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인간의 차이를 말할 때, 우리는 자주 창의성, 감정, 공감, 혹은 불완전함 같은 단어를 떠올립니다. 그러나 최근 남자친구와 이야기하며 우리는 조금 다른 단어에 주목했습니다.
바로 "변수(Variable)" 입니다.
저희가 말한 변수는 단순히 예상치 못한 돌발 행동이나 기발한 실수를 뜻하지 않습니다. 결코 0이 되지 않는 값. 무한히 0에 가까워질 수는 있지만 끝내 0이 되지 않는 어떤 미완성에 가깝습니다. 완전히 계산되거나 닫히지 않는 미세한 흔들림. 바로 그 차이 때문에 사건이 생기고, 선택이 일어나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AI는 정답을 산출하지만, 인간은 끝내 닫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바로 그 닫히지 않음에 본능적으로 이끌리는 것 같습니다.
존재에서 비롯된 투박함
AI는 변수를 흉내 낼 수 있습니다. 무작위성을 부여할 수도 있고, 일부러 정교하지 않은 결과를 만들 수도 있으며, 인간이 만든 것처럼 보이는 그림을 그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그 투박함에 매료되는 것은 단순히 "같은 종족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인간이 그린 선에는 특정 값으로 환원되지 않는 무언가가 존재합니다. 망설임, 오랜 습관, 감정, 기억, 몸의 리듬, 그날의 기분과 과거의 상처 같은 특정 값으로 산출되지 않는 값들이 선 안에 복잡하게 뒤섞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기술적으로 거친 선을 그려낸 것이 아닌, 한 인간이라는 변수가 남긴 흔적입니다.
AI의 투박함이 계산된 '결과로서의 투박함'이라면, 인간의 투박함은 '존재 자체에서 비롯된 투박함' 입니다. 이 차이는 결정적입니다. AI가 특정 값을 산출해 낼 때, 인간은 값으로 닫히지 않습니다.
인간은 때로 자신도 설명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움직입니다. 왜 그 선택을 했는지 당시에는 명확히 규정할 수 없습니다. 나중에야 그럴듯한 이유를 붙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완전히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인간의 선택이 완전한 무작위(Random)인 것도 아닙니다. 완전한 랜덤은 의미가 없고, 반대로 너무 질서정연하면 매력이 반감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변수는 딱 그 사이에 존재합니다. 계산 가능한 것 같지만 끝내 다 계산되지 않고, 예측 가능한 것 같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빗나갑니다. 그 작은 빗나감이 한 사람을 비로소 그 사람답게 만듭니다. 인간의 독창성은 단순히 '새로운 생각을 하는 능력'이 아니라, 0에 수렴하지만 결코 0이 되지 않는 존재성에서 나옵니다.
변수를 통제하는 인간이라는 경이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우리는 왜 역설적으로 완벽에 가까운 한 분야의 장인에게, 그리고 세계 최고를 다투는 일등 스포츠 선수에게 열광하는 것일까요? 그들은 변수를 허용하지 않는 가장 정교한 질서를 보여주는데 말입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매료되는 진짜 이유는, 그들이 로봇처럼 완벽해서가 아닙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인간이 얼마나 흔들리기 쉽고 투박한 존재인지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감정에 휘둘리고, 육체의 한계에 부딪히며, 결정적인 순간에 부담감으로 무너지는 것이 인간이라는 변수 덩어리의 본질입니다.
장인과 일등 선수의 위대함은 바로 그 '통제 불가능한 존재' 가 행하는 '경이로운 통제'에 있습니다.
그들은 매 순간 흔들리는 인간의 육체와 마음이라는 내면의 변수를 극한까지 억누르고 제어하며, 기어이 아름다운 규칙성을 빚어내는 사람들입니다. AI의 완벽함이 원래 흔들림 없는 상태에서 출발한 무미건조한 질서라면, 장인의 완벽함은 수천 번의 흔들림을 온몸으로 버텨내며 쟁취한 역동적인 질서입니다.
