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 / 분노의 포도, 존 스타인벡

끝내 다시 살아나는 희망 / 독후감

2021.07.05 | 조회 1.01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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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느의 고전 읽기

변치 않는 가치를 지닌 고전 문학 이야기

장면 장면이 눈에 그려지듯 묘사하는 문장들은 생동감이 넘치다 못해 처음에는 조금 거부감이 들 정도로 지나치게 ‘세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소작인들이 대대로 살아온 땅을 트레일러로 밀어버리는 모습을 ‘강간’에 비유한다거나 톰이 교도소에서 가석방되어 트럭을 얻어타고 가는 도중에 차 주인에게 갑자기 말을 놓으며 섬뜩하게 말하는 모습, 케이시 전목사가 털어놓는 일탈의 경험 등, 잠시 등장하는 에피소드들 정도로 넘어가기에는 너무 강렬해서 한번 읽고 나면 머릿속에 각인되는 대목들이 많아요. 하지만 서정적이고 문학적인 장면들이 어우러지며 불편할 정도로 센 장면들을 상쇄하는 덕분에 포기하지 않고 책장을 계속 넘기게 되었고 톰의 가족이 겪는 고난의 이주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초반에 나왔던 그런 장면들은 오히려 이 책에서 없어서는 안 될 부분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 어떤 표현도 주인공이 겪게 되는 과정에 비하면 과격하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지요.

이 소설은 대단한 반전이나 선명한 무지갯빛 미래를 보여주며 끝나지는 않습니다. 분명히 계속 고난의 길이 있을 것이 확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좌절하지 않는 의지가 곧 희망이라는, 꽤나 묵직한 메시지와 함께 감동을 안겨줍니다. 작가는 이 작품 속에서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사회의 각성을 촉구하기보다는 그저 여기 묘사된 과정을 겪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들을 깊이 이해한다는 것을 문학적인 방식으로 이야기 합니다. 그들이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으며 어떤 비참한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내면의 인간적인 고귀함과 존엄은 손상될 수 없음을 보여주죠. 책 뒤 해설에도 나와 있듯, 누군가의 고통과 희망을 공감한다는 의미로 이 책이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었을 것 같아요.  

주인공 톰의 가족을 통해 드러나는 사회문제들은 여전히 지금도 해결되지 않은 현대 사회의 숙제입니다. 외부인에 대한 차별, 자본가까지도 패배하게 만드는 자본주의의 악순환, 난민 문제까지 어느 하나 가볍게 다룰만한 것이 없죠. 톰의 가족은 그 심각한 문제들을 한꺼번에 정면으로 맞닥뜨립니다. 삶의 터전을 끔찍한 가뭄, 그리고 그보다 더 잔인한 자본가들에게 갈취 당하다시피 잃게 되어 서부로 무작정 떠나지만 힘든 여정 뒤 도착한 캘리포니아 역시 무법천지 야생 상태의 정글과 같았어요. 책을 다 읽고 나서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것은 그들의 고된 여정보다 오히려 거기서 느낀 희망과 그로 인한 감동이었어요. 생존기라고 하기엔 너무 처절한 과정 속에서, 사람들이 지켜내는 가치와 연대하며 공동체를 이뤄나가는 모습은 진흙에서 피어난 연꽃처럼 이 심란한 이야기를 끝까지 이끌어가는 힘이 됩니다.

 

독후감은 객관적으로 전체 줄거리를 요약한다거나 주제를 명시하지 않고 그저 제 감상을 남깁니다. 제가 특히 언급하고 싶은 특정 부분에 대해서만 기록하기 때문에, 작품의 전반적인 정보를 다 설명하지 않습니다.

