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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전인 2026년 2월 8일, 미국 광고 업계의 최대 무대인 제60회 슈퍼볼에서 앤트로픽(Anthropic)과 오픈AI(OpenAI)가 정면으로 충돌했습니다.
이번 대결은 광고 경쟁을 넘어 AI 산업의 명운을 건 대리전 양상으로 치달았는데, 먼저 앤트로픽은 사상 첫 슈퍼볼 데뷔전에서 오픈AI를 직접 겨냥한 풍자 광고를 내보내며 선제공격을 날렸습니다. 불과 3주 전 오픈AI가 챗GPT 내 광고 도입 계획을 발표한 것을 비꼬면서, "광고가 지원하는 AI"라는 개념 자체를 조롱거리로 만든 셈입니다.
이에 맞서 오픈AI는 코딩 도구인 코덱스(Codex)를 내세운 세련된 60초짜리 필름 광고로 반격하며 AI를 빌더(Builder)의 도구로 포지셔닝했습니다. 어찌보면 중대한 순간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두 회사의 경쟁이 이제 벤치마크와 모델 성능이라는 기술적 지표를 넘어 브랜드, 신뢰, 그리고 대중의 내러티브를 놓고 싸우는 단계로 진입했음을 의미하는 겁니다.

공격
앤트로픽의 데뷔 캠페인 때와 장소(A Time and a Place)는. 마더(Mother) 에이전시가 제작했는데요. 이 4편의 풍자 광고는 인간 배우가 연기하는 AI 챗봇이 사용자에게 진지한 조언을 건네다가 갑자기 뜬금없는 광고 멘트를 날리는 상황을 연출했습니다. 예를 들어 배신(Betrayal)편에서는 어머니와의 소통 문제를 상담하던 남자가 AI로부터 사려 깊은 조언을 듣던 중 갑자기 "민감한 연하남과 포효하는 연상녀를 위한 데이팅 사이트, 골든 인카운터스"라는 광고를 듣게 되고, 헬스장에서 운동 조언을 구하던 '침해(Violation)' 편의 주인공은 자신의 키와 몸무게가 읊어지더니 난데없이 깔창 광고를 듣게 됩니다. 앤트로픽은 이 광고들의 말미에 '배신', '기만', '배반', '침해'라는 강렬한 단어를 화면 가득 박아 넣으며 메시지를 각인시켰습니다.

특히 앤트로픽의 전략은 채널별로 디테일하게 갈라졌는데, 온라인 버전에서는 "AI에 광고가 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클로드에는 아닙니다"라는 직설적인 카피로 경쟁사를 타격했고, 1억 3천만 명이 지켜보는 TV 방송에서는 "광고가 있어야 할 때와 장소가 있습니다. AI와의 대화는 그곳이 아닙니다"라는 좀 더 철학적이고 원론적인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오픈AI가 1월 16일 무료 사용자에게 광고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하고 2월 9일부터 실제로 광고를 노출하기 시작한 시점을 정확히 노린 타이밍이었던 셈입니다. 앤트로픽은 동시에 블로그를 통해 "클로드는 생각하는 공간"이라며 광고 없는 청정 구역임을 선언했는데, AI와의 대화가 검색이나 소셜 미디어와 달리 사용자의 심리에 깊은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상업적 개입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명분을 내세운 겁니다.
오픈AI는 코덱스
반면 오픈AI는 정공법을 택했습니다. 작년 슈퍼볼의 추상적이고 개념적이었던 '지능의 시대' 광고와 달리, 이번에는 철저히 제품에 집중했습니다. 이번 '당신은 그저 만들면 됩니다(You Can Just Build Things)'라는 제목의 60초 광고는 아이의 호기심에서 시작해 코딩을 거쳐 로봇을 만드는 과정을 1인칭 시점으로 담아냈습니다.

