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아이의 눈망울에 비친 세상은 🐣

[들으며 읽는 평론] C. Debussy Children’s corner

2022.05.07 | 조회 4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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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클래식

클래식과 함께, 재미있는 예술야화를 전합니다.

 #1 슈슈, 같이 놀자! 

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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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하는 어린 딸 슈슈에게, 아버지로서의 자애로운 말을 곁들여서”-C. Debussy <Children's Corner(어린이 세계)> 서문

 

프랑스의 인상주의 작곡가 드뷔시는 유태인 음악가 엠마 바르타크와 사랑에 빠졌다. 엠마와의 결혼을 위해 원래의 부인과 이별하고, 둘의 관계 속 재정적 개입에 대한 의문을 품은 친구들을 정리했다.

 

이후 클로드엠마(Claude-Emma)라는 딸을 낳았다. 둘의 이름을 섞은 아이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드뷔시에는 각별하고 사랑스러운 딸이었다. 둘은 아이를 “슈슈(Chou-Chou)”라는 별명으로 칭했다. 슈슈는 두 사람에게 험난했던 맺음의 창대한 결실과 같은 존재였다.

 

드뷔시는 자신의 딸을 위해 <어린이 세계(Children’s Corner)>라는 곡을 썼다. 무려 2년의 시간을 소요했다. 곡을 헌정 받은 슈슈의 나이는 4살이었다. 드뷔시는 4살짜리 딸이 음악으로 장난감보다 더 많은 즐거움을 느낄 수 있기를 원했다. 자신의 아이만큼은 자신이 느끼는 삶의 고통을 느끼지 않았으면 하는, 어린아이의 순수한 마음으로 세계의 즐거움을 느끼길 원했던 드뷔시의 진심 어린 부성애였다.

 

 

 #2 그 아이의 눈망울에 빛이 드리운다. 

낭만 후기, 사람들의 삶이 넉넉해지기 시작하면서 귀족만의 문화였던 클래식이 각 가정에 스며들었다. 중산층 부모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아이들에게 음악을 공부시켰다. 가장 만만한 게 피아노였다. 가정용 피아노의 도입으로 피아노에 대한 접근성이 좋아졌음은 물론, 어린아이도 쉽게 소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악기였기 때문이다. 가족들이 모두 모여 피아노 연주를 즐기는 여가문화도 나타났다.

 

‘가내 클래식’의 영향으로 인해, 아이들을 위한 피아노 작품이 필요해졌다. 아이들이 쉽게 배우고, 즐기고, 연주할 수 있는 작품이 필요했다. 슈만의 <어린이 정경>이나, 멘델스존의 <어린이를 위한 6가지 소품>도 역시 이를 위한 작품이다.

 

드뷔시의 <어린이의 세계>는 그 당시 유행이던 어린이를 위한 출판물과 조금 다르다. 어른이 아닌 ‘어린이’의 시각이 담겼기 때문이다. 그는 아이들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어린이의 세상을 표현해, 자신의 딸 슈슈가 이 곡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기를 원했다. 전체 제목을 포함한 6개의 소곡은 각각 영어로 된 제목을 가진다는 사실 또한, 슈슈가 영국인 피아노 선생님과 함께 연주를 놀며 즐길 수 있기를 바라는 아빠의 마음이었다. 어쩌면 자신이 선택한 음악에 대한 고민과 번뇌의 시간을 거친 드뷔시가, 자신이 아끼는 존재만큼은 자신이 사랑하는 음악을 그저 행복하게 즐겨주길 바랐으리라.

 

C. Debussy <Children’s Corner>(어린이 세계)

 

드뷔시는 라벨과 함께 음악에서의 인상주의를 이끌었다. 인상주의는 정체된 사물이 아닌 그 사물에 드리우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빛과 분위기에 초점을 맞추어 음색의 변화로 곡을 이끌어간다. 일순간 포착되는 어떠한 인상과 장면이 곡 전체의 음색과 분위기를 결정한다.

 

<어린이 세계(Children's Corner)>도 마찬가지다. 첫 번째 곡은 지루한 곡을 연습하는 아이의 모습을 담은 <그라두스 애드 파르나숨 박사>다. 빠르게 진행되는 패시지 때문에 듣기에는 지루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이 곡을 제대로 연주하기 위해서는 오랜시간동안 한 음형만을 연습해 빠르기를 올려야 한다. 열심히 달려가다가 중간중간 늘어지는 음가, 그리고 화끈하게 던지며 끝내버리는 마지막 화음은 같은 패시지의 반복에 지루해진 아이의 모습과 빨리 끝내고픈 아이의 마음이 옅보인다.

 

두 번째 곡 <짐보의 자장가>에서는 슈슈의 코끼리 장난감 “짐보"가 등장한다. 짐보는 슈슈가 함께 잠을 청하는 애착 인형이기도 하다. 드뷔시는 여기서 슈슈가 짐보를 재우기 위해 부르는 자장가를 표현했다. 점점 느리게 반복되는 낮은 화음이 졸린 코끼리의 걸음을 연상시킨다. 슈슈도 이 곡을 들으며 짐보가 잠드는 과정을 상상했을까.

