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뭔갈 좋아한다는 것은 곧 "어쩌다보니"가 아닐까?
2. 어쩌다보니 게임 제작을 7년 한 사람
3. 어쩌다보니 유튜브 8년 한 사람
4. 좋아하는 걸 찾는 방법
2018년 6월, 인스타그램에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 리뷰를 쓴 것을 시작으로
꾸준히 글을 쓴 지 벌써 6년이 넘었다.
딱히 이유랄 것도 없었다.
뭘 하든 그걸 해야만 하는 합당한 논리를 찾아 헤맸던 나인데, 글쓰기는 나의 철옹성 같은 "효율 검문대"를 제 집 드나들듯 통과했다.
그게 6년이 됐다.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은 뭘까?
최근에 친구랑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을 알아내는 법' 을 이야기하다 나온 재밌는 생각을 공유하고자 한다.
뭔갈 좋아한다는 것은 곧 "어쩌다보니" 가 아닐까?
"내가 A를 좋아하는가"에 대한 토론회를 머리 속에서 개최하고 수십 시간 내내 고뇌한다고 진짜 좋아하는 걸 찾을 순 없다. 좋아한다는 상태 혹은 감정을 어떻게 논리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진짜 좋아하는건 오히려 정말 단순하게 알아낼 수 있다. 구구절절 이유 갖다 붙일 필요 없이, 나의 행동이 그것을 증명한다. 한 단어로 요약하면 "어쩌다보니" 다.
이런게 내가 진짜 좋아하는 거 아닐까?
이 말에 힘을 더하는 실제 사례가 두 개 있다. 하나는 애니팡을 만든 분의 이야기고, 하나는 내 친형의 이야기다.
어쩌다보니 7년 게임을 만든 사람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VR 게임 회사에 합류했다. 애니팡을 만든 분이 엑싯 이후 재창업한 VR 회사였는데, 덕분에 애니팡의 기념비적인 성공 뒤에 가려진 생생한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예를 들면, 그가 애니팡 성공 이전에 얼마나 오랜 기간을 실패한 게임을 만드느라 보냈는지 같은거.
그냥 바로 말씀드리겠다.
7년이다.
그는 무려 7년 동안 팀원들과 게임을 만들었다. 땡전 한 푼 못 벌어도, 주변에서 아무리 걱정을 쏟아내도 그냥 만들었다.
그럼 여기서 질문.
그는
- "오케이 7년 동안 죽었다 생각하고 게임 만든다! 으아!" 하고 7년 한걸까?
- "언젠가 성공할 게임을 만들거니까 어떻게든 견뎌내자" 하고 7년을 버틴걸까?
글쎄. 그런 마음으로는 절대 7년 못했을 거다.
성공이라는 "결과"를 원했다면,
처음부터 7년을 하겠다고 계획을 세우고 접근했다면,
그 긴 시간 동안 꾸준히 할 수는 없었을 거다.
오히려 그런 복잡한 생각들은 그를 포기하게 만들었을 것 같다.
'에이, 이건 안되는 거야. 다른 더 성공할만한거 많은데 굳이 내가 이걸 잡고 있어야돼?'
'에이, 사람이 어떻게 7년 동안 같은 걸 해. 애초에 불가능한 계획이었어.'
아주 단순한 감정 혹은 느낌.
땡전 한푼 못 벌어도, 타인의 인정을 전혀 받을 수 없다 하더라도 그냥 계속 하고 싶게 만드는 그것.
다시 태어나더라도 또 다시 하고 싶은 그것.
"순수한 좋아함"이 그를 여기까지 이끌었을 뿐이다.
7년 동안 계속 게임을 만든게 한건.. 그냥 그게 재밌으니까.
만들고 내놓고, "안되네? 그럼 새로운거 만들어야징" 하고 만들고 내놓고..
어쩌다보니 7년 된거다. "엥? 어느새 7년이 됐네?" 했을 거다.
