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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이 혁신의 아이콘에서, 서서히 지는 거인이었던 과거의 IBM처럼 되어가고 있다는 이야기. 지난주 All-In-Podcast에서 제기된 주장이죠. 실제로 성장은 둔화되고 있고, 새로운 제품보다는 주주들을 위한 막대한 자사주 매입에 열을 올리고 있으며, 10년간 공들인 애플카(프로젝트 타이탄)는 결국 실패로 끝났습니다. AI 경쟁에서도 한참 뒤처진 것 같다는 비판은 이제 익숙할 정도고요.
이 모든 현상은 애플이 과거 IBM, GE, GM 같은 거대 기업들이 걸었던 성숙기를 지나 쇠퇴기로 접어드는 거인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 아닐까요?
지능적인 변명
애플이 AI 경쟁에서 뒤처졌다는 비판에 내놓은 답변이 바로 애플 인텔리전스였죠. 하지만 그 내용을 자세히 뜯어보면, '아직은' 이건 혁신이라기보다는 자신들의 지연을 포장하기 위한 변명에 더 가까워 보입니다.
- 속 빈 강정, 자체 모델: 애플 인텔리전스의 핵심인 온디바이스 모델은, 고작 30억 개 수준의 파라미터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수천억 개 파라미터를 가진 경쟁사들의 프론티어 모델과는 비교 자체가 무의미한 수준이죠. 프라이버시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실상은 경쟁사들과 같은 수준의 모델을 만들 기술력이나 인프라가 없다는 것을 인정한 셈 아닐까요?
- 오픈 플랫폼?: 더 뼈아픈 지점은, 결국 복잡한 질문이나 창의적인 작업은 OpenAI의 챗GPT에 외주를 주는 방식을 택했다는 겁니다. 사실 이건 애플 스스로 자신들의 AI가 경쟁력이 없음을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수십 년간 지켜온 수직 통합이라는 자존심을 버리고, 가장 중요한 AI 전쟁에서 경쟁사의 힘을 빌리는 선택을 한 거죠
- 고쳐지지 않는 시리(Siri): 이 모든 것의 정점은, 여전히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시리입니다. AI 시대의 핵심은 AI 비서인데, 애플의 AI 비서는 여전히 기본적인 대화조차 버거워하며, 제대로 된 혁신은 2026년 이후로 또다시 연기되었습니다. 10년 넘게 고치지 못한 문제가, 여전히 해결이 안되고 있네요
결국 애플의 AI 전략은, 경쟁사들의 막대한 인프라 투자와 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자, 프라이버시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 자신들의 기술적 열세를 가리려는, 다소 방어적인 스탠스로 보입니다.
애플카
애플의 혁신 엔진이 얼마나 망가졌는지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는 바로 프로젝트 타이탄의 실패입니다. 10년간 100억 달러 이상을 쏟아붓고도, 결과물은 아무것도 없었죠.
하지만 이 프로젝트의 실패는 단순히 "어려운 사업에 도전했다가 포기했다"는 수준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어쩌면 리더십의 완전한 실패를 의미합니다.
- 10년간의 방향성 상실: 프로젝트는 지난 10년간, 테슬라 경쟁 모델 →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플랫폼 → 운전대 없는 자율주행 → 레벨 2+ 수준의 전기차 등으로 목표가 다섯 번이나 바뀌는 등, 그야말로 '표류'했습니다. 하나의 비전을 정하고 끝까지 밀어붙이는 과거 애플의 방식이 실종된거죠
- 결단력 없는 리더십: 내부자들은 이 실패의 원인으로 팀 쿡 CEO의 우유부단함을 꼽습니다. 팀쿡은 스티브 잡스처럼 과감한 결단을 내리기보다, "데이터를 더 가져와라, 생각할 시간을 달라"는 말만 반복하며 중요한 결정들을 미뤘다고 하죠
결국 애플카의 취소는, "어려운 도전을 포기하는 효율적 결단"이라기보다는, 10년간의 리더십 부재와 전략적 실패를 더 이상 감출 수 없게 되자 마지못해 내린 백기 투항에 가까워보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허비한 10년이라는 시간과 100억 달러라는 돈, 그리고 수천 명의 인재는 AI라는 진짜 전쟁에서 애플이 뒤처지게 된 결정적인 원인이 된거죠.