 

 

작가 존 스타인백과 분노의 포도에 대한 간략 소개는 ↓

 

 

 

1. 죄와 벌, 선과 악

고도로 발달된 현대사회의 도시에서 서로 친구인지 적인지 동료인지 혹은 사실상 완전한 타인인지 구분이 모호한 사람들과 지내는 우리에겐 싫은 것도 좋은 것도 잘못한 것도 잘한 것도, 날 것 그대로 드러내지 않는 것이 습관이자 암묵적인 규칙입니다. 그리고 이 암묵적인 규칙을 따르지 못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옳지 않다고 규정하곤 하죠. 이 책에는 그런 식의 ‘세련됨’이라고는 등장하지 않아요. 따라서 세련됨을 가장해 적당히 비겁하게 사는 것에 익숙한 저는 처음에는 선뜻 여기 등장하는 사람들의 편이 되기가 쉽지 않았어요.

이야기 초반, 땅의 소유주인 은행이 이 땅을 개간하려 한다는 말을 전하는 직원에게 당장 은행에 가서 이건 부당하다는 말을 전하라며 마냥 화만 내는 톰의 가족들, 또 이미 가족과 이웃이 다 떠난 그곳에 자기는 끝까지 남아있겠다고 하는 멀리를 보면 안쓰럽긴 해도 저렇게 화만 낸다고 될 일이 아닌데 하는 생각과 함께 답답한 마음이 앞섰습니다.

주인공인 톰 역시 불안해 보이기는 마찬가지였어요. 가석방이 되어 차를 얻어타고 집으로 오는 길에 대화를 시도하는 트럭 기사의 태도에 심기가 불편해 자신이 살인으로 복역했다는 말을 내뱉으며 협박하듯 화를 내죠. 그가 당장이라도 마음만 먹으면 마치 언제라도 또 사람을 죽일 수 있을 것 같은 섬뜩함이 느껴집니다.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자신의 복역에 대해 이야기할 때조차 크게 반성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 혹시 조만간 뭔가 또 사고를 치는 걸까 하는 의심도 들고요.

사실 톰은 술을 마신 어느 날 친구와 싸움이 났고 우발적으로 친구를 죽이게 됩니다. 상황상 정당방위였고, 감옥에서 특별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성실하게 복역한 점을 인정받아 가석방이 됩니다. 우연히 만난 고향 친구에게 자신은 여전히 같은 상황이 닥치면 다르게 행동하지 않을 거라고 단언하는 말을 듣노라면 머리로는 이해가 가면서도 ‘세련된’ 표현에 길들여진 저는 여전히 혼란스럽습니다. 그는 결국 언제라도 사고를 칠 광기를 담고 있는 사람일까 하며 제 기준에 맞춰 그를 온전히 신뢰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험난한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톰은 광기 서린 폭력에 사로잡힌 사람이기는커녕 가족 중 어머니와 더불어 가장 정신력이 강하고 행동력이 있으며 성실하고 책임감 강한 인물임을 차츰 알게 됩니다.

 

내가 제일 골치 아팠던 건, 그 일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는 거야. 소가 번개에 맞아 죽거나 홍수가 났을 때는 굳이 이해하려고 하지 않지. 원래 그런 거니까. 하지만 사람들이 날 데려다가 사 년 동안 가둬 둔다면, 거기에 뭔가 의미가 있어야 하잖아. 사람은 원래 생각을 해서 사물을 이해하게 돼 있어. 그럼, 사람들이 날 데려다가 가두고 사 년 동안 밥을 먹여 줬다면 내가 다시는 그런 짓을 안 할 사람으로 변하거나, 아니면 그 벌이 무서워서 다시는 그런 짓을 안 하게 되어야 하잖아.

존 스타인벡, 분노의 포도 (민음사, 1권 p,113)

 

 

 

이 소설은 계속해서 제가 알고 있는 규범, 익숙한 규칙이나 법 따위는 잊으라고 해요. 세련됨, 사회화라는 말로 덮었던 포장지를 벗겨내고 동물이 사는 밀림 속에 규칙이 있듯 속내를 다 드러낸 사람들이 모여 있는 사회 속에서 ‘진짜’ 규칙, 선과 악을 다시 바라보게 하고, 더 나아가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가게 하는 힘인 인류애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하죠.

