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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ided by Zero가 뉴스레터를 처음 시작하던 2024년 12월 마지막 주에 "지금의 팔란티어는 닷컴버블 시대로 가도 비쌉니다"라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당시 PSR(주가매출비율)이 74.88배였고, S&P 500에서 비슷한 수준의 기업을 찾아봤는데 없었죠. 70배? 없습니다. 60배? 없습니다. 50배? 없습니다. 30대까지 내려가야 테슬라와 엔비디아가 나온다고 썼었습니다.
그 뒤로 팔란티어의 주가는 더 올랐습니다. 그리고 방금 나온 2026년 1분기 실적을 보면, 솔직히 말해서 좀 할 말이 없습니다. (본 글은 개인의 의견일 뿐 매수 매도에 대한 추천은 아닙니다)

1분기 매출 16.33억 달러. 전년 대비 85% 성장입니다. 월스트리트 컨센서스가 15.3억~15.4억 달러였으니까 약 6% 상회했죠. 조정 주당순이익은 0.33달러로 컨센서스 0.28달러를 18% 넘겼고, GAAP 주당순이익은 조정 수치보다 오히려 높은 0.34달러가 나왔습니다.
보통 기업 소프트웨어 회사는 연매출이 수십억 달러를 넘기면 성장률이 자연스럽게 둔화됩니다. 모수가 커지니까 같은 절대 금액을 더해도 퍼센트가 줄어드는 거죠. '큰 수의 법칙'이라고 불리는 이 현상이 사실상 모든 SaaS 회사의 기본 가정인데, 팔란티어가 이걸 정면으로 깨뜨렸습니다. 연환산 매출이 65억 달러를 넘는 시점에서 85% 성장을 보여준 건, 상장 이래 가장 높은 전년 대비 성장률입니다.
분기 대비 성장률(전분기 대비)도 16%인데, 이건 기저 효과가 빠지는 지표라서 더 의미가 있습니다. 분기 매출이 10억 달러를 넘는 회사가 분기 대비 16%씩 커진다는 건 이제 영업 주기가 빨라지고 있다는 뜻이거든요.
상업 매출 133%
실적에서 가장 눈에 띄는 숫자는 미국 상업 부문 매출 5.95억 달러, 전년 대비 133% 성장입니다. 팔란티어는 오랫동안 '방위, 정보 기관 전용 소프트웨어'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었죠. 오사마 빈라덴 추적에 쓰인 회사. 군사 작전과 대테러에 특화된 회사. 그래서 정부 매출 의존도가 너무 높다는 게 대표적인 약세론이었습니다.
그 약세론이 이번 분기에 또 무너졌습니다. 미국 상업 매출의 분기 대비 성장률은 18%이고, 경영진에 따르면 특정 상업 고객이 정부 고객으로 재분류된 효과를 빼면 실질 성장률은 143%에 달합니다. 133%도 말이 안 되는데 실질은 143%라는 거죠.
이게 의미하는 건 이제 미국 기업들이 AI를 실험 단계에서 실제 예산 배정 단계로 넘겼다는 겁니다. 물류, 제조, 의료, 금융 등 핵심 산업에서 팔란티어의 플랫폼에 연간 수천만 달러짜리 계약을 거는 일이 일상이 되고 있습니다. 분기 중 1,000만 달러 이상 계약이 47건 체결됐는데, 이런 규모의 계약은 CIO와 이사회 승인이 필요한 수준이거든요. 가벼운 SaaS 구독이 아니라 기업의 핵심 운영 인프라로 들어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익률
이런 매출 성장도 대단하지만, 이익률 구조가 더 놀랍습니다.
조정 매출총이익률 88%, 조정 영업이익률 60%, GAAP 순이익률 53%, 영업 현금흐름 마진 53%, 조정 잉여현금흐름 마진 57%
매출총이익률 88%는 순수 소프트웨어 기업 최상위권입니다. 팔란티어에 대한 오래된 비판 중 하나가 "실제로는 컨설팅 회사 아니냐"는 거였거든요. 고객사에 엔지니어를 파견해서 시스템을 맞춤 구축하는 방식이었으니까요. 컨설팅 회사의 매출총이익률은 보통 30~50%입니다. 88%는 그런 사업 모델에서 나올 수 없는 숫자죠. 배포와 통합이 자동화, 표준(자산)화됐다는 이야기인겁니다.
