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야심을 드러낸 폭스콘
극도의 비밀주의를 고집하던 애플의 자동차 시장 진출이 현대차의 입을 통해 기정 사실화 됐습니다. 아이폰을 만드는 방식처럼 애플이 직접 설계하고 전문 제조업체에 위탁생산을 맡기는 밑그림을 그리는 것 같지만, 완성차 업체들은 선뜻 애플의 손을 잡지 않고 있습니다. 그나마 기아차와는 나름 긍정적으로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 소식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자 기밀에 민감한 애플이 먼저 협상을 중단해버렸습니다. 사업을 시작하기 이전, 파트너 물색에서부터 난관에 봉착한 애플을 두고, 업계에서는 아이폰을 수탁생산하던 폭스콘이 전기차 제조까지 맡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애플의 전기차 개발 소식이 들려오기 이전,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중국에선 대서특필된 뉴스가 있습니다. 폭스콘이 이미 애플없이 전기차 시장 단독 진출을 선언한 겁니다. 지난 해 10월, 폭스콘은 ‘전기차의 안드로이드’가 되겠다며 ‘MIH’라는 이름의 전기차 제조용 플랫폼을 공개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전기차 제조용 플랫폼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자동차 점유율을 2025년까지 전체 시장의 10%까지 늘리겠다는 공격적인 목표까지 제시했습니다.
아이폰을 만들던 폭스콘은 왜 갑자기 전기차 시장에 진출을 선언한 것일까요?
전기차 시장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한 폭스콘의 전략은 무엇일까요?
폭스콘이 뭐하는 회사인가요?
대만의 전자제품 전문 제조업체인 폭스콘은, 한국에선 단순히 아이폰을 수탁생산하는 하청 업체로만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폭스콘은 생각만큼 그렇게 가볍게 무시할 기업이 아닙니다.
- 1) 블룸버그에 의하면, 전세계 위탁생산 전자제품의 40% 가량이 폭스콘의 손을 거쳐 제조되고 있습니다. 당연히 애플, 아마존, 델, 구글, HP, 인텔, 레노보, 시스코 등 우리가 아는 웬만한 IT기업이 이미 모두 폭스콘의 고객입니다.
- 2) 이렇게 많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선 많은 노동자가 필요할 터. 한 때 폭스콘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직원을 고용하는 회사"라는 타이틀을 얻기까지 했습니다. 그 수가 무려 130만 명에 육박했으니, 우리나라로 치면 대전이나 울산광역시 인구 전체에 달하는 셈입니다.
- 3) 폭스콘의 연간 매출은 무려 200조에 달합니다(2019년 기준). 이는 대만 전체 GDP의 30%에 달하는 금액입니다. 작년 삼성전자 매출이 약 236조였으니, 매출 규모나 국가적 중요성으로는 한국의 삼성전자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폭스콘 창업주인 궈타이밍 회장이 직접 경영 목표로 “삼성전자 타도”를 내세울 정도이니, 이쯤 되면 폭스콘은 단순 대기업이 아닌 대만의 국가적 자존심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이폰 만들던 회사가 전기차에 도전하는 이유
하지만, 이렇게 거대 기업으로 성장한 폭스콘에게도 고민거리가 있습니다.
- 1) 폭스콘이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는 IT기기 제조업이 시장 성숙기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수 년째 전세계 핸드폰 시장 규모는 14억 대 규모에서 정체돼 있고, 노트북도 2억 대 내외를 맴돌고 있습니다. 심지어 태블릿 시장은 최근 급격한 역성장을 기록하며 2억→1억 대 중반으로 쪼그라들기까지 했습니다.
