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심지

두 개의 선택지가 있다.

2023.01.16 | 조회 1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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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작일기

초보 작사가 마작을 배우며 느낀 점을 보내드립니다.

나비처럼 내려앉을 것인가, 불꽃처럼 쏘아올릴 것인가.

 

2023년 1월 15일. 오프마작 반장전.

 

전동탁자가 돌각돌각 돌아가고 곧 위잉, 패가 올라온다. 뒤섞인 패를 순서대로 정렬해보면, 일통이 두 개, 이통 하나, 삼통이 두 개... 육만 둘, 구만 하나.

좋은 패다. 그러나 동시에 나쁜 패다. 이가 몇 개 빠지긴 했으나 1부터 9가 차례로 있어 일기통관을 노려볼만 하다. 거기다 절반 이상이 통패. 쯔모로 청일색을 한다고 가정하면 총 8판의 큰 역이 된다. 8판부터는 배만으로 8천점 이상을 한 번에 날 수 있다.

다음 패가 이통. 벌써 슌쯔 2개가 같은 모양. 이페코는 이미 성립됐다. 그 다음에 들어온 패는 9만이었다. 이렇게 놓고보니 머리가 벌써 5개로, 치또이쯔를 노려보는 것도 가능하다.

이렇듯 좋은 패가 들어오면 노릴 수 있는 역이 많아진다. 그러나 동시에, 마음을 정하지 못하면 이도저도 아닌 상태에서 방황하다 들어온 패를 죄 놓쳐버릴 수 있다. 나 역시 그랬다. 아직 모르는 역도 많은 초보이기에 좋은 패를 앞에 두자 오히려 가드를 올리고 싶어졌다. 내가 모르는 더 큰 역이 있으면 어떡하지? 그 역으로 이길 수 있는데, 작은 걸 노리고 있는 건 아닐까?

크게 가냐 작게 가냐의 문제가 아니라, 더 큰 역으로 가냐 청일색에서 만족하냐의 문제였다. 다음에 들어온 패를 보고 결정해야겠다. 일단 마음을 가다듬고 들어온 일만을 버렸다. 한 바퀴 돌아 다음 패는 9통. 이로써 청일색에 한발짝 더 다가갔다.

그 때 초보탁을 봐주기 위해 오신 코치님이 내 패를 보시더니 "도라 보는 거 안 잊어버렸지?" 한마디를 하시고 돌아가셨다.

도라? 오프탁에 올 때면 패 정리를 하기 바빠 도라를 봐놓고도 잊어버리곤 했다. 또 도라를 잊었나? 그러고보니 도라가 뭐였지? 눈을 돌려 도라를 확인한다. 가지런히 뒤집힌 파란 패 사이로 까놓은 한 알엔 5만이 적혀있다. 그러니까, 도라는 6만이다.

내 손에 들어온 6만이 이미 2개. 9만이 2개. 거기다 적도라 5통이 하나 있었고 리치를 걸면 1판이 추가로 들어오므로 노리고 있던 청일색과 같은 6판역 성립이다.

마음이 흔들렸다. 쉽게 가고 싶은 마음과, 한편으론 청일색을 완성하고 싶은 마음. 둘 다 같은 역이라면 만들기도 보기도 쉽지 않은 청일색을 한 번이라도 더 만들고 싶었다.

들어온 패로 결정하겠다더니, 결정은 커녕 고민만 늘었다. 갈팡질팡하는 마음을 보여주듯, 손은 9만을 버렸다. 도라인 6은 못 버리겠고 그렇다고 청일색도 포기를 못하니 안전한 9를 먼저 버린 것이다. 그 선택을 하면서도 어쩐지 스스로가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러나 한편 승부의 세계는 냉혹하므로, 코치님은 납득을 하셨는지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러면서도 내 선택을 한 번 더 지켜보겠다는 눈이었다.

통. 통. 짜기라도 한 것처럼 통이 자꾸만 들어왔다. 5통이 완성되고, 이제 남은 건 7통 하나뿐. 이제는 정말 선택을 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6만을 버려? 아니면 지금 리치를 걸어...?

내 선택은 결국 도라를 지키는 것이었다.

다음 턴에 대가가 7통을 버렸고, 론을 불렀다. 이겼다. 점수로 쳐도 똑같은 6판이었다. 그러나 내 마음 속에서 그것은 한 판짜리였다.

끝의 끝까지 선택을 망설이는 바람에 리치를 놓쳤고, 일발도 놓쳤다. 둘을 같이 얻었으면 배만도 가능했을 것이고 그것은 내 선택이 만들어낸 결과이기에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내가 만든 승리일지언정 내가 원한 승리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 나는 방어적인 태도로 패를 놓았고 점수를 잃지는 않았지만 이렇다하게 따지도 못한 채로 반장전이 종료되었다. 최종 점수는 2만 8천점으로 2등이었다. 국을 끝내면서도 내 마음 안에는 스스로 포기한 청일색이 아른거렸고, 비록 쏘였지만 국사무쌍을 만들고 있던 상가의 얼굴이 일렁거렸다.

상가는 어떤 마음으로 쏘일 걸 알면서도 패를 냈을까. 상가는 어떤 마음으로 패를 모으고, 국사무쌍이라는 길을 가기로 했을까.

또 나는 어떤 마음으로 청일색을 내려놓았나. 어떤 마음으로 패를 모으고, 이기고자 했는가.

청일색을 놓았을 때 내 마음 안엔 심지가 없었다. 타오르고자 하는 불꽃은 있는데, 그걸 붙일 곳이 없었던 것이다.

앞으로도 나는 무수하게 많은 선택을 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 선택이 늘 좋을 수는 없다. 후회도 할 것이고 패배의 쓴맛도 보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만든 선택엔 의미가 있다. 내려놓고서야 보이는 것도, 잡아보지 못해 아쉬운 것도 있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내 가슴을 더듬어보았다. 심지가 거기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바스락, 바스락. 살짝 풀린 심지가 나 여기 있다고 고개를 내미는 순간, 타오를 자릴 찾던 불꽃이 옮겨붙었다. 1시간 반의 귀갓길. 가슴은 내내 따뜻했고, 나는 책임을 맞설 준비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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