톰의 가족들은 개조한 낡은 중고차에 집안 살림을 싣고 거의 미국 대륙을 횡단하다시피 해 서부의 끝 캘리포니아로 갑니다. 그들이 중간에 마주치는 상황은 어느 하나 그들에게 호의적인 것이 없어요. 힘든 여정 중에 잠시 들리는 주유소마다 혹시 무단으로 물을 사용하고 기름을 구걸하는 게 아닐까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받게 되고, 거기에 더해 사람들은 끝도 없이 몰려드는 사람들의 이주 행렬에 막연히 느끼는 두려움을 톰의 가족을 향해 서슴없이 드러내죠. 고향에서는 눈치 볼 일도 사람들의 경계를 살 일도 없었건만 나 자신은 여전히 같은 사람임에도 삶의 조건이 바뀌자마자 나를 받아들이는 세상은 이리도 달라진다는 걸 금세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길고 긴 끝이 보이지 않는 서부로 가는 여정 자체가 이미 충분히 고되기 때문에 그런 주유소에서 맞닥뜨린 사람들의 시선에 서러워할 여유조차 없죠. 그렇게 어느새 유목민이 된 사람들은 밤마다 새로운 야영장소에서 자신들과 같은 처지의 유목민들과 새롭게 마주치고 어울리며 공존하는 나름의 규칙을 새롭게 터득하게 됩니다.

 

밤마다 새로운 세상이 창조되었다. 가구들까지 완전히 갖춰진 세상. 그 안에서 사람들은 친구를 사귀기도 하고 적을 만들기도 했다. 이 세상에는 허풍선이도 있고 겁쟁이도 있었다. 조용한 사람도 있고, 겸손한 사람도 있고, 친절한 사람도 있었다. 밤마다 그들은 서로 관계를 맺으며 새로운 세상을 만들었다. 그러나 아침이 되면 그 세상은 마치 서커스 공연장처럼 허물어졌다. 

존 스타인벡, 분노의 포도 (민음사, 1권 p,406)

 

야생에 내던져진 것 같은 생활이지만 그 속에서 적용되는 규칙이라는 것은 모든 것이 정리된 현대 사회에 사는 우리에게 전혀 낯설거나 새로운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약자를 도와주며, 타인을 괴롭게 하지 않는 것들과 같은 기본적인 것들이죠. 당연하지만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규칙에 대한 설명을 죽 읽다 보면 세상의 규범이 존재하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개인의 역사와 삶의 터전이 박탈당한 좌절감,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현재의 고단함을 가득 안고 있는 이주민들이 밤을 보내는 시간, 잠시나마 타인의 존재를 확인하고 그저 다른 사람의 존재 자체에, 그리고 임시나마 이루어진 작은 사회 속에서 서로 의지하며 온기를 느낍니다. 길을 가다 마주치는 이 작은 사회는 아주 짧은 시간 동안의 일시적인 것이지만 ‘현재’에서 가장 의미 있는, 미래를 위한 힘을 다시 얻어 가는 곳이에요. 기본적인 규범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그들의 작은 세상이 단 하룻밤도 존재할 수 없게’ (1권 p.407) 돼버립니다.  

 

책 속에서 어쩌면 아주 당연한 장면임에도 쉬이 책장이 넘겨지지 않고 한참 머물게 되던 내용들이 몇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장면이었어요. 고된 여행길을 이겨내지 못해 힘들어하는 할아버지를 한 부부의 선처 덕분에 천막 안 매트리스에 급히 눕히게 되었는데 결국 거기서 할아버지는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톰의 가족들은 고마워하면서도 미안해하죠. 고된 여정 동안 임산부가 몸을 뉘고 쉬어야 할 매트리스에 죽은 자를 눕히게 되었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트리스의 주인 부부는 너무도 선선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니 미안해하지 말라고 합니다. 처음 할아버지가 몸이 안 좋았을 때부터 이미 그쪽에서 먼저 자신들의 텐트를 내주며 여기 모시라고 했었을 정도로 그들은 정말 아무런 사심이 없었어요.

