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의미들

[나의 2010년대] 준비물 (2)

2022.09.26 | 조회 9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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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어리들이 쓰고, 춤추고, 새겨지는 곳

[나의 2010년대] 준비물 (2)

'나'의 의미들

 

구독자님 안녕하세요! 다행히 두 번째 뉴스레터가 성공적으로 도착했네요. 저는 솔직히 한 번 하고 끝날 줄 알았거든요... 🤣 농담입니다만 그래도 늘 긴장하며 마감을 맞춰보도록 하겠습니다 ㅎㅎ 

오늘도 예고했던 대로 앞으로의 이야기를 위한 준비물을 챙겨보려 합니다. 두 번째 준비물은 제목에서도 말했듯 '나'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시리즈 이름이 '나의 2010년대'인데 '나'가 누구인지 모르면 아무래도 전달이 안 되는 부분이 좀 있겠죠? 불특정 다수에게 저를 공개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한 번 써보려 합니다. 

 

한 문단을 마치고 바로 깨달은 것인데, 자기소개만큼 어려운 것이 없죠. 흔히 사람을 처음 만나면 자신의 소속으로 스스로를 소개합니다. 저는 ~사는, ~다니는, 누구입니다 하고요. 조금 더 신경써서 자기소개를 하는 자리에서는, 무얼 좋아하는지, 어떤 생각으로 여기왔는지 같은 이야기들을 하기도 하죠. 물론 여기서 그런 이야기만을 하려는 건 아닙니다.

오늘의 글이 어디까지나 '나의 2010년대'를 설명하는 데에 필요한 것이라는 점을 떠올려보면, 그리고 '시대'가 "우리가 거듭 불러 내야하는, 세상의 다양한 존재들과 연결되고 의미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창출되는 것"이고, "연결되고, 의미 짓고, 춤추며 시간 안에 나를 '기입'하는 것" ('시대라는 말이 민망해진 시대에서' 중) 이라고 한 말을 주워담으려면, 내가 생각하는 나를 설명하는 단어들이 나의 계기와 관계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설명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아래의 단어들은, 제 사고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에 주요하게 작동했다고 제가 느끼는 것들로 엄선해보았습니다. 

 

1) 20대 후반 

나이를 말하는 게 뜬금없을 수는 있지만, 저는 20대 후반입니다. 우리 삶에는 사회가 부여한 생애주기와 규범이 있죠. 20대 후반에게는 '사회초년생'이라는 말이 그러합니다. 저는 그와는 다소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것에 초연하냐하면 그것은 아니고, 부여된 생애주기와 나를 거듭 비교하며 후회와 다독임을 반복하며 지낼 뿐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제 드디어 다니던 학교를 떠나 새로운 시작을 해야하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통상 주어진 길이 아니라면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이 근 2, 3년간 저의 생각을 사로잡고 있었습니다. 모든 사회적 규범을 내던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존의 제도에 완전히 편입되는 것도 아닌 애매한 중간지대를 찾아 헤매려 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자주 불안과 애수에 젖지만, 동시에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겠다는 말도 안 되는 자신감이 불현듯 찾아오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장소를 적당히 대안적이고 지속가능한 곳에 놓으려는 사람입니다. 

 

2) 지방에서 서울로

저는 지방 출신입니다. 이미 서울에 산 기간도 5년이 넘었고, 고향에 친구도 없고 교류도 없지만, 스스로를 지방 출신이라고 줄곧 생각해왔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서울의 삶이 '정상' 상태라고 여겨지는 것에 종종 화들짝 놀라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바쁘게 돌아가는 대도시의 삶이 너무나 익숙해져버린 지 오래지만, 유년 시절 경험한 중소도시의 풍경은 머릿속에 여전히 어떤 방식으로든 남아있습니다. 다양한 서울의 풍경 중 그와 비슷한 것을 마주할 때, 혹은 그와 비슷한 감각과 분위기를 느낄 때면 서울이 참 어색하게 다시 보입니다. 이렇게도 밝고 이렇게도 어둡게, 치열하고도 지난하게 삶이 이뤄지는 서울 같은 곳이 아니더라도, 분명히 세계가 존재한다는 감각은 늘 중요합니다. 

 

3) '명문'대학생

제가 서울로 상경한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바로 소위 '명문' 대학교에 입학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런 거대한 이주가 불가능했을지도 모르죠. 수많은 자원을 가족과 사회가 저에게 투여한 결과입니다. 