이런걸 보고 '좋아한다'고 하는 거 아닐까 싶다.
이 분의 여정을 "성공을 위해 7년을 버텨낸 집념의 사업가" 라고 묘사하는 건 오히려 그가 과정 속에서 느낀 감동과 즐거움을 퇴색하는 일이 아닐까?
어쩌다보니 유튜브 8년 한 사람
우리 친형은 지금 117만 유튜버인데, 이 분은 유튜브만 8년 했다.
형은 진짜 행동파다. 생각한걸 바로 한다. 덕분에 형의 20대 초반에는 지방에 가서 페인트칠 노역을 한 썰도 있고, 여자친구랑 같이 대학교 졸업식에서 꽃을 판 썰도 있다.
심지어 유튜브도, 대학 수업에 특강 연사로 초청된 1세대 크리에이터 씬님의 강연을 보고 "무급으로 일해도 좋으니 뭐라도 시켜주세요!" 메일 보낸 게 시작이었다. 씬님 밑에서 일하며 편집을 배우고 1년 뒤 자기 채널을 판 것임.
형은 자기 자신을 뭐든 빨리 질리는 사람이라고 묘사한다. 유튜브 하기 전에는 뭘 해도 2주를 못 넘겼다고. (덕분에 엄마랑 엄청 싸웠다. 뭐 하겠다고 사놓고는 2주 뒤에 수건 걸이로 변신해있으니까)
근데 유튜브는? 너무 재밌었댄다. 그래서 그냥 계속 했는데 - 어쩌다보니 그게 8년이 된거다. 워낙 좋아하니까 결과도 자연스레 따라왔을뿐이고.
나는 한 2년 전까지만 해도 '뛰어난 결과를 내는 사람들'을 동경했는데
최근부터는 '결과와 상관 없이 꾸준히 좋아하는 걸 하는 사람들'을 동경하기 시작했다.
근데 생각해보니 나도 그런 사람이었을지도!? 하여튼 6년 썼으니까! (한잔해~)
좋아하는 걸 찾는 방법
이 "어쩌다보니" 이론을 기반으로,
"어떻게 하면 내가 좋아하는 걸 찾을 수 있는가"를 위한 방법론을 제시할 수 있다.
1. 끌리는 걸 일단 한다. 수박 겉핥기라도 OK. 하루만 해도 OK. 일단 찔러봐야 함.
2. 그러고나서 '어쩌다보니', '뭐 어떻게 하다가' 계속 하면 좋아하는 거다.
여기서 잠깐! 당연히 처음 찔러본 날부터 매일매일 반복하는건 말이 안된다. 그건 처음 본 사이에 바로 결혼하는 거랑 같음. (그럴 수도 있겠지만 확률이 너무 낮다는 거)
그것보다 더 현실적인, '나의 좋아함'을 찾아가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 하루 했는데 일주일 뒤에 생각나서 하루 더 해보고,
- 아 좀 더 잘해보고 싶은데.. 하면서 유튜브 보고 따라하고,
- 그러다 어느 순간 매일 하고 있고... 주변에서 '너 그거 진짜 좋아하는 거 같아' 라는 말을 한다.
이렇게 점점 사랑에 빠지는 거임.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것과 비슷한거 같기도 하고?
뭔가를 좋아하는 것을 너무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나에게 주어진 24시간 중에 단 1분이라도 매일매일 계~속 자리를 내주고 싶은 무언가가 있으면 그게 좋아하는 거지. 뭐 별 거 있나.
좋아하는 걸 찾는 모든 사람들과,
좋아하는 걸 매일 하며 행복해하는 사람들과,
더 잘하고 싶어서 연구하고 노력하는 모든 사람들께.
진심으로 응원과 존경을 보낸다. 당신이 무언가를 좋아하고 그것에 파고드는 덕분에 세상에 새로운 색깔이 입혀지고 있다. 이 아름다운 풍경을 이루는 건 조그마한 붓질들이고, 이건 모두 당신이 한 것이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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