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ided by Zero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IT테크, 스타트업 그리고 자본시장에 대한 2차적 사고를 공유합니다.
AI는 분명히 세상을 집어삼킬 기세죠. 자율주행차부터 신약 개발, 금융 분석까지 AI가 못 하는 게 뭘까 싶을 정도죠. 분명히 생산성이 폭발적으로 늘고, 수조 달러 규모의 새로운 시장이 열릴 예정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이 기술이 점점 몇몇 '공룡' 기업들에게 집중되고 있다는 찝찝함, 혹시 느끼지 않으셨나요? AI를 돌리려면 어마어마한 컴퓨팅 파워와 데이터가 필요한데, 이걸 감당할 수 있는 건 결국 구글, 오픈AI 같은 빅테크 기업들뿐이라는 거죠.
이러다 보니 AI 기술 접근은 제한되고, 특정 기업의 입맛에 맞게 모델이 편향되거나 검열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죠. 심지어 AI가 뭘 배우고 뭘 뱉어내는지, 우리는 깜깜이 신세일 때가 많습니다.
이런 'AI 제국주의'에 대한 반작용일까요? 최근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AI의 중앙 집중화를 해결하려는 시도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른바 'AI x Crypto' 또는 '탈중앙화 AI'라는 이름으로 말이죠. 블록체인의 핵심 가치인 탈중앙성, 투명성, 개방성, 검열 저항성 등을 AI에 접목하자는 아이디어입니다. 특정 기업이 독점하는 대신, 커뮤니티가 함께 AI를 개발하고 운영하며 그 가치를 나누는 세상을 꿈꾸는 거죠.
이 분야의 선두 주자 중 하나가 바로 비트텐서(Bittensor), 그리고 그 네이티브 토큰인 TAO입니다. 최근 DCG 창업자 배리 실버트가 TAO를 '제2의 비트코인'이라 부르면서 논란과 함께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죠.
물론 기술적으로는 논란의 여지가 많은 비교였지만, 덕분에 비트텐서는 AI와 크립토 씬의 새로운 별로 떠올랐습니다. 과연 비트텐서는 AI 독점이라는 거대한 흐름을 바꿀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을까요?
비트텐서(Bittensor)
비트텐서, 이걸 아주 간단하게 설명하면, 'AI 모델들을 위한 탈중앙화된 지능 마켓플레이스' 또는 '거대한 분산형 AI 두뇌' 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글이나 오픈AI 같은 특정 회사가 AI 모델을 독점 개발하고 서비스하는 대신, 비트텐서는 전 세계 누구나 자신의 AI 모델이나 컴퓨팅 자원을 제공하고 기여할 수 있는 판을 깔아줍니다. 그리고 이 네트워크 안에서는 '지능' 자체가 상품처럼 거래되죠. 뛰어난 AI 모델을 제공하거나 네트워크 운영에 도움을 주는 참가자들은 보상으로 TAO 토큰을 받습니다.
결국 이들이 하려는 건 뭘까요? 경쟁과 협력을 통해 AI 혁신 속도를 높이고, 소수 기업이 독점하던 AI 기술을 누구나 쓸 수 있게 만들겠다는 겁니다. 마치 위키피디아처럼, 집단 지성으로 계속 업그레이드되는 거대한 AI 두뇌를 만들겠다는 야심이죠.
It's just like bitcoin, there was a white paper that turned into code then launched and it has the same token economics
배리 실버트
그리고 이 거대한 그림을 구현하기 위해 비트텐서는 몇 가지 독특한 장치를 사용합니다.
