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두기가 2.5단계로 올라가면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부쩍 늘었습니다. 다행히 재택근무를 할 수 있어 논문이나 데이터 분석 같은 웬만한 작업은 방 안에서 해결하죠. 그러면서 제 생활도 조금은 바뀌었습니다. 우선 많이 먹어요. 아침 점심 저녁은 물론이고 입이 심심해서 그런지 중간중간 간식도 챙겨 먹습니다. 운동량도 확실히 줄었죠. 다니던 체육관을 못 가서 집에서라도 운동을 이어가려 했건만, '역시는 역시'였습니다. 방에만 있다 보니 생활 반경 자체가 줄었습니다. 바람도 쐴 겸 음식 사러 밖을 나서려다가도, 확진자가 천 명이 넘어가는 날이라면 자연스레 배달 앱으로 손이 가더라고요. 달라진 일상이 이토록 답답하다는 걸 글을 쓰는 지금도 느낍니다.
마음으로 불어닥친 코로나
1월 20일, 중국 정부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전파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합니다. 그리고 이틀 후 우한을 봉쇄하기에 이르죠. 세계보건기구(WHO)가 팬데믹을 선언하기 전부터 중국의 피해는 막심했습니다. 확진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남과 동시에, 감염에 대한 공포와 불안이 중국 사회 전체를 뒤덮었습니다. 바이러스의 온상이라는 이유로 국제사회로부터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되기도 했죠.
상하이대 연구팀은 정부의 고립 정책 이후부터 일반 중국인들의 심리적 고통을 조사했습니다. 5만 2천 명이 넘게 참여한 이 설문 조사에서 연구진은 불안, 우울감, 공포증, 인지적인 변화, 회피와 강박적 행동, 신체 및 사회적 기능의 문제 등을 얼마나 자주 느꼈는지 물었죠. 그 결과 18~30세 그룹에서 앞선 문제들을 보다 빈번하게 경험한다고 답했습니다. 수많은 코로나 정보가 미디어에 익숙한 젊은 층의 심리적 고통을 가중했다는 것이 연구팀의 설명입니다. 이후 다른 연구진은 코로나에 대한 정보가 증가할수록 불안과 우울감을 느낀다는 통계를 보고하기도 했어요.
중국과 함께 피해가 컸던 스페인을 살펴볼까요? 마드리드대 연구팀은 WHO가 팬데믹을 선언한 후 3,480명을 대상으로 우울감과 불안,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와 관련한 증상을 조사했습니다. 설문에 참여한 사람 중 18%는 우울감, 21%는 불안, 그리고 15%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관련한 증상을 보였죠. 여기서 심리적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 중 상당수가 둘 이상의 정신적 문제를 동시에 겪고 있었습니다.
자세한 요인은 다를 수 있으나, 코로나바이러스와 팬데믹이 우울감과 불안, 그리고 각종 스트레스를 불러온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다만 앞서 언급한 결과들을 조심히 읽어야 합니다. 연구 방법이나 시기도 모두 다를뿐더러, 코로나 전염 초기에 진행하다보니 인과관계를 설명할 만한 충분한 데이터가 아니기 때문이죠. 팬데믹 상황 속에서 마음에 생길 수 있는 문제를 진단할 뿐, 코로나가 얼마나 개인의 정신 건강에 영향을 미쳤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는 말입니다. 더욱 확실하게 이야기하기 위해선 앞으로의 연구를 기다릴 수밖에요.
완치 후에도 마음은 현재진행형
반면 코로나에 감염된 후 완치된 사람들은 좀 더 뚜렷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합니다. 중국 우한의 격리시설에서 치료를 받은 코로나 환자들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코로나 증상이 완치되었음에도 몇몇 환자들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보였고 그 증상이 대부분 코로나 감염과 관련이 있음을 밝혔습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를 겪는 완치자들의 비율은 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SARS) 때 보다 높다고 덧붙였죠. 이후의 연구를 종합해보면, 심각한 코로나 감염증을 앓던 환자 중 약 32%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관련한 증상을 보였고, 이외에도 우울감과 불안을 호소했습니다.
감염 증상이 심했던 완치자 중에는 '집중 치료 후 증후군(post-intensive-care syndrome)'을 겪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는 치명적인 질환 때문에 집중 치료를 받은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신체적인 또는 정신적인 손상을 포함합니다. 정신적인 측면만 보자면, 기억력이나 주의력 같은 인지기능의 일시적인 문제부터 우울증과 불안 장애와 같은 정신질환(또는 정신장애)까지 그 범위가 넓죠. 프랑스의 한 대학 병원의 연구팀은 실제로 집중 치료실에 격리되었던 코로나 감염증 환자 중 1/3이 이런 집중 치료 후 증후군은 보였다고 보고한 적이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더 잔혹한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라면 코로나와 팬데믹은 더 혹독합니다. 무엇보다도 기존에 받던 정신 건강 서비스에서 멀어질 수 있기 때문에, 증상이 재발 또는 악화하거나, 자살과 같은 충동적인 행동이 잦아지고 사회적 고립이 심화할 수 있죠. 일반적으로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뇌가 외부 자극으로부터 더 취약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즉 일반인들보다도 더 극심한 불안과 우울, 외상 후 스트레스, 불면증 등을 겪을 수 있다는 거죠. 사회적인 낙인에서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실제로 올해 초 청도의 한 정신병원에서 환자들이 코로나에 집단으로 감염된 적이 있었습니다. 전염병의 취약한 격리 병동의 문제와 더불어정신 질환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낙인과 혐오가 수면 위로 올라왔었죠.
