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는 알파벳 두글자 이니셜로된 사명이 유난히 많습니다.
LG(전자), GS(정유), LS(전선), SK, KT(통신), CJ(식품), YG, SM(엔터테인먼트), NH(금융), OB(맥주), NC(게임), LF (패션), SL(부품) 심지어 공기업도 예외는 아니죠. LH(토지주택공사), EX(도로공사),SH(서울도시공사), AT(농수산물유통센터)등등 분야와 업종을 막론하고 사용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DL로 사명을 바꾼 DAELIM 그룹을 보고 나서는 이런 사명 변경의 유행이 아직 끝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전히 대림산업과 같은 전통적 대기업들의 계열사 분리의 이슈들이 많이 남아있고, 인수 합병을 통해 덩치를 키워내고 있는 기업들도 계속해서 생겨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럴 경우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고, 접근하기 쉬운 사명 변경 방법이 알파벳 두글자 사명일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영문 2음절보다는 SAMSUNG이나 HYUNDAI 같은 사명이 좋긴합니다. 그런 고집스러움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그 기업만의 철학과 전통뿐 아니라, 개성까지 표현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물론 외국에서는 읽기도 발음하기도 어렵다는 한계도 있겠지만 말이죠.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 많은 기업들이 알파벳 두글자 이니셜 사명으로 쓰는 이유도 분명 있을 겁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3가지 정도로 볼 수 있겠습니다.
첫번째는 짧은 이름이 담고 있는 함축성과 상징성 때문입니다. 특정 이미지나 의미가 담겨 있지 않아서 오히려 더 많은 이미지와 의미를 담아낼 수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사업을 해도 어떤 미래를 그려나가도 어울릴만한 이름입니다. 무색무취의 이미지가 오히려 상징성을 더 크게 합니다.
두번째는 포괄성입니다. 많은 계열사들을 거느리는 그룹사의 경우 지주사로써의 큰 품을 가져야 합니다. 이름이 짧을수록 단순할수록 품은 더 커집니다. SK의 경우만봐도 통신, 화학, 밧데리, 바이오, 건설까지 125개 이상의 사업영역이 다른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습니다. 만약 SK가 원래 사명이었던 SUNKYONG을 사용했다면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세번째는 결정적인 이유는 아니지만, 국외의 환경에서 보다 수월하게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이름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영문으로만된 이니셜은 영어권이 아니라고해도 세계 어디서나 쉽게 통용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런 영문 2음절 이니셜 사명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창립 초기의 이름을 고수하고 있는 그룹사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살펴보니 바꾸고 싶어도 바꾸기 어려운 속사정이 있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SAMSUNG을 영문 두글자로 줄이면 SS입니다. 그냥 생각해도 사명으로 쓰기에는 어려워 보이네요. 에스에스라고 같은 알파벳이 연결되니 좀 장난스럽기도 하고 가벼운 이름으로 느껴집니다. 국내에선 쌍용그룹이 연상되기도 하고, SS(Spring / Summer) 시즌이 떠오르기도 하네요. SHINSEGAE를 줄여보면 SSG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SSG가 사명으로 쓰이고 있지는 않지만, 온라인 브랜드으로 꽤나 활발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SSG 에스에스지라는 세글자 알파벳으로 쓸 바에야 그냥 신세계 SHINSEGAE가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HYUNDAI를 HD로 줄인 사명은 어떨까요? 고화질 TV사양이 떠오르네요. 자동차회사인데 가전이 떠오르는 건 좋지 않은 선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LOTTE는 영문 표기 상으로는 LT가 맞겠지만, 롯데로 발음하는 특성을 감안하면 LD가 되겠네요. LT그룹, LD그룹,,,,썩 나빠보이진 않지만, 아주 좋은 사명이라는 생각도 들지는 않습니다. Hanwha는 HW그룹 정도가 되겠네요. 일단 음절이 너무 길어서 불리하네요. 한화는 2음절인데 에이치더블유는 6음절로 늘어납니다. 더구나 HW는 하드웨어를 뜻하는 약자이기도 합니다.
위 그룹사들도 CI을 리뉴얼할 때 분명 두글자 영문에 대한 고민도 심도있게 했을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아무리 장점이 많다고 해도 자신들의 몸에 맞지 않으면 소용이 없었겠죠. 회사 이름을 짓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생각했던 좋은 이름은 많은데, 찾아보면 이미 상표로 등록된 이름들도 점점 많아졌습니다. 이런 상황이 점점 더 심화될수록 사명의 이니셜화는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단 두글자 때문에 인상적인 이미지나 의미를 가지진 못하더라도, 함축적이고 상징성이 높으며 포괄성과 범용적인 활용도의 높기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앞으로도 알파벳 두글자 이니셜 사명의 인기는 멈추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 매거진 브랜디
글. 우현수 @woohyunsoo
브랜드 컨셉 빌더 [브릭] BRIK.co.kr을 설립해 브랜드 스토리와 스타일 구축을 돕고 있습니다. 저서 <일인 회사의 일일 생존 습관>을 실천하며 더 나은 미래를 차곡 차곡 쌓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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