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rnertable : 고민 속에서 기다리는 것

🎼  소히 「그럼 그렇지」, 2010

안녕하세요. 구독자 님.

한 주 잘 지내셨나요?

저는 쉽지 않은 한 주를 보냈어요. 늘 꽃구경만 할 수는 없는 거라고 혼이 난 기분이었어요. 올 봄은 별일 없고, 적당히 평탄하다고 느끼는 날들이었는데요. 그럼 그렇지, 하며 투덜대다가 좋아하던 옛날 노래를 꺼내어 억지로 흥얼거렸어요. 음악에 기대어 기분전환을 해보려 노력했지만...

역시 쉽지 않았습니다. 쉽지 않았던 이유만 주절주절 적는 편지가 될 것 같아서. 이번 주 편지는 그냥 쉴까, 생각도 했지만요. 한 번 쉬면 두 번, 세 번, 자꾸 쉬어버리다가 영영 쉬어버린 적이 너무 많아서. 꾸역꾸역 책상에 앉아 적어봤어요.

꽃구경만 할 수는 없는 거 맞죠? 좀 슬프지만요.

🚙 4월 셋째 주의 일 : 첫 교통사고

대로로 진입하다 교통사고가 났어요. 사람들이 몰려들었고요. 행인 가운데 누군가 신고를 한 모양인지 경찰도 왔어요. 교통사고는 생전 처음이라,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하필 그 시간, 동거인은 비행기에 있어서 마땅히 전화할 곳이 없었어요. 가까운 곳에 도움을 요청할 이가 단 한 명도 없다니, 좀 암담했어요. 보험사와 견인 차량을 먼저 불렀는데요. 그다음 절차를 알 수 없어서 고민하다가 운전 연수를 받았던 선생님께 전화를 걸었어요. 바쁘신지 받지 않으시더라고요.

그사이 상대방 차주가 허리를 짚고 차 밖으로 나왔어요. 두 다리로 걸었고, 핏빛은 보이지 않아서 얼마나 안도했는지 몰라요. 매 순간 크고 작은 안도가 절실했어요. 제 차는 작동을 아예 멈춰서 옴짝달싹도 못 하는 상황이었는데요. 지나가던 아저씨들이 블랙박스 SD카드를 빼서 나오라고 했어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차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어요. 몇 분이 영차, 영차 소리를 내며 도로 한가운데 서 있던 제 차를 한쪽으로 옮겨주시기도 했고요.

생각보다 차 상태가 엉망이더라고요. 저를 안도하게 만들어준 몇 가지가, 망가진 차들을 보고 나니 깡그리 잊혔어요. 상대방 운전자에게 가서 죄송하다고 했고요. 화가 잔뜩 나 보였던 그는 반쯤 혼이 나간 듯한 제 얼굴을 보더니, "하필 속상하게 내 딸뻘이야."라고 혼잣말을 하셨어요. 불평을 줄줄 늘어놓으시더니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이 일로 운전 절대 그만두지 마요. 젊은 사람이니까."

뜻밖의 말에 조금 멍해졌어요. 당장 길바닥에 누워 몇 바퀴를 데굴데굴 구르며 삿대질하거나 고함을 지르는 사람을 상상했는데. 그래서 심호흡도 여러 번 거듭하며 걸었거든요. 제가 당황한 사이 망가진 차들은 모두 어딘가로 견인되었고, 보험 담당자들과 경찰관, 구경거리를 즐기던 행인들이 거짓말처럼 사라졌습니다.

텅 빈 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왔어요. 물을 끓여 마셨고요. 뜨거운 차로도 마음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어요. 부재중 통화 기록을 본 운전 연수 선생님의 전화가 와서 고요한 집이 벨소리로 가득 찼어요. 갑자기 주말에 무슨 일이냐고 묻기에, 사고가 났다고 했죠. 연수 과정 중에 선생님은 혹시 사고가 나거나 급한 일이 생겼을 때 궁금한 점이 있으면 언제든 전화하라고 하셨거든요. 제 이야기를 듣고는 예상되는 후처리 과정을 찬찬히 알려주셨어요. 대충 수습했으니 이젠 괜찮다고, 감사하다고 말하며 전화를 끊으려는데, 선생님으로부터 익숙한 대사가 들려왔어요.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이번 사고 때문에 운전 멈추시면 안 돼요. 아셨죠?”

운전이 뭘까요. 대체 운전이 무엇이기에 입을 모아 운전을 멈추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는 걸까요. 실은 온종일 블랙박스 영상이 머릿속에서 재생됩니다. 평소보다 여유로운 도로에 기뻐하며 진입하는 나, 그리고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는 직진 차량. 충돌. 비명이 순서대로 들려요. 그리고 두 사람이 제게 말을 건넵니다. 운전을 그만두지 말라고.

아직 차는 정비소에 있고, 당장 운전해야만 하는 급한 일이 있지도 않은데다, 다시 운전대를 잡을 용기도 충전되지 않았지만. 이번 주는 종종 그 말을 꺼내고는 곱씹어보아요. 주문처럼 반복하다 보면, 다시 아무렇지 않게 큰 도로에 뛰어들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 4월 셋째 주의 장소 : 친절한 한의원

그리하여, 본격적으로 한의원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초등학생 때 롤러블레이드를 타다가 발을 접질려 한의원에 방문했던 경험을 빼고는 처음입니다. 집 근처에 '교통사고'와 '한의원'을 조합해 검색했을 때 나오는 곳 중에 가장 가까운 곳으로 가게 되었어요. 사고 이틀째부터 목과 어깨, 허리 통증이 생기기 시작했는데요. 일상 생활을 못할 정도로 극심한 편은 아니라서 정기적으로 다닐만한 위치라면 어디라도 충분하다고 느꼈거든요.