고령층에게도 코로나는 매우 위험합니다. 연령층이 증가할수록 쉽게 감염되고, 감염되었을 때 사망률도 급격히 증가한다는 사실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죠. 앞서 살펴본 정신 건강과 관련한 문제에도 취약한데, 상대적으로 떨어진 인지 기능이 그 원인일 것으로 추측합니다. 특히 요양 병원과 같은 격리된 시설에 머무는 경우라면 사회적 고립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이 증가할 수 있어요. 아직 연구가 부족하지만, 코로나에 감염된 노인성 치매 환자들의 저하된 인지 및 뇌 기능들이 조금씩 밝혀지기도 합니다.
불확실한 내일을 맞이하려면
그렇다, 불행 속에는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일면이 있다. 그러나 추상이 우리를 죽이기 시작할 때에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그 추상과 대결해야 한다.
『페스트』알베르 카뮈
팬데믹 시대의 공포와 불안, 분노와 혐오, 우울과 무기력같은 마음의 문제들은 어디서 온 걸까요? 많은 전문가들은 그 근원을 불확실성에서 찾습니다. 코로나는 감염에 대한 공포와 함께 사회적 관계와 경제 상황을 위축시키면서 개인을 고립시키고 일상을 파괴합니다. 이전과는 너무나 다른 상황인지라 내일조차 가늠하기 어려울 수 있죠. 그렇다면 이 불확실성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나고요?
현재 서울시 코비드19 심리지원단장을 겸임하고 있는 명지병원 김현수 교수는 '필수적인 공포와 편집증적인 불안 사이에서 균형잡힌 자세'를 강조합니다. 최소한의 공포와 불안은 감염으로부터 자신을 안전하게 지켜낼 뿐만 아니라, 잘못된 정보로부터 깨어있을 수 있기 때문이죠. 제가 이 시리즈를 쓰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서 찾을 수 있어요. 최신 정신의학계의 코로나 연구를 훑어본다고 우리가 겪고 있을 불안과 우울감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을 겁니다. 다만 많은 학자들이 비교적 신뢰할 만한 데이터와 이론을 통해 설명해주는 코로나와 정신 건강 이야기를 함께 읽는다면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했던거죠.
다음 주에는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과 20대의 뇌와 정신 이야기를 풀어볼까 합니다. 물론 모든 연령층이 코로나로 고통받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특별히 미래세대를 꼽은 데에는 코로나 이후의 시대도 함께 고민해볼 수 있겠다는 제 기대가 숨어있죠. 그런 의미에서 뇌발달 단계에 있는 아이들에 관한 코로나 연구는 더욱 짚어볼 만 합니다. 남은 한해에도 다가올 새해에도 불확실한 '추상'으로부터 모두가 건강하길 바랍니다.
레터에 도움을 준 논문들
- Qiu, Jianyin, et al. "A nationwide survey of psychological distress among Chinese people in the COVID-19 epidemic: implications and policy recommendations."General psychiatry 33.2 (2020).
- Moreno, Carmen, et al. "How mental health care should change as a consequence of the COVID-19 pandemic."The Lancet Psychiatry (2020).
- Bo, Hai-Xin, et al. "Posttraumatic stress symptoms and attitude toward crisis mental health services among clinically stable patients with COVID-19 in China."Psychological medicine (2020): 1-2.
- Helms, Julie, et al. "Neurologic features in severe SARS-CoV-2 infection."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2020).
- Rogers, Jonathan P., et al. "Psychiatric and neuropsychiatric presentations associated with severe coronavirus infections: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with comparison to the COVID-19 pandemic."The Lancet Psychiatry (2020).
- Troyer, Emily A., Jordan N. Kohn, and Suzi Hong. "Are we facing a crashing wave of neuropsychiatric sequelae of COVID-19? Neuropsychiatric symptoms and potential immunologic mechanisms."Brain, behavior, and immunity (2020).
- Steenblock, Charlotte, et al. "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 coronavirus 2 (SARS-CoV-2) and the neuroendocrine stress axis."Molecular Psychiatry (2020): 1-7.
- Kozloff, Nicole, et al. "The COVID-19 global pandemic: implications for people with schizophrenia and related disorders."Schizophrenia Bulletin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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