살아남아야 합니다. 따라서 의사소통이 가능해진 생명체들이 다른 개체와의 공존과 대립을 반복하며 각자의 생존전략에 적합한 진화의 방식을 따르게 된거죠. 개중에는 두 개의 세포로 분화할 때 서로 떨어지지 않는 길을 선택한 생명체도 있었고, 심지어는 다른 개체에 먹힘으로써 공생하려는 생명체도 나타났습니다. 단세포 생물들의 같이 살기, 다세포 생물의 시작입니다. (사실 단세포 생물에서 다세포 생물로의 진화를 설명하는 정확한 시나리오는 아직 없는 것 같습니다.)

1837년 7월 즈음 다윈이 처음으로 스케치한 '생명의 나무'.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I think)'라고 시작하는 그의 메모는 이제 생명의 역사를 안내하는 가장 중요한 가이드가 되었다.
1837년 7월 즈음 다윈이 처음으로 스케치한 '생명의 나무'.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I think)'라고 시작하는 그의 메모는 이제 생명의 역사를 안내하는 가장 중요한 가이드가 되었다.

문어의 진화 이야기

본격적으로 문어 이야기를 해볼까요? 지금으로부터 약 6억년 전으로 건너뜁니다. 바다수세미라고도 알려진 해면이 바다 바닥을 푹신하게 덮고있고, 해파리 같은 자포동물(cnidaria)들이 바다 속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좀더 흐르고, 해저에서는 초기 연체동물이 출현합니다. 아마 이전부터 활동했을테지만 주로 캄브리아기(5억 4,100만년 전부터 4억 8,540만년 전까지의 지질시대)에 왕성했을거라고 추측합니다. 바로 이 시기 연체동물의 껍데기가 화석으로 여럿 발견되었기 때문이죠.

38억년 동안 진화해온 문어와 인간의 계보. 약 6억년 전, 문어와 인간은 서로 다른 진화의 길을 택했다.
38억년 동안 진화해온 문어와 인간의 계보. 약 6억년 전, 문어와 인간은 서로 다른 진화의 길을 택했다.

연체동물에게 껍데기란 동물 세계에서 일어나는 긴박한 상황에 대한 하나의 대응책이었습니다. 그 긴박한 상황이라면 주로 포식자의 출현을 들 수 있겠죠. 2-3cm 정도의 초기 연체동물은 지금의 납작한 조개모양 껍질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진화의 시간을 거듭할수록 뿔 모양의 단단한 껍데기로 발전시켰습니다. 이 뿔 모양의 껍데기는 자신을 더 안전하게 보호할 뿐만 아니라, 거꾸로 포식자를 위협할 수 있는 무기도 될 수 있었죠. 

시간이 지나자 그 중 몇몇은 해저 바닥을 떠나 수중으로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떠오르기에는 육지보다 바다 속이 더 편할 지 모릅니다. 바로 부력때문이죠. 일종의 튜브처럼 몸을 보호하고 있던 껍데기 안에 기체를 채워넣어서, 해저 바닥으로부터 올라오게 된거에요. 초기 연체동물도 이 부력을 이용한 듯 보입니다. 약간의 부력을 이용하면 바닥을 보다 수월하게 기어다닐 수 있을 테니까요. 얕은 물가에서 땅짚고 헤엄쳐본 경험이 있다면 당시 연체동물의 느낌을 금세 알 수 있을 겁니다. 

수중으로 올라와보니 당장 바닥을 기어다닐 때 쓰던 '발'이 필요 없습니다. 그래서 발로 쓰던 부위는 추진력을 얻기 위한 '프로펠러'로 진화합니다. 몇몇은 물의 저항을 줄이기 위해 몸통 또한 유선형으로 변화시키기도 합니다. (<나의 문어 선생님>에서 두 발로 걷는 듯한 문어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2009년 이탈리아의 한 연구팀에 따르면 문어는 8개 중에서 2개가 다리고 나머지는 팔이라고 합니다. 수 억년전 바닥을 기기 위해 발이 필요했던 조상의 피가 문어에게는 여전히 흐르나봅니다.)

문어를 포함한 연체동물의 진화 과정. 연체동물 중에는 10미터에 이르는 포식자로 진화한 카메로케라스(Cameroceras)도 있지만 전부 멸종했다. 현재는 앵무조개, 갑오징어, 오징어, 문어 등이 생존한다.
문어를 포함한 연체동물의 진화 과정. 연체동물 중에는 10미터에 이르는 포식자로 진화한 카메로케라스(Cameroceras)도 있지만 전부 멸종했다. 현재는 앵무조개, 갑오징어, 오징어, 문어 등이 생존한다.

문어의 조상들은 여기서 한발 더 나갑니다. 아예 껍데기까지 포기한거에요. 단지 부력을 얻기위해서 무거운 껍데기를 머리에 이고 다니는 것은 사실 비효율적입니다. 껍데기 없이도 충분히 부력을 만들어서 헤엄칠 수 있는 거니까요. 그래서 껍데기를 포함한 단단한 골격은 모두 없애버리고 말랑말랑한 머리와 몸통, 팔다리만 남기게 됩니다. 이전보다 훨씬 자유롭고 날렵해졌습니다.

아,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우선 수중으로 올라온 이상 이미 그곳에 서식하는 포식자들 눈에 더 많이 띄게 된겁니다. 더군다나 바닥에 붙어 있을때와는 달리 몸통이 드러나게 되니 몸을 보호하는데도 취약합니다. 그나마 문어의 사촌 격인 앵무조개는 아직 단단한 껍질을 잘 챙겨다니고 갑오징어는 등쪽에 납작한 뼈라도 있는데, 문어는 딱딱한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습니다. 문어의 조상들에게 이 모든 보호 장비를 포기하고 바다 가운데로 떠오른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모험이자 도박이었습니다. 

생존하려면 똑똑해야

지난 주에 우리는 '지능'이란 개념을 확장시켰습니다. 지능은 '문제 해결 능력'이죠. <나의 문어 선생님>의 크레이그 말을 빌리자면, 문어는 '껍데기가 사라진 달팽이'와 같습니다. 껍데기를 포기하고 수중으로 올라온 문어는 변화무쌍한 바다와 자신을 호시탐탐 노리는 포식자로부터 살아남아야하는 치열한 현장 속에 놓였습니다. 이 생존의 문제를 문어는 어떻게 해결해왔을까요? 다음 주에는 이 생존 경쟁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똑똑해진' 문어를 살펴봅니다.

 

인스타그램 @brain_l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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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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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동윤

    0
    over 3 years 전

    문어가 현재의 모습이 되기까지 과정을 살펴보니, 진화론적 관점에서 ‘지능’의 개념이 잘 이해되네요~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지능은 추상적이지 않고, 철저하게 신체적 능력 중 하나로 정리되는 것 같습니다! 잘읽었습니다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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