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행의 CI는 2002년 세계 최고의 브랜드 컨설턴시 중 하나인 랜도어소시에이츠에서 진행을 했다. LG, GS, 금호아시아나, 신라호텔, 에버랜드 등의 CI를 진행해 우리에게 익숙한 회사이기도 하다. 20년이 지난 지금은 업계 상황이 많이변했지만, 그 당시 기업들이 목표로하는 글로벌한 감각과 수준에 맞출만한 컨설턴시를 국내에서 찾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에는 최고의 브랜드 회사에서 만든 CI답게 굉장한 이슈가 되기도 했다. 푸른색 계열이 주를 이루는 금융계에서 회색과 노란색의 독특한 색상 매칭을 하는 시도도 그랬고, 손으로 그린듯한 별모양 심벌마크의 감성적 이미지 또한 신선했다. 금융하면 무조건 감색 정장에 넥타이를 매고 정자세로 앉아 있는 모습의 디자인만 떠올리던 인식에 새로운 감각의 파장을 던졌다. 이러한 파격적인 변화는 미래 금융 산업을 선도하겠다는 국민은행의 다짐과 변화의 의지가 담겨 있다는 느낌이 들어 긍정적으로 다가왔었다.
디자이너 입장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은행명 뒤에 심벌마크가 붙는 방식이었다. 우리에게 익숙하던 일반적인 CI의어순인 심벌마크 다음에 사명이 붙는 경우와는 완전히 반대라서 조금 어색했지만 그 게 오히려 새로워 보였다. 이 어순은마치 ‘신라 호텔’을 ‘호텔 신라’로 바꿔서 부르는 것같은 뉘앙스 차이가 있었다. 비슷한데 좀 더 세련된 감각이 느껴졌다. 사실 ‘신라 호텔’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어순이지만, Hotel Shilla는 Gildong Hong처럼 영어권 어순이 떠올라 낯설면서도 글로벌한 감각이 느껴졌다. 하지만 체스나 뱅크 오프 아메리카 같은 글로벌 은행들에서는 이미 쓰고 있던 방식이기도 했다. 그에 비하면 국내 대표 은행들인 신한, NH, 하나, 우리, IBK의 심벌마크는 모두 앞에 위치해 있는 것과는 비교가 된다. 몇년 전에는 은행명 뒤에 심벌마크가 붙는 방식으로는 유일했던 국민은행마저도 심벌마크가 은행명 앞에 붙는일반적인 방식으로 리뉴얼이 됐다.
그 이유에는 내부적으로 여러가지 사정이 있겠지만, 크게 2가지 요인으로 볼 수 있겠다.
첫번째는 자회사가 늘어나면서 다양한 자회사 명을 결합해야하는 이유다. 심벌마크가 앞에 있으면 그 뒤에 어떤 길이의자회사명이 와도 결합방법은 단순하고 별 어려움에 없다. 하지만 심벌마크가 뒤에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고려해야할조건들이 늘어난다. 가로 길이가 가변적인 명칭에 대응해 하나 하나 결합방법에 신경을 써야하는 상황이 생긴다. 더구나KB라는 영문사명과 국민은행이라는 국문사명 사이에 심벌마크가 들어 오는 경우도 따져볼 수가 있기 때문에 경우의 수는 늘어나고 선택이 더욱 어려워진다. 이러한 문제는 국문을 배제하고 KB Bank로 쓰면 고민할 문제가 아니지만, 국민은행이라는 은행명을 쓰지 않을 수 없는 국내 현실에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두번째는 디지털 전환에 따른 매체 환경 때문이다. 막상 웹사이트에 적용을 하려고 해도 KB 국민은행 + 심벌마크는 좀불안하다. 일반적으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흐르는 시선과 때문에 뒷편 심벌마크의 외곽선은 들쑥날쑥한 형태가 되어 공간의 여백을 예쁘지 않게 만들어 버린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일직선으로 뻗은 사명의 외곽선들이 심벌마크에서 갑자기튀어나와 시각적으로 깔끔한 인상을 주기 어렵다. 더구나 국민은행의 심벌마크의 경우 핸드드로잉 타입의 형태가 은행으로써의 안정감과 신뢰감의 이미지는 다소 떨어지기 때문에 이런 점들은 약점이 될 수 있다.
이런 비슷한 요인으로 최근 HSBC 은행도 리뉴얼을 했다. 특히 전면에 놓인 심벌마크의 비율이 더 크게 강조했다. 별 의미가 없는 약칭 사명인 HSBC보다는 심벌마크를 강조해 아이덴티티를 강화하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HSBC라는 문자만으로 설명할 수 없던 이미지와 분위기들이 심벌마크를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더욱 풍부한 시각적 메시지를 전달하고있다.
기존 은행권에 인터넷 은행인 카카오뱅크는 심벌마크를 소극적으로 활용해 앱 등에만 쓰고 있으며, 토스는 심벌을 로고타입 앞에 결합해 굉장히 적극적으로 쓰고 있다. 케이뱅크는 문자형의 워드마크로써 K라는 대표이니셜을 강조한 형식을취하고 있다. 천편일률적인 기존 은행권의 CI 형식과도 차이를 보이는 걸 보며 굉장히 흥미롭다. 같은 은행권이지만 베이스가 온라인이냐 오프라인이냐에 따라 쓰이는 방식도 분위기도 다른 것이다.
이처럼 심벌마크가 사명이나 브랜드명의 앞에 붙느냐 뒤에 붙느냐는 생각보다 기업의 이미지를 설정하는데 중요한 요소이다. 일반적으로는 심벌마크라는 이미지적인 상징이 있고 사명이라는 문자가 그 다음에 위치하는 형식은 가장 오래된방식으로 안정적이고 신뢰감을 주는 형식이다. 반면에 사명이 있고 다음에 심벌마크가 붙는 형식은 좀 더 유연하고 개방적인 인상을 준다.
은행권의 예를 들어 설명했지만, 각각의 업의 특성에 따라 심벌마크의 위치는 다양하게 변한다. 무엇보다 기업의 비전과가치를 가장 잘 표현할 위치에 심벌마크를 놓는 것이 중요하겠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도 맞지만 심벌마크의 위치가 기업의 이미지를 만든다는 말도 맞는 말이라 하겠다.
| 매거진 브랜디
글. 우현수 @woohyunsoo
브랜드 컨셉 빌더 [브릭] BRIK.co.kr을 설립해 브랜드 스토리와 스타일 구축을 돕고 있습니다. 저서 <일인 회사의 일일 생존 습관>을 실천하며 더 나은 미래를 차곡 차곡 쌓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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