소라(Sora)나 챗GPT로 아이디어를 얻었지만 실제 촬영은 필름 카메라로 진행했는데요. AI가 더 이상 질문에 답만 하는 챗봇이 아니라 실제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행동하는 AI(Agentic AI)로 진화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100만 사용자를 돌파하고 주당 10%씩 성장 중인 코덱스(Codex)를 강조하고 있는건 결국 오픈AI가 AI의 실효적 가치를 증명하는 데 집중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실제로 케이트 라우치 CMO가 "AI 거품론이 일고 있지만 우리는 실질적인 도구를 만드는 데 집중한다"고 밝혔는데, 오픈AI는 본질적인 효용성으로 승부수를 띄운 셈입니다.
AI AI AI
그럼 앤트로픽과 오픈AI 말고 이번 슈퍼볼 광고의 몇%가 AI 관련 광고였을까요?
무려 23%에 달합니다. 2000년 닷컴 버블이나 가까이는 2022년 크립토 볼을 연상케 할 만큼 과열된 양상을 보인거죠. 구글, 아마존, 메타뿐만 아니라 램프(Ramp), 윅스(Wix) 같은 스타트업들까지 가세해 총 1억 5천만 달러 이상을 쏟아부었죠. 하지만 승패는 묘하게 엇갈렸습니다. 구글은 전년도 "고다 치즈 소비량 조작" 환각 광고 논란(제미나이는 "고다 치즈가 전 세계 치즈 소비량의 50~60%를 차지한다"는 정보를 제공했었는데 틀린 데이터)을 의식한 듯 신중했지만, 퍼플렉시티는 TV 광고 대신 테슬라 사이버트럭을 활용한 게릴라 마케팅으로 앱 다운로드를 유의미하게 늘리며 가성비 전략의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이 흐름속에서 앤트로픽의 공격은 오픈AI의 아킬레스건을 찌른 것도 맞습니다. 오픈AI는 8억 명의 사용자 중 유료 가입자가 5%에 불과하고 누적 적자가 2029년까지 1,15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재정적 압박 속에서 광고 도입이 불가피했습니다. 샘 알트만이 원래 "광고는 불쾌하다"고 했던 입장을 번복하고 현실과 타협한 틈을 앤트로픽이 파고든 겁니다.
대중의 반응은 앤트로픽의 손을 들어줬는데, 긍정적 언급 비율이 25.5%로 오픈AI의 16.3%를 앞섰고, EDO 참여 지수(미국 TV 광고 효과 분석 플랫폼인 EDO(edo.com)에서 제공하는 지표)에서도 앤트로픽이 오픈AI보다 높은 순위를 기록했습니다. 광고 업계 전문가들 또한 앤트로픽의 풍자가 브랜드 전략으로서 훨씬 효과적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는 셈입니다.
신뢰가 상품이 되는 단계
이번 슈퍼볼 전쟁은 두 회사가 가는 길의 근본적인 차이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오픈AI는 8억 명의 사용자를 기반으로 한 AI의 '클리넥스'가 되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려 하고, 여기까지 가기 위해서 광고 수익은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반면 앤트로픽은 프리미엄 엔터프라이즈 및 구독 모델을 지향하고 있고, 신뢰 자체를 핵심 상품으로 팔고 있습니다. 이미 기업용 LLM 시장 점유율 40%로 오픈AI(27%)를 앞서고 있는데, 이런 전략이 먹혀들고있는 거죠. 아 물론 코딩 퀄리티도 클로드가 낫습니다만.

샘 알트만이 앤트로픽의 광고에 발끈해 엑스(X)에 장문의 반박 글을 올리며 "앤트로픽은 부자들을 위한 비싼 제품"이라고 비난했는데요. 오히려 전략적 실수였습니다. "1등은 2등을 언급하지 않는 법"인데, 알트만의 반응은 클로드를 동급의 위협적인 경쟁자로 인정해 버린 꼴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AI 제품의 초기단계에 있고 미래는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슈퍼볼 전쟁이 던진 질문은 뭘까요? "당신의 AI는 당신의 지갑으로 유지될 것인가, 아니면 당신의 시간, 인식으로 유지될 것인가?"라는거죠.
어쩌면 광고 전쟁을 넘어, 향후 10년을 관통할 AI 소비자 기술의 핵심 논쟁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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