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ided by Zero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IT테크, 스타트업 그리고 자본시장에 대한 2차적 사고를 공유합니다.
지금의 AI 시대를 정의하는 가장 중요한 동맹을 꼽으라면 단연 마이크로소프트(MS)와 오픈AI일 겁니다. MS는 130억 달러가 넘는 막대한 자금과 인프라를, 오픈AI는 혁신적인 기술을 제공하며 서로를 키워줬죠. MS의 빙(Bing), 365 코파일럿, 애저(Azure) 서비스는 모두 오픈AI의 기술 위에서 화려하게 부활했습니다.
그런데 지난주 MS가 'MAI-1'이라는 자체 거대언어모델(LLM)을 깜짝 공개했습니다. 오픈AI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이자 파트너였던 MS가 이제는 직접 경쟁자가 되어 경쟁에 뛰어들겠다는 신호탄으로 읽히는데요. 과연 이들의 밀월 관계는 끝난 걸까요? 그리고 MS는 왜 지금 오픈AI와의 경쟁을 선언한 걸까요?
동맹의 시작, 균열의 조짐
MS와 오픈AI의 관계는 처음부터 서로의 필요에 의해 맺어진 전략적 동맹이었습니다. 2019년 MS의 첫 10억 달러 투자는 AI 연구에서 구글 등 경쟁사에 뒤처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던 MS에게는 기술을 확보할 절호의 기회였고, 천문학적인 컴퓨팅 자원이 필요했던 오픈AI에게는 생명줄과도 같았죠. MS는 오픈AI의 독점적 클라우드 파트너가 되는 동시에 오픈AI의 IP에 대한 독점적 라이선스까지 확보했습니다.
이후 2023년 100억 달러에 달하는 추가 투자를 통해 MS는 오픈AI의 지분 49%를 확보한 최대 주주가 되었죠. 오픈AI의 기술은 MS의 모든 제품(GitHub Copilot, Bing, MS 365 Copilot 등)에 깊숙하게 통합되었고, MS는 '애저 오픈AI 서비스'를 통해 오픈AI의 기술을 자사 클라우드 고객에게 재판매하며 막대한 이익을 거두기 시작했죠. 완벽한 공생 관계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 견고해 보였던 동맹은 2023년 11월, 샘 올트먼 해고 사태로 인해 그 취약성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오픈AI 이사회가 하루아침에 CEO를 내쫓는 걸 보면서, MS는 파트너의 내부 불안정성이 자신들의 AI 전략 전체를 뒤흔들 수 있다는 현실을 직시하게 됐죠. 당시 사티아 나델라 CEO가 올트먼과 그의 팀을 직접 고용하겠다고 나섰던건 그만큼 오픈AI에 대한 의존도 리스크를 뼈저리게 느꼈다는 방증입니다.
이 사건 이후 규제 당국의 압박도 거세졌습니다. 영국 경쟁시장청(CMA) 등은 MS-오픈AI 관계가 사실상 위장 합병 아니냐며 조사에 착수했죠. 결국 MS는 오픈AI 이사회의 옵저버석을 포기하는 등 한발 물러서는 제스처를 취해야 했습니다.
파트너십의 핵심이었던 '애저 클라우드 독점 사용' 조항도 삐걱거리기 시작했는데요, 오픈AI가 오라클 등과 손잡고 1,000억 달러 규모의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등 자체 인프라 확보에 나서면서, MS의 영향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죠. 여기에 더해, 오픈AI가 범용인공지능(AGI)을 달성했다고 판단하면 MS의 독점 라이선스를 회수할 수 있다는 'AGI 조항'은 둘 사이의 근본적인 긴장 관계를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죠.
MAI-1
MAI-1의 등장은 이런 배경 속에서 MS가 내놓은 독립 선언과도 같습니다. 더 이상 한 회사에 모든 것을 의존할 수는 없다는 전략적 판단이 깔려있는 거죠. MS가 자체 모델 개발에 나선 이유는 명확합니다.
- 비용 통제: 오픈AI 모델 사용료와 수익 배분은 천문학적인 비용입니다. 자체 모델을 통해 이 비용을 통제하고 AI 서비스의 장기적인 수익성을 확보하려는 겁니다
- 수직적 통합: 자체 반도체, 애저 클라우드, 그리고 자체 모델까지, AI 기술 스택 전체를 소유함으로써 완벽한 최적화를 이루고 더 나은 사용자 경험을 제공할 수 있죠
- 리스크 관리: 오픈AI의 불안정성이나 잠재적인 이탈에 대비하는 확실한 보험이 됩니다
- 협상력 강화: 손에 대체카드를 쥐고 있어야 오픈AI와의 라이선스 및 파트너십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죠
이 프로젝트를 이끄는 인물은 구글 딥마인드의 공동 창업자였던 무스타파 술레이만(Mustafa Suleyman)입니다. 술레이만의 전략은 흥미롭습니다. 무조건 최고 성능의 모델을 만들기보다 '선두와 3~6개월 격차를 둔 2등을 유지하며 비용 효율적인 모델을 만드는 데 집중하겠다는 거죠.
