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점사이 네 번째

세점사이의 네 번째 뉴스레터를 보내드립니다.

2022.09.26 | 조회 3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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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점사이

말줄임표 사이에서 하고 싶었던 말들을 담습니다.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세점사이의 네 번째 레터를 보내드리며 인사드립니다. 이 레터가 드디어 한 달째가 된 셈인가요? 다음 레터는 10월의 인사를 해야 하겠네요. 뭔가 설레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저는 막 촬영을 마치고 퇴근하기 전 이 문구를 작성하고 있어요. 집에 가는 길은 아마 쌀쌀할 것 같네요. 음, 그 점이 마음에 들어요. 헤드폰, 긴팔 셔츠, 자켓을 좋아하거든요. 쌀쌀한 날씨에는 세 가지를 모두 할 수 있습니다. 코트를 입을 수 있는 시기가 온다면 조금 더 행복해질지도 모르겠네요. 언젠가는 너무 추워지겠지만, 적당함이란 건 아주 잠깐 존재하기 때문에 더 좋은 걸지도 몰라요. (하지만 지중해성 기후에서 사는 사람들이 부러워지는 건 어쩔 수 없어요.)

오늘은 필름사진에 대한 글을 보내드리려고 해요. 그래서 필름으로 찍은 사진들을 몇 장 공유해 보겠습니다. 사실 요즘은 필름으로 풍경을 잘 찍지는 않지만(가격이 너무 올라 버렸어요), 그럼에도 필름으로 담은 풍경은 오히려, 늘 꼭 담아야만 했던 이유가 있는 더 소중한 사진들이 되었습니다. 사실 사진을 찍다 보면 의미없이 찍게 되는 컷들이 정말 많거든요. 

중형필름을 들고 찍은 풍경 사진입니다. 저 물결을 너무 담고 싶었어요.
중형필름을 들고 찍은 풍경 사진입니다. 저 물결을 너무 담고 싶었어요.
좋아하는 집 앞 카페의 빛입니다. 채광이 정말 좋죠?
좋아하는 집 앞 카페의 빛입니다. 채광이 정말 좋죠?
필름 카메라 하나만 들고 밤 산책을 나선 날이에요.
필름 카메라 하나만 들고 밤 산책을 나선 날이에요.
파란 하늘, 그리고 오르막을 올라가는 오토바이. 셔터를 누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파란 하늘, 그리고 오르막을 올라가는 오토바이. 셔터를 누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여유로운 오후의 모습.
여유로운 오후의 모습.
아까의 그 카페입니다. 빛이 정말 좋아요.
아까의 그 카페입니다. 빛이 정말 좋아요.
제주도 갈 비행기를 기다리는데 대기가 정말 길어졌어요.
제주도 갈 비행기를 기다리는데 대기가 정말 길어졌어요.
설명이 필요할까요!
설명이 필요할까요!
완벽한 물빛입니다.
완벽한 물빛입니다.
벚꽃을 찍으려고 한참을 걸었어요. 벚꽃은 정작 얼마 찍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 장면은 완벽했어요.
벚꽃을 찍으려고 한참을 걸었어요. 벚꽃은 정작 얼마 찍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 장면은 완벽했어요.
바다.
바다.
바다!
바다!

네 번째 글을 보내드립니다. 저는 필름과 디지털을 병행하면서 사진 작업을 하고 있는데요, 이 중 필름사진에 대해서는 일종의 양가감정이 있어요. 여기에 대해 생각해 보면서 쓴 글입니다.


오돌토돌한 기억들

필름사진 찍기를 사랑해 마지않는다. 필름이 한 롤에 2만원을 훌쩍 넘기는 시대에도 나는 여전히 서랍 가득 35mm 필름을 쌓아두고 있다. 사진 작업을 나갈 때 자청해서 필름 카메라를 추가로 들고 나간다. 불필요한 짐도 늘고 필요없는 돈도 나가는 일이지만 신경쓰지 않는다. 앓는 소리야 많이 해도 애초에 그냥 필름으로 사진을 찍고 싶어 안달이 나 있는 상태라서 큰 의미는 없다.디지털 이미지 생산에 너무 익숙해진 나에게 필름사진은 사진에서 거의 마지막으로 남은 예측 불가능의 영역이다. 통제불가능함은 의외성을 만들고, 의외성은 설렘을 준다.

 

사실 그런 심적 요소를 제한다면 통제광적으로 작업하는 입장에서 필름, 특히 35mm 필름의 이미지는 좋아하기 어렵다. 일단 색온도가 고정되어 있어 상황과 맞지 않는 컬러를 내줄 때가 많다. 더욱이 이미지 자체의 해상도가 너무 낮고 노이즈도 심하게 끼어 버려서 의도한 디테일이 나오지 않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그 노이즈 때문에, 상세하게 보정을 할 때 노이즈의 결을 거스르지 않기 위한 줄타기를 해야 한다. 나는 왜 신형 고급 렌즈와 고화소 카메라를 놔두고서 이런 구세대 기술의 이미지와 신경전을 하고 있는 걸까? 작업을 하다 보면 문득 회의감이 들 때가 많다.