- 2) 영업이익률에 있어서도 폭스콘은 줄곧 ‘하청업체’의 지위를 면치 못해왔습니다. 폭스콘이 타도 대상으로 삼은 삼성전자는 고수익 메모리 반도체 사업을 필두로, 핸드폰, 가전제품 등의 완제품을 판매하며 줄곧 10% 중반의 영업이익률을 영위해왔습니다. 반면, 폭스콘은 2012년까지 단 한 번도 3% 이상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한 적이 없습니다. 이후 다양한 신사업과 인수합병을 벌이며 영업이익률 상승을 내는가 했지만, 작년 코로나19에 직격탄을 맞으며 줄곧 한 자릿수 초중반의 영업이익률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 3) 폭스콘의 매출을 ‘하드캐리’해온 애플의 절대적 비중도 리스크입니다. 애플의 매출 비중은 폭스콘 전체 매출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때문에 폭스콘 매출은 애플 매출에 절대적으로 좌우됩니다. 그런데 미중 교역 리스크로 인해 애플은 생산지를 중국 밖으로 옮기려 합니다. 심지어 최근에는 폭스콘 이외 타 제조사에 주문 생산을 밀어주기까지 하며, 폭스콘 의존도를 줄이려는 모습도 보입니다. 결국 폭스콘 입장에서 애플은 감사해야 할 복덩어리이자 경계해야 할 리스크인 셈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최근 10여 년동안 폭스콘은 단순 하청업체 지위에서 벗어나기 위해 끝없는 노력을 펼쳐왔습니다. 2009년 치메이전자(중국 LCD업체)를 시작으로, 샤프(일본 가전업체)를 인수하고 그 유명한 노키아의 핸드폰 사업부까지 인수했습니다. 또 최근에는 메모리 반도체 사업에 야심을 품고 일본의 도시바 인수를 추진하다 무산되자, 직접 반도체 공장 착공에 들어가기까지 했습니다.
폭스콘의 전기차 사업 진출도 비슷한 맥락에서 시작된 도전이라고 봅니다. 자동차 시장의 규모는 연간 2000조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폭스콘이 내세운 목표는 2025년까지 이 중 10%를 차지하는 것입니다. 매우 러프한 단순계산으로 10%인 200조를 폭스콘이 가져간다면, 폭스콘의 덩치는 지금보다 2배나 커지는 겁니다. 설사 목표 달성에 실패해서 그 절반인 5%, 혹은 단 1%만 가져간다 하더라도, 폭스콘은 충분히 의미있는 성장 동력을 얻게 되는 셈이니, 전기차 시장 진출은 충분히 욕심이 날만한 도전인 겁니다.
폭스콘은 어벤져스를 만들려 한다
하지만, 아무리 전기차가 내연기관에 비해 구조가 단순하고 진입장벽이 낮다고 해도, 핸드폰 같은 전자제품을 조립하던 회사가 단번에 전기차를 만드는 게 가능할까요? 현대차나 GM같은 전통 완성차 제조업체와 달리, 폭스콘에게 제대로 된 자동차 양산 경험이 없다는 점이 더욱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합니다. 물론 폭스콘은 일찍이 사업 다각화의 일환으로 자동차 부품 제조사업을 시작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그 매출 비중이 전체의 1%에도 못 미칠 정도로 미미할 뿐더러, 부품 제조와 완성차 제조는 완전히 다른 사업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이런 부족한 점을 보완하기 위한 폭스콘의 전략은, ‘연합’입니다. 내가 혼자서 못하는 게 있다면, 그걸 잘하는 애를 데려와서 같이 하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폭스콘은 MIH Open Platform Alliance, 말 그대로 ‘연합’을 만듭니다. 재미있는 점은 이 연합에 참여한 기업의 수가 현재까지 무려 700여 개에 이른다는 겁니다. 배터리 업체인 CATL과 삼성SDI부터, 영국의 반도체 기업 ARM, 미국의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까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유명한 테크 기업들은 물론이고, 생소한 중국 중소 부품사까지 다양한 기업들이 포진해 있습니다.
그렇다면, 폭스콘이 정말 이 700여개의 기업 모두와 끈끈한 관계를 맺고 시너지를 내려는 걸까요? 상당수 기업의 경우 폭스콘과의 협력에 관한 단 한 줄의 언론 기사조차 찾기 힘든 것으로 미뤄볼 때, MIH Alliance는 MOU 수준의 낮은 강도의 협력 관계로 보입니다. 폭스콘이 이제껏 수십 년간 전자제품을 만들며 많은 IT기업, 부품제조업체들과 협력해왔기에 이런 MOU 정도는 쉽게 맺을 수 있었을 것으로 추측해봅니다. 그런 점에서 MIH Alliance의 주요 목적 중 하나는, 세(勢) 불리기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자동차 업계에서 무명에 가까운 폭스콘의 이름을 고객과 파트너들에게 널리 알리고 무게와 신뢰감을 얻으려는 겁니다.
