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ided by Zero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IT테크, 스타트업 그리고 자본시장에 대한 2차적 사고를 공유합니다.
몇 년간 꽁꽁 얼어붙었던 미국 기술주 IPO 시장에 그야말로 불꽃(Firefly)이 튀었습니다. 주인공은 스페이스X나 블루오리진이 아닌, 파이어플라이 에어로스페이스(Firefly Aerospace)라는 어쩌면 조금은 생소한 이름의 우주 기술 스타트업이었죠.
시장의 반응은 그야말로 뜨거웠습니다. 주당 45달러에 상장된 주식(티커: FLY)은 거래 시작과 동시에 70달러로 솟구쳤고, 첫날 34% 상승 마감하며 단숨에 시가총액 85억 달러짜리 기업으로 등극했습니다. IPO를 통해 조달한 자금만 약 8억 7천만 달러에 달했죠.
이 화려한 데뷔 뒤에는 몇 가지 흥미로운 질문들이 따라붙습니다. 파이어플라이는 2024년에만 2억 3천만 달러가 넘는 적자를 냈고, 앞으로도 몇 년간 수익을 내기 어려울 거라고 스스로 인정하는 회사입니다. 심지어 주력 로켓인 알파(Alpha)의 발사 성공률은 아직 50%를 밑돌고 있죠. 과연 시장은 무엇을 보고 이토록 열광적인 베팅을 한 걸까요? 파이어플라이의 성공적인 달 착륙이라는 단 하나의 이벤트가 이 모든 리스크를 덮을 만큼 강력했던 걸까요? 아니면, 꺼져가던 우주 주식의 불씨를 되살리려는 월가의 또 다른 하이프일까요?
IPO 성공
파이어플라이의 IPO 성공은 단순히 운이 아니었습니다. 유리한 시장 환경, 뜨거운 섹터에 대한 관심, 그리고 완벽한 내러티브라는 3박자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결과죠.
- 돌아온 IPO 시장: 최근 미국 기술주 IPO 시장은 피그마(Figma), 서클(Circle), 코어위브(CoreWeave) 등의 성공적인 상장으로 몇 년간의 침묵을 깨고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습니다. 버블의 신호일까요? 어쨌든 투자자들은 새로운 성장주에 목말라 있었죠
- 우주에 대한 여전한 기대감: 20년에는 버진갤럭틱같은 거품주가 시장에 데뷔했었죠. 그때 기억이 남아있는 걸까요? 스페이스X가 모든걸 바꾼걸까요? 로켓랩(Rocket Lab) 같은 경쟁사가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등, 상업 우주 산업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은 여전히 뜨거웠습니다
- 달 착륙 성공: 무엇보다 가장 강력한 무기는 파이어플라이가 직접 증명해 보인 기술력이었습니다. 2025년 3월, 이들의 달 착륙선 블루 고스트(Blue Ghost)가 민간 기업 최초로 완벽하게 달 표면에 착륙하는 데 성공한 겁니다. 실패가 흔한 우주 산업에서, 이 성공이라는 두 글자는 그 어떤 재무제표보다 강력한 투자 유치 명분이 되어주었습니다
결국 파이어플라이는 IPO를 위한 최적의 타이밍에, 시장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성공 스토리를 들고나온 셈입니다. 첫날 주가가 폭등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바로 다음 날 주가가 17% 가까이 급락하며 첫날 상승분의 대부분을 반납한 것은, 시장이 점차 이들의 화려한 비전 뒤에 숨겨진 재무적 현실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단순한 로켓 회사는 아닌
파이어플라이가 시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이들이 스스로를 단순한 로켓 발사 업체가 아닌 '수직 통합된 우주 및 방산 기술 기업'으로 포지셔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파이어플라이의 사업은 크게 두 개의 축으로 나뉩니다.
- 발사 서비스: 소형 발사체 알파(Alpha)와 현재 개발 중인 중형 발사체 이클립스(Eclipse)를 통해 고객의 위성을 궤도에 올려주는 사업입니다. 꾸준한 현금 흐름을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죠
- 우주선 솔루션: 달 착륙선 블루 고스트(Blue Ghost)와 궤도상에서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는 우주 셔틀 엘리트라(Elytra)를 개발하고 운영하는 사업입니다. NASA나 국방부 같은 큰손들과의 계약을 통해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파이어플라이의 핵심 성장 동력이죠
이 이원화 전략은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구조같아 보이죠. 블루 고스트의 달 착륙 같은 상징적인 성공으로 회사 전체의 가치를 끌어올리고, 이를 통해 확보한 자금과 명성으로 안정적인 수익원이 될 발사 서비스 사업을 키우는 구조니까요. 또한 자체 발사체를 가지고 있으면 미래의 달 탐사나 궤도 서비스 비용을 낮추고 더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여기에 전직 공군 장교이자 방산업체(레이시온, 노스롭 그루먼) 출신인 한국계 CEO 제이슨 킴(Jason Kim)을 필두로, 스페이스X와 로켓랩 출신 엔지니어들이 합류한 경영진은 '뉴 스페이스'의 속도와 전통 방산업체의 신뢰도를 함께 보유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미국 정부 입장에서 볼 때 파이어플라이는 자신들의 가장 중요한 우주 임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혁신적인 파트너로 보이기에 충분하죠.
