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고 싶다면 진심으로 싸워라

흐르는 모래라도 틀어막기

2023.01.08 | 조회 1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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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작일기

초보 작사가 마작을 배우며 느낀 점을 보내드립니다.

2022년 12월 22일반장전

 

패가 흐르고 있다.

유달리도 길게 느껴지는 날이었다. 개인적인 문제로 온종일 서류를 처리하고, 가족도 아파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고단했던 낮을 지나 새벽까지도 잠을 이루지 못해 마음을 가라앉히고자 마작을 켰다.

반장전 동2국. 친이었던 상가가 내리 나면서 연장전이 이어지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연장전을 좋아하지 않는다. 연장이 계속되면 긴장이 팽팽해지는만큼 판이 느리게 돌고 체력을 쓰게 된다. 체력이 닳으면 집중력이 떨어지고 게임 전반에 대한 흥미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평소엔 연장이 길어질 것 같은 조짐이 보이면 어떻게든 친을 죽인다는 마음으로, 적절한 상대에게 쏘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그날은 친을 죽인다, 내가 난다, 그런 언어 자체가 마음에 없었다.

패가 흐르고 있다.

들어오면 들어오는대로 버리고, 버려진 패를 읽지도 않는다. 손 안의 패가 알아서 역이 되어주길 바라듯이. 혹은 역을 만들고 싶은 마음조차 없다는 듯이. 아무 기대도 희망도 존재하지 않는 조패였다. 조패라고 부를 수도 없는 연명이었다.

중이 들어왔다. 패를 훑지도 않고 놓아주었다. 자패를 모으는 건 어차피 어려운 일이니까. 그런 체념이 들어차 있었다. 한 줄이 더 돌고 또 다시 중. 이미 중을 버렸기에 이번에도 버린다. 그리고 다음 사람이 따라서 중을 버렸다. 쥐고 있었더라면, 어쩌면 퐁을 부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역 하나가 생기고 그것으로 연장전을 끝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순간 깨달았다. 아, 나는 지금 이길 마음이 없구나. 아니, 이기고 싶지 않구나.

그 판은 유국으로 끝났다. 중을 버렸던 하가가 유일한 텐파이였다. 그는 단지 내가 버렸단 이유로 중을 버린 게 아니었다. 이유가 있는 버림이었다. 나와는 달리 그는 국을 끝내려는 의지가 있었고, 이기고 살아보려고 버둥대었다. 그 의지가 연장을 끊었다.

나의 마음에는 다시 불꽃이 올라왔다. 이기려는 마음 없이는 이길 수 없다. 이기고 싶지 않다면, 지게 된다. 인생은 마음대로 흐르지 않지만, 마음은 먹는 방향으로 흐르므로. '이기고 싶지 않다'는 패배감을 확인하고 나니 그제야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점수의 차이가 아니라 흐른 시간이 보였다.

10시에 시작했는데 어느덧 11시 30분. 연장이 길었다지만 1시간 30분 동안 게임의 4분의 1도 진행하지 못한 상태였다.

마작은 체력싸움이다. 싸움이 길어지면 체력이 약한 사람이 지게 된다. 1시간 30분은 내 정신력을 갉아먹기 충분했고, 그것은 곧 패배할 확률이 높아짐을 뜻했다. 여전히 내 마음에는 '이기고 싶다'는 화염은 생기지 않았다. 그러나 이 게임을 '끝내고 싶다'는 불꽃은 확실했다. 피로했고, 쉬기 위해서는 게임을 끝내야만 했다. 그러려면 한 방을 쏘아야만 한다.

그 뒤로 내 목표는 명확해졌다. 최종 1등을 노리는 게 아니라, 판을 빨리 돌리고 싶었다. 이미 따인 점수가 조금 있었지만 그걸 만회하려고 패를 크게 만들기보다는 점수가 작더라도 내 체력을 지킬 수 있는 선택을 하기로 했다.

리치를 걸 수 있으면 빠르게 걸고, 잃을 점수가 많지 않다면 쏘여줄 각오도 했다. 공격, 방어, 그 모든 것이 결국 생존을 위한 선택이다. 그 날의 나는 무엇보다도 내면의 생존이 중요했다. 그것이 빠른 선택을 이끌었다.

1시간 30분동안 동2국 3본장밖에 가지 못했는데, 40분만에 남장까지 모두 끝났다. 기회가 오면 쏘든 쏘이든 무조건 잡았다. 결국 내 점수는 2만 500점으로 3위에 그쳤지만, '게임을 끝낸다'는 명확한 목적 아래에서는 나 역시 승자였다.

마음이라는 것은 언제나 어렴풋하게 느껴진다. 언어는 언제나 마음보다 느려서, 마음을 설명하는 말은 나중에야 태어난다. 내 마음을 설명하는 말은 아직도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만큼 마음이라는 것은, 내 안에서 가장 명료해진다. 내가 올곧으면 마음도 올곧아진다. 오직 나만이 마음의 선명도를 조정할 수 있다.

이기고 싶다, 혹은 이기고 싶지 않다. 끝내고 싶다, 혹은 계속하고 싶다. 세상 모든 것이 마음대로 살아지지는 않지만, 그러나 내가 가려는 길은 마음으로 결정된다. 그래서 명확한 마음은 명확한 길로 나를 끌고 간다.

마작은 나의 마음을 돌아보기에 좋은 도구다. 시간이 흐르면 마음은 손에 쥔 모래처럼 서서히 흐려져서 마침내는 안개와 같이 뿌연 모습으로 흩어진다. 처음 탁에 앉아 동1국을 맞을 때는 이기려는 마음이 간절하다가도, 남4국에서는 아무래도 소용없겠다는 체념이 들어차 있을 수도 있다. 반대로 동1국에서는 아무래도 좋다는 즐거움이 남4국에는 이겨보려는 욕심이 되어 눈을 가릴 수도 있다.

그러니 판이 이끄는대로 그저 끌려가는 게 아니라, 내가 나를 팽팽하게 붙잡고 돌아보아야만 한다. 그러면 내가 가려는 방향을 알 수 있다. 이기고 싶은가? 아니면, 큰 패를 보고 싶은가? 그도 아니면, 이제는 모두 내려놓고 싶은가? 즐기고 싶은가, 싸우고 싶은가.

모든 것은 내 결정에 달렸다. 패는 좋은 수도, 아닐 수도 있고 싸움에서는 질 수도, 이길 수도 있다. 결과를 해석하는 것은 오롯이 내 몫이다. 좋은 패가 들어왔다고 승부를 던져보는 것도, 졌지만 잘 싸웠다고 즐거워 하는 것도 모두 내 마음이 정하는 일이다.

그 마음을 정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나뿐이다. 그러니 선택하자. 최선을 다하자. 그리고 받아들여서, 마침내 자유로워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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