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변에 문제가 생겼다. 이미 한참 전에 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 내가 졸업한 이력의 데이터가 사라졌다는 메일을 받았다.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이야! 나는 정말 분하고 원통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어 보였다. 학교 측에 문의를 해 보아도 어쩔 수 없다는 말 뿐이었다.
나는 다시 학교에 갔다. 몸에 딱 맞아 불편한 교복처럼 학교라는 공간에 있는 것은 숨이 막혀왔다. 기분이 참담하기 그지 없었다.
과거 학교에 적응을 못했던 나는 자주 숨이 막히고, 화가 나서 가슴이 뜨거워지곤 했었다. 도대체 언제 집에 갈 수 있나 괴로워서 앞머리를 쥐어 뜯고 눈물을 뚝뚝 흘리던 옛날 기억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너무 괴롭고, 도대체 언제 졸업을 할 수 있을지 몰라서 자리에서 전전긍긍했다. 아무래도 담당자에게 다시 물어봐야겠어. 답답해서 손톱만 물어뜯었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난다.
또 수 십 번, 수 백 번 꾼 것 같은 악몽을 다시 꿨다. 이쯤이면 그만 하려나 싶은데 10년 넘게 꾸고 있다. 아직 선잠에 몽롱한 상태였는데, 동거하는 친구가 빼꼼 문을 열며 말을 걸었다.
"선풍기 틀고 문 닫으면 안돼~"
무뚝뚝하지만 상냥한 내 친구. 친구가 출근하기 전에 나도 제대로 인사를 하고 싶어서 일어나서 말을 걸었다.
"도래지야, 나 또 학교 돌아가는 꿈 꿨어."
"진짜?"
"어. 언젯적 일인데 정말 생생해. 너무 현실 같아서 이렇게 일어나고 나서도 진짠가? 싶다니까.."
"에구."
"난 도대체 이 기억에서 언제 벗어날 수 있을까?
남들은 잘만 다녔던 학교가 왜 그렇게 괴로웠는지.."
친구는 말없이 물 한잔을 떠줬다. 나는 염치도 없이 계속 하소연했다.
"나는 내 삶을 내가 선택할 수 없는게 너무 싫어.
죽는것 보다 괴로워.
학교에서는 내가 뭘 배우고 싶은지, 어떤 방식으로 배우고 싶은지 하나도 고를 수 없잖아.
그리고 더 중요한건, 내가 뭔가를 배우고 싶다는 마음을 먹기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는게 너무 나를 화나게 해
그러다가 눈물이 나고 나중에는 그냥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어.
발 한쪽이 묶여서 평생 인간에게 복종해야 하는 코끼리가 된 거 같아. 진짜 끔찍해!"
"그래..그때 너 많이 힘들어했지."
"그때 뿐만이 아니야. 지금도 나를 귀신처럼 따라다니는데, 어떡하면 좋지?"
"그때는 네가 선택지가 많지 않았을 수도 있지..그치만 지금은 너가 선택할 수 있잖아?"
"그런가? 난 그냥 한심한 쓰레기 같은데.
지금도 무슨 일을 해서 먹고살지 고민하다보면, 그때처럼 아무 저항도 못하고 고통속에 나를 방치하게 될 거 같아.
그러면 너무 무서워서 음식을 입에 막 쑤셔넣고, 그러다 보면 이렇게 나를 해치고 시간을 허비한 내가 더 싫고..그런게 쓰레기잖아."
"그때의 너와 지금의 너는 달라. 지금의 너는 네 상태를 알아차릴 수 있으니까, 절대 예전처럼 괴롭진 않을거야."
"알아차린다고 뭐가 달라지는거야?"
"알아차리는 순간 너는 선택할 수 있어."
내 친구가 왜 이렇게 상담 선생님처럼 말을 하지, 생각을 하다가, 얘가 건넨 물컵이 작은 소주잔으로 바뀌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도자기 머그컵이었던 것 같은데...그 안에 있는 물을 마시려던 찰나, 또 한번 잠에서 깨어났다.
나는 몹시 두려웠다. 나는 트라우마를 반복하고 있다. 그래도 지금은 뭘 반복하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 왜 먹고 왜 토하는지 안다. 알아차리는 순간 나는 선택할 수 있다고 한다...수년간 반려해온 정신병과 조금 거리를 두면서 알게된 건 '그런갑다' 하는 상태를 한참을 지나야 '그렇구나'까지 간다 사실이다. 그러니까, '참 나, 그렇게 간단하면' 먼저 좀 꿍얼거리고 그런가보다 한다. 나는 지금 트라우마에 잠겼었다는 걸 아니까, 바로 헤쳐나올 수 있는가보다. 밑져야 본전일 것이다.
준 앤 줄라이로 연재를 하던 채영입니다. 준 앤 줄라이와 너무 멀어진 것 같아서 뉴스레터명을 '프롬채영'으로 바꾸었어요. 준 앤 줄라이 이야기를 기다려주던 분들께 미안해요. 그래도 계속 편지할게요! 싫지 않다면 계속 읽어주세요(싫어도 조금 견뎌 주어도 좋고...) 🥹 무덥고 습한 여름 건강히 보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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