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날리는 끝눈에 모닥불이 생각난다면🏕

[들으며 읽는 클래식] 겨울의 끝자락에서 감상하는 차이코프스키 "겨울날의 환상" Tchaikovsky Symphony No.1 "Winter dreams"

2022.03.01 | 조회 4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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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클래식

클래식과 함께, 재미있는 예술야화를 전합니다.

 

 

기나긴 겨울이 지나가고 봄으로의 시간을 달리는 요즘. 겨울을 줄까 봄을 줄까 망설이는 꽃샘추위에 세상은 얼었다 녹기를 반복한다. 여기 망설임의 대명사가 또 있다. 바로 러시아의 작곡가 표트르 일리치 차이코프스키(Pyotr Ilyich Tchaikovsky, 1840-1893)다.

 

그럼, 음악과 함께 글을 감상해보자.

카라얀 지휘 /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

 


 #1 우울 속에 잠식된 예술가 

 “호텔에 들어와 여장을 푸니 비로소 마음이 놓인다. 우선 나는 모든 일은 다 젖혀놓고 실컷 울었다. 그리고 나서 목욕을 하고 식사를 했다.”

 

그는 유난히 내성적인 “눈물 제조기”였다. (가히 그의 MBTI를 추측하자면 ‘INFP’일 것이다.) 그의 일생은 항상 원인 모를 불안과 고독이 함께였다.

 

차이코프스키의 어머니는 일찍부터 어학에 재능을 보인 그의 모습에 가정교사를 초빙했다. 차이코프스키는 그 가정교사를 너무 좋아했고, 가정교사의 말을 잘 따랐다. 그러나 아버지의 전근으로 인해 강제로 가정교사와 떨어져야만 했다. 그때의 충격으로 그는 말수 적은 아이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그가 사랑한 것은 가정교사 뿐만이 아니었다. 어머니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법률학교 진학이후 기숙사 입소에도 애를 먹었다. 어머니와 떨어지지 않으려 온 몸으로 저항했다. 결국 주위사람들이 그와 어머니를 강제로 떼어야 할 정도였다. 어머니가 그를 바래다주고 집으로 돌아가는는 길에는 어머니가 탄 마차 앞으로 뛰어들며 저항했다. 이 어린 소년의 어머니에 대한 지나친 사랑은 다른 여성에게 향할 사랑의 문을 영원히 닫게 만들었다.



 #2 괜찮아, 가보자고 ! 

법률학교를 졸업 후 법무부 서기로 재직했지만, 그의 음악적 열정은 여전했다. 그는 직장과 동시에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 야간반 수업을 병행했다. 음악을 포기하지 못해 넋을 일은 채 공문서를 찢어 모두 씹어먹은 일도 있었다.

 

결국 그는 서기직을 그만두고 음악학도의 길을 걷기로 마음먹었다. 그동안 연극 “폭풍”이라는 서곡을 작곡했는데, 이 곡이 안톤 루빈스타인의 눈에 띄어 모스크바 음악원의 교수가 된다. 안톤 루빈스타인의 동생 니콜라이 루빈스타인은 그에게 교향곡 작곡을 건의한다.

 

 “아우야, 내 신경이 할 수 있는 최대한 곤두서는 느낌이구나. 이런 이유때문에. 첫째, 교향곡을 쓴다는 게 잘되지 않아서. 둘째, 안톤과 타르노프스키가 온종일 갖은 방법으로 날 놀래켜서. 교향곡을 끝내기도 전에 죽을 것 같아.”

 

생애 첫 대작이라는 사실은 그에게 큰 부담이었다. 밤낮없이 교향곡의 스케치를 하면서 교수까지 겸임했다. 여기에 ‘환희의 송가’에 대한 혹평이 더해져 그의 유리 멘탈은 바사삭 무너지고 말았다. 불면증과 환각에 교향곡을 완성하지 못하고 죽을지도 모른다며 두려워했다.

 

심지어 차이코프스키는 루빈스타인 형제의 집에 머무른다. 자신도 넉넉치 못해 동거를 수락했으나, 얇은 패널로 방을 나눈 탓에 모든 일상이 루빈스타인 형제의 루틴에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이미 산산조각난 유리 멘탈 위로 스트레스가 가중되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살아남은 그는 스승에게 곡을 들고 찾아가지만 여전히 반응은 냉담했다. 두 계절에 걸쳐 개정 작업을 거친 후에도 반응은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니콜라이는 달랐다. 차이코프스키의 곡에서 그만의 매력을 찾아내고 그를 격려했다. 거기에 후원과 지휘를 약속했다. 비공식적인 연주부터 공식적인 초연까지 모든 지휘를 도맡았다. 니콜라이의 격려와 지지가 아니었다면, 그는 이미 교향곡에 발을 들이지 못했을 것이다.

 

니콜라이 덕분에 세상의 빛을 발한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차이코프스키 역시 니콜라이의 덕을 알았는지 니콜라이에게 이 곡을 헌정했다. 망설임에 추진력을 더해준 진정한 파트너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곡은 훗날 차이코프스키의 이름과 업적을 널리 알리게 될 첫걸음이 된다.



 #3 정돈되지 않은 패기, 음악적 상상 

망설임과 우울의 이야기와는 달리 교향곡 1번에 담긴 내용은 비장하다. 자신의 조국인 러시아에 대한 애착을 담아 설경을 표현했다. 차이코프스키가 살았던 당시의 러시아는 이렇다할 조국의 교향곡이 없었기 때문일 게다.

 

덕분에 여느 교향곡과 다르게 교향시적인 성격이 나타난다. 교향시는 짧은 단악장으로 구성되어 음악 외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자신이 살고 있는 러시아를 담기위해 고민한 흔적이 엿보인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잔잔한 균열과 전통적 흐름을 위배하며 다른 모습으로 형태를 바꿔버리는 멜로디 선은 그의 용기와 이에 대한 망설임이 간접적으로 나타난다. 때문에 청자는 “아, 이때 쯤이면 한 번 터트려볼 만 한데.”하는 클라이막스에 대한 욕구가 샘솟는다. 클리셰 충족을 향한 두근거림이 다른 곡보다 더 오래 지속된다는 점은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만의 매력이다.

 

짧은 호흡으로 끊겨 반복되는 멜로디는 마치 듣는이에게 상상의 모티브를 던져주는 것만 같다. 끊겨버린 멜로디들 사이사이의 공백은 듣는이가 상상으로 채워진다. 러시아를 방문해보진 않았지만, 보랏빛 하늘 아래 하얀 눈이 덮인 러시아의 밤이 떠오른다.

 

여러분의 겨울은 어떤 모습인가. 미처 내리지 못한 끝눈이 휘날리기 전, 밤의 품에 누워 여러분의 겨울을 상상해보라. 차이코프스키의 겨울과 함께 미처 보내지 못한 이번 겨울을 정리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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