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운트다운 캐피탈, 펀드 반납 선언
지난주, 딥테크 및 디펜스 분야의 초기 기업 전문 투자사를 표방해온 카운트다운 캐피탈 (Countdown Capital) 이 투자를 중단하고 남은 미투자 자금을 반환하겠다고 발표하였습니다. 2020년 65억 원 ($5 million) 규모의 1호 펀드, 그리고 2022년 200억 원 ($15 million) 규모의 2호 펀드를 조성한 카운트다운 캐피탈은 3월까지 자금 반환 및 출자 취소 절차를 진행한 후 기존 투자 자산 관리 기능만 남겨둔다는 계획입니다.
Early-stage hard tech firm Countdown Capital shutting down
2년째 이어지고 있는 벤처 투자 혹한기의 후유증이 스타트업을 넘어 벤처캐피탈업계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지난 12월에는 불과 1년 전 8천억 원 규모의 7호 펀드를 조성한 보스턴 소재 오픈뷰 벤처 파트너스 (OpenView Venture Partners)가 갑작스럽게 신규 투자 중단, 펀드 청산과 심사역 해고를 단행한 바 있습니다. 핵심 파트너들이 줄줄이 회사를 떠나면서 Key Person Provision이 발동된 것입니다.
카운트다운과 오픈뷰의 사례는 갑작스러운 변화로 인해 주목을 받은 케이스입니다. 하지만 핵심 투자 파트너들이 조용히 회사를 떠나며 서서히 팀이 붕괴되는 사례까지 포함하면 훨씬 많은 수의 벤처캐피탈들이 추가 펀드 조성이 어려운 '좀비펀드' 단계로 들어서고 있다는 평가입니다.
어떤 의미인가?
카운트다운 캐피탈을 이끌어온 제이 말릭 (Jai Malik)은 펀드 폐업을 결정한 핵심 이유로 소규모 펀드로서의 한계를 언급하였습니다. 특히 사업 초기부터 대규모 자금이 필요하고 사업이 본 궤도에 오르기까지 오랜 기간이 소요되는 딥테크 분야의 특성상 소규모 펀드가 대형 펀드와의 경쟁에서 유의미한 투자 성과를 창출하기에는 한계가 명확했다는 자기반성입니다.
시드 전문 펀드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20개의 투자 중 19개의 투자 건이 실패하더라도 100배 이상의 투자 성과를 가져다줄 수 있는 단 하나의 기업을 찾아야 합니다. 초기 기업 펀드의 경우 리스크가 높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전체 펀드 규모의 3 - 5배 이상의 수익을 올려야 상위 5%에 들어가는 성과라고 인정받기 때문입니다.
VC, 벤처캐피탈이 정규분포를 부정해야하는 이유 (romanceip.xyz)
하지만 시드 라운드부터 천억 원 이상의 가치를 인정받고 사업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 딥테크 분야에서는 회사의 기업가치가 단기간에 유니콘 단계에 이르더라도 희석 등 고려 시 수익은 원금의 2 - 3배 수준에 그칩니다. 이러한 기업가치와 투자 규모 사이의 딜레마에서 여러 차례 선제적으로 발굴한 투자 기회를 대형 펀드에게 빼앗기는 경험을 한 제이 말릭은 결국 투자를 못하겠다고 선언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들어가 보면
제이 말릭이 카운트다운 캐피탈을 시작한 2020년으로 돌아가 보면 모든 것이 완벽했습니다. 안데르센호로위츠가 '아메리칸 다이나미즘'을 주창하고 나서기 훨씬 이전인 2020년 딥테크 및 하드웨어-테크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해당 섹터에 뛰어들었고, 여기에 2018 - 2019년부터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솔로GP 모델을 접목, 단기간에 실리콘밸리 인플루언서들의 관심을 끌 수 있었습니다. 실제 펀드의 LP로 참여한 인물들도 All-In 팟캐스트의 데이비드 삭스, 홈브루의 헌터 워크 등 유명 인사들이 많았습니다.
또한 제이 말릭은 실리콘밸리가 선호하는 오퍼레이터 출신의 투자자였습니다. 피스컬노트에 인수된 Forge.AI에서 첫 프로덕트 매니저로 1년간 근무한 경험이 있으며 그전에는 Accrete AI란 기업에서 경험을 쌓았습니다. 또한 카운트다운 캐피탈 설립 전 로카나벤처스란 곳에서 잠시 일하기도 하였습니다. 근무 경험은 짧지만 스타트업 경험과 투자 경험이 있고 트위터에서 자기 브랜드를 잘 쌓으면 얼마든지 벤처캐피탈리스트가 될 수 있는 미국의 환경에서 제이의 사례는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습니다.
문제는 팬데믹을 거치며 미국에서는 제이 말릭과 같은 '어쩌다 투자자 (Accidental Investor)'들이 너무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투자를 커리어로 접근하는 것이 아닌, 펀드 운용을 사이드잡 정도로 여기며 유명 벤처캐피탈이 주도하는 라운드에 소액 공동 투자하는 것을 전략으로 삼아온 수많은 소형 투자사들은 벤처 혹한기가 2년 가까이 이어지자 현실이 녹록지 않음을 깨닫고 갑작스레 펀드를 포기해버리는 사례가 늘어나는 모습입니다.
벤처 투자는 쉬운 직업이 아닙니다. 투자 사이클이 긴 미국 벤처캐피탈의 경우 10년은 지나야 제대로 된 성과가 나오기 시작하며 20년은 지나야 누가 실력자인지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벤치마크의 빌 걸리나 USV의 프레드 윌슨이 존경받는 이유도 단지 투자 실적이 좋은 것뿐 아니라 두세 번의 경기 사이클을 이겨내며 꾸준한 성과를 입증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투자업에 10년 이상 투신할 생각이 아니라 단지 벤처 투자의 화려함만 보고 펀드 운용을 시작한 매니저들은 불경기가 도래하자 2년도 못 버티고 펀드 청산을 심각하게 고려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앞으로의 전망은
미국의 스타트업 전문 미디어 디인포에이션은 이번 사태를 통해 대형 펀드와 경쟁하기 어려워진 소형 펀드의 현실에 집중하는 모습입니다. 반면, 소형 펀드가 대형 펀드보다 성과가 월등하다고 믿는 소형 펀드 옹호론자들은 이번 사태가 딥테크라는 섹터의 특이성에서 비롯된 것이지, 이를 일반화할 필요는 없다고 일갈합니다.
어찌 되었건 이번 카운트다운 캐피탈이 투자 중단과 펀드 반환을 진행하는 방식이 이례적인 것은 사실입니다. 과거에는 '펀드는 사라질지언정 죽지는 않는다'라는 격언처럼 투자 성과가 저조하고 추가 펀딩이 어려운 운용사는 서서히 사라지면서 남은 펀드를 정리하거나, 아니면 잠행 모드로 버티며 반전을 노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투자를 본업으로 삼는 매니저의 입장에서는 '시끄럽게' '갑자기' 폐업 선언을 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투자를 '부업' 정도로 여겨온 비전통 '어쩌다 투자자'들은 투자를 접고 다시 창업이나 취업의 길로 들어서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낮기 때문에 펀드 운용 또한 스타트업 폐업처럼 효율적으로 접근하는 모습입니다. 과연 카운트다운 캐피탈의 펀드 폐업이 성과가 부재한 무수히 많은 2020 - 2022 빈티지 펀드들의 운용 포기 선언으로 이어지는 트렌드가 될 것인지 올해 관심 있게 지켜볼 대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