 

세 번째 곡 <인형을 위한 세레나데>에도 슈슈가 아끼던 인형이 등장한다. 인형이 슈슈에게 들려주는 게 아닌, 슈슈가 인형에게 불러주는 노래라는 점이 특이하다. 음악도, 인형도 아닌 아이가 이 음악의 주체가 되었으면 하는 드뷔시의 어린아이적 시각이 담겼다. 톡톡 튀는 음들이 인형들의 무대를 연상시킨다. 슈슈의 인형은 이 노래를 듣고 어떤 춤을 췄을까, 발레일까 아니면 무도일까. 답은 슈슈의 상상에서만 찾을 수 있다.

 

네 번째 곡 <눈송이가 춤춘다>는 눈이 내리는 모습을 묘사했다. 분위기로 보아서는 흩날리는 눈인지, 쌓이는 눈인지, 별빛을 담은 밤의 눈인지, 햇빛에 반짝이는 낮의 눈인지 알 수 없다. 다만 확실한 점은, 때 묻거나 녹지 않은 깨끗한 눈이라는 점이다. 어떤 눈이 될지는 이 곡을 연주하는 슈슈에게 달렸다.

 

다섯 번째 곡 <어린 목동>은 노아의 방주 속 목동과 양의 모습을 묘사한다. 긴 음가의 화성에서 울리는 공명은 홍수로 인해 방주 아래로 물이 일렁이는 느낌을 준다. 그리고 그 위에 올려진 부점 리듬의 멜로디는 풀피리를 부는 목동을 상상토록 한다.

 

마지막 곡 <골리워그의 케이크워크>는 골리워그라는 한 인형이 케이크워크를 추는 모습에 인상을 받아 만들어졌다. 높이 들어 올린 케이크를 다리로 차며 추는 춤이다. 골리워그가 흑인 인형인 만큼 그들의 음악인 재즈를 데려온 점이 눈에 띈다.

 

 

 #3 굽이진 아이들의 세상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마시고 쳐다보아 주시오. 어린이에게 경어를 쓰시되 늘 부드럽게 하여 주시오. 이발이나 목욕 같은 것을 때맞춰 하여 주시오. 잠자는 것과 운동하는 것을 충분히 하게 하여 주시오. 산보와 원족(遠足·소풍) 같은 것을 충분히 하게 하여 주시오. 어린이를 책망하실 때에는 쉽게 성만 내지 마시고 자세자세(자세히) 타일러 주시오. 어린이들이 서로 모여 즐겁게 놀 만한 놀이터나 기관 같은 것을 지어 주시오." - 소파 방정환 <어린이날 선언문(19230501)>

 

사회는 어른의 높이로 맞추어져 있다. 키가 140은 되어야 앉을 수 있는 의자, 작은 키로는 도무지 바라볼 수 없는 책상 위의 세계,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열 수 없는 창문. 세계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한 어린이들은 어쩌면 자신의 위치를 즐기기보다, 더 많은 것을 누릴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어린이들은 분명 불공평을 느낀다. 온전히 인지하지는 못하더라도 자신의 위치가 불리하다는 점은 안다. 온전한 사회 구성원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보호를 받는 조건이, 보호자가 없으면 사회의 구성원이 될 수 없는 환경으로 만들었다. 

 

어른들의 세상을 어른이 가장 잘 알듯, 아이들의 세상은 아이들이 가장 잘 안다. 어떤 것이 즐거운지, 또 어떤 것이 불편한지 가장 가까이에서 느끼는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어른에게 있어 매우 사소한 일일지라도 어린아이에겐 자신을 위협하는 중대한 일 중 하나다. 그러나 어른들은 보호자라는 명목하에 자신의 시각으로 아이의 행동을 판단한다. 자신이 지루해하는 일이라면 아이도 지루할 것이라 쉽게 판정한다. 아이의 의견은 굳이 물어보지 않는다. 

 

문제 해결을 위한 가장 이상적인 방법을 가장 적극적으로 시행하는 것 역시 어른이 아닌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가장 이상적인 삶의 지혜를 배우고, 가장 이상적인 삶의 패턴을 살아가며, 다툼 후엔 가장 이상적인 방법으로 화해한다. 가장 미련 없이, 가장 마음 편히 살아보며 자신과 타인 모두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규칙을 배운다.

 

하지만 어른은 그 이상을 실천하는 법을 잊었다. 잊었다기보다 무시한다는 말이 더 적절하다. 자신이 조금 더 편하기 위해, 자신이 조금 더 주도권을 잡기 위해, 잠시 이상적인 삶의 방식을 접어둔다. 그리고 어쩔 수 없다는 몇몇 이유로 합리화한다. 지금의 어른은, 자신의 편의를 위해 아이들에게 직선도로를 요구한다.

 

사람은 성장하며 자신의 감정에 무심해진다. 그것이 바로 마음의 성장이다. 이리저리 부딪히며 여러 감정을 배우고, 그 감정을 어떻게 처리할지 판단하면서 스스로의 마음을 조절하는데 능숙해진다. 그리고 인간은 그 감정을 처음 느꼈던 어린 날의 자신을 서서히 잊어간다.

 

조금 돌아가도 늦지 않다. '그 길'이 세계를 경험하고 상상의 힘을 넓힐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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