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미국에서는 공정위가 구글에 대한 반공정 제소가 진행 중이다. 미국의 대기업들에 대한 규제 기관의 독점 혐의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서 크게 놀랄 일은 아닐 것이다.
구글이 스마트폰에 기본 검색 앱을 구글의 앱으로 설치한 것이 반공정 끼워팔기라는 것이 혐의다. 또한 미국의 연방정부와 주정부에서는 아마존의 소비자 구독 제도가 가격을 올리는 반공정 행위라는 소송이 제기되어 있다.
우선 우리가 미국과 유럽에서 눈여겨 볼 일은 반독점 혐의가 있으면 정부 (법무부가 대표해서)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는 것이다. 즉 기업이 지금 행하고 있는 사업의 변화, 경제활동을 크게 제약하는 일에 대해 규제 기관이 벌금이나 처벌을 먼저 내리고, 기업이 법원에서 구제 신청을 하는 우리와 정 반대다.
즉 반공정 혐의의 입증 책임은 정부에 있고 법원의 확정 판결 전에는 규제기관이 기업을 먼저 처벌하지 못한다. 이는 우리나라의 공정위와 규제 기관이 기업들을 옥죄는 모습과는 정 반대다. 우리나라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불법을 판단하고 징벌적 조치를 일방적으로 내리는 것이다.
기업은 주주들의 사적 재산이고, 그 재산권과 경제적 자유가 기본이고 이를 규제하는 것이 예외적이며 이에 큰 변화를 초래하는 것의 타당성을 증명해야 하는 것은 규제 기관인 것이다.
한국이 정부의 관치에서 벗어나 좀더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하는 나라가 되려면 첫번째 고쳐야 할 일 중에 하나가 규제기관 즉 행정부의 권력을 제한하는 일이 될 것이다.
기업들이 거대해지면 규제기관들은 지금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과 같은 규제기관의 반공정, 독점 남용의 규제 시도는 역사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AT&T의 분할로 이어졌던 규제 기관의 성공 사례도 있지만, IBM, Microsoft 등에 대한 미 규제기관의 독점 혐의는 대부분 법원에서 부인되었다.
반면 사적 계약이 우선해야 하는 자유시장 경제에서 개인들의 계약의 자유, 즉 재산권 행사, 그리고 기업의 영업활동을 금지하는 수 많은 규제들은 한국의 사법부에 의해 늘 합헌으로 인정을 받는다.
지금도 시행 중인 대형 유통점의 강제 휴무제는 이미 투자해서 영업을 하고 있는 기업의 영업활동을 일방적으로 금지한 재산권의 직접적인 침해의 규제이다. 화물연대의 파업으로 얻어낸 안전 요금제라는 것도 공급자와 소비자 사이의 자유 계약을 부정하는 규제이다. 기업의 마케팅의 자유를 제한한 단통법을 비롯해서 숱한 규제들이 모두 사법적 판단을 거치면서 합헌으로 사법부의 승인을 받은 것들이다. 문재인 정부의 임대차 3법 같은 것도 다른 나라에서는 상상도 할 수없는 재산권 침해이자 가격 통제이다. 주택 가격이 높다고 대출을 금한 조치는 명백한 재산권 침해이자 경제적 자유의 박탈이다.
금리나 물가를 무시하고 임대료의 가격 상한을 5% 이내로 두는 것도 어떤 경제학적 논리로도 정당화가 어려운 일이고, 이를 임대 계약을 모두 정부에 등록하게 하는 것도 행정권력의 과잉 규제이자 사생활의 침해다.
국회는 포퓰리즘 규제 양산 기관으로 돌변해 있고, 행정부는 관치의 유혹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이 통신과 은행이 공공재라며 기업을 비난하고 나서고 규제기관들은 법의 범위를 벗어나는 그림자 규제를 마구 시행하고 기업들을 업박하는 것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숱한 반공정 제소는 대부분 재판에서 패배하고, 규제 기관의 규제 권한에 대한 다툼이 있을 때마다 사법부가 엄격하게 규제 기관의 권리와 범위를 제한하고 있다. 최근에도 미국은 대법원에 의해 바이든 대통령의 학자금 융자금의 사면에 대해 위헌으로 판결되어 무산되었다. EPA (환경보호기구)의 과잉 규제도 법원에 의해 제동이 걸렸다.
성공했던 AT&T의 반독점 제소도 1974년에 소송이 시작되어 1984년에서야 기업의 분할을 수용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고 대부분의 이러한 정부의 규제가 사법부에 의해 최종 판결이 되는 때까지는 10년 이상의 세월이 걸린다. 이러한 사법부의 신중한 판단이 있다면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규제 기관의 일방적인 기업 박해는 함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사법부가 이처럼 재산권과 경제적 자유에 대해 엄격한 이유는 헌법이 우리와 크게 달라서가 아니다. 어느 나라나 헌법은 추상적이다.
미국의 사법부가 시장 경제를 이해하고 정부의 시장 개입보다 자유 시장의 기능을 더 믿고, 시장 친화적인 판결을 하게 된 것은 50년 전의 전환기적인 경제학 교육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자유시장 경제의 보루인 시카고 대학의 경제학파의 역할이 매우 컸기때문이다.
