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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키(Nike)가 2021년 고점 이후 시장에서 증발시킨 기업 가치는 무려 1,840억 달러에 달합니다. 현대 비즈니스 역사상 가장 극적인 몰락 중 하나로 기록될 수준이죠.
이런 위기에 빠진 나이키가 다가오는 2026년 1월에 나이키 마인드(Nike Mind)라는 뇌과학 기반의 새로운 신발을 출시한다고 합니다. 과연 이 혁신적인 신발 한 켤레가 흔들리는 제국을 구원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위기 상황에서 내놓은, 그저 그럴듯한 마케팅 쇼에 불과할까요?

전략이 낳은 참사
잠깐만 나이키의 몰락을 훑어보죠. 나이키의 주가는 고점 대비 64% 폭락했고, 1980년 상장 이래 최악의 하루(하루 만에 280억 달러 증발)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순이익은 44%나 쪼그라들었죠.

그리고 이 몰락의 원인은 다소 명확해보입니다. 오만함.
나이키는 컨설팅펌(Bain) 및 이베이(ebay), 서비스나우(ServiceNow)와 같은 굵직한 IT기업 출신인 존 도나호(John Donahoe) 전 CEO 체제 하에서 소비자 직접 판매 가속화 전략을 밀어붙였습니다. 풋락커(Foot Locker) 같은 도매 파트너들과의 관계를 끊고, 자사(DTC)에서만 물건을 팔겠다고 선언했죠. 물론 코로나 직후 발동된 이 전략은 코로나와 제로금리가 맞물리면서 주가의 역사적인 폭등을 만들어 냈었죠. 하지만 장기적으로 어떻게 됐을까요.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나이키가 비워준 도매상들의 황금 같은 매대를 온 러닝(On Running), 호카(Hoka), 아식스(Asics)가 차지해버린 겁니다. 그리고 동시에 나이키는 고프코어 패션 트렌드에서 꽤나 뒤쳐지게 되었죠. 이 회사들은 지난 1년간 80~100%씩 주가가 폭등하며 나이키의 점유율을 갉아먹었습니다. 웨드부시의 애널리스트 톰 니키치의 말처럼, 나이키는 "무엇(WHAT)을 팔지에 집중하는 대신, 어디서(WHERE) 팔지에만 집착하다가" 본질을 잃어버린 겁니다.
결국 도나호는 물러났고, 32년 나이키 맨인 엘리엇 힐(Elliott Hill)이 구원투수로 등판했습니다. "우리는 스포츠에 대한 집착을 잃어버렸다"는 고해성사와 함께, 본사 직원 740명을 포함한 1,600명 이상의 해고와 20억 달러 규모의 비용 절감이라는 고통스러운 구조조정이 시작되었습니다.
뇌를 위한 신발?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나이키 마인드’는 분명 기술적으로 흥미롭습니다. 나이키 스포츠 연구소(NSRL)에서 10년 넘게 연구한 이 신발은 기존의 퍼포먼스화와는 접근 방식부터 다릅니다.
핵심 기술은 발바닥의 기계적 수용체(mechanoreceptors)를 자극하도록 해부학적으로 매핑된 22개의 독립적인 폼 노드입니다. 나이키는 이게 뇌의 감각운동 네트워크(sensorimotor network)를 활성화한다고 주장하고 있구요.
기존 나이키 신발들이 "더 높이 점프하고 더 빨리 달리는" 퍼포먼스에 집중했다면, 나이키 마인드는 운동 전의 ‘정신적 준비’와 운동 후의 ‘회복’에 초점을 맞춘 틈새 상품이자 새로운 카테고리를 창조해내는 혁신 제품인겁니다. 맨시티의 홀란드나 르브론 제임스 같은 슈퍼스타들이 테스트를 마쳤고, 가격은 $90~$145 선으로 책정되었죠. (우리나라에서는 약 11~18만원 정도)