그렇게 입성한 한의원의 선생님은 나긋나긋한 목소리와 과도한 친절, 조심스러움, 다정한 말투, 그리고 위로를 담은 표정으로 중무장한 상태였어요. 병원 치료를 받으며 이런 따뜻함을 느껴본 일이 별로 없어서 굉장히 인상 깊었어요. 놀라움도 잠시. 아니, 근무 시간 내내 이런 태도를 유지한다고? 저는 금방 흰 가운을 입은 노동자로 빙의하여 다소 괴로워졌습니다.

제 친구 중에도 같은 직종에 근무하는 애가 있는데요. 치료를 마치고 오는 길에 그 애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사고 소식을 알리고, 한의원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죠. 의사 선생님이 무척이나 친절하셔서 좋았다고요. 그 애는 "자영업의 핵심은 친절" 아니겠냐고, 저도 자영업자 경험(책방)이 있으니 잘 알지 않느냐고 되묻더군요.

친구는 마침 개원을 위해 병원 자리를 보러 나온 길이라고. 헛웃음을 치며 사진을 한 장 보내주었어요. 당시 그 애가 있던 근처 한의원의 대문 사진이었어요. 투명한 상가 유리 문에는 <진료 시간 안내: 새벽 6시부터 진료합니다>라고 써서 출력한 A4용지가 나풀거리는 중이더라고요. 한의사 선생님들의 이다지도 절박한 친절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 4월 셋째 주의 책 : 외젠 이오네스코 『외로운 남자』 문학동네, 2009

이십 대 초반, 부조리극의 효시라는 연극 <대머리 여가수>를 봤어요. 그 시절은 생의 부조리 같은 걸 진지하게 생각할 틈이 없었어요. 눈앞에 놓인 것들을 해치우느라 바빴어요. 외젠 이오네스코? 유명하대. TV에서 보던 배우도 나온대. 같이 갈래? 아는 것도 없으면서 친구를 꼬드겨 함께 극장으로 향했어요. 막이 내리자 우리는 얼굴에 물음표를 가득 담았고요. 떡볶이나 먹었죠. 내용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지만, 강렬한 색감이 무대를 가득 채웠던 건 기억이 나요. 무언가 충격적이었던 것도. 그게 전부였어요.

세월이 흘러 외젠 이오네스코가 제게 다시 왔어요. 이번엔 소설이었는데요. 함께 책을 읽는 분들 가운데 한 분이 추천을 해주셔서 독서 모임에서 읽기로 했답니다. 마침 바쁜 주간이었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책을 멀리했어요. 모임 당일이 되어서야 책을 펼쳤고요.

꽤 강렬한 첫 문장 아닌가요. 소울리스 직장인인 주인공 '나'는 갑자기 친척으로부터 엄청난 유산을 물려받으며 퇴사해요. 작은 아파트와 가정부를 구해 '로또 기반의 자유'를 만끽하는 삶이 시작되는데요. 상황이 180도 달라졌지만 주인공의 권태와 회한, 무력감은 자유인의 삶에서도 지속되는 모습이 보여요.

저 역시 짧은 직장 생활을 마치고 자유인이 되었지만, 달라지지 않은 면면이 있지요.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나의 전과, 지금과, 후, 그리고 끝을 생각하느라 바빴어요. 200페이지가 채 되지 않는 짧은 책을 얼마나 오래 붙잡고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모임을 마치고도 처음부터 다시 넘겨보고 있어요. 책이 다양한 간접경험을 돕는다는 말은 이제 지루하지만. 여러 경험 가운데, 이 책은 미래 체험이라는 시간 여행을 가능하게 하는 부류에 속하는데요. 그 미래는 경계해야 할 미래. 경계하지 않으면 반드시 만나고 말 것 같은 미래에요. 그래서 조심하며 천천히 다시 읽어요.

구독자 님은 한 주 어떻게 보내셨나요?

사고를 계기로(아니, 핑계로) 휴대폰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올해의 운세' 페이지에 괜히 들어가 보았는데요. 미신도, 종교도, 통계도 영 모르는 사람이지만, 당분간은 조용히 지내는 게 좋겠다는 마음만 드는 글이 적혀있더라고요. 이제는 횡단보도도 조심하며 걷고요. 보행자 우선인 건널목에서도 차를 전부 다 보낸 뒤 아무도 없는 길을 건너요. 슬슬 더워지는 날씨 때문에 창문을 열면, 끼익, 쾅, 빵, 덜컹, 같은 소음으로 가득한 8차선 도로와, 그 위에 반파된 차 두 대가 널브러진 풍경이 그려지거든요. 당분간은, 정말 조용히 지내려고 해요.

'당분간'이 짧게 지나길 바라면서요!

오늘 양파랑 마늘을 사서 조심히 돌아오는 길에 또 교통사고를 목격했지 뭐예요.모두 차 조심, 길 조심, 건강 조심하세요.
금방 잊고 원래대로 무심하고 무력한, 무방비한 상태가 되겠지만, 당분간만이라도요!

2022.04.20.
부산에서, 성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