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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빛이 스며들기 시작한 요즘, 잘 지내고 계신가요?
오래된 영화의 한 장면처럼 잔잔하고 여운 있는 이야기를 전해드려요.
부드럽고 진한 크레마 한 잔과 함께, 오늘의 영화는《The Favourite (2018)》입니다.
✒️. 작가주의 관점에서 정립된 캐릭터와 세계

미학적이고 철학적인 고뇌를 담아내는 영화는 종종 관객에게 불친절하게 느껴지곤 합니다. 하지만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이 구축한 작가주의적 세계를 선호하신다면, 이 작품은 자신있게 추천드릴 수 있는 영화입니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정치적으로 합병된 후, 대영제국의 첫 번째 군주가 된 앤 여왕의 시대는 역사적으로도 혼란스러운 시기였습니다.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에서 승기를 잡은 영국은 유럽 열강 사이에서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하고자 전쟁을 이어갔고, 그 대가로 막대한 전비를 지출해야 했지요.
그에 따라 휘그당과 토리당 사이의 갈등은 점점 더 깊어졌고, 감독은 이러한 정치적 배경을 바탕으로 앤 여왕, 사라, 그리고 애비게일 세 인물의 관계를 중심 플롯으로 풀어냅니다.
이 영화는 역사적 사건 자체보다, 인물들 간의 심리와 권력의 구도에 더욱 집중한 전형적인 작가주의 성향의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작가주의 영화는 사회적 모순이나 정치적 이슈에 대한 공동체 문제의식보다는 감독 개인의 철학적 고뇌를 담아낸다.
"장르영화" 중에서 배상준
⚔️. 여왕의 조력자 ‘사라’와 ‘애비게일’의 대립
영국이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으면서도 전쟁을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에는, 집권당인 ‘휘그당’의 강력한 입김이 작용했습니다. 사라는 남편 존 처칠과 함께 휘그당에 힘을 실으며 입지를 다졌고, 여왕의 권위가 약해진 궁정에서 실질적인 권력자로 자리잡게 됩니다. 야당인 토리당마저 그녀의 눈치를 볼 정도였습니다. 그런 사라의 세상에 금이 간 건, 사촌 동생 애비게일이 궁정에 들어오면서부터였죠.

사라가 가문의 안녕을 누려온 인물이라면, 애비게일은 모든 기반이 무너진 채 살아남아야 했던 인물입니다. 귀족 가문의 딸이었지만 하녀로 전락하며 겪어야 했던 좌절과 분노는, 그녀를 움직이는 강력한 원동력이 됩니다.
두 사람은 다르면서도 놀랍도록 닮은 면이 있습니다.
처지도 성향도 다르지만, 권력을 읽는 감각과 거침없이 움직이는 대범함은 놀라울 만큼 닮아 있습니다. ‘여왕의 여자’ 자리를 두고 맞서는 모습에서도, 둘 다 영리하게 판단하고 과감하게 기회를 붙잡는 인물이죠.
사라는 직관적이고 저돌적인 ‘여장부’라면, 애비게일은 계산적이고 전략적인 ‘괴짜’에 가깝습니다. 에비게일의 괴짜스러운 면모는 영화의 희극적 톤과 어우러지며 촬영 방식에도 드러나는데요. 특히 어안렌즈로 묘사된 장면은, 세상을 비틀어 바라보는 애비게일의 성격을 유쾌하게 강조하죠. “나를 겁탈할 건가요?”라는 능청스러운 대사는 그녀의 당돌함과 이중적인 처세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순간입니다.
애비게일은 명예를 되찾고자, 사라와 반대편에 선 토리당과 정치적으로 손을 잡습니다. 이 대립은 가진 것을 지키려는 자와 빼앗으려는 자 사이의 치열한 파워게임이기도 합니다. 앤 여왕은 이 둘의 긴장을 마치 즐기는 듯한 태도를 보이기도 하지요.
과연, 이 게임의 승기를 잡은 건 누구였을까요?
“우린 게임의 목적이 전혀 달랐어.”
사라와 앤 여왕은 군신 관계였지만, 동시에 연인 관계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둘 사이의 갈등은 어느 정도 동등한 위치에서의 충돌이었죠. 사라는 자신이 결코 대체될 수 없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고, 그 믿음의 바탕엔 ‘여왕’이 아닌 ‘앤’이라는 한 사람에 대한 진심 어린 애정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찍이 남편과 자식을 모두 잃은 앤은 무엇보다 정서적 온기를 필요로 했습니다. 사라가 국정에 몰두할수록, 둘 사이에는 점점 균열이 생겨났고,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 것은 애비게일이었습니다.
애비게일에게 중요한 건 애정이 아니라 권력과 생존이었습니다. 그녀는 ‘앤’이라는 사람의 곁에 머무르고 싶었던 게 아니라, 자신의 명예와 지위를 되찾기 위해 ‘여왕의 여자’가 되고 싶었을 뿐이었죠. 어쩌면 앤 여왕도, 사라가 결코 쉽게 대체될 수 없는 존재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마차를 타고 왕실을 떠나는 사라의 뒷모습을 그렇게 애잔하게 바라보진 않았겠지요.
하지만 결국, 게임에는 승자와 패자가 존재합니다. 그리고 패자는 언제나, 그 결과에 조용히 승복해야만 하는 법이니까요.