제가 그 임산부였다면 어땠을지 생각해 봤지만 사실 상상도 못 해본 상황이라 스스로 던진 질문에 선뜻 답하기도 힘들었고 이 장면이 계속 마음에 걸려 한참을 생각했어요. 언젠가 정말 이런 비슷한 상황을 겪게 된다면, 내 삶의 터전을 내놓을 정도로 손을 내밀고 도리를 해야 하는 상황이 닥친다면 해야 할 일은 해야만 할 것이라는 결론을 뒤늦게 내렸고, 삶의 기본을 때때로 잊고 지냈던 것 같아 그런 제 모습이 당황스럽기도 또 조금 창피하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뿌리내리고 사는 지금 세계도 그들이 임시로 머물고 흩어지며 이루었던 일시적인 사회가 조금 더 확장된 것일 뿐 그리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영원히 살 것처럼 욕심을 내곤 하지만 우주의 시간에 비하면 찰나처럼 짧은 순간만을 살 뿐이죠. 삶의 태도를 스스로 결정할 때 어디에 주안점을 둬야 할지 확신 없는 상황에 종종 처하기도 하지만 법과 규범 너머의 기본적인 원칙을 지키며 내가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겠죠.

 

등 뒤의 공포로부터 도망치는 사람들. 그들에게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다. 지독하게 잔인한 일이 일어나기도 하고, 믿음에 영원히 불이 켜질 만큼 아름다운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존 스타인벡, 분노의 포도 (민음사, 1권 p,252)

 

 

이 소설 속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난민 신세가 돼버린 이주민들의 임시 거처에서만 규범이나 규칙이 평화로운 삶을 위한 것으로 작용합니다. 비극적이게도 나름의 체계가 있는 것만 같은 풍요로운 서부의 기존 사회 속에서 법규는 그저 사람을 착취하고 돈과 권력 있는 사람들을 위한 도구로만 사용되죠. 이 소설에서는 종교 역시 법과 비슷한 방식으로 다뤄집니다. 한때 목사였으나 스스로 용서하기 힘든 일탈 행위를 많이 했고 도저히 자신의 신앙에 확신이 없어 목사직을 내려놓은 케이시를 통해 종교보다 더 깊은 종교의 ‘역할’ 혹은 ‘믿음’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어쩌면, 어쩌면 우리가 사랑하는 건 모든 남자와 모든 여자인지도 몰라. 어쩌면 그게 바로 성령인지도 몰라. 바로 인간의 정신. 사람들이 아무리 시끄럽게 떠들어 대도 말이지. 어쩌면 모든 사람이 하나의 커다란 영혼을 갖고 있어서 모두가 그 영혼의 일부인지도 몰라.

존 스타인벡, 분노의 포도 (민음사, 1권 p,52)

 

한편, 서부의 어느 이주민 텐트에서 종교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비난하고 타인들을 불안에 떨게 하는 맹신자를 통해 잘못 작동하는 종교는 얼마나 유해한지도 목격합니다. 케이시와 맹신자, 항상 신을 가까이하고자 하는 톰의 어머니, 그 외에 수많은 신을 믿거나 믿지 않는 사람들,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누가 더 종교적인지, 독실한지를 가늠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저 타인에게 더 도움이 되는 것, 사람의 도리를 지키는 것,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것 등 기본적인 것들이 가장 중요한 것일 테죠.

이쯤에서 다시 한번 톰과 목사였던 케이시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그들은 되돌릴 수 없는 죄를 저지르기도 했던, 결코 세상 모든 이에게 표본으로 삼으라고 할 만큼 고귀하거나 완전무결한 인물들은 아니에요. 하지만 그들은 분명 선한 사람들입니다. 주유소의 풍경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거기서 일하는 종업원은 거칠고 돈만 아는 것 같고, 그래서 재빨리 겉모습으로 사람들을 판단해 그에 따라 손님을 대하고 돈을 위해 뭐라도 할 것 같지만 아이들을 위해 사탕을 슬쩍 싼 가격에 팔고는 모른척하기도 하는, 내면에는 충분히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에요.