하지만, 몇몇 기업들과는 단순 Alliance에 그치지 않고, 좀 더 깊은 수준의 협력을 통해 손에 잡히는 성과를 만들어가려는 움직임도 보입니다. 실제로 폭스콘은 올해 1월 중국의 지리 자동차와 50:50 지분으로 자동차 제조 합작 법인을 설립했습니다. 지리-폭스콘 합작법인은 서로의 IT기술, 자동차 양산 노하우를 합쳐 외부로부터 자동차를 위탁 생산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또 폭스콘은 피아트 크라이슬러와 중국 시장향 전기차 생산을 위한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대만의 자동차 제조사 위롱 그룹과도 전기차 개발을 위한 합작법인을 설립했습니다.
이렇게 문어발식으로 여기저기 파트너십을 확장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이 중에 적어도 하나는 얻어걸려서 성공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결론적으로 일단 친해져서 네트워크를 만들고, 그리고 나서 그 안에서 시너지를 찾아보자는 것이 폭스콘의 전략인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 제대로 된 파트너를 찾게 되면, JV와 직접 투자하는 옵션도 마다하지 않고요.
자동차계의 안드로이드를 꿈꾸다
C.A.S.E.(Connected, Autonomous, Sharing, Electric)라는 4가지 변화의 흐름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선, 전기차라는 하드웨어뿐 아니라 여기에 자율주행, 카셰어링, 인포테인먼트와 같은 소프트웨어를 결합시켜야 상황입니다. 때문에 단 하나의 기업이 미래 자동차의 A부터 Z까지 혼자 힘으로 모두 만들어내는 것은 스마트폰보다도 훨씬 어려워 보입니다. 물론 여기에서 한 걸음 나아가 전후방산업인 배터리부터 인터넷, 보험까지 모두 수직계열화하려는 테슬라가 있지 않냐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테슬라가 워낙 특출한 아웃라이어인 겁니다. 전기차 스타트업들이 양산에 애를 먹고 구글 웨이모가 자율주행 개발에 난관을 겪는 모습을 보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중 단 한 가지만 제대로 해내는 것도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이렇게 테슬라와 그 뒤를 쫓는 기존 업체들의 모습은, 어디선가 본듯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킵니다. 바로 10여 년 전, 스마트폰 산업입니다. 일찍이 스마트폰 산업 초기, 애플이 아이폰(H/W)과 iOS(S/W)라는 혁신적 제품을 먼저 내놓으며 산업의 폭발적 성장을 이끌었습니다. 그러자 화웨이, 삼성전자, LG전자 같은 후발주자들은 자체 소프트웨어 없이 구글이 만든 안드로이드를 이용해 홍미노트, 갤럭시S 같은 각자의 하드웨어를 만들어 빠르게 추격했습니다.
이렇게 애플의 뒤를 쫓던 화웨이와 삼성전자처럼, 테슬라를 쫓는 전통 OEM과 IT기업, 스타트업들에겐 지원군이 필요합니다. 전통 자동차 제조사들에겐 "소프트웨어 역량"이, 전기차 스타트업들과 테크기업들에겐 "하드웨어 역량"이 부족합니다. 또한 모두가 각자 iOS같은 전용 플랫폼을 개발해 사용하는 것은 시간으로나 비용으로나 너무 비효율적입니다. 때문에 미래 자동차 산업에서도 누군가가 안드로이드같은 "공용 플랫폼" 역할을 해줘야 한다는 것이 폭스콘의 계산입니다. 좀 더 용이하고 쉽게 자동차를 양산할 수 있도록 플랫폼을 제공해 주면 돈벌이가 될 것 같은 겁니다.