1. 서브넷 (Subnets)
비트텐서 네트워크는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가 아니라, 여러 개의 '서브넷'으로 구성됩니다. 각 서브넷은 특정 AI 작업이나 디지털 상품에 특화된 독립적인 시장이라고 생각하면 쉽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서브넷은 딥시크처럼 글을 쓰는 데 특화되고, 다른 서브넷은 GPT처럼 그림을 그리거나, 금융 데이터를 분석하거나, 탈중앙화된 저장 공간을 제공하는 식)
누구나 TAO 토큰을 예치하고 새로운 서브넷을 만들 수 있으며, 각 서브넷은 자체적인 경쟁과 보상 규칙을 가집니다. 이런 모듈식 구조 덕분에 비트텐서는 다양한 AI 연산을 동시에 다루면서 빠르게 확장할 수 있다고 하죠
2. 채굴자(Miners)와 검증자(Validators)
각 서브넷에는 두 종류의 핵심 플레이어가 있습니다. 채굴자는 실제로 AI 모델을 돌리거나 컴퓨팅 자원을 제공하는 '일꾼'입니다. 검증자는 채굴자들이 내놓은 결과물의 품질을 평가하고 점수를 매기는 '심판' 역할을 하죠. 이 둘은 서로 경쟁하고 협력하며 서브넷의 지능 수준을 높여가고, 그 기여도에 따라 TAO 토큰을 보상으로 받습니다
3. 지능 증명(Proof of Intelligence) & 유마 합의(Yuma Consensus)
비트코인의 작업증명(Proof of Work)이나 지분증명(Proof of Stake)과 달리, 비트텐서는 '지능 증명' 또는 '유마 합의'라는 독특한 방식을 사용합니다.
단순히 연산 능력이나 토큰 보유량이 아니라, 네트워크의 집단 지성에 얼마나 '가치 있는' 기여를 했는지를 평가하고 보상하겠다는 거죠. 검증자들이 매긴 점수를 기반으로, 더 많은 지분(TAO)을 가졌거나 신뢰도가 높은 검증자의 평가에 가중치를 두어 최종 기여도를 결정합니다.
AI 결과물의 '품질'이라는 주관적인 요소를 객관적으로 측정하려는 야심 찬 시도지만, 그만큼 시스템을 속이려는 시도를 어떻게 막아낼지가 관건이겠죠.
4. TAO 토큰
TAO는 비트텐서 생태계를 돌아가게 하는 피와 같습니다. 보상, 서비스 이용료, 스테이킹(네트워크 보안 기여), 거버넌스(투표권) 등 모든 활동의 중심이죠. 재밌는 건 총 발행량 2100만 개, 주기적인 반감기 등 비트코인을 빼닮은 토큰 정책을 쓴다는 점입니다. 희소성을 부각해 가치를 지키려는 전략으로 보이죠
5. 다이나믹 TAO (dTao)
최근 도입된 dTao는 비트텐서의 게임 룰을 바꿀 만한 핵심 업그레이드라고 하는데요. TAO 보유자들이 직접 유망해 보이는 서브넷에 TAO를 스테이킹하고, 그 서브넷의 고유 토큰을 받는 방식이죠. 특정 서브넷에 TAO가 많이 몰릴수록, 그 서브넷에 더 많은 TAO 보상이 돌아갑니다.
한마디로 시장이 직접 가치를 평가하는 구조로 바뀐 겁니다. 이게 서브넷 간의 경쟁을 더 부추기고, TAO 토큰의 쓰임새를 늘려줄 거라는 기대가 깔려 있습니다.
누가 프로젝트를 이끄나
이 복잡한 프로젝트 뒤에는 구글 출신 머신러닝 개발자 제이콥 스티브스(Jacob Steeves)와 캐나다의 맥마스터 대학(캐나다 5위권 대학) 컴퓨터 과학 박사 출신 알라 샤바나(Ala Shaabana)라는 기술 배경의 공동 창업자들이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펀딩 방식입니다.
비트텐서는 "VC 투자를 한 푼도 받지 않았다"는 '공정 발행(fair launch)' 내러티브를 강조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폴리체인 캐피털, DCG, dao5 같은 크립토 씬의 이름있는 투자자들이 초기부터 깊숙이 관여하며 상당한 양의 TAO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프로젝트의 신뢰도를 높이는 동시에, 토큰 집중과 네트워크 독점력에 대한 의문이 생기는 부분이기도)
그레이스케일이 TAO 투자 신탁 상품을 출시한 것 역시 기관 투자자들의 관심을 보여주는 대목이죠
유일한 대안?
