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ided by Zero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IT테크, 스타트업 그리고 자본시장에 대한 2차적 사고를 공유합니다.
요즘 시장 분위기는 오락가락하죠. 나스닥은 흔들리고, 미국 소비자 심리는 역대 최저 수준이며, 중국 경제는 디플레이션 압력까지 받고 있습니다. 어떻게보면 투자자들이 몸을 사리는 위험 회피(Risk-Off) 국면이 오는건가?싶기도 하죠.
그런데 한편에선 또 일관적인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어떤 스타트업들은 천문학적인 돈을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이고 있거든요. 지난주 AI 개발툴 커서(Cursor)는 마이너스 매출 총이익이라는 결함에도 불구하고 293억 달러의 가치를 인정받았고, 설립 1년도 안 된 Thinking Machines Lab(TML)은 제품도 없이 500억 달러의 밸류에이션을 논의 중입니다.
단순한 위험 선호라기보다는 시장이 완전히 K자로 찢어진 것으로 보이는데요. AI라는 극소수의 핫스팟을 제외한 모든 섹터는 얼어붙고, 모든 유동성이 오직 AI라는 단 하나의 구멍으로 빨려 들어가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

K
시장이 정말 위험 회피 상태인지부터 보죠. 데이터는 일정한 방향성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기도 한데요.
이번달 들어서는 나스닥이 흔들리며 AI 고밸류 주식에 대한 피로감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다우존스 지수는 최고점을 찍고 있죠. 묻지마 투자가 끝나고 실제 수익과 실적이 있는 빅테크 우량주로만 돈이 몰리는 퀄리티 회피 현상이 일어나고 있죠.
왜일까요? 시장은 매크로에 자신이 없어보입니다. 미시간대 소비자 심리 지수는 1년 만에 30%나 폭락하며 역대 두 번째로 낮은 수치를 기록했습니다. 사상 최장기 정부 셧다운과 인플레이션 우려로 소비 여력이 바닥난 거죠.
다른 한축인 중국에서는 3분기 명목 GDP 성장률(3.7%)이 실질 GDP 성장률(4.8%)보다 낮게 나왔습니다. 디플레이션 신호죠. 세계 성장의 한 축이 (대체 언제까지?) 식어가고 있는 겁니다.
이런 매크로 지표는 위험 회피를 외치고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AI 스타트업에만 수십억 달러가 쏟아질 수 있을까요?
여기에 K자형 양극화의 핵심이 있습니다. 미국 소비자 심리 조사에서 유일하게 신뢰도가 11% 상승한 집단이 있죠. 바로 주식 보유 상위 3분의 1 가구입니다. 이 가구들의 부를 지탱하는 주식 시장은 AI 붐이 떠받치고 있죠. 즉, AI 붐이 자산가의 부를 늘리는 K자의 위쪽 다리를 만드는 동안 AI로 인한 일자리 위협과 임금 정체는 자산이 없는 서민들의 심리를 얼어붙게(K자의 아래쪽 다리) 만드는 겁니다. 거시 경제의 부진과 AI 투자 열풍은 별개의 현상이 아니라 서로를 강화하는 원인과 결과인 셈입니다.
커서(Cursor)
AI 투자 열풍의 상징인 커서(Cursor)의 사례를 뜯어보면, 단순한 낙관론은 아닙니다. 스타트업으로써 가지게 되는 비즈니스 모델 결함을 뒤집기 위한 23억 달러짜리 생존 베팅에 가깝죠.
상반기에 다뤘죠. 커서는 AI 기반 코딩 툴로, 올해 엔터프라이즈 매출이 100배 성장하며 역대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스타트업이라는 타이틀을 얻었습니다. 문제는 이 회사가 돈을 벌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매출 총이익률 -30%)를 가졌다는 겁니다.
원인은 AI 코딩 앱의 파워 유저 문제 때문입니다. SaaS와 달리, AI 앱은 사용자가 쓸 때마다 비싼 API 호출 비용(추론 비용)이 발생하죠. 커서는 월 20달러를 내는 파워 유저 한 명이 20달러 이상의 API 비용을 발생시키는 구조였습니다. 커서는 연 5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지만, API 공급사인 앤트로픽에만 연 6억 5천만 달러를 지불하고 있다고 하죠.
그리고 이런 치명적인 결함에도 불구하고 293억 달러라는 가치를 인정받은 겁니다. 이는 연 매출 5억 달러 기준 PSR 59배에 달하는 수치죠.
이번 23억 달러 투자는 이 망가진 수익 구조를 바로잡기 위한 자금일 수도요. 커서는 최근 컴포저(Composer)라는 자체 AI 모델을 출시했습니다. 더 이상 앤트로픽이나 OpenAI에 비싼 API 비용을 내지 않고 충분히 좋은 자체 모델로 비용 구조를 뜯어고치겠다는 수직 통합 선언이죠.
하지만 이 피벗은 두 개의 거대한 전선에서 싸워야 하는 치열한 경쟁을 의미하게된 것이기도 합니다.
공급사이드에선 API 공급사였던 앤트로픽은 이제 커서에서 번 돈으로 클로드 코드라는 직접적인 경쟁 제품을 만들고 있고,
하이퍼스케일러, 특히 마이크로소프트 깃허브 코파일럿은 커서와 거의 동일한 기능을 월 10달러라는 절반 가격에, 심지어 보조금까지 줘가며 팔고 있죠.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코파일럿은 그 자체로 돈을 버는 사업이 아니라, 핵심 사업인 애저(Azure) 클라우드 사용자를 묶어두기 위한 미끼 상품이니까요.
결국 커서는반값에 파는 보조금 받는 제품(코파일럿)과 마이너스 마진을 감수해가며 경쟁해야 하는 처지입니다. 23억 달러는 이 불공정한 싸움에서 한 싸이클 더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의 실탄인 셈이죠.
Thinking Machines Lab(TML)