MS가 이번에 공개한 모델은 MAI-Voice-1과 MAI-1-preview, 두 가지입니다. 이 모델들의 면면을 보면 무스타파 술레이만의 효율성 전략이 그대로 드러나죠.
우선 MAI-Voice-1은 매우 효율적인 음성 생성 모델입니다. 단일 GPU 환경에서 1초도 안 되는 시간에 1분 분량의 고품질 오디오를 생성할 수 있다고 하죠. 실시간 음성 AI 서비스의 비용과 확장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서비스인 셈입니다.
핵심은 역시 범용 모델인 MAI-1-preview입니다. 이 모델은 몇 가지 중요한 특징을 가지고 있죠.
- 자본 효율적 훈련: 약 1만 5천 개의 엔비디아 H100 GPU로 훈련했다고 알려졌습니다. 이는 오픈AI나 xAI가 10만 개 이상의 GPU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것과 비교하면 훨씬 적은 규모죠. 막대한 비용을 쏟아붓기보다 효율적인 훈련에 집중했다는 의미
- MoE 아키텍처: 적은 연산 비용으로도 거대 모델의 성능을 낼 수 있는 MoE(Mixture-of-Experts) 구조를 채택
- 데이터 전략: 무작정 많은 데이터를 쏟아붓는 대신, '완벽한 데이터'를 선별하여 훈련 효율을 극대화하는 데 집중
그렇다면 성능은 어떨까요? MS는 학술 벤치마크 점수 대신 인간 선호도를 평가하는 LMArena에 모델을 올려 실력을 검증받았습니다. 초기 순위는 13위. 오픈AI, 구글, 앤트로픽 같은 최상위권 모델들 바로 아래 그룹에 안착했죠. 최고는 아니지만, 충분히 경쟁력 있는 모델을 효율적으로 만들어냈다는 전략적 목표를 정확히 달성한 결과로 보입니다.
애저(Azure)
MS는 이제 오픈AI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이자, 최대 투자자이며, 동시에 가장 큰 고객이자, 가장 직접적인 경쟁자가 되었습니다. 이 복잡한 코피티션(Co-opetition) 관계의 핵심 전쟁터는 바로 MS의 클라우드 플랫폼 애저(Azure)입니다.
애저는 단순히 AI 모델을 빌려주는 공간이 아니죠. MS는 애저 AI 파운드리라는 일종의 AI 슈퍼마켓을 만들었습니다. 이곳에서는 오픈AI의 GPT 모델뿐 아니라, MS 자체 모델인 MAI와 Phi, 그리고 Meta의 라마(Llama) 같은 외부 오픈소스 모델까지 모두 제공합니다.
그리고 이 슈퍼마켓의 지배자는 모델 라우터(Model Router)라는 기능입니다. 사용자가 AI 작업을 요청하면, 이 라우터가 작업의 종류, 복잡도, 비용 등을 고려해 가장 적합한 모델에게 자동으로 일을 분배하죠. 겉보기엔 중립적인 기술이지만 사실은 MS의 강력한 무기입니다.
이 라우터를 통해 MS는 사용자가 모르는 사이에 비싼 오픈AI 모델이 하던 일을 더 저렴한 자사의 MAI-1 모델이 처리하도록 서서히 전환할 수 있습니다. 파트너와 요란하게 결별할 필요 없이, 인프라 단에서 조용히 주도권을 가져오는 겁니다.
파트너를 넘어 플랫폼 지배자
MAI-1의 등장은 MS가 더 이상 오픈AI 기술을 유통하는 총판에 머무르지 않겠다는 선언입니다. LMArena 순위 13위라는 데뷔 성적 자체가 시장을 뒤흔들 혁명은 아니지만, 그 전략적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죠.
MS는 자체 모델을 통해 기술적 독립성을 확보하고, 애저라는 플랫폼 위에서 모든 AI 모델을 지휘하는 역할을 하려 합니다. 최고급 연산은 여전히 오픈AI에게 맡기겠지만 대부분의 일반적인 태스크는 자사의 모델(MAI)에게 맡기고, 때로는 외부 오픈소스 모델도 활용하면서 전체적인 수익은 자신이 가져가는 구조를 만들고 있는 겁니다.
오픈AI와의 동맹은 당분간 계속되겠지만, 그 관계의 무게추는 이제 명백히 MS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MS의 진짜 목표는 최고의 AI 모델을 만드는 것을 넘어 모든 AI 모델이 경쟁하는 판 자체를 지배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