사실 AI와 블록체인을 결합하려는 프로젝트는 비트텐서가 유일하진 않습니다. 렌더 네트워크(RNDR)나 아카시 네트워크(AKT)는 탈중앙화된 컴퓨팅 자원(주로 GPU) 제공에 초점을 맞추고, 페치닷에이아이(Fetch.ai)가 주도하는 ASI 얼라이언스는 자율 AI 에이전트 생태계 구축을 목표로 합니다.
이들과 비교했을 때, 비트텐서가 노리는 건 좀 다릅니다. 단순한 컴퓨팅 파워나 특정 서비스가 아니라, '지능' 그 자체를 거래하고 조율하는 '시장', 또는 '플랫폼'이 되겠다는 야망이죠. 다양한 AI 연산 전문 영역(서브넷), 지능 가치 평가(유마 합의) 같은 독자적인 '경제 시스템' 설계가 이들의 핵심 경쟁력이자, 어쩌면 가장 큰 도박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보니 비트텐서의 미래는 그야말로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처럼 보입니다. 서브넷들이 정말 쓸모있는 AI 서비스를 만들어내고, dTao 경제 시스템이 잘 돌아가고, 반감기 효과까지 등에 업는다면 엄청난 성공 스토리를 쓸 수도 있겠죠.
하지만 실패할 위험도 곳곳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서브넷이 보상만 타 먹는 '좀비 프로젝트'로 전락할 가능성, 정교한 인센티브 시스템의 허점을 파고드는 '어뷰징' 문제, '지능'이라는 애매한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는 합의 메커니즘의 한계, 네트워크 확장성 문제, 그리고 당연하게도 치열한 경쟁과 언제 터질지 모르는 규제 리스크까지. 넘어야 할 산이 한두 개가 아닙니다.
비트텐서는 AI와 블록체인이 만나는 최전선에서 벌어지는, 대담한 실험입니다. 성공을 장담하긴 어렵지만, AI 개발과 접근 방식을 뿌리부터 바꾸려는 시도 자체는 분명 의미심장합니다.
이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봅시다.
그럼 비트텐서 같은 블록체인 프로젝트가 정말 AI 독점 문제의 해답이 될 수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직접적인 '해결사'라기보다는 '다른 길도 있다'는 걸 보여주는 존재에 가깝지 않나 싶습니다. 비트텐서는 엔비디아의 GPU 독점을 깨는 기술이 아닙니다. 싸게 컴퓨팅 자원을 빌려주는 서비스에 올인하는 것도 아니고요.
비트텐서가 정조준하는 건 AI 모델 개발과 접근을 틀어쥔 중앙화된 플랫폼들의 '권력'입니다. 이들은 분산된 컴퓨팅 자원을 활용해 '지능'을 생산하고, 누구나 TAO만 있으면 이 지능에 접근할 수 있는 시장을 엽니다.
즉, 하드웨어가 아니라 AI 능력에 대한 '접근권'을 민주화하겠다는 거죠. 비싼 돈 내고 특정 기업의 API를 쓰거나, 아예 접근조차 못 했던 AI 기술을 활용할 새로운 길을 열어줄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AI 독점 문제에 대한 완벽한 해답은 아닐지라도, 비트텐서는 중앙화된 거대 플랫폼에 기대지 않고도 AI 기술을 만들고 누릴 수 있는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는거죠. 지능 자체를 탈중앙화된 방식으로 만들고 나눈다는 이들의 비전이 현실이 된다면, AI가 지배할 미래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는 꽤 다른 모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 길이 정말 열릴지, 아니면 그저 이상주의자들의 신기루로 끝날지는 아무도 모르죠. 하지만 AI 시대를 맞아 더 열려있고, 더 공평한 대안을 고민하게 만든다는 것만으로도, 비트텐서의 도전은 충분히 주목할 가치가 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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