1973년, 연방 판사이자 학자인 리차드 포스너 (Richard Posner)는 “법 경제학 (Economic Analysis of Law)”을 출판해서 법 (특히 상법)의 판단 기준이 경제적 효율 ( Efficiency)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해서 논란을 불러왔다. 이 책은 시카고 경제학의 거성들로부터 전폭적 지적 지원을 끌어냈다. 그들 중에는 Gary Becker, Ronald Coase, Milton Friedman 등의 자유시장 경제의 옹호자들로 "법과 경제학 (law-and-economics)” 운동이 일어났다.
이후 1976년부터 1998년까지 22년간 지속된 연방 정부 판사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이 운영되었다. 소위 "연방 판사들을 위한 Manne 경제학 연구소 (The Manne Economics Institute for Federal Judges)" 프로그램이다. 이 자금은 당시에 기업과 보수적 재단들이 후원해서 시작되었고, 아름다운 해안이 보이는 마이에미에서 운영되었지만, 휴일도 없는 강행군을 한 교육 프로그램이고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프리드만, 폴 사무엘슨과 같은 경제학자들이 강의를 했다.
90년대가 되었을 때 연방 판사들의 과반이 이 프로그램을 거쳤고 그 수강생 중에는 가장 보수적인 대법원 판사인 토마스 클리어런스, 진보 판사의 대표였던 루쓰 배더 긴스버그도 포함된다. 진보적인 긴스버그는 미 정부의 기업에 대한 독점 소송에서 소비자 후생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시장경제의 원칙에 따라 보수 판사들 편을 들어 정부의 규제 시도를 무산시켜서 언론을 놀라게 했었다.
그는 회고록에서 Manne 프로그램이 프로리다의 태양보다 더 강렬했다고 적어서 이 경제학의 학습과 영향이 얼마나 지대했는지를 증언한 적이 있다.
최근 이 교육을 받고 나서 판사들의 판결문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분석한 논문이 발표되었는데 (Elliot Ash ofethZurich, Daniel Chen of the Toulouse School of Economics and Suresh Naidu of Columbia University) 교육 이후에 판결문에서 효율성(Efficiency), 시장(Market)이라는 단어의 사용이 훨씬 크게 늘고, 규제 관련 단어는 줄어들었으며, 감옥형을 5% 더 많이 판결하고, 형기도 25% 더 늘리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우리의 시장 경제가 제자리에 서고 정부가 아닌 민간이 주가 되는 경제는 대통령의 자비에 기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정권이 바뀌어도 시민과 기업의 경제적 자유와 재산권이 신성시되려면 사법부의 시장경제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사법부는 언제나 자유의 최후의 보루이기 때문이다.
그를 위해서는 우리 경제계와 보수 재단들은 사법부의 좌편향 경제관의 디톡스를 할 교육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유는 스스로 지키는 것이 정치 권력의 하사품이 아니다. 불행하게도 우리의 경제계와 보수 세력은 그런 운동을 할 용기와 의향이 아직도 없어 보인다. 보수적 가치의 재단도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아니면 보수 정권이 사법 연수원의 프로그램이라도 개혁을 했으면 한다.
짧은 칼럼이나, 유튜브 동영상으로 판사들의 생각을 바꿀 수 없다.
댓글 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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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조은놈
교수님의 글을 너무나 잘 읽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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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우(정현목)
우리나라도 이와 같은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자유시장경제가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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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재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러잖아도 우리나라 법원이 사법판단에 있어 개인의 자유는 어느 정도 고려를 하고 있으나 경제적인 부분은 시장경제와는 좀 동떨어지는 판단을 종종 내리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가 기술이 발전하고 경제규모가 급속히 확장되고 국민 전반적 수준도 크게 향상되어 있는데 법원과 판사 및 정치권 인사들의 의식구조는 386운동권세대(요즘 586세대)에서 멈춰있는 듯 합니다. 아직도 부자를 적으로 보고 있는 인식과 변화하는 시대에 따라가려는 욕구가 없어 보입니다. 또한, 사법부에서 일하는 판사나 검사 중에는 어려운 사법고시 합격한 사람이고 로스쿨 나온사람으로 강한 엘리트 의식을 갖고 있고 "누가 나를 가르칠 수 있냐"는 생각과 교수나 지식인들도 검사나 판사한테 감히 "경제교육을 받으라, 자유민주 의식을 함양하라"는 말을 꺼내기 어렵기 때문이리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판사나 검사 스스로 배우고 깨달아야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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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lie
사농공상의 위선적 신분제로 자기 모순에 빠져 망한 조선의 역사를 지금의 사계급인 사법부가 재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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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규
모든것의 시작점이 자유라는 생각이 듭니다. 교수님. 나의 자유만이 아니고 상대의 자유. 기업의 자유..연방대법관의 종신직. 그리고 교수의 테뉴어를 가지는 의미를 교수님 통해 알게되었는데..높은 직위에 걸맞는 역할 과 책임의 무게가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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