혁신 대신 자사주 매입
지금의 애플을 보면, 혁신을 통해 미래를 만들기보다는, 과거의 성공에 기대어 현재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만 몰두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1,000억 달러. 애플이 최근 발표한 자사주 매입 규모입니다. 미래에 대한 투자가 불확실하니, 차라리 주주들에게 현금을 돌려주며 주가를 관리하겠다는, 전형적인 성숙기 기업의 모습이죠. 물론 애플의 자사주 매입/소각은 지금까지는 성공적인 주주환원 정책이었습니다. 버크셔해서웨이 투자수익률의 원천이었죠.
하지만, 성장이 안보이는 상황에서의 이 천문학적인 돈은, 애플 스스로 "우리는 이 돈으로 새로운 혁신을 만들어낼 자신이 없다"는 고백으로 들리네요.
물론, 애플의 생태계라는 해자는 여전히 견고합니다. 아이메시지와 앱스토어, 그리고 기기 간의 연동성이 만들어내는 '락인 효과'는 강력하죠. 하지만 이 철옹성 같은 생태계가 오히려 혁신의 무덤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사용자들을 가두는 데 성공했지만, 정작 그 안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동력을 잃어버린, 감옥처럼 말입니다.
IBM이 메인프레임의 성공에 취해 PC 혁명을 놓쳤듯, 애플 역시 아이폰의 성공에 안주하다 AI라는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갈 위험은 없을까요?
퍼플렉시티 인수설?
이 와중 궁지에 몰린 애플의 다음 행보로 거론되는 가장 흥미로운 시나리오가 바로 AI 검색 스타트업 퍼플렉시티(Perplexity) 인수설입니다. 표면적으로 이 M&A는 여러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하는 묘수처럼 보입니다. 만약 루머가 사실이라면 당장 망신거리 수준인 시리(Siri)의 성능을 단번에 끌어올릴 수 있고, 반독점 소송으로 위태로운 연간 200억 달러짜리 구글 검색 계약의 확실한 대안도 확보하게 됩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한 걸음 더 들어가 봐야 합니다. 과연 퍼플렉시티 인수가, 지금 애플이 겪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까요? 저는 오히려 이것이 더 큰 문제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 '문화'는 돈으로 살 수 없다: 계속 지적했듯, 현재 애플이 겪는 문제의 본질은 기술의 부재가 아니라 혁신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문화입니다. 10년간 표류한 애플카 프로젝트처럼, 거대하고 관료화된 조직이 리스크를 감수하며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능력을 상실한 것이죠
- 통합이라는 악몽: 애플의 가장 큰 힘은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실리콘까지 모든 것을 직접 설계하고 통제하는 완벽한 수직 통합에서 나옵니다. 그런데 이미 자신만의 기술 스택과 문화를 가진 거대한 회사를 인수해서, 이 닫힌 생태계 안에 매끄럽게 녹여내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요? 애플은 역사적으로 이런 대규모 인수에 성공한 경험이 거의 없습니다. 자칫하면 막대한 돈을 쓰고도,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결과를 낳거나, 조직 내부의 문화적 충돌만 일으키는 악몽이 될 수도 있습니다
결국 퍼플렉시티 인수는, 단기적으로는 몇몇 구멍을 메우는 똑똑한 전술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는 애플이 혁신을 창조하는 능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근본적인 '전략적'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거대한 조직을 집어삼키는 과정에서 새로운 문화적, 기술적 문제들만 낳게 될지도 모릅니다.
세상은 변하고 있다
애플이 IBM처럼 하루아침에 진부해지지는 않을 겁니다. 그들이 수십 년간 쌓아 올린 생태계라는 요새는 여전히 막강하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자본주의의 역사를 통해 수많은 제국들이 외부의 적이 아니라, 내부의 관료화와 변화에 대한 둔감함 때문에 무너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지금 애플은 혁신적인 도전자라기보다는, 거대한 부를 지키려는 성주의 모습에 더 가깝습니다.
애플의 요새는 아직은 견고해 보이지만, 성 밖에서는 AI라는, 기존의 법칙과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힘이 세상을 바꾸고 있습니다. 애플의 가장 큰 리스크는 이제 더 좋은 아이폰을 만드는 경쟁자가 아니라, 아이폰 자체를 구시대의 유물로 만들어버릴 새로운 AI 네이티브 기기의 등장이 될 겁니다. 어쩌면 그 주인공이 애플의 혁신을 이끈 조니아이브와 샘알트먼의 무언가가 될 수도 있겠죠
애플은 스티브 잡스라는 '제품의 선지자'가 이끌던 시대를 지나, 팀 쿡이라는 '생태계의 관리자'가 이끄는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문제는, 관리자는 성벽을 높이 쌓을 수는 있지만, 새로운 대륙을 발견하지는 못한다는 점입니다.
애플의 IBM화는 이미 시작되었고,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이 진행되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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