저를 포함해 대부분 사회에서 마주치는 사람들 누구나 비슷한 모습일 거예요. 팍팍한 삶을 살아가느라 맹수처럼 발톱을 드러내기도 하고 괜히 센척하다 남들에게 무례하게 굴 때도 있을 테죠. 때때로 방향을 잃고 일탈을 하며 잘못도 하고요. 누구나 그렇게 나쁘면서 때때로 괜찮은 사람으로, 또 선하면서도 누군가에게는 나쁜 사람이 되어 살고 있겠지만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선의와 타인에 대한 공감을 포기하지 않도록 되도록 많은 순간에 깨어있어야 하겠죠. 

 

 

 

2. 어머니

농사가 본업이었던 톰의 가족들은 대체적으로 남성들의 노동력에 많이 의지해 살아왔지만 고향을 떠나 서부로 가면서 차츰 어머니의 목소리와 의견이 많이 반영됩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는 여성을 전면에 내세우며 희망을 그려내죠. 이야기가 전개됨에 따라 외유내강 모습에서 힘을 드러내는 강인한 전사와 같은 여성성을 그려내는 걸로 보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 저는 앞서 언급했던 선악에 대한 구분, 종교와 마찬가지로 성 역할 역시 습관처럼 규정되어온 외형적인 정의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이해했어요. 가장 중요한 것은 누가 가장이며 누가 리더인지를 애써 정하고 역할을 구분 짓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 누구던 목소리를 내고 다 같이 함께 나아가는 것이겠죠.

 

어머니가 고통과 두려움을 인정하면 톰 영감과 자식들도 고통과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에 어머니는 그런 감정을 부정하는 법을 연습해 왔다. 또한 즐거운 일이 있을 때면 어머니가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는지 가족들이 먼저 살폈기 때문에, 어머니는 별로 웃기지 않은 일에도 웃음을 터뜨리는 습관을 익혔다. 그러나 즐거움보다 더 좋은 것은 차분함이었다. 어머니가 어떤 일에도 동요하지 않아야만 가족들이 어머니에게 의지할 수 있으니까. 위대하면서도 하찮아 보이는 가족 내의 그 위치에서 어머니는 깨끗하고 차분한 아름다움과 위엄을 얻었다.

존 스타인벡, 분노의 포도 (민음사 1권, p.153)

 

 

 

3. 희망

현실적이면서도 생생하게 전개되는 이야기의 결말은 아주 소설적으로 마무리됩니다. 샤론의 출산이 임박해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도 피신하지 못했던 톰의 가족은 결국 임시 거처였던 화차에서 물난리를 맞게 됩니다. 두려움과 기대 속에서 낳은 아이는 이미 죽어 있었고 자꾸만 물이 차올라 한기가 든 샤론을 가족들이 겨우 밖으로 데리고 나갑니다. 아직 몸이 회복이 되지 않은 그를 위해 마른 자리를 찾다 우연히 어떤 집의 헛간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인간으로서 가장 비참한 지경에 이른 또 다른 광경을 목격하게 됩니다. 굶어 죽어가는 남자와 그 옆에서 어쩔 줄 모르는 소년. 어머니와 샤론은 말하지 않아도 서로 해야 할 일을 생각하고 동의합니다. 모든 사람을 밖으로 내보낸 뒤 아사 직전의 남자에게 샤론이 젖을 먹이는 장면으로 끝이 나죠.

언제나 쉬운 독자인 저는 작가들이 설치해둔 장치에 매번 어김없이 걸려드는 편인데, 선명하고 정교하게 짜인 지극히 소설적인 마지막 장면에서 역시나 그만 울컥하고 말았어요. 제가 느낀 게 무슨 감정인지 한참을 생각했지만 결국 진부하게도 ‘슬픔과 감동’이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말을 찾지 못했네요.  