우리가 그들의 경기를 보며 전율을 느끼는 것은 그들이 완성된 채로 고정된 상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나약한 인간이 끝내 무너지지 않고 버텨내는 모습, 즉 변수를 통제해나가는 모습에 경외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 철저한 통제의 영역 끝에서, 인간이기에 100% 제어할 수 없었던 미세한 변수가 기적처럼 작동할 때 비로소 위대한 역사가 쓰입니다. 모든 수치와 전략을 완벽하게 수행하던 선수가 마지막 순간에 동물적인 직감과 본능으로 던진 한 슛이 승패를 결정했을 때처럼 말입니다. 그것은 오랜 통제가 바탕이 되었기에 터져 나올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형태의 변수입니다.
유한함이 가져다주는 무한의 감각
좋은 농담이나 매력적인 인간관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맥락에서 너무 멀어지면 이해할 수 없고, 너무 가까우면 지루합니다. 웃음과 매력은 대개 예측 가능한 세계 안에서, 아주 작은 '0'이 아닌 값(변수)이 툭 튀어나오는 그 중간 지점에서 발생합니다.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지만 끝내 다 알 수는 없는 사람, 일관성이 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새로운 면을 보여주며 나의 세계를 넓혀주는 사람에게 우리는 끌립니다.
결국 질문은 하나로 수렴합니다. 우리는 왜 이토록 변수에 끌리는 걸까요? 왜 완벽하게 계산된 산출보다 예측할 수 없는 인간의 흔적에, 그리고 그 흔적을 제어하려는 의지에 더 오래 머무는 걸까요.
역설적이게도 인간이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무한한 존재라면 변수에 끌릴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모든 경우의 수를 경험하고 모든 결말을 확인할 수 있다면 변수는 그리 간절한 가치가 아닙니다. 그러나 인간은 유한합니다. 모든 삶을 살아볼 수 없고, 모든 선택지를 고를 수 없으며, 하나의 방향을 걸어가면 다른 방향의 삶은 상상으로만 남겨두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인간은 닫히지 않은 것에 끌리게 됩니다. 결과를 모르는 경기, 다음을 예측할 수 없는 사람,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인생이 우리를 붙잡는 이유는 단순히 재미있어서는 아닙니다. 그것들이 우리의 유한함을 잠시 넓혀주기 때문입니다. 변수는 우리에게 예측한 세계가 전부는 아니며, 다른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해줍니다.
AI는 인간의 문장과 농담 구조, 그림체를 정교하게 학습하고 연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물 뒤에 '불완전한 존재'가 없다는 것, 즉 그 답을 내린 주체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감동의 깊이는 얕아집니다. 부족하고 어설프더라도, 혹은 그 어설픔을 이겨내려는 어떤 사람의 굳은살 박힌 흔적이 있을 때 마음은 움직입니다. 그 흔적이 산출된 값이 아닌 변수이기 때문입니다.
AI 시대에 인간에게 남는 것
AI 시대에 인간만의 특징은 완벽함이 아닐 것입니다. 완벽함은 오히려 AI가 더 잘 수행하는 영역입니다. 그렇다고 단순히 불완전함도 아닙니다. 그 불완전함 역시 AI가 연출할 수 있는 값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정말 인간적인 것은, 그 불완전함이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깊이에 있습니다. 완전히 계산되지 않는 변수, 0에 가까워지지만 끝내 0이 되지 않는 값 말입니다.
AI는 답을 산출하지만, 인간은 끝내 온전히 닫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닫히지 않음에 끌립니다. 왜냐하면 우리 역시 유한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살 수 없는 존재이기에, 우리는 아직 끝나지 않은 가능성 앞에서, 그리고 그 가능성을 통제하려는 인간의 의지 앞에서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변수는 유한한 인간에게 남겨진, 가장 무한한 감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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