이런 계획을 위해 폭스콘이 만든 MIH 플랫폼은, 한 마디로 말하면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한 자동차 제조 플랫폼’입니다. MIH 플랫폼을 통해 자동차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마치 프린세스 메이커를 연상케 합니다. MIH를 찾는 고객들이 자기가 필요한 걸 고르기만 하면, 폭스콘이 알아서 주문에 맞게 만들어줍니다. 전기차 양산 경험이 전무한 스타트업이라 하더라도, 차종과 디자인, 배터리 스펙 등의 옵션만 고르면 폭스콘을 통해 원하는 성능의 자동차를 쉽게 대량 양산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예컨대 아래 사진에서와 같이 고객이 차종은 "세단",,, 구동 방식은 "후륜 구동",,, 배터리 용량은 "100kWh",,, 하는 식으로 옵션을 선택하고 설계도를 건네주면, 거기에 맞게 폭스콘이 모듈화된 부품을 조립해 커스터마이징된 자동차를 완성해줍니다.
하지만 MIH는 단순히 자동차를 조립해주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독자적으로 자동차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능력이 없는 고객에겐 자동차 제어 소프트웨어, 자율주행 솔루션까지 제공해줍니다. 폭스콘은 한 걸음 나아가 테슬라처럼 배터리까지 직접 만들어 공급할 야심을 품고 있습니다. 리튬이온 배터리를 이을 차세대 배터리인 전고체 배터리를 개발해 2024년부터 양산하겠다고 발표했고, 일찍이 2017년에는 CATL에 직접 지분투자까지 하며 배터리에 대한 관심을 드러낸 바 있습니다.
여기까지 들으면 "이게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싶지만, 이런 폭스콘의 계획은 벌써부터 조금씩 결실을 만들고 있습니다. 한 때 ‘테슬라 킬러’라 불렸던 스타트업 피스커 오토모티브가 지난 2월 자신의 두 번째 제품 라인업의 생산을 폭스콘에 맡기겠다고 발표했습니다. Project PEAR(Personal Electric Automotive Revolution)라는 이름의 이 협력 프로젝트 내용에 의하면, 폭스콘은 자동차 양산, 피스커는 디자인과 소프트웨어 개발에 집중해서 2023년부터 25만 대의 차량을 생산하는 것이 목표라고 합니다. 폭스콘과의 협력으로 피스커는 안정적으로 자동차 양산을 시작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뿐만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플랫폼을 활용하기에, 제로 베이스에서 혼자 힘으로 자동차를 만드는 것보다 훨씬 빠른 시간 안에 신제품을 출시할 수 있을 겁니다.
Next TSMC = Foxconn?
밸류체인에서 설계와 생산이 분리돼 각각 별개의 전문 사업자에게 맡겨지는 그림을 우리는 일찍이 반도체 산업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250조 규모의 시스템 반도체 산업에선 애플, 엔비디아, AMD 등의 팹리스 업체는 제품 설계와 개발에 집중하고, 대만의 TSMC와 삼성전자 같은 파운드리 업체가 생산을 도맡고 있습니다.
이제 2000조 규모의 자동차 시장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려는 것 같습니다. 만약 폭스콘이 직접 내건 목표처럼 전체 시장 규모의 10% 가량을 차지할 수 있다면, 대만에서 TSMC에 버금가는, 혹은 그 이상의 거인이 다시 한 번 탄생할지도 모르겠습니다.
※ 이 글은 전기차 전문 매체 EV POST에 게재됩니다.
Sources
- 애플, 폭스콘 의존 줄이기 나서나…중국 리쉰정밀, 아이폰 조립생산 모색 (이투데이, 20/05/13)
- '대만의 삼성' 폭스콘, 반·디 공략 본격화 (한국경제, 19/02/06)
- Apple iPhone maker Foxconn wants to become the Android for electric cars with new vehicle platform (CNBC, 20/10/16)
- Fisker and Foxconn to collaborate on EV project; start of production of Project PEAR in Q4 2023 (Green Car Congress, 21/02/04)
- Apple supplier Foxconn's EV platform to make debut this year (Nikkei Asia, 21/02/20)
- Foxconn, Geely team up to build electric, autonomous and shared vehicles for automakers (Techcrunch, 21/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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