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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분기, 글로벌 핀테크 투자액이 2년 만에 100억 달러를 돌파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얼핏 보면, 기나긴 '핀테크의 겨울'이 끝나고 드디어 다시 봄이 오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건 우리가 알던 2021년의 그 뜨거운 붐과는 전혀 다른, 훨씬 더 냉정하고 복잡한 거대한 재조정의 시작일지도 모릅니다
두 개의 시장으로 나뉜 핀테크
최근 발표되는 핀테크 투자 데이터는 꽤나 혼란스럽습니다. CB인사이트는 1분기 글로벌 핀테크 투자가 전분기 대비 18% 증가했다고 발표했지만 , 핀테크 글로벌의 보고서는 오히려 미국 핀테크 투자가 13% 감소했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이런 상반된 결과가 나올 수 있을까요?
정답은 자본의 편중에 있습니다. 글로벌 전체 수치는 아부다비 투자자가 암호화폐 거래소 바이낸스에 투자한 20억 달러짜리 초대형 딜 하나 때문에 부풀려진 착시 현상에 가깝습니다. 이 딜 하나가 전체의 20%를 차지했죠.
결국 지금 시장은 모두가 함께 따뜻해지는 봄이 아니라, 소수의 기업만이 온기를 독차지하는 두 개의 시장으로 나뉘고 있습니다.
- Late stage 잔치: 1억 달러 이상의 메가 라운드 투자액은 전년 동기 대비 두 배 이상 급증했습니다. VC들은 이제 위험성이 높은 초기 단계보다는, 이미 검증된 후기 단계의 안전한 기업에만 돈을 몰아주고 있는 거죠
- Early stage의 고난: 반면, 전체 딜의 건수는 4분기 연속 감소했습니다. 특히 초기 단계(Early-Stage) 투자의 비중은 2024년 72%에서 2025년 67%로 줄어들며, 이제 막 시작하는 스타트업들은 그 어느 때보다 혹독한 자금난을 겪고 있습니다
지난 4년간 이어진 버블 소화 과정의 결과로 보이죠. 2021년의 비이성적인 과열이 꺼지고, 이제 시장은 훨씬 더 신중하고, 까다로우며, 본질에 집중하는 성숙한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신호인 것 같습니다.
모든 길은 AI로
이 새로운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키워드가 있다면, 그건 단연 'AI'일 겁니다. AI는 이제 핀테크의 부가 기능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전제 조건이 되었습니다.
- 가장 강력한 경쟁자: VC들이 가진 돈은 한정되어 있는데, 2025년 1분기 전체 VC 자금의 무려 53%가 AI 스타트업으로 쏠렸습니다. 핀테크는 이제 다른 핀테크가 아니라, AI와 경쟁해서 투자를 받아내야 하는 처지가 된 거죠.
- AI 프리미엄: 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핀테크는 스스로 AI 기업이 되어야만 합니다. 실제로 시장은 AI 역량을 갖춘 핀테크 기업에 명백한 '프리미엄'을 붙여주고 있습니다. 피치북 보고서에 따르면 기업용 AI 핀테크의 초기 단계 중간값 딜 사이즈는 무려 118.6%나 급증했는데, 보고서는 이를 명백한 AI 프리미엄 때문이라고 분석합니다
- AI vs. 금융: VC들이 보는 관점도 바뀌었습니다. 과거에는 "핀테크가 은행을 파괴한다"는 서사가 유효했다면, 이제는 "AI가 금융 전체를 파괴한다"는 새로운 서사가 시장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VC의 52%가 AI에 의해 가장 많이 파괴될 산업으로 '핀테크'를 꼽았을 정도죠. 이제 투자자들은 신용 평가, 사기 탐지, 규제 준수 같은 금융의 핵심 뇌를 AI로 대체할 수 있는 B2B 기업에 더 큰 매력을 느끼는 듯합니다
그렇다면 이 냉정하고 AI 중심적인 시장에서, 똑똑한 돈은 구체적으로 어떤 분야로 향하고 있을까요? 최근의 주요 딜들을 보면 몇 가지 명확한 방향성이 보입니다.
1. 결제 인프라 오케스트레이션
이제 시장은 또 다른 결제 대행사(PG)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대신, 이미 존재하는 복잡한 결제 인프라 위에서, 그것들을 지능적으로 관리하고 최적화하는 오케스트레이션 레이어에 주목합니다. 독일의 페이레일즈(Payrails)가 3,200만 달러의 시리즈 A 투자를 유치한 것이 그 예입니다. 이들은 스트라이프나 아디옌과 직접 경쟁하는 대신, 이 모든 결제 시스템을 통합 관리하는 '결제 운영체제'를 제공하며 대기업들의 골치 아픈 문제를 해결해주고 있습니다.
2. 거대한 틈새시장 공략
불특정 다수가 아닌, 거대하고 동질적인 특정 커뮤니티를 깊게 파고드는 '니치 앳 스케일(Niche-at-Scale)' 전략도 각광받고 있습니다. 재외 인도인을 위한 금융 플랫폼 아스포라(Aspora)가 5,000만 달러의 투자를 유치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이들은 연간 1,250억 달러를 인도에 송금하는 거대한 시장의 명확한 문제(느리고 비싼 수수료)를, 스테이블코인 같은 기술로 해결하며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3. 진짜 유틸리티가 된 크립토
암호화폐에 대한 투자 역시, 과거의 투기적 성격에서 벗어나 '실용성'과 '인프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습니다. 스테이블코인 인프라 스타트업 노아(Noah)가 2,200만 달러의 시드 투자를 유치한 사례가 이를 보여줍니다. 이들은 일반 소비자를 위한 지갑이나 거래소가 아닌, 기업들이 국경 간 결제를 위해 스테이블코인을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 API 우선의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이제 투자는 '디지털 골드'가 아닌 '프로그래밍 가능한 달러'를 향하고 있는 셈입니다.
핀테크 투자는 다시 돌아왔을까
그럼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죠. "핀테크 투자는 다시 돌아왔을까요?
대답은 "네, 하지만 전혀 다른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2021년의 무분별하고 투기적이었던 열광은 돌아오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그게 오히려 이 산업의 장기적인 건강을 위해서는 더 좋은 일일지도 모릅니다.
지금의 미니 붐은 훨씬 더 똑똑하고, 선별적이며, 규율이 잡혀있습니다. 자본은 이제 B2B 인프라, AI 기반의 효율성, 그리고 실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특정 분야의 강자들에게만 집중되고 있습니다. 성공의 문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지만, 이 높은 기준을 통과한 기업들에게는 하이프가 아닌 '진짜 경제적 가치'에 기반한, 훨씬 더 단단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의 기회가 주어질 겁니다.
결국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단순한 시장의 컴백이 아닙니다.
그보단 핀테크 겨울 동안 살아남은 자들과, 새로운 규칙에 맞춰 새롭게 등장한 자들이 만들어가는 '세대교체'에 더 가까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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