이 모든 상황은 그저 우연일 뿐입니다. 남자는 생활고를 힘들게 버티며 아들을 겨우겨우 챙기다 결국 자신이 그 아이 앞에서 굶어 죽을 지경에 이르렀는데 마지막 순간에 생명을 건지게 되죠. 샤론 역시 그 수많은 모진 과정을 겪고 거의 모든 의지나 희망의 끈을 놓은 채 그저 어머니에게 의지해 껍데기만 남은 사람처럼 겨우 몸을 움직이는 와중에 갑자기 자신이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자기에게도 이로운 일을 만나게 됩니다.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막막하기만 한 상황에서도 어쩌면 그렇게 다른 사람을 위해 할 일이 생기고, 또 살 길이 생기는 걸까요.

죽어가는 남자를 살리는 행위가 사실 샤론에게도 일종의 구원이 되는 이 장면을 통해 타인을 구하는 것이 결국 나를 구제하는 것이며 사람만이 희망이라는 진부하지만 당연한 메시지들을 떠올려 봅니다. 900여 페이지에 이르는 고단한 여정이 여전히 처절하도록 비참한 상황으로만 계속 나아가면서도 결국 다시 되살아 나는 희망을 보면서, 버텨내기만 한다면, 그렇게 살아내기만 한다면 결국 또 우연으로 혹은 필연으로 앞길이 열리고 기회가 오고야 말거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성인 남성에게 젖을 물리는 마지막 장면은 구전으로 전해지는 ‘시몬과 페로’에 대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유명한 고전 명화를 생각나게 해요. 외설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장면이 사실은 절박한 상황에 몰린 사람의 생을 구하는 숭고한 이야기라는 걸 생각해 보면, 앞서 말한 다른 주제들과 마찬가지로 도덕의 가치는 형식으로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결말에도 한 번 더 담아낸 것으로 이해해도 될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자신의 것을 잃을까 봐 혹은 자기의 이익을 좀 더 얻고자 부당한 규칙으로 사람들을 그저 차별하고 억압하고 조종하려고만 할 때 벼랑 끝에 몰린 사람들은 경계선을 과감히 넘어 서로를 구제하고 희망이 되어 준다는 걸 말하는 상징적이면서도 문학적인 결말이었어요.

 

Roman Charity (Cimon and Pero), circa 1612 / Rubens, Peter Paul (Pietro Pauolo). 1577-1640
Roman Charity (Cimon and Pero), circa 1612 / Rubens, Peter Paul (Pietro Pauolo). 1577-1640

 

 

분노의 포도라는 제목에 걸맞게, 이야기 중간에는 화, 분노에 대한 표현이 종종 등장합니다. 화에 잠식당하지만 않는다면 나를 지켜낼 수 있고 절망적인 순간에 화가 난다면 오히려 아직은 버틸힘이 있는 것이라고 말하더군요.

살다 보면 가끔씩 모래밭에 발이 빠지는 것처럼 영 앞으로 나가기가 힘든 시기들을 만나게 되는데 요즘 제가 그때를 지나고 있는 듯해요. 그래도 때때로 화도 조금 나고 한번씩 욱 하는걸 보면, 아마도 아직은 나아갈 힘이 있나봅니다.

이 작품 덕분에 버티다 보면 또 괜찮아질 거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아보게 되었어요. 그래서 다음 작품을 또 나무늘보의 속도로,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읽고 기록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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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한결같은 빛을 발하는 고전 문학을 통해 마음의 위안을 얻고 있어요. 

누구나 들어봤음직한 작가의 작품, 너무 유명해서  마치 읽은 것 같지만 사실 들춰본 적도 없는 책, 어릴 때 아동용 요약본만 읽었던 책들, 그런 고전들 위주로 읽고 소개합니다.  

 

한달에 두세편의 작품을 소개하며, 한 작품당 두편의 뉴스레터가 발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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