✂️. 장막이 나눠진 세계
여왕 ‘앤’과 인간 ‘앤’은 어떻게 표현되는가
앤 여왕과 애비게일은 정원에서 우연히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하는 단원들과 마주칩니다. 하지만 연주 도중, 앤은 갑작스레 중단을 외치고 자리를 박차고 나갑니다. 창밖을 따라 조심스레 걷는 그녀의 모습은, 흔들리는 내면과 위태로운 감정 상태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이후 복도에서 하녀의 아이를 덥석 안아드는 순간은, 상실과 집착, 충동성이 교차하는 한 장면으로 다가오지요.
17명의 자식을 잃은 앤은 그 누구로도 채울 수 없는 결핍을 작고 여린 토끼들로 대신하려 합니다. 애비게일이 여왕의 마음에 다가가기 위해 꺼낸 이야기 역시 바로 그 ‘토끼’였죠. 토끼들과 함께 앉아 대화를 나누는 침실 속 장면은, 인간 ‘앤’이 가장 고요하고 따뜻하게 보였던 순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평온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사라의 자리를 대신한 애비게일은 귀족의 명예를 되찾았지만, 권력을 책임지기보다 휘두르며 즐거워하는 데 몰두합니다. 앤 여왕은 그런 그녀를 제지하지 않고, 말없이 지켜볼 뿐이었죠. 그러던 어느 날, 더는 묵과할 수 없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는데요.
애비게일이, 자식처럼 아끼던 토끼를 짓밟는 모습을 직접 보게 된 것이었죠. 그 순간, 앤의 분노는 폭발합니다. 여왕은 애비게일에게 무릎을 꿇고 자신의 다리를 문지르라 명령하고, 머리채를 움켜쥐며 참을 수 없는 괘씸함을 드러냅니다.
“네가 내 토끼를 짓밟았으니, 너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그 순간 앤은, 상처받은 인간이자 냉혹한 권력자로서 존재했습니다.
앤은 영화 속에서 때로는 절대적인 군주로, 또 때로는 상실에 흔들리는 나약한 인간으로 그려집니다. 한 인물의 다면성을 상업 영화 안에서 이토록 섬세하게 담아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각 장막을 통해 주제를 환기 시키고, 그 순간마다 앤의 특정한 기질을 입체적으로 형상화하는 방식을 취했습니다. 작가주의적 구성과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독특한 ‘영상 필체’가 만나 세밀하고도 깊이 있는 세계를 구축해 낸 것이죠.
🎬. 작가주의 세계를 돋보이게 만드는, 밀도 있는 연기
올리비아 콜맨, 엠마 스톤, 레이첼 바이스
세 배우의 열연은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세계관에 생명력을 불어넣습니다. 특히 올리비아 콜맨은, 신체적·심리적 붕괴를 겪는 ‘앤’ 여왕을 표현하기 위해 15kg을 증량하며 역할에 완전히 몰입했지요. 외형적 변화는 물론, 절뚝거리는 다리, 무너져가는 표정, 그리고 감정의 균열까지 —
‘앤’의 내면을, 대사 없이도 충분히 설득력 있는 연기로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올리비아 콜맨은 오스카와 골든글로브, 베니스영화제를 비롯한 굵직한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휩쓸며 노력의 결실을 맺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작품 이후 올리비아 콜맨이 또 한 번 ‘여왕’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입니다. 넷플릭스 <더 크라운> 시즌 3, 4에서 그녀가 연기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앤’과는 완전히 결이 다른 인물이죠.
절제된 기품, 단단한 책임감, 그리고 말없는 통찰로 상징되는 인물.
하나의 배우 안에 담긴 두 여왕의 극과 극.
올리비아 콜맨의 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온전히 느껴보고 싶다면,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와 《더 크라운》, 두 작품 모두를 감상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 작가주의 성향에 따른 호불호, 그리고 고증의 한계
감독부터 배우까지 모든 합이 조화로운 작품임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역사적 고증의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입니다.
실제로 앤 여왕은 불안정한 성격의 군주였다는 평가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휘그당과 토리당 사이에서 중립적 태도로 정치적 균형을 이끌어낸 성군이기도 했습니다. 양당의 갈등을 조율하고 절충안을 만들어가는 데 기여했다는 기록들도 그녀의 또 다른 면을 뒷받침하죠.
역사극은 언제나 논픽션과 픽션 사이의 외줄 타기를 합니다. 어떤 지점을 각색하느냐에 따라 이야기의 무게 중심이 달라질 수밖에 없죠. 그래서 실제의 앤 여왕을 기대하고 본다면, 이 영화 속 앤은 조금 단편적이고 납작하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의 핵심은 “나약한 군주를 사이에 둔 두 여성의 파워게임”입니다. 그 구조 안에서 앤은 절대 권위의 상징이자, 끊임없이 타자화되는 인간으로 설계된 것이죠. 감독의 세계 안에서 세 인물의 관계성을 정교하게 구축하기 위한 선택이기도 했습니다.
작가주의 영화는 특성상 대중성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명확한 결말보다 다층적인 메타포와 해석의 여지를 남기기 때문이죠. 그래서 관객에게는 때로 어렵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이 복잡한 길을 완주한 감독이 바로 요르고스 란티모스입니다. 예술성과 상업성, 두 영역을 모두 아우르는 그의 차기작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그리고 작가주의 영화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필자는,
앞으로 그가 걸어갈 길 위에 조용하지만 단단한 지지를 보냅니다.
오늘의 크레마 한잔 어떠셨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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