그놈의 노이즈. 하여, 필름 작업은 나에게 득보다 실이 많다. 물론 권태를 이기기 위한 심리적 테라피로서는 나쁘지 않겠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필름사진을 찍는다는 것이 달러 환율이 1400원을 찍어버린 시대에 수십만원어치 필름을 직구해야 한다는 공포감, 그리고 그렇게 돈을 써서 보정해야 할 (심지어 손 대기 더 까다로운) 이미지 파일을 원 플러스 원으로 만들어낸다는 비통함을 함께 가져옴을 고려한다면 필름 사진 찍기가 심리적으로 그렇게 괜찮은 테라피라고 할 수 있을지 회의감이 든다.

 

그럼에도 나는 카메라 캐리어 속에 한두 대의 필름 카메라를 더 챙긴다. 사진은 결국 보는 사람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고, 나도 결국에는 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보는 필름 사진의 멋짐을 나는 안다. 좋아하는 필름 사진가의 이름을 지금 당장도 열 명은 댈 수 있을 것만 같다. 내가 그렇게 증오하던 노이즈는 결국에는 ‘질감’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손을 흔들며 돌아와 마침내 나를 열광하게 한다.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에서만 말이다.

 

사실 앞서 말했듯 큰 모니터로 보면 그 질감이라는 건 대단치 않은 노이즈 더미에 불과하다. 중형 필름 이미지 같은 경우는 화질을 확보하면서도 질감을 가져갈 수 있기 때문에 마음을 좀 더 잡아끌 수도 있지만, 정작 그 높은 화질로 인해 인스타그램에 올렸을 때 중형 필름의 이미지를 디지털 사진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필름 자체가 가지는 특유의 컬러나 명암표현은 분명 존재하지만, 아무래도 그건 실체감의 분야가 아닌 것 같았다. 정작 그 느낌을 정확히 구분할 수 없음에도, 저화질의 이미지에 열광하는 요상한 사람들. 그리고 그 속의 나.

이 이상함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지 실마리를 찾은 건 잡지를 보면서였다. 좋아하는 잡지들의 결이 대체로 비슷하다. 두꺼운 엽서 질감의 종이, 그리고 그 위에 인쇄된 사람의 사진들과 물건의 사진들. 햇빛이 느껴지는 사진들. 그 까끌한 종이 위에 손가락을 대면 내가 그 대상과 가까운 듯 착각을 할 수 있었다. 보스토크라는 사진잡지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미세하게 오돌토돌한 질감과 부드러운 빛. 디지털 작업한 사진이 인쇄된 결과물이었다. 내가 웹상에서 보이는 필름 이미지를 사랑하던 이유가 그 인쇄된 디지털 사진 위에 있었다.

 

예전에 그런 우스갯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높으신 분께서 디지털로 작업한 사진 위에 필름 사진의 질감을 원하시기에 디지털 사진을 인화한 후에 스캐너로 그걸 다시 스캔했다고. 내가 사랑하는 필름 사진의 질감의 정체는 실물의 질감이었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그렇게 생각을 하니 인스타그램상의 필름사진을 선망하는 사람들에게 약간의 연민이 느껴졌다. 그 무엇보다 실물과 거리가 먼 매체에서, 그것을 ‘만질 수 있다’는 체감을 갈망하는 것 같아서. 일단은 내가 그랬다. 어쩌면 유사 이래 소유의 개념이 가장 희박해진 시대가 아닐까 싶다. 다운로드보단 스트리밍을, 구매보단 구독을 더 익숙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산다. 모든 게 디지털화된 세상이라 각종 수집과 경험에 목말라하는지도 모르겠다. 앨범이 더 이상 재생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종이책은 굿즈의 역할을 하는 시대. 우리의 뇌는 여전히 인터넷 신용 결제를 소비로 인식하지 못한다고 하지만, 이미 화폐는 신용화폐로 상당수 대체가 되어버렸고. 음, 그러니까, 우리는 효용과 존재가 분리된 시대에 살고 있다. 현대의 효용에는 질감이 없다.

하지만 필름 사진은 보이는 동시에 질감을 가진다. 심지어 실물이 존재하기까지 한다. 인스타그램 위에서 그 스스로 보이며, 두꺼운 엽서의 질감을 흉내낸다. 그래, 물론 만질 수 있는 건 판판한 스크린 뿐이겠지만. 종종 친구들에게 필름사진을 찍은 뒤 보내주겠다는 말을 하면, 친구들은 그걸 디지털 이미지로 받아볼 수 있는 거냐고 되묻곤 했다. 현상을 스캔과 구분하지 않았고, 그건 아마 필름이 가지는 실물이라는 감각이 주는 일종의 괴리감이겠지.

 

어쩌면 필름은 디지털 시대에 실물의 질감을 기억하려는 마지막 시도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그걸 알아서 그렇게 붙잡고 있는지도 모른다. 셔터를 누른 기록들이 남아 있는 실물의 화학 합성품을 현상소에 맡기며. 혹은 좋아요를 누르며. 하긴 실물이란 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였지. 그러니까, 우리가 아직 땅에 발이 붙어 있다는 사실을 체감함에 두근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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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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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태이

    0
    over 1 year 전

    사진을 너무 예쁘게 잘 찍으세요 :) 좋은 사진 많이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ㄴ 답글 (1)
  • 에움

    0
    over 1 year 전

    장바구니에 담긴 필름 15만원 어치, 그걸 보며 제가 필름 사진을 놓지 못하는 이유도 결국 질감 때문이에요. 세점사이님이 좋아하는 필름 사진가를 공유해주세요!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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