명문대학생으로서의 저에 대한 이해는 복합적입니다. 자신의 공간이 갖는 차별적이고 불평등한 특권에 대해 비판하면서도, 그로 인한 현실적 수혜를 입고 있는 상황이 지속된다는 모순적인 상황 때문에 말이죠. 어디 가서 내가 명문대생이노라 말하는 것이 문제라는 윤리적 감각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대학 위계 구조가 갖는 현실에 대해 분석하고 비판하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습니다. 삶은 계속되고, 자원은 차별적으로 분배되고, 공부도 계속되며, 저는 이곳에 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삶을 단면으로 썰어 지금 이 순간에 대해서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딛을 걸음의 방향을 어디로 할 것인지, 누구와 할 것인지가 너무나도 중요하다는 것을 늘 기억하려 애씁니다. 그래서 저의 말과, 배움과, 미래가 온전히 나의 소유가 아니며, 그 방향에는 책임이 따른 다는 것을, 그러나 단순히 사회 공헌이나 성찰적 시선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나와 연결된 관계들에 어떤 책임을 갖고 응답할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4) 남성에서 페미니스트로

저는 생물학적으로, 혹은 사회적으로 '남성'으로 규정되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페미니즘이 삶의 언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페미니즘이 생물학적 결정론을 비판하는 학문이자 정치라는 점에서 문제는 쉬워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남성으로 자라왔고, 여전히, 거듭 반복적으로 남성으로 규정되고 인식되고 저 스스로를 그렇게 이해합니다. 페미니즘을 만나고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또 많은 것이 남아있거나 새롭게 자리를 잡습니다. 여전히 남성으로 사회화된 나의 감각과 윤리를 돌아보며 망설이고 늘 반성하지만, 한편으로 남성 중심 문화에 편입되는 것을 경계하고 불쾌해하는 감각을 가집니다. 그러나 저의 자리가 '여성'이나 '소수자'로 건너뛸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경계인이기를 택합니다. 당장의 대안적 삶을 살아낼 수 없더라도, 내가 몸 담고 있는 차별적 문화를 경계하면서 소심하게 발을 내딛는 것이 저의 역할입니다. 그것이 대개는 외롭지만, 어쨌거나 살아내는 방식이니까요. 제게 곁을 내준 이들이 그래서 더욱 소중합니다.  

 

5) 운동권

저는 소위 '운동권'이었습니다. 이 말을 저 스스로 하는 것이 아주 낯부끄럽기 짝이 없는데, 그 말이 가진 부정적 의미 때문이 아니라, 다른 식으로 부여되는 영웅적 이미지 때문에 그렇습니다. '정치적'이라는 것은 대단할 것도,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대학에서 일체의 '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공부하고 행동한 사람을 모두 운동권이라고 해야한다면, 저는 운동권이었습니다. 

학교를 다니면서 그 무엇보다 공동체나 자치, 민주주의 등의 거창한 이야기를 하고 다녔습니다. 공동체에서의 대안적 실험이나 가능성에 대해 붙잡고 싶었습니다. 이것이 모두 과거 시제인 이유는, 이제는 그런 공동체나 자치의 장소가 저에게 남아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의 현장이 언제까지고 대학일 필요는 없지만요. 그럼에도 여전히 저는 정치적 주체로서의 삶이라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 어떤 삶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6) 관계

저는 관계에 천착하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이기도 하고, 이 세계를 이루는 관계이기도 합니다. 물론 독립적인 존재들 간의 단단한 관계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서로가 어떠한 방식으로든 연결되어 있고 관계되어 있다는 생각, 그것이 느슨하든, 바뀌고 흩어지든, 겹쳐지든 말이죠. 

그래서 흔히들 공동체와 개인이, 구조와 행위자가 대립한다고 하는 이분법을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관계는 필연적이고, 그 안에 특정한 방식의 관계가 - '개인적'이라거나 '공동체적'이라거나 하는 - 있다고요. 우리는 관계적이기 때문에 역동적이며 변화가능하고, 관계적이기 때문에 서로에게 응답할 수 있고 그러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적고 보니 너무 부끄러워서 몇 가지는 다시 지워버렸습니다. 😅 너무 진지하고 좋은 말만 써둔 것 같지만, 부족한 저를 세상에 내보이는 일이 쉽지 않으니 감안해주세요...

어쨌거나 이런 저의 특징들이 기입된 이야기들이 앞으로 여러분을 찾아갈 거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전형적 서사를 벗어난 대안적 장소, 삶이라는 무대의 더 넓은 공간적 지평, 특권적 조건에 대한 고민과 실천, 경계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윤리적 감각, 자치와 정치적 공동체에 대한 믿음, 관계와 역동성에 대한 천착' 같은 것들로 '나의 2010년대'를 재구성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렇게 거창하게 써두긴 했지만, 논문 쓰듯이 인과관계를 지켜가며 쓰진 않을 거기 때문에 장담은 못하겠습니다. 그냥 저에게 스며있는 저 특징들이 잘 드러나기를 바랄 수밖에요. 

쓰다보니 저도 모르던 저를 잘 정리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구독자님은 궁금하지도 않으셨을 저에 대해 너무 구구절절 떠든 게 아닐까 뒤늦게 후회가 되지만요. 그래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주도 잘 보내시고, 저는 다음 주에 마지막 준비물로 찾아오겠습니다. ('시대'와 '나'가 해결됐으니 남은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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