매출이 85% 느는 동안 영업이익률이 60%라는 건 이제 비용이 매출 성장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좋은 의미에서요. 보통 기업 소프트웨어 회사가 이렇게 빠르게 성장하려면 영업과 마케팅에 엄청난 돈을 쏟아부어야 해서 영업이익률이 마이너스로 가는 경우가 많거든요. 팔란티어는 거꾸로 갔습니다.
SaaS 업계에서 기업의 건강도를 재는 유명한 지표는 룰 오브 40죠. 매출 성장률과 이익률을 더해서 40을 넘기면 우수한 기업이라는 기준이죠. 팔란티어는 85% + 60% = 145입니다. 이건 기준을 넘긴 게 아니라 기준을 부숴버린 수준이고, 시장에서 이정도 수준의 수치가 나온 건 아마 흔치 않을겁니다.
근데 주가는 빠졌다
이 실적이 나온 직후 팔란티어 주가는 오히려 몇 포인트 떨어졌습니다. 모든 지표에서 역사적 기록을 세운 실적인데 왜?
실적 발표 시점의 시가총액이 약 3,500억 달러, PER(주가수익비율)이 약 234배였습니다. 234배라는 건 시장이 앞으로 수년~수십 년간의 완벽한 실행을 이미 현재 주가에 넣어놨다는 뜻이거든요. 이런 상태에서 실적이 아무리 좋아도 주가가 추가로 올라가기 어렵습니다. 좋은 실적은 주가를 올리는 촉매가 아니라, 현재 가격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 조건이 되는 거죠.
팔란티어의 거래 패턴에도 특수한 점이 있습니다. 리테일 투자자 비중이 매우 높고, 실적 발표 전 몇 주 동안 콜옵션 매수가 쏟아지면서 주가와 내재변동성이 같이 올라갑니다. 실적이 나오면 내재변동성이 급락(IV 크러시)하면서 옵션 마켓메이커들이 헤지를 풀게 되고, 이 과정에서 주가에 하방 압력이 생기는 구조죠. 밈주식에서 자주 보이는 패턴인데, 팔란티어에도 적용됩니다.
다만 뒤집어 생각하면, PER 234배 상태에서 역사적 실적을 내놓고 주가가 몇 포인트만 빠진 건 오히려 놀라운 일입니다. 15~20% 급락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밸류에이션에서 버텼다는 건, 시장이 이 프리미엄을 근본적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죠.
그래서 비싼 건가
2024년 12월에 제가 PSR 74.88배를 보고 "닷컴버블 시절에도 비싸다"고 했을 때, 틀린 건 하나 있었습니다. 팔란티어가 컨설팅 모델에서 소프트웨어 모델로의 전환을 완성할 속도를 과소평가한 거죠. 매출총이익률 88%와 미국 상업 133% 성장을 보면, 이 회사가 방위 전용 업체에서 기업 AI 운영체제로 바뀌는 전환이 제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빠르게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가격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팔란티어는 분기 잉여현금흐름 9.25억 달러를 만들어내는 자기 자금 조달 기업이 됐고, 2026년 전체 잉여현금흐름 전망치가 42억~44억 달러입니다. 문제는 시가총액 3,500억 달러가 이 현금흐름의 약 80배라는 거죠.
85% 성장률을 PER에 반영하면(PEG 비율) 숫자가 좀 합리적으로 보이긴 합니다. 경영진은 2분기 매출 가이던스를 약 18억 달러로, 연간 가이던스를 76.5억~76.6억 달러(전년 대비 약 71% 성장)로 올렸고, 미국 상업 매출만 연간 120% 성장을 전망했죠. 이 속도가 유지된다면 현재 PER은 빠르게 정상화됩니다.
결국 같은 질문으로 돌아옵니다. 좋은 회사와 좋은 가격은 다릅니다. 제가 1년 반 전에 한 말이기도 하고, 그 뒤로 주가가 더 올라서 그 말은 틀렸다고 할 수도 있겠죠. (맞습니다, 너무 빠른거나 너무 늦은건 틀린 것과 다름이 없죠).
하지만 PER 234배라는 건 여전히 앞으로 수년간의 완벽한 실행이 가격에 이미 들어가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팔란티어가 최고의 기업 AI 회사라는 데는 더 이상 이견이 없지만, 최고의 회사가 언제나 최고의 투자 타이밍인 건 아니라는 건 닷컴버블 때도, ZIRP 때도, 지금도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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