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ided by Zero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IT테크, 스타트업 그리고 자본시장에 대한 2차적 사고를 공유합니다.
2025년 테크 시장의 가장 뜨거운 키워드 중 하나는 단연 휴머노이드 로봇입니다. Divided by Zero에서도 올해 수도없이 다룬 주제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피규어 AI(Figure AI)가 있었습니다. 피규어AI는 2025년 9월, 무려 390억 달러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으며 10억 달러가 넘는 시리즈 C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죠.
그런데 말입니다, 오늘은 한번 뒤집어보도록 하죠. 디인포메이션(The Information)에서 휴머노이드 로봇 버블론에 대해 화두를 던졌거든요.
피규어AI의 화려한 밸류에이션 숫자 뒤에는 사실 불편한 진실이 숨어있습니다. 가트너(Gartner)는 2025년 하이프 사이클(Hype Cycle)에서 휴머노이드 로봇을 정확히 기대 거품의 정점(Peak of Inflated Expectations)에 올려놓았습니다. 아직 산업 현장에 제대로 적용되려면 10년은 더 걸릴 기술이라는 거죠.
한쪽에서는 조 단위 돈이 몰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아직 멀었다"고 경고하는 이 극단적인 온도 차이. 과연 지금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은 버블을 재현하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정말 인류의 미래를 바꿀 거대한 변혁의 시작점에 우리가 서 있는 걸까요?
휴머노이드 버블
지금의 휴머노이드 로봇 열풍을 닷컴 버블과 동일시하는 건 좀 부정확해 보이기도 합니다. 닷컴 버블이 클릭 수나 방문자 수 같은 실체 없는 지표에 기댔다면, 지금의 휴머노이드 버블은 훨씬 더 단단한 두 개의 현실적인 기둥 위에 서 있습니다.
작년이 로봇 관점에서 말하는 AI의 해였다면, 2025년은 걷는 AI의 해입니다. LLM이 육체를 가진 AI(Embodied AI)로 진화하면서, 드디어 로봇에게 쓸 만한 두뇌가 생긴거죠. 수요측면에서도 선진국을 중심으로 한 인구 고령화와 노동력 부족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특히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3D) 일자리는 사람이 갈수록 기피하고 있죠.
결국 지금 시장의 광기는 "미래에 로봇 시장이 열릴까?"를 두고 벌이는 도박이 아닙니다.
노동력 부족으로 인해 수조 달러짜리 시장이 열리는 건 거의 확정된 미래죠. 시장의 도박은 타임라인에 걸려있습니다. 투자자들은 AI라는 소프트웨어의 혁신 속도에 매몰된 나머지, 로봇이라는 하드웨어의 개발과 적용에 필요한 10년이라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1~2년으로 압축해서 밸류에이션에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2025년 휴머노이드 버블의 본질이 아닐까합니다.

사실 이런 시장의 광기에는 최근 몇 가지 강력한 촉매제가 있었습니다.
먼저 머스크죠.
일론 머스크는 주주총회에서 옵티머스 시연을 통해 "테슬라 가치의 80%는 차가 아닌 로봇에서 나올 것"이라는 자신의 예언을 다시 한번 각인시켰습니다. 중국의 샤오펑(Xpeng)은 자사의 로봇 아이언(Iron)이 슈트를 입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무대 위에서 해부하는 해프닝까지 벌였죠. 휴머노이드 로봇 경쟁이 이미 국가 대항전의 영역으로 들어섰음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구요.
동시에 안드로이드를 만든 앤디 루빈이 겐키 로보틱스(Genki Robotics)라는 휴머노이드 스타트업을 들고 도쿄에 등장했습니다. 시장은 루빈의 등장을 또 하나의 로봇이 아닌 로봇계의 안드로이드, 즉 미래 로봇 시장의 표준 플랫폼을 만들기 위한 전쟁의 시작으로 받아들이고도 있습니다.
지속적으로 보이고 있는 이런 거물들의 움직임은 투자자들에게 "경주는 이미 시작됐다"는 강력한 신호를 보내고 있고, 이런 분위기 속 다음 플랫폼을 놓칠지 모른다는 공포가 매출도 없는 기업에게 390억 달러라는 밸류를 만들어낸 겁니다.
간극
이 모든 화려한 비전에도 불구하고, 2025년 현재, 상업적으로 일을 하고 있는 휴머노이드 로봇은 사실상 없습니다.
피규어AI를 보면, 390억 달러 가치의 핵심 근거인 BMW 공장 파일럿이 있다고 하죠. 하지만 2025년 3월 BMW 측의 공식 발표는 "현재 스파르탄버그 공장에는 피겨 AI 로봇이 없으며, 도입을 위한 확정된 일정표도 없다."였죠. 나중에 어느정도 테스트되고 있다고 번복하긴 했지만 따지고 보면, 이들의 파트너십은 작업이 아니라, 데이터 수집 및 훈련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옵티머스는 어떤가요? 2025년 말까지 공장에 수천 대를 투입하겠다던 머스크의 호언장담과 달리, 현실은 파일럿 라인에서 수백 대를 조립하는 수준에 그쳤습니다. 심지어 이 로봇들은 아직 "고용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실제 작업에 투입되지 못하고, 역시 오직 데이터 수집과 설계 테스트에만 사용되고 있죠.
물론 어질리티 로보틱스(Digit)같은 회사도 있습니다. 유일하게 물류창고(GXO)에 상업적 배포가 되었지만, 이들이 하는 일은 자율주행 로봇이 가져온 박스를 컨베이어 벨트에 옮기는 아주 단순하고 반복적인 고정된 작업입니다.
이게 2025년의 현실입니다. 시장은 범용 AI 노동자의 완성에 돈을 걸고 있지만, 현실은 아직 데이터 수집 단계에 머물러 있는 겁니다. 이 거대한 간극 속에 투입되는 자본의 규모가 버블일 수 있다는거죠.

그래서 어떻게보면 2025년의 휴머노이드 버블은 진짜입니다. 하지만 닷컴 버블과 마찬가지로 실체가 없는 버블이 아니라, 타이밍의 버블입니다. 시장은 AI라는 소프트웨어의 눈부신 발전 속도에 취해, 하드웨어 개발과 상용화에 필요한 10년의 고통스러운 시간을 1~2년으로 압축해버렸습니다.
이 거품은 곧 꺼질 겁니다. 2026~2027년, 화려했던 파일럿 프로그램들이 기대했던 ROI를 보여주지 못하는 순간, 시장은 환멸의 계곡으로 추락할 것이고, 옥석 가리기가 시작되겠죠.
그리고 이 죽음의 계곡에서 누군가는 살아남고 진정한 파괴적 혁신을 보여주게 되겠죠. 어떤 회사가 될까요?
테슬라처럼 모기업의 막대한 자본력으로 10년 이상 적자를 감수하며 투자할 수 있는 기업이나, (과대가치의 주인공이지만)피규어 AI처럼 버블의 정점에서 막대한 투자를 유치해, 경쟁자들이 말라죽는 동안 R&D를 계속할 수 있는 기업이 될 수 있겠죠. 하지만 수많은 스타트업들 중에서 최후의 승자를 추려내는건 쉽지는 않을겁니다.
그렇다보니 투자자에게 지금의 기회는 완성품이 아니라 부품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로봇 OEM이 누가 되든 상관없이, 반드시 필요한 고성능 액추에이터나 센서 같은 곡괭이와 삽을 파는 회사 말이죠.
휴머노이드 로봇의 시대는 분명 옵니다. 다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더디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서 올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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