경쟁자인 우포스(OOFOS)나 호카가 물리적 쿠셔닝을 강조할 때, 나이키는 뇌파(EEG) 측정과 근전도 검사 데이터를 들고나와 '뇌'를 공략하는 차별화 전략을 택했습니다. 나이키는 "뇌에서부터 아래로(Brain down)" 설계했다고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그 전에는 볼 수 없었던 접근이고, 나이키가 여전히 남들과 다르게 생각할 줄 아는 기업임을 보여주려는 시도인건 분명해 보입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계산기를 두드려봅시다. 아무리 혁신적인 제품이라고 해도 이 나이키 마인드가 나이키를 구할 수 있을까요? 사실 불가능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규모 때문입니다.
나이키는 연매출 460억 달러짜리 압도적 거대 기업입니다. 매출의 1%만 올리려 해도 5억 달러어치를 팔아야 하고, 의미 있는 반등의 신호(2~3% 성장)를 만들려면 10억 달러 이상의 매출이 필요합니다.
비교해 볼까요? 지금 시장을 휩쓸고 있는 온 러닝의 전체 연매출이 24년 기준으로 약 26억 달러(25년 3분기 기준으로는 약 34억달러)입니다. 즉, 온 러닝이라는 회사가 통째로 나이키에 들어와도 나이키 전체 매출의 5.6%밖에 안 된다는 소리입니다.
그런데 나이키 마인드는 일단 주력 상품인 러닝화도 아니고, 현시점에서는 분명히 회복용이라는 틈새 상품입니다. 낙관적으로 봐도 연간 2억~4억 달러 매출이 최대치일 겁니다. 전체 매출의 1%도 안 되는 제품이 회사의 재무제표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의류 브랜드 기업에서 단일 제품이 회사를 구한다는 건 스타트업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지, 나이키 같은 성숙한 대기업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판타지입니다.
신호
그렇다면 나이키 마인드는 무의미할까요? 아닙니다. 이 제품의 진짜 가치는 매출이 아니라 신호에 있습니다.
지난 몇 년간 나이키는 혁신을 멈췄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에어 조던 같은 과거의 유산을 활용한 색깔 놀이에만 매몰되어 있었죠. 색깔만 다른 범고래가 대체 몇개가 존재하는지 셀 수 도 없는 상태였죠. 지금이라고 덩크를 안내는건 아니지만요.(덩크가 안팔리는건 아닙니다)
하지만 나이키 마인드는 다릅니다. 10년의 R&D, 특허 기술, 새로운 카테고리 창출 시도는 나이키의 심장인 ‘혁신 엔진’이 아직 완전히 꺼지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애플이 잡스 복귀 이후 아이팟 하나로 부활한 게 아닙니다. 아이팟, 아이튠즈, 그리고 아이폰으로 이어지는 연쇄적인 혁신의 파이프라인과 브랜드 재건이 애플을 구했죠. 나이키 마인드 역시 엘리엇 힐 CEO가 이끄는 새로운 혁신 사이클의 ‘챕터 1’으로서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어쩌면 나이키는 아직 죽지 않았고 여전히 미친 짓(혁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시장과 내부 직원들에게 보여주는 상징적 제품인 겁니다.
다행히 시장에는 나이키 마인드 외에도 긍정적인 신호들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경쟁사에게 가장 많이 뺏겼던 러닝 부문 매출이 2026 회계연도 1분기에 20% 이상 성장했는데요. 특히 210달러짜리 고가 라인인 페가수스 프리미엄은 북미 전역에서 거의 품절되었습니다. 파트너십을 복구한 결과로 도매 매출이 7% 성장세로 돌아섰구요. 다만 여전히 중국 매출은 10% 이상 빠지고 있고, 프로모션 남발로 총이익률은 42%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회복을 지나 혁신으로
무디스(Moody's)는 최근 나이키의 신용등급을 A2로 하향 조정했습니다. 2026년까지는 나이키가 성장하는 시기가 아니라, 빚을 갚고 체질을 개선하는 회복의 해가 될 것이라는 진단인거죠.

나이키 마인드 하나가 나이키를 구할 수는 없습니다. 나이키가 다시 일어서려면 훨씬 더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작업들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도매 유통망을 지속적으로 복구하고(대부분 복구되었다고는 하죠), 중국 시장에서 반등하며, 마진율을 회복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나이키 마인드 같은 혁신적인 제품들이 러닝, 농구, 라이프스타일 등 모든 카테고리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와야 하죠.
하지만 나이키 마인드를 만들어낸 그 혁신 마인드셋 없이는 나이키의 부활도 없을 겁니다. 내년 초에 지켜봐야 할 것은 나이키 마인드의 판매량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나이키가 다시 에어 조던 같은 과거의 유산 파먹기를 멈추고, 스포츠와 혁신에 미친 기업으로 돌아왔는지에 대한 진정성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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