커서가 AI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베팅이라면, TML 사례는 더 순수한 형태의 위험 선호를 보여줍니다. TML은 제품도, 매출도 없이 오직 창업팀의 명성 하나만으로 천문학적인 가치를 인정받고 있죠.
TML은 2025년 2월에 설립되어, 불과 5개월 만인 7월에 20억 달러의 시드 투자를 120억 달러 가치로 유치했습니다. 그리고 4개월이 지난 지금, 500억~600억 달러의 밸류에이션으로 신규 펀딩을 논의 중입니다.
이 미친 밸류에이션의 근거는 뭘까요? MVP가 잘나왔을까요? 아니요. 단 하나, OpenAI에서 나온 창업팀이라서가 다입니다.(물론 당연히 다른 요소를 보긴하죠)
창업자이자 CEO인 미라 무타리(Mira Murati)는 OpenAI의 CTO였고, 최고 과학자인 존 슐먼(John Schulman)은 OpenAI 공동창업자이자 강화학습의 핵심설계자였습니다. 리서치 부사장인 바렛 조프(Barret Zoph)는 OpenAI의 리서치 부사장이자 ChatGPT 공동 개발자였구요.
VC들은 이 드림팀이 차세대 AI의 핵심 기술을 알고 있다는 데 500억 달러를 베팅하는 인재 차익거래를 하고 있는 겁니다.
TML의 첫 제품 팅커(Tinker)는 거대 파운데이션 모델(LLM) 경쟁에 직접 뛰어드는 대신, 기업들이 더 작은 오픈소스 모델을 파인튜닝할 수 있게 돕는 관리형 API 서비스를 표방한다고 하죠. 자본 소모적인 군비 경쟁을 피하고, 기업용 맞춤형 AI 시장의 ‘곡괭이와 삽’을 팔겠다는 고수익이 가능한 인프라 전략이긴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TML이 아직 아무것도 없는 상태인건 변함이 없습니다.
커서와 TML의 사례는 벤처 캐피탈 시장의 K자형 분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025년 3분기 VC 데이터에 따르면, AI가 아닌 스타트업의 후기 단계(시리즈 C+) 투자 중 28%가 다운 라운드(기업가치 하락)를 겪었습니다. 확실한 위험 회피이자 어떻게보면 펀딩 겨울이죠.
하지만 동시에, AI 스타트업들은 비 AI 스타트업보다 2.5배(20배 vs 8배) 높은 매출 배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VC들은 AI가 아닌 포트폴리오(다운 라운드를 맞는 28%)를 사실상 포기하고, 남은 자금을 AI 메가 라운드에 쏟아붓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

이게 어떤 고점 신호가 될까요? 알 수 없겠죠.
우리는 GPT가 작동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가치를 누가 차지할 것인가(커서 vs MS), 그리고 그 가치의 총량이 얼마인가일 뿐입니다. 투자는 실제 폭발적인 매출(커서)이나 세계 최고 수준의 팀(TML)이라는 가능성에 이루어지고 있죠.
다만 시장은 위험 회피는 보이지 않고, AI에만 극도로 편중된 위험 선호 상태인 겁니다. 이 K자형 양극화는 AI 섹터가 다른 모든 분야의 손실을 메우고도 남을 만큼의 가치를 창출할 것이라는 투자자들의 믿음 위에서만 성립 가능하죠.
그리고 이런 극단적인 쏠림은, 본질적으로 매우 불안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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