로켓부터 달 착륙선, 우주 셔틀까지
파이어플라이의 비전은 그들이 개발 중인 제품 포트폴리오에 명확히 드러납니다.
| 제품명 | 종류 | 핵심 능력 | 상태 | 전략적 의미 |
| 알파(Alpha) | 소형 발사체 | 소형 위성 발사 | 운용 중 | 시장 진입 및 국방부 신속 발사 능력 증명 |
| 이클립스(Eclipse) | 중형 발사체 | 대형 위성 발사 | 개발 중 (26년) | 스페이스X 대항마, 노스롭 그루먼(Northrop Grumman)과의 파트너십 |
| 블루 고스트(Blue Ghost) | 달 착륙선 | 달 표면 화물 운송 | 운용 중 | 달 경제 선점의 핵심 |
| 엘리트라(Elytra) | 궤도 셔틀 | 위성 재배치, 궤도상 서비스 | 개발 중 (25년) | 국가 안보 및 고부가가치 우주 물류 사업 |
이 포트폴리오의 경쟁력은 기술의 공유와 검증에 있습니다. 알파 로켓에서 검증된 탄소 복합소재 기술과 엔진 설계가 이클립스 개발에 그대로 적용되고, 블루 고스트의 달 착륙 과정에서 성능이 입증된 추진기가 엘리트라에 탑재되는 식이죠. 하나의 성공이 다른 프로젝트의 리스크를 줄여주고 개발 속도를 높이는 효율적인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있습니다.
밸류에이션
파이어플라이의 재무 상태는 전형적인 고성장-고비용 스타트업의 모습입니다. 2025년 1분기에만 5,590만 달러의 매출을 올리며 연간 매출 1억 4,200만 달러 페이스로 성장하고 있지만 동시에 6,010만 달러의 순손실을 기록했죠.
그런데 시장은 이 회사에 연간 예상 매출의 56배라는 그야말로 상식밖의 밸류에이션을 부여했습니다. 이건 전통적인 항공우주/방산 기업(평균 2.6배)은 물론이고, 최상위 SaaS(소프트웨어 서비스) 기업들(평균 7배, 최상위권 10~15배)과 비교해도 압도적으로 높은 수치입니다.
이게 무엇을 의미할까요? 투자자들이 파이어플라이를 단순한 하드웨어 제조사가 아니라 미래의 '달 물류 시장'을 독점할 플랫폼 기업이라는 스토리를 부여하고 있는겁니다. 로켓 회사의 주식을 사는 게 아니라, 달 경제의 미래에 대한 콜옵션을 사고 있는 셈이죠. 11억 달러에 달하는 수주 잔고와, 무엇보다 '달 착륙 성공'이라는 상징적인 사건이 이런 내러티브를 가능하게 만든 겁니다.
그럴듯하죠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어딘지 모르게 익숙하기도 합니다. 버진갤럭틱은 미래의 우주관광을 독점할 수 있는 플랫폼 기업이 되겠다고 하지 않았었나요? 우주 물류라는건 언제 오게될 미래인걸까요?
왜 지금 상장했을까?
파이어플라이는 분명 이른바 뉴 스페이스 시대의 가장 흥미로운 플레이어 중 하나입니다. 달 착륙 성공으로 기술력을 증명했고, IPO를 통해 야심 찬 계획을 실행할 두둑한 실탄도 확보했습니다. 특히 미국 최대 방위산업체 중 하나인 노스롭 그루먼(Northrop Grumman)과의 파트너십은 중형 발사체 시장 안착과 국가 안보 분야 수주에 보증수표가 되어줄 겁니다.
하지만 파이어플라이가 꿈꾸는 미래가 예정대로, 혹은 빨리 다가올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가장 큰 리스크는 실행 능력, 특히 주력 로켓인 알파의 낮은 발사 성공률입니다. 발사 비즈니스에서 신뢰는 전부입니다. 한 번의 실패는 회사의 근간을 흔들 수 있죠. 또한, 막대한 현금 소모와 불확실한 수익화 경로, 그리고 스페이스X라는, 시장의 모든 규칙을 파괴할 수 있는 잠재적 위협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결국 파이어플라이의 성공은 최초의 기록들을 일상적인 성공으로 바꿀 수 있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시장의 모든 관심을 끌어가는 혁신적인 스타트업에서, 지루할 정도로 안정적인 산업의 핵심으로 거듭나야 하는 거죠. 이 과제가 성공적으로 완수된다면, 파이어플라이는 21세기 우주 경제를 정의하는 위대한 기업 중 하나로 기록될지도 모릅니다. 투자자들에게는 분명 짜릿한 기회지만 그만큼 아찔한 리스크를 동반한 여정이 될 것 같죠.
이 먼 미래를 바라보는, 기나긴 여정이 남아있어 보이는 우주 스타트업이 왜 하필 지금 상장했을까요? 창업자와 투자자들은 항상 가장 높은 가치로 회사의 지분을 평가받고싶어 합니다. 어쩌면 오늘의 주식시장은 그 가장 높